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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성수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 역락 2020

실사구시 열정이 빚어낸 북한문학 연구의 지침서

 

 

유임하 柳壬夏

한국체대 교양교직과정부 교수 cultura@kn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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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광활한 바다에 등대처럼 여겨지는 지침서가 더러 있다. 김성수의 이번 저서가 꼭 그렇다. 북한문학을 대표하는 문예기관지 『조선문학』 전체를 통독하며 문학과 문화사의 맥락을 밝힌 책이다. 지금도 북한연구에 필요한 『현대문학 비평 자료집(이북편)』(전8권, 이선영 외 공편, 태학사 1993~94), 『북한문학사전』(이명재 엮음, 국학자료원 1995), 『총서 ‘불멸의 력사’ 연구』(전3권, 강진호 외 공편, 소명출판 2009), 『북한의 시학 연구』(전6권, 이상숙 외 공편, 소명출판 2013) 등이 공동 연구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자의 노고는 참으로 값지다. ‘『조선문학』(1946-2019)의 문학·문화사 연구’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책의 자료는 방대하며 독해는 엄밀하다. 책의 편제는 ‘연구편’과 ‘자료편’으로 구성돼 있다.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자료편’은 ‘연구편’의 성과에 값할 만큼 흥미롭고 알차다. 『조선문학』의 전사와 866권 전체를 시기별로 정리, 도표화한 ‘자료편’에서 마땅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월간 문예지 특성에 걸맞게 미디어의 세부 약호와 내용을 공들여 정리해놓은 부분이다. 정리 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371면을 보자.

 

『조선문학(朝鮮文學)』 창간호, 누계 6권, K-1926의 간행물 번호(이상은 항목1)/ 발행기관(북조선문학동맹), 발행소(문화전선사), 발행인(리기영), 주필(안함광), 발행일자(1947.9.15.)(이상은 항목2)/ 판형(46판? 국판?), 면수(298면), 임시정가(100圓)(이상은 항목3)/ 권두기사·특집·기획-[권두중편소설] 리북명, 로동일가(전재) [주요문건] 문예총서기국, 북조선문학예술축전 등(이상은 항목4)/ 공고·광고·부록·편집후기-[표지2면] 문화전선사 신간소개, 근간 예고(이상은 항목5)

 

‘자료편’ 매체분석표의 비고란에는 ‘내표지 창간특대호’, ‘목차 배열 변경’, ‘창작중심 문예지 변신 시도’, ‘주필 안함광의 경질에 빌미?’ 등의 내용이 부기돼 있다. 이러한 저자의 메모는 ‘2집 간행으로 단명한 잡지의 운명’을 공시적 단면에서 통시적으로 확장시켜주는 친절한 안내에 해당한다.

그간 북한문학 연구는 북한의 문예정책과 정세의 흐름에 짜 맞춘 편의적 독해에 치중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작품만 선별해서 읽어내는 방식을 탈피하여 엄밀한 서지학적 분류방식과 독법의 기본을 되돌아보게 하고 연구 주제와 방향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지침서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가령 332면 누계56의 『문학예술』 36권 5-4(4월호) 비고란에 부기된 “림화, 『조선문학』(문학사)” 출간 광고는 향후 임화 연구에서 수행해야 할 몫이다. 또한 333면 누계65 『문학예술』 45권 6-1(1월호, 1953.1.25)에 수록된 한효의 평론 「자연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있어서의 조선문학」을 가리켜, 저자는 비고란에 ‘림화 일파 겨냥한 반종파투쟁 평론 시작’이라고 부기해놓는다. ‘반종파투쟁’의 서막이 『문학예술』에 반영된 첫 사례임을 밝힌 논평이다.

이밖에도 매체분석 자료의 광고란을 일별해보면, 『문화전선』 1집(1946.7)이 한자와 좌횡서 인쇄본이며, 「김장군의 노래」(리찬 작사, 평양음악동맹 작곡)의 가사와 김일성 초상, 「20개조 정강」 등도 함께 수록돼 있어서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다. ‘자료편’의 또다른 흥밋거리는 1946년 『문화전선』에서부터 2019년 『조선문학』에 이르는 수많은 특집과 기획란이 가진 정치경제적, 문화사적 맥락에 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연구편’의 성과 또한 매우 다채로워서 『조선문학』에 관한 한 문학과 문화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후속연구를 촉발할 것이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북한문학의 기원적 양상에서부터 변모 과정 전체를 조망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마디로 “정치주의와 문화통치, 그리고 그 이면에 담긴 미디어 담론과 주체의 역동성”에 주목하는 일이다. 이는 “문예정책의 텍스트 반영성에 주력해온 기존 접근법에 대한 반성”(20면)에서 출발하여 “문예지를 문학작품을 수록한 단순 인쇄물로 보지 아니하고 (…) 미디어-문학장(media-literature field)”(21면)을 독해하겠다는 것이다. 그 성찰은 저자의 언급대로 북한문학 전체를 보지 아니한 채 ‘보고자 하는 부분만 논의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잡지라는 매체의 특성상 문지기 기능을 하는 특정 주제의 특집과 기획부터 독자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잡지로서의 기능과 텍스트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인 셈이다.

‘『조선문학』 전체에서 매호별 공시적 쟁점들을 하나하나 파악해 내고 그것들을 겹쳐가며 문예지의 통시적 변화를 추출해내는 작업’에서 얻어낸 저자의 값진 결론의 하나는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기관지와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의 이원적 간행 역사가 있었고, 이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압축·요약된다. 저자에 따르면, 문예총 기관지는 『문화전선』(계간, 1946.6~1947.8)에서 『문화전선』(주간, 1948.2~1950.8?)으로, 다시 『문학예술』(계간+월간, 1948.4~1953.9)과의 병존 시기를 거쳐 『조선예술』(월간, 1956.9~현재)로 이어지고, 조선작가동맹 기관지는 『조선문학』(계간, 1947. 9~12)에서 1950년대 초중반 이후 『조선문학』(월간, 1953.10~현재)과 『청년문학』(월간, 1956.3~현재), 『문학신문』(주간, 1956.12~현재) 등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미디어-문학장을 형성했다고 본다.(22~23면) 저자는 이러한 미디어 지형에다 『문화통보』 『문화건설』 『조쏘문화』 『조쏘친선』 같은 잡지도 포함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25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첫째, 1953년 9월에 개최된 제1차 조선작가대회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하나다. 이 대회에서는 남로당계 조선문학가동맹 출신 ‘종파’의 축출과 함께, 7개 장르의 동맹연합체였던 문예총 해체, 문학가·미술가·작곡가 등 3개 직군의 동맹만 남겨지는 결정이 있었고, 그로 인한 미디어 지형의 변화가 컸다.(279~89면) 둘째, 1967년 이후 “편집 주체의 관료화”(95면)에 대한 해명 부분이다. 또한 저자는 1968년 8월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도서정리사업’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고, 문예지 폐간과 문학예술 토대의 다양성 상실, 그로 인한 “문예지들의 극단적인 개인숭배 선전물로의 변질”(291면)을 비판하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북한 문예지 읽기에서 다원주의적 모색과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는 한편, ‘남북 문학예술의 소통과 통합 서술을 위한 공분모’를 확보하기 위한 학문적 모색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저작은 북한학과 북한의 문학예술 전공자들에게는 늘 곁에 두고 참조하지 않으면 안 될 ‘등대’ 같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