촌평
김명수 『내 집에 갇힌 사회』, 창비 2020
내 집 없이도 안정된 삶은 어떻게 오는가
김도균 金度均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dkkim20@jejunu.ac.kr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임한 일이 있다. 재개발 구역의 건물을 막대한 대출을 끼고 사서 물의를 빚은 것인데,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 관사를 비워주게 되면 어차피 집을 사야 되는 데다 이후에는 별다른 수익도 없고 노모까지 모셔야 하다보니 임대료가 들어올 수 있는 건물을 샀다는 것이 당사자의 해명이었다. 30년 넘게 무주택자로 살아서 다주택자가 아니고 시세차익을 노린 것도 아니니 투기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적으로 아내가 자기와 상의 없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내 집에 갇힌 한국사회’의 단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다른 나라였다면 이 정도 부동산 구입이 특별히 문제 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너도나도 은퇴 후 돈 들어올 구멍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회만 되면 ‘똘똘한’ 집 한채, 건물 한채 마련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대출 끼고 건물을 산 꼴이니 말이다. 그것도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정부가 강력한 대출규제를 예고하던 상황에서였다. 당사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내 집에 갇힌 사회: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왜 이렇게 부동산을 둘러싸고 투기와 생존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는지를 ‘자원동원형 주택공급연쇄’의 역사적 형성과 변화 과정을 통해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원동원형 주택공급연쇄란 미래의 개발이익을 담보로 민간자원을 동원해서 주택을 공급하는 체제로서 산업화와 주택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산업화 시기 국가는 모든 가용한 자원을 중화학공업 부문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심각한 주택부족에도 불구하고 주택 건설에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민간자원을 끌어 모아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건설사들에는 독점이윤을 보장하고, 수요자들에게는 자본이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민간행위자들을 끌어들여 재정부담 없이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체제하에서 수요자는 잘만 하면 집 한채 장만해서 엄청난 자본이득을 기대할 수 있었으니 마땅한 복지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집은 곧 가족들의 생계와 안위를 책임지는 사적 안전망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부동산 의존적인 사회가 된 연유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이러한 자원동원형 주택공급연쇄는 국가와 건설사, 수요자 모두 이득을 보는 포지티브썸(positive sum)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메커니즘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속적인 집값 폭등과 이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갈등이었다. 자원동원형 주택공급연쇄는 항구적인 개발이익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개발이익은 부동산가격 상승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했다. 실제로 미래의 개발이익을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집값은 주기적으로 폭등했다. 이렇다보니 이미 집을 장만한 사람에게는 끊임없는 자본이득이 보장되지만, 이 연쇄과정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잘 알다시피 이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내 집 마련은 한국사회의 모순이 응축된 이슈다. 여기에는 그동안의 경제성장과 압축적 근대화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유독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부동산이 단지 투기와 욕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생존의 문제와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극적으로 심화되었다. 가계대출이 자유로워지면서 빚을 지고 집 장만에 뛰어드는 경우가 급증하다보니 자본이익의 실현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자가소유자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생존주의 주거전략’을 내면화했는지, 그렇다면 이를 내면화한 사람들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자가소유자들이 투자자 정체성을 가지고 소유권 행사에 몰두하면서 사회적 연대의 기반이 축소되고 사회가 보수화되는 경향도 짙어졌다고 진단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의 공공성이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종합부동산세와 뉴타운 공약 등 부동산 이슈가 선거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이러한 결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당장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위해 집 한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이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은 생존주의 주거전략을 능동적으로 내면화한 결과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다보니 초래된 결과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생존주의 주거전략이 어떤 조건과 국면에서 행위자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주의 주거전략이 능동적으로 내면화한 것이든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것이든 한국사회는 ‘내 집에 갇힌 사회’다. 이런 점에서 지난 시기 뉴타운 열풍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조세저항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등을 탐색하는 작업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부동산이 뜨거운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사회과학적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왜 우리가 현재 이렇게 부동산 문제에 얽혀 살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집에 갇힌 사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새로운 사회적 협약은 가능할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루아침에 생존주의 주거전략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느리고 점진적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협약을 모색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나가는 일이다. 부동산을 규제하는 것만으로 내 집에 갇힌 사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내 집에 갇힌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집을 사지 않더라도 충분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복지국가 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