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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정대 朴正大
1965년 강원 정선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 『모든 가능성의 거리』 『체 게바라 만세』 『그녀에서 영원까지』 『불란서 고아의 지도』 등이 있음. sugarlessciga@hanmail.net
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내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내가 그날 밤 귀하한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미스터 션샤인」 중에서
프랑스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에는 론강, 손강, 센강 등이 있소 이야기의 시작은 센강 좌안의 레아 세이두로부터 시작될 거요
레아 세이두가 누구요 아름답소? 그럴지도 단지 내 낭만은 펜촉에서 흘러나와 알타이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강물의 노래였을 뿐
올리브나무 새잎은 밤에 더욱 빛나오
고향을 떠나 이곳에 당도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강가의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소
센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낯선 바람의 냄새 속에서 고독은 이미 가을에 당도한 한마리의 내면처럼 흔들리고 있었던 거요
거리를 지나 누군가의 내면 같은 골목길을 떠돌 때 파리라는 거대한 짐승의 냄새를 이미 맡은 거요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다니는 샹젤리제거리를 지나 콩코드광장을 지나 소르본대학까지 터벅터벅 걸어왔을 때 비로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깨달았던 거요
나는 이곳의 지도 한장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고 이곳의 모든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이오
시를 쓰기 위해 당도한 파리에서 나는 고아였던 거요
결국은 생라자르역 근처에 첫날 밤 숙소를 정했소 아덴호텔이라고 했소
생라자르역 주위는 아주 어두웠소
희미하게 불 켜진 가로등 아래로 술 취한 노숙자들이 비틀거리며 배회하고 있었소
그곳엔 값싼 호텔들이 많아 거리의 여자들도 많이 거주한다는 말을 들었소
그날 밤 아덴호텔의 지붕을 두드리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소
나는 화덕의 불빛이 따스하게 피어오르던 고향을 떠올렸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맛있는 빵 냄새를 떠올렸소
올리브나무 새잎은 밤에 더욱 빛나오
나는 호텔 다락방에 누워 비 내리는 천창을 바라보며 지금쯤이면 달빛 아래서 환하게 빛나고 있을 고향의 올리브나무 언덕을 생각했던 거요
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낯선 도시의 공기와 풍경과 여인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보들레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네르발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도시에, 아르튀르 랭보를 끝내 아비시니아 사막으로 떠나게 했던 도시에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겨우 당도한 것이었소
눈에 보이는 파리는 낭만적이었소
그러나 낭만적 낭만은 외려 적이었소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만 나의 낭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소
나 스스로 낭만이 되는 것이 훨씬 빠른 이 도시에서 아무 희망도 꿈꾸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시적이었소
이 땅에 살기 위해 시를 써야 했지만 헛된 희망이 불러주는 시를 따라 적고 싶지는 않았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배를 타고 미라보다리까지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곤 했소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걸어서 몽마르트르며 몽파르나스며 페르라세즈묘지를 배회했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오
유령처럼 파리를 견디는 거였소 그래도 귀향하지는 않았소 괴물 같은 도시에서 어쩌면 나는 한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오
담배가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진정한 담배를 꿈꿔본 적이 없으므로 담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소만 거리를 걷기도 하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어쩌면 운명 같은 담배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요
작금을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실론티 쿠바산 시가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레아 세이두가 누구요 아름답소? 그럴지도
단지 내 낭만은 한방울 눈물처럼 여전히 고독의 펜 끝에 맺혀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나의 시가 그날 밤 귀하한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비 내리던 어느날 센 강가에서 귀하를 만났을 때
비 그치던 어느날 센 강가에서 귀하를 떠나보냈을 때
단지 내 낭만은 허공의 길처럼 흩어지던 한줄기 푸른 담배 연기 속에 있었을 뿐
폭풍우 치는 대관령 밤의 음악제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비애야!
—오장환 「The Last Train」 중에서
자정이다. 바스티유에서 마들렌으로 가는 합승마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로트레아몽 백작 「말도로르의 노래」 중에서
모든 것은 한 편의 시에서 시작되었다
—박정대 「퓌르스탕베르광장의 겨울 시」 중에서
모든 것은 한편의 시에서 시작되었다
늦가을이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급류에 휩쓸려 나는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강 저편에는 갈대밭이 무성하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었는데 갈대밭 언저리에서 숲 쪽으로 뛰어가며 한 여인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빨리 강을 건너 그곳으로 가고 싶었으나 범피중류처럼 자꾸만 떠내려가며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깨어나니 꿈이었다
낭만적이오 오 낭만적 낭만은 적이오
공연은 끝났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등장인물들이 퇴장하자 누가 장면 전환을 한 것도 아닌데 무대가 바뀌었다
산골 극장에 다시 불이 켜진다
예고에 없던 또다른 공연이 시작되려나보다
헤매는, 방랑하는 페레그린 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페레그린 씨가 사회를 보자 시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무대장치는 따로 필요 없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그의 친구 레가노에게 아름다운 시를 읊어주고
보들레르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읍내로 술을 마시러 가고 있다
스웨터를 수선해 고쳐 입은 불란서 고아가 밤의 도서관을 빠져나와 몽파르나스의 뒷골목을 쏘다닐 때
모딜리아니는 한밤중 파리의 채석장에서 돌을 훔치고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행랑을 메고 걷던 톰 웨이츠는 어느새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에즈라 파운드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에서 배갈을 마시고 있다
퓌르스탕베르광장의 다락방을 빠져나온 장드파는 오늘도 몽파르나스 쪽으로 산책을 시작하고
불란서 고아들이 자꾸만 폭풍우 치는 대관령 밤의 음악제로 몰려드는 이상한 밤이다
이 공연을 끝까지 지켜보면 어쩌면 불란서 고아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파리의 지하수염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까부터 누군가와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의열이란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아무도 몰랐던 아름다움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구축하고 있는 밀생의 밤이다
고독과 침묵이 이토록 격렬하고 치열한 것이었다니 밤은 참 깊고도 아름답다
깊고도 아름다운 밤을 시로 써서 무엇 하랴
떨어지는 꽃잎을 흘러가는 강물을 쏟아지는 눈발을 굳이 시로 써서 무엇 하랴
자정이다. 바스티유에서 마들렌으로 가는 합승마차는 단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또다른 어둠을 불러 마지막 별빛마저 완전히 꺼진 칠흑의 밤
역병이 창궐한 시대 어둠의 거리를 걸어가며 백작은 마스크를 쓴 채 말도로르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나의 적멸이 완벽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바야흐로 원소들이 도처에서 충돌하고 있는 겨울밤이 아닌가
아니다 지금은 세상의 나쁜 습기들이 폭풍우에 몰려가는 여름밤이다
누군가 불굴의 선의로 폭풍우 치는 밤을 뚫고 이 적막한 거리에 겨우 당도했을 뿐이다
자정이다 거리엔 정선으로 불어가는 바람도 알타이로 떠나는 마지막 열차도 보이지 않는다
한마리 욕망만이 쏟아지는 빗속에 갇혀 무구한 짐승처럼 울고 있다
극야의 밤 꿈도 없는 날들이 수개월째 계속되고 그대는 외출을 한 지도 오래되었다
슬픈 고양이의 눈동자를 지닌 그대는 방드르디지역의 올빼미 당원 태양을 버리고 오롯이 밤과 밤을 이어가는 그대를 위해 나는 한편의 시를 들려주려 한다
알타이 계곡 깊숙이 숨겨두었던 시
너무 아름다워 자신만 알고 싶어 먼 옛날 세상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보석처럼 몰래 숨겨두었던 마을 정선 같은 시
그곳엔 아직도 시가 많으니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궁극적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시는 무엇인가
끝없는 어둠을 타개하기 위한 한점의 불씨, 불씨를 물고 가는 한마리의 새일지도 그럴지도
어느날은 새들이 물고 날아오르는 시가 밤하늘 가득 별이 되리니 또 어느날은 세상의 고아들이 별빛 아래서 길을 찾을지도 그럴지도
폐에 결절이 생겼다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큰 병원에 입원도 하고 병원에 다닌 지 한달 반 결절도 거의 사라질 무렵 의사는 면역력 약화에 따른 급성폐렴이라는 최종진단을 내렸다
한동안 피우던 담배도 줄이고 술도 끊다시피 했는데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하니 삶은 급속도로 적막해졌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화원에서 여러 나무들을 구경하다가 올리브나무를 만났다
갈비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 같은 올리브나무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나무에 레아 세이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올리브나무의 수피는 밝은 회색빛인데 가지는 가느다랗고 단단하며 잎도 역시 작고 단단하다
분갈이한 올리브나무의 위치를 몇번 옮긴 후에 마침내 햇빛이 잘 들고 내 시선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올리브나무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올리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는 그리스의 언덕이나 남부 스페인의 구릉지를 떠올린다
이제는 없어진 결절에 와 닿는 바람 결절이란 무엇이 끊어진 것일 수도 무엇이 맺힌 것일 수도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나의 결절을 생각하는 것이다
폐에 결절이 생겼다 사라졌다 폐가에 생긴 거미줄처럼 내 몸에 생겼다 사라진 결절을 떠올리며 나는 생의 결핍이며 올리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도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허허실실 비는 내리는데 이건 예술적 사대주의도 망각의 제국주의도 아니다
레아 세이두일 뿐이다 내가 기르는 비애의 이름일 뿐이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뜨거운 햇빛을 끌어와야 한다 적절한 물과 바람과 나의 시선 속에 올리브나무는 있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나는 날마다 그리스의 낮은 언덕을 끌어오고 지중해의 미풍과 적절한 언어를 올리브나무에게 들려준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매일 착한 생각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데려와 쓴 시를 올리브나무에게 읽어준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세상의 근심 걱정은 나 홀로 하고 올리브나무에게는 좋은 풍광만을 보여준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별빛 아래에서도 그 희미한 빛의 온기마저 간절한 기도처럼 올리브나무의 이파리로 향하게 한다
올리브나무를 살리기 위해 수염을 기른 천사가 마스크를 쓴 채 올리브나무 곁에서 꼬박 밤을 새운다 한 계절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바람이 불고 태풍은 지나가는 것이다 아직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노란 살구 몇알을 떨구며 태풍은 지나가는 것이다
대지의 뿌리를 붙들고 살아남은 나무들은 부러진 제 몸의 일부를 태풍에게 다시 내어주고 있다
누군가는 길가의 테이블에 앉아 살구 몇알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다 태풍에게 자신의 전생을 내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테이블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시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밤새도록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들이 있다
멀리 있는 빛을 듣는 밤이다 초개(草芥)와 수영(洙暎)이 호출되고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지나간 날들을 이야기한다
지나간 날들은 이곳을 지나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디론가 간 시간들은 저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킬킬대며 이곳을 바라보기도 하는 것인가
먼 길을 가며 어설픈 사랑을 하기도 하고 물미역 같은 퍼어런 그리움으로 그대를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탁자 위에 쏟아진 술은 흩어지고 스며들며 흔적을 남기겠지만 흔적을 지나 사라진 것들은 또 어디로 모이는 것인가
통영이나 해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빛나는 별빛이여
우리는 무엇을 잊으며 잃어버리며 여기까지 걸어온 것일까
머리 위에 펼쳐진 밤하늘을 소리 내어 읽고 싶은 밤이다
초개가 표지화를 그리고 수영이 발문을 쓴 밤하늘이라면 좋겠다
밤하늘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김영동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밤하늘의 마지막 페이지까지도
국적 없는 고아의 시시껄렁한 넋두리만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위, 위 불란서 여인은 그런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지금은 개기월식의 밤
바람이 불 때마다 위, 위 그런 소리를 내며
갈대들이 또다른 갈대 쪽으로 이동하는 시간
침략당하는 것들은 언제나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다락방이 좁다고 기르던 나무들을 함부로 버린다면
생은 아름다운 행성 몇개를 포기하는 것이다
불란서 여인은 침략당하고 역습하며 드디어 자신의 음악에 상륙한다
위, 위 위구르를 상상하지 마라
말은 언제나 아름다운 침공처럼 달려가고 달은 지상의 등대처럼 밝다
뒤라스의 말처럼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테라스에 앉아서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여인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위, 위 이런 걸 불란서 여인과 아름다운 침략이라고 하자
고독이 완성되는 밤의 한가운데서
하나의 눈은 밝아지고 또다른 하나의 눈은 어두워져가나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 위 위구르를 지나 아무도 모르는 밤의 끝으로
위, 위 오늘 밤은 가야 한다면 가야 하는 것이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새드앙역 저무는 역두에서 나도 너를 보내고 싶었다 비애여
아그네스는 이미 발차하고
밀바가 부르는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를 듣는 밤이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관공서에서 인간의 헛된 욕망을 설계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밤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심야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살아본 적 없는 생을 연기하며 삶을 지속한다
누군가는 곧 부서질 건축물을 설계하고
누군가는 잘 지어진 은행 건물 속에서 평생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돈을 세며 살고
또다른 누군가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다
나는 오직 글을 쓰면서 이번 생을 살고 싶었다
내가 산책하고 싶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번 생을 횡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몸 하나 누일 지상의 방 한칸 없는 비애여
세상 같은 건 다 버리고 산골로 가고 싶어도 막상 갈 수 있는 산골이 없다
끝내 산골에 당도한다 해도 오두막을 지을 한평의 땅조차 없으니
나는 이제 화전민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누가 이 행성의 땅들을 분할했나
언제부터 그 땅의 주인이 당신들이었나
태초에 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날 때 이 행성의 땅 그 어디에도 주인은 없었나니
미리견도 영길리도 불란서도 애초에 없었나니
집도 절도 땅도 없어서 슬픈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분노는 정당하고 그대들이 점거하는 거점은 아름답다
새드앙에서 이 시대 혁명 예술가 동지들에게 알린다
이제는 더이상 뻔뻔한 자본주의에 예속되지 말자
굴복하지도 말자
우리들 싱싱한 중지로 세상을 향해 퍽큐를 날리며
눈 쌓인 자작나무 공화국을 세우자
가을이 오기 전 우리가 꿈꾸는 겨울을 완성하자
늦가을이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급류에 휩쓸려 그녀는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강가에는 갈대밭이 무성하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었는데 갈대밭 언저리에서 숲 쪽으로 뛰어가며 나는 그녀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녀에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빨리 강을 건너 이곳으로 오고 싶어했으나 범피중류처럼 자꾸만 떠내려가며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잊을 수 없는 눈동자였다
깨어나니 꿈이었다
낭만적이오 오 낭만적 낭만은 적이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것이오 폭풍우 치는 대관령 밤의 음악제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