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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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은주의 영화』, 장편소설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저물녘

 

 

그 일이 또렷하게 생각난 때는 이제 막 장마가 끝나고 처음 떠오른 햇살로 눈부신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 환희로웠다.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던, 그러나 생각해보면 짧은 기간에 단숨에 일어났던 그 집의 죽음들이 왜 하필 그 환희로운 아침에 생각난 것일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을 보고 아, 이제 장마가 끝났구나 싶어 창문을 열었고 창문 너머로 긴 장마의 와중에도 봉오리를 맺은 백일홍꽃이 막 피어난 것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났던 것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길고 긴 과정 같았지만 나중에 어른들한테 들으니, 눈 깜짝할 새였다고, 그러니까 그 집 대문간의 백일홍꽃이 세번 폈다가 지는 동안이었다고, 그동안에 그 집 식구들이 그렇게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백일홍이 피어날 때쯤이면 그 생각이 종종 났었다. 그날 아침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고향에서의 그 집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 집 일은 어쩌면 평생 동안 내 의식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 기억의 지층에서 살이 오르고 뼈가 굵어질 대로 굵어져 있었다.

 

처음의 죽음은 그 집의 손주며느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대문 입구로 들어가는 참에 오래된 백일홍나무가 있어서 배롱나무집이라 불린 그 집은 4대가 함께 살았다. 손주며느리를 동네 사람들은 서울아씨라고 불렀는데, 아씨라는 호칭이 쓰인다고 해서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라 1972년의 일이다. 1972년에도 우리나라 시골 어딘가에서는 아범, 어멈, 아씨, 도련님 같은 말이 쓰이는 곳이 있었고 그곳도 그런 중의 한곳인 산골 축에 드는 시골이었다. 먹고살 기반은 약하나 사람이 ‘사는 것이 아무리 거시기해도 그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 정도는 알고 ‘경우’를 거스르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정도는 되는 곳이었다. 배롱나무집의 손주며느리인 서울아씨가 그날, 장마가 얼추 끝나가고 마지막이다 싶은 비가 시적부적 내리다가 시나브로 멈추어가던 그날 장에 갔다. 그날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고 다음날이 배롱나무집의 맨 웃어른, 손주며느리인 서울아씨에게는 시할아버지가 되는 이의 아흔몇번째 생일이었다. 서울아씨의 모습은 서울아씨라는 호칭에 걸맞게 보통의 시골 사람과는 달랐다. 피부가 하얗고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손가락이 길었다. 동네에서는 보기 드물게 ‘환한’ 사람이었다. 서울아씨가 저쪽에서 걸어오면 나이 먹은 동네 여자들이, ‘아이고 환한 사람 오시네’라고 환대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환대와 경탄의 대상이었던 그 서울아씨가 장터 옆 차부에서 집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죽었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유난히 흰 얼굴이 더욱 하얘지면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얼굴이 목련화같이 하이얀 사람이 목련화 떨어지듯이 떨어져부러. 하나 소리도 없이.

짐작에 의하면 심장마비일 텐데, 하여간 그녀는 그렇게 순식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밖에서 죽으면 집 대문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풍습이 있어서 서울아씨는 담장을 허물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도 그 모습을 보았다. 서울아씨의 남편을 우리는 한식아재라 불렀는데 그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배롱나무에 기대 있던 모습도 생각난다. 그해 처음 핀 배롱꽃이 나무기둥에 기대선 한식아재의 머리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이 세상에 처음 떠오른 듯 찬란한 햇살이 가득한 식탁에서 내가 왜 그 이야기를 꺼냈던 것일까. 늘 내 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이야기지만, 막상 한번도 하지는 않은 배롱나무집 이야기를, 왜 환한 아침에 하게 된 것일까. 이야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가 절로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일까. 그날은 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말들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형국이랄까.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백일홍꽃 핀 것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나더란 서두조차도 생략한 채, 식구들이 막 밥숟갈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고향에 어떤 집이 있었다,고 불쑥 말했다.

대문 앞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흔히 백일홍이라고 하는 배롱나무였다. 너무 오래되어서 노인의 뼈 같다고도 하는, 등걸이 반질반질 빛나는 나무였다. 배롱나무 밑을 지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는 나무 대문을 열고 문간으로 들어서면 문간 왼쪽으로 마구간이 있었고 다른 집에는 소가 있을 자리에 말이 있었다. 갈기가 기름지고 뱃구레가 탄탄한 말이었다. 아이들은 말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일이 있어도 그 집엘 가고 일이 없어도 갔다. 마구간 맞은편에 아궁이가 있어 겨울이면 배롱나무집 근처에서 썰매를 지치다가 꽁꽁 얼었을 때 우연을 가장하여 그 집 대문간으로 뛰어들어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였다. 손을 녹일 때, 특히 발이 녹을 때 간지러운 것도 다 기억난다. 그 간지러움의 기억을 어찌 설명할까, 뜸을 좀 들이자,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인 작은딸이,

“딴 데로 새지 말고 빨리 하면 안 돼요?”

이야기에 흥미가 있어서 빨리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후딱 말씀 끝내야 나도 후딱 일어나서 내 볼일 보러 갈 수 있다는 ‘따님의 말씀’이란 것쯤은.

큰딸의 아이인 여섯살 손녀가,

“간지러운 건, 얼었던 피가 녹으니까 그런 건데 할머니는 그것도 몰라? 피는 브러드야, 브러드. 그치 이모?”

딸과 손녀의 한마디씩에 그만 배롱나무집 이야기는 급격히 힘을 잃고 말았다. 며칠 전에도 밥상머리에서 내가,

“꿈에 새를 잡고 있는 남자를 봤어.”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작은딸이 잘 들어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뭘로? 새총으로?”

눈을 반짝이며 묻기까지 했다. 물음에 고무되어 나는 또 속없이,

“아니, 손으로 새를 붙잡고 있더라고.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햇빛만 가득했어. 남자는 아마 병에 걸린 것 같았어. 병에 걸려 누워 있는데, 어느날 새 한마리가 창으로 들어왔나봐. 남자가 몸이 아파 가만히 누워 있으니깐 새가 남자 곁으로 쫑쫑쫑 왔겠지. 그래서는 ……”

“엄마, 엄마는 지금 내가 집에 있으니까 노는 것 같지? 나 지금 내 방으로 출근해야 되니까 이 몸은 그만.”

쪼르르 미끄러지듯 도망을 가버렸다. 남편도, 작은딸도, 내가 돌보고 있는 손녀도, 다아 떠난 빈 식탁에 내가 꿈에 본 ‘새를 붙잡고 있는 남자’만 우두커니 남았다. 그래도 이야기들은 아직 죽지 않고 내 머리를 툭툭 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 세상에 나오기로 작정한 이야기는 이제 산달이 다 된 태아처럼 내 머리를, 내 배 속을 툭툭 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는 남편에게 아침에 하다 만 이야기 계속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피곤하다고 잠이나 자자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근데 당신 말이야, 요즘 내가 부쩍 느끼는 건데, 뭔가 델리버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상대방이 뭘 알고 싶어하는지는 아랑곳없이 자기 말만 하려고 들어.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해놓고는 짚다발 넘어지듯 모로 누워 이윽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정년퇴직할 때가 다가와서일까. 남편은 확실히 예전보다 짜증이 많아졌다. 불을 꺼주고 방을 나와 부엌에서 머리통을 감싸 쥐고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또 배롱나무집 이야기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미가 느껴졌다.

내게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증세가 언제부터 생겼을까. 그것도 배롱나무집 경우처럼 무겁다면 무거운 이야기에 사로잡힐 건 또 뭐란 말인가.

잇몸 치료하러 친구 여동생의 치과에 갔다가 기어코, 또 그 집, 배롱나무집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마침 점심때라 동생이 밥을 사주면서 건네준 술을 한잔 마신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 집을 우리는 배롱나무집이라 불렀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지. 온 가지가 숫제 다 뼈였지.”

“흔한 배롱나무가 그 집밖에 없었다고?”

“그러니까 가지가 온통 백골인 고목나무 말이야. 그 나무 아래 서면 다른 데도 아니고 딱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을 정도야. 진짜 멋지지.”

“나 같으면 그런 나무 아래서……”

주위를 둘러보다 내 귀에 대고, 빠르게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먹진 못했어도 내 귀가 빨개졌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나, 시치미 딱 뗀 말짱한 표정으로 동생이,

“배롱나무집 애긴 왜 하려고 하는데?”

“몰라.”

몰라,라고 손쉽게 대답해버린 것이 좀 아쉬워서 얼른,

“그래도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끝까지 하고 싶네.”

“그럼 해보시든지.”

“……그러니까 자태가 압도적인 배롱나무집에서 말이야.”

술잔을 탁자에 탁 엎으며,

“언니이, 부탁인데, 제발 배롱나무라든가, 뭐 뽕나무 배나무 유자나무, 또 뭐 있어, 하여간 촌티 나는 옛날이야기 좀 하지 마아. 울 언니한테도 질려 죽겠는데 언니까지 그러면 어떡해. 안 그래도 이빨 맘에 안 든다고 환불해달라는 환자 땜에 머리골치 아파 죽겠는데 이 아줌마들이 그냥……”

작은딸도 내게 신신당부했었다.

“엄마, 어디 가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같은 거는 꺼내지 좀 말아요이? 요새 세상에 그런 낡은 레파토리 좋아할 사람이 어딨어. 그러니 제발, 응?”

안에서나, 밖에서나 다다다다다…… 말폭풍 앞에서 기가 죽은 배롱나무집 이야기는 다시 내 속으로 쏘옥 들어가고 말았다.

 

해가 간지러운 오후다. 적당한 구름그늘 아래 하늘거리는 백일홍은 이제 바야흐로 만개를 향하여 가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사이에 있는 나무 중에 가장 우람한 나무 백일홍나무. 아니 배롱나무. 우리는 거기서 보기로 했다. 좀 있으면 배롱꽃잎은 세상천지에 가득할 것이다. 햇빛은 더욱 힘이 세지고 구름이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르는 날이 많아지면 배롱꽃잎이 가득가득. 가득가득은 마스크 안에서 작은 비말이 되어 갇힌다.

옛날에 비말이란 단어가 들어간 시나 글을 읽은 적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포말이었을 수도 있다. 비말이 되어 흩뿌리는 비는 영롱한 이슬이 되어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적셨다,라거나 파도가 비말로 부서지는 방파제에 서 있던 그 남자,라든가…… 그래서 나는 코로나가 ‘비말전파’된다는 말이 좀 낯설었다. 비말은 전염병에 붙이기보다는 배롱꽃은 비말처럼 피어난다,라는 문장에 더 어울릴 것도 같다. 배롱나무에 가려 보이긴 해도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은 현주다. 키는 작지만 특유의 건정건정한 걸음걸이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오래 기다렸지?”

햇빛 아래라선가? 현주의 인중 주변에 자잘한 잔주름의 무늬가 선명하다. 그 잔주름에도, 예전보다 더 넓어진 듯도 싶은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내가 건넨 손수건으로 땀을 찍어내며,

“찻집에라도 들아가 있잖고서.”

“꽃그늘이 좋아서.”

현주가 배롱나무를 올려다본다.

“아유, 이제 막 터지는 중이구나, 간지름나무꽃이 터지는 중이야, 오호.”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 교정에도 배롱나무가 있었다. 배롱나무를 간지름나무라고도 한다는 것을 고등학교 교정에서 현주가 가르쳐줬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간지름나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를 여기저기 간질이면서 우리는 그때 누가 우리를 간질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맘껏 터트렸던가 어쨌던가.

“올해 첫번째 꽃이야.”

“배롱꽃이 피면 그때가 여름인 거지. 벌써 여름이야. 속상하다, 속상해.”

세월이 빨리 간다는 통상적인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닌, 코로나로 세월 다 가고 있다는 원망, 아쉬움을 속상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이대로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오고 그러고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이제 인간들은,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후세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은데, 막상 저나 나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오는 말일 게다.

이혼하고 아이 하나 데리고 살던 현주는 내 사촌오빠와 재혼을 했다. 그래서 손위 올케이기도 한 현주와 만날 약속을 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코로나 정국에 어찌 사느냐는 안부전화에, 코로나 핑계로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것이 꼴 보기 싫어 집을 나가라고 했더니 돈이 있어야 나갈 거 아니냐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대드는 아들과 한바탕했다는 것이다.

“헬스장에 취직했다며?”

“열었다가 확진자가 나와 또 닫았대.”

“좋다가 말았구나!”

목소리를 갑자기 줄이며,

“죽을 맛이다.”

집에서 하는 전화가 그리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란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뭐나, 일단 보자. 우리 본 지도 오래됐잖아. 가을에 만났던 거기서 보자.”

지난가을에 현주를 만나 박물관과 미술관의 가을맞이 전시들을 잘 보고 밥도 잘 먹고 차도 잘 마시고 대화도 오래 하면서 나 나름대로는 썩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초겨울, 그러니까 지금은 코로나로 불리지만 그때는 중국에서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는 ‘괴질’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강 너머에서 불났다는 소식처럼 듣고 있던 즈음에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현주에게, 지난 가을날의 즐거웠던 데이트가 떠올라서, 아줌마, 오늘 한가하시면 저와 함께 춤 한곡 당기시죠 하는 식으로, 시간 되면 미술관 전시 관람 어때? 물었더니, 한숨부터 포옥 쉬고 나서,

“그때도 실은 싸우고 나간 거라……”

현주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싸우고 나서는 누구나 다 그렇지, 그럴 수 있어…… 뭔가 빤한 반응을 보인 것은 현주의 처지에 대한 나의 이해 부족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오빠는 사실 그리 살가운 성품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답게 거짓말을 할 줄 몰랐지만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긴 하지만 때로 그 정직함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빠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오빠가 현주를 만나기 전까지 연애도 결혼도 못한 이유가 혹시 너무 정직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작 현주와의 결혼생활을 보고 나서였다. 현주의 아들은 새아빠한테 정을 주지 않았는데, 어른이 아이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해서라고 현주는 진단했고 현주와 오빠의 갈등은 늘 그 범주에서 시작되곤 했다. 애가 정을 안 줘서 나도 정이 안 가는데 그럼 나보고 연극을 하란 말이냐고, 오빠가 너무나 ‘솔직한’ 반응을 보여서 현주는 슬펐다. 현주가 슬퍼할 때마다 나는 또,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너의 슬픔을 내가 알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의 대답을 했을 뿐인데, 그래서 이전에는 말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기도 했는데 그날은,

“영혼 없는 빈말은 그만해.”

말하는 현주 눈이 붉어지는 것을 못 본 척하면서 다소 건조하게 헤어졌다.

영혼 없는 빈말. 영혼 없는 빈말이 내 속에서 번식했다가 소멸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해가 넘어갔고 그사이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난가을처럼 박물관과 미술관 사이에서 만났으니 자연스럽게 여름맞이 전시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먼저 미술관으로 갔으나 미술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막상 보자고는 했으나 박물관도 미술관도 문이 닫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막막해진다. 까페로 가기 위해 햇빛 아래를 말없이 걷다가 현주가 문득,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야.”

한참 있다가,

“안 그래? 우선 코로나도 그렇지. 도대체 뭘 어쩌라고, 느닷없이 와가지고는 도대체, 어쩌라고……”

말을 계속한다면 ‘도대체’와 ‘어쩌라고’ 또한 무한 반복될 것 같다.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 현주 부부가 하는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나도 알고 있다. 농반진반으로, 식당이 문을 닫았으니 오늘은 차라리 맘 편하겠네, 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문다.

천장이 높은 까페는 음악 소리가 좀 시끄럽다. 볼륨을 낮춰달라 부탁을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편해서 혹은 필요해서 뭔가를 부탁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외출을 했다가 날은 덥고 때를 넘겨 허기가 져서 분식집에서 콩물국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줌마, 화장실이 어디예요? 나가서 왼쪽으로 가서 밑으로 내려가요. 나가서 왼쪽으로 한참을 가니 건물 입구가 나타났고 과연 밑으로 내려가는 음산한 계단참에 화장실이 있었다. 남녀가 같이 쓰는 화장실이었다. 왜 그런 옹색한 장소에 있는 남녀 혼용 화장실에서는 가장 좋지 않은 상황만 떠오르는 것일까. 가령…… 누가, 그러니까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나를 보고 뒤따라와서 밖에 서 있다가 내가 문을 여는 순간…… 예전에, 내가 아직 젊었을 때는 늘 ‘공중화장실 공포’가 있었다. 이제 어디를 가든 늙은이 축에 속하는 나이가 됐어도 그 공포감은 여전하고, 여전할 수밖에 없고…… 손을 씻으려니, 수도꼭지가 고장 나 있다. 수도꼭지는 고장 나 있고 곰팡이에…… 그러나 그 모든 참혹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있는 무서운 상황을 맞지 않고 볼일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자리에 돌아와보니 콩물국수는 진작에 나와 있었다. 손을 씻지도 못한 상태로 젓가락을 들었다. 콩물은 너무 뻑뻑하고 면발은 고무줄처럼 질겼다. 가위를 부탁하고 싶었으나 못하고 질긴 면발을 속에서 부글부글 올라오는 역정과 함께 씹어 삼켜야 했다.

정작 꽥 소리는 다른 자리에서 났는데, 돌아보니 노인 한사람이 나처럼 콩물국수를 먹다가 면발도 면발이지만 국물이 적었던 모양이었다. 국물 좀 조금만 더 주라는데 엉? 새끼들이 말이야, 아주 돈독들이 올라가지고 말이야, 사람이 아냐, 아주, 요새 것들이 말이야, 아주 에이아이야, 에이아이잉? 악을 쓰는 노인의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누구는 놀라는 시늉을 하고 누구는 짜증을 내고 또 누구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것이 역력하지만 부러 외면하는 것도 보았다. 어느 누구도 노인을 거들지 않았다. 거들기는커녕 계산을 하며 노인의 역성을 드는 척, 아이 요즘 젊은것들, 아주 못됐어 아주우, 못됐어, 주인과 함께 껌벅이는 눈빛을 교환하며 나가는 인간도 보았다.

퇴근길에 제 딸을 데리러 온 큰딸에게 그것이 참 노여웠다고, 노인을 아무도 거들지 않는 세태가, 심지어는 비웃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참 징그럽더라고, 생각 같아서는 비아냥거리는 인간을 쫓아가서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더라고 말하자 딸이,

“엄마, 툭하면 악쓰는 노인들도 징그럽기는 마찬가지야.”

실실 웃음기까지 비치며 말하는데,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더군다나 현관문을 나가면서 하여간 노인들 갑질이란, 아휴우, 진저리까지 치던 것이었다. 큰딸을 보내놓고 울고 싶은 기분으로 어두워오는 부엌에서 불도 안 켜고 한참을 앉아 있는데 그 순간에도 어떤 이야기 하나가 내 속에서, 혹은 저쪽 어둠 속에서 걸어오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와서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의 손이 포근히 내 어깨를 감싸는 듯도 하였다.

그런저런 얘기 끝에, 현주가 무슨 말인가를 할 듯 말 듯 하다가 끝내 입을 다무는 기색이 느껴져서,

“내가 옛날이야기 해줄까?”

“무슨 이야긴데?”

현주가 윗입술 위에 까페라떼 거품을 묻힌 채 물었다.

“배롱나무집 이야기.”

“배롱나무집 이야기라면 옛날이야기겠구나?”

“옛날이지.”

“옛날이야기 조오치. 갈수록 요새 이야기보다 옛날이야기가 더 재밌어이?”

배롱나무집의 서울아씨가 죽은 이야기까지를 듣고 난 현주가 커피를 마저 꼴깍 마시면서,

“그담엔?”

 

서울아씨의 황망한 죽음 이후 배롱나무집의 두번째 죽음은 그 집의 맨 웃어른이자 동네 사람들이 덕골어른이라고 부르는 아흔 노인에게 찾아왔다. 그 죽음은 좀 애매하기는 했다. 덕골어른이 스스로 죽음을 찾아갔는지 어쩌다보니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울아씨가 그렇게 되니 아들도 며느리도 이 어른의 생신상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 하루 소나기가 퍼붓다가 갠 석양 무렵 덕골어른이 휘적휘적 동구 밖으로 나가는 걸 본 사람이 말하기를 봇도랑에 물이 얼마나 불었는지 물구경 간다 하시더라고 했다. 물구경 간다고 가는데 어쩐지 좀 허망해. 허망하다 못해 휑해. 그래서 인사를 했지, 잘 가시오 덕골어르신. 손을 훠이훠이 흔들더라고. 허연 두루마기 소매가 새같이 펄럭여. 허연 두루마기가 새같이 석양 복판으로 날아가는 것 같더라고. 혹자는 또,

물구경은 무신, 손주며느리 그리되어 생신상도 못 받아 노하신 게지. 사는 게 노여워서 가신 거시여.

또다른 이는,

뭔 소리, 봇도랑 근처에 지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던 양반이 허망하게 가신 거지 뭘. 물구신이 잡아댕겨분 거시여.

밖에서 사람이 죽으면 대문으로 못 들어오는 풍습이 있지만, 덕골어른은 워낙에 웃어른이라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새마을지도자 아들이 노부를 업고 왔다. 덕골어른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는 사실을 맨 먼저 동네 사람들한테 알린 사람은 나였다. 비가 개어 소에게 줄 꼴을 베러 들판에 나갔다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노인을 보았다.

 

“내가 풀을 베다가 백사를 봤지.”

“흰 뱀?”

“그렇지. 무심코 왜낫으로 풀을 댕강댕강 쳐내려갔는데, 낫 끝에 뭔가가 탁 걸리더라고.”

“아이구메야!”

때마침 현주의 전화벨이 울린다. 뱀 때문에 놀란 것이 그대로 전화벨 소리에 놀라는 것이 되었다. 그사이 나는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도 현주는 통화를 계속하고 있다. 뭔가 심각한 것 같아 자리를 피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망설이고 있는 것을 눈치챈 현주가 손으로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한다. 전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현주의 아들 목소리다.

“……아 씨바, 그니까…… 내놀 거야, 말 거야, 어쩔 거냐고오.”

“그게 그러니까, 지금 형편이 어렵다고 말했잖아아. 코로나로 가게 문 닫은 거 알면서도 그려냐아!”

“또 악쓰네, 또 악써. 악쓸 것 없고 달라는 돈만 줘어. 나가래메에, 돈이 있어야 내가 나갈 거 아냐아.”

“하여간 담에.”

“담에 언제에.”

“그니까 코로나나 풀리며언.”

“코로나가 언제 풀리는데에.”

“언젠간 풀리겠지이. 코로난지 귀로난지, 지깟 게 뭐 평생 가겠냐아.”

“평생 가며언, 평생 가며언!”

“석아, 엄마가 지금 밖이라……”

“아아앙, 밖 어딘데에, 코로나 걸릴라고 막 돌아다니네에, 막 돌아다녀어.”

현주의 미간이 일그러지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급기야 눈물이 투두둑 떨어진다.

“지금 내가아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색꺄아.”

“돈 얘기 하는 거야?”

잠시 뜸을 들이다가,

“뱀.”

“뭐래!”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고 난 석양 무렵에 열살 먹은 애가 소꼴을 베려고 봇도랑이 있는 들판으로 나갔어.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저녁 무렵이니, 하늘은 또 얼마나 불타올랐겠니. 하여간 그런 날의 노을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벅차오르기 마련이지. 우리도 언젠가 그런 노을을 보자꾸나. 너하고 나하고 손잡고 노을이 붉은 언덕에서……”

“미친.”

전화가 딸깍 끊어졌다.

“……우리도 그런 노을을 보러 가자꾸나. 사위가 깜깜해질 때까지 점점 사위어가는 노을을 우리 둘이서 함께 보는 거야. 천지사방에 풀벌레 소리만 가득할 테지. 너는 내 무릎 위에서 어느새 잠들어 있지.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니가 엄마, 노래 불러줘 하는 거야. 나는 가만가만 노래 부르지. 내애 너어를 만나던 나알 어린 나아는 행복했고 다시 만날 기약 없이 머나먼 기일 떠나왔네 길가에 한송이 외로운 꽃처럼 내 이름은 주란꽃 내 다시 피어나서어 옛날같이 살고 싶어어 꿈길 속에 피워보는 한송이 주란꽃.”

나도 합세하여 노래는 합창이 된다.

이제는 돌아와서 옛날 일을 생각하니 어리석었던 지난날 한숨 속에 덧없어라 길가의 한송이 외로운 꽃처럼 내 이름은 주란꽃 내 다시 돌아와서 눈물 없던 어린 시절 꿈길 속에 피워보는 한송이 주란꽃……

노래가 갑자기 끊어지며,

“개같은 새꺄, 왜 나만 갖고 지랄이야 엉? 이 쌍놈의 자식아아아아아.”

허공을 향한 현주의 절규에,

저기요.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여기가 무슨 당신들 안방인가요?

하여간 아줌마들이란……

내가 발끈 일어서려 했으나 현주가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앉았으면 눈을 감으라고 한다. 눈을 감고 쏟아지는 경멸의 언사와 눈빛들을 일단은 견디었다. 견디고 또 견디다가 우리는 조용히 까페를 나왔다. 해는 아직 중천이다.

어디 가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우리는 걸었다. 지난가을에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돈가스집 앞까지 왔다. 현주가 먼저 짧게 탄식했다. 유리문 안쪽에 큼지막하게 ‘임대’라고 쓰인 글자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햇빛 아래를 걸었더니 목이 탔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을 사서 편의점 밖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을 까서 조용히 먹었다. 까페에서 경멸의 언사와 눈빛들을 견뎠듯이 이번에는 거리의 소음과 따가운 햇빛을 견디면서. 현주가 바나나우유를 쪽 소리를 내며 마저 마시고 나서, 그래서 백사는?

 

대가리와 몸통이 분리된 백사가 내 눈앞에서 따로 꿈틀거렸다. 낫과 망태기를 그대로 두고 냅다 달렸다. 봇도랑의 징검다리가 떠내려간 줄 모르고 물속으로 첨벙 발을 담갔다가 휘청, 휩쓸리는 몸을 둑방을 의지 삼아 겨우 버팅겼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둑방 위로 올라와 내달리는데 내가 달리는 반대쪽을 향해 사람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불어난 물 위에서 요동을 치며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꿈틀거리던 백사처럼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둥둥둥둥, 굼실굼실굼실. 악을 쓰면서 신작로로 올라갔고 주막집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그중에 덕골어른의 아들인 새마을지도자도 있었다. 동네에서 둥덩이양반이라 불리던, 일본 유학을 갔다가 해방되고 돌아오며 축음기 한대만 가지고 나왔다는, 동네잔치에서 유독 춤을 멋들어지게 추던, 아버지인 덕골어른보다 머리가 더 하얗던, 여름이면 모시옷을 즐겨 입던, 동네에서 유일하게 카이저수염을 길렀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서 두번 낙방한, 새마을지도자 둥덩이양반. 덕골어른이 저세상으로 가고 난 뒤 깨밭에 활짝 핀 깨꽃을 보고 둥덩이양반이 갑자기,

아이고오, 아버지이, 하더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런 둥덩이양반을 본 사람이, 허연 것을 보니 덕골어른이 눈에 밟혀서 그러는가보다 했는데, 빨랫줄에 걸린 하얀 옷을 보고도 아이고오 아버지이, 나중에는 아무 데나 대고 아이고오 아버지이, 벼락같이 통곡하는 통에 길을 가던 사람조차 깜짝 놀라곤 했다.

세번째 핀 백일홍꽃이 한창일 무렵, 사람들이 들판에 추수하러 가서 동네가 텅 비었는데, 둥덩이양반이 그날도 아이고오 아버지이, 하면서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을 길어 오기 위해 공동우물로 가다가 그것을 본 내가 악을 쓰며 들판으로 달려갔다.

둥덩이양반이이이이이…… 둥덩이양반이이이이이……

들판에서 사람들이 우루루루 몰려와서 둥덩이양반을 새끼줄로 옭아매서 배롱나무집 기둥에 묶었다. 누군가가 둥덩이양반 머리 위에 가마니를 덮어씌웠다. 날이 저물자 동네 사람들이 둥덩이양반을 덕석에 말았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귀신 쫓는 굿이 벌어졌다. 둥덩이댁이 입에 오리 피를 한가득 머금었다가 남편을 뒤집어씌운 덕석 위에 뿜었다. 캄캄한 속이라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어른들이 덕석에 쇠스랑을 박아서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꽹과리, 징이 빠르게 울고 도끼, 낫, 괭이, 삽, 빗자루 같은 온갖 것을 든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이 괴성이나 기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둥덩이양반이 덕석 안에서 처음에는 악을 쓰더니 점점 소리가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첫닭이 울었다. 그 순간에 마당을 돌던 사람들이 덕석을 풀고 후루루 흩어졌다. 덕석 속에서 둥덩이양반이 벌떡 일어났다. 후루루 흩어졌던 사람들이 부연 어둠 속에서 둥덩이양반을 지켜보았다. 둥덩이양반은 휘적휘적 대문간의 마구간으로 갔다. 검은 말 위에 올라탄 둥덩이양반이 밝아오는 아침노을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가 떠난 아침에 마지막 피어난 백일홍이 환했다. 둥덩이양반이 떠난 자리에 백일홍만 붉었다.

 

“잠깐만. 맥주 좀 사 올게.”

현주가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간 사이, 탁자 위에 올려둔 현주의 휴대폰이 울린다. 현주의 남편, 사촌오빠다. 전화를 대신 받아줄까 말까 망설이다 그대로 두자 전화는 끊어졌다.

우리는 우선 맥주를 마셨다. 현주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다시 사촌오빠다. 사촌오빠 목소리는 전화기 밖에서도 환히 들린다.

“어디서 뭐 해?”

“당신 사촌동생이랑 이야기하지. 편의점 앞에서 맥주 마시면서. 호호. 무슨 이야긴지 한번 들어볼래? 둥덩이양반이라고 있어. 오래된 배롱나무집에 살았어. 어느날 몹쓸 병에 걸렸지. 사람들이 굿을 했지. 그런 굿 알아?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온 동네 사람들이 아픈 사람을 새끼줄로 결박하고 가마니 씌우고 덕석에 말아서 쇠스랑을 꽂아 마당을 빙빙 날 샐 때까지 도는 거야. 그담에 둥덩이양반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

“헛소리 그만해. 내가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 들을 기분이 아냐.”

“기분 안 좋아? 그럼 내가 노래 불러줄까? 당신 옛날에 내가 노래 불러주면 좋아했잖아.”

현주가 맥주를 더 사 오라는 시늉을 한다. 술기운이 돌면 현주가 노래를 더 잘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는 내가 미워 떠나고 울고 있는 나는 그대 못 잊어 우네 사랑이여 단 한번 옛날처럼 와주오 울고 있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오……

내가 따준 맥주를 기세 좋게 비우고 나서,

찬 이슬 내리는 밤 내리는 밤 차가운 교도소 무슨 죄 지었길래 지었길래 나 여기 갇혔나요오 영창에 가로막혀 영창에 가로막혀 황혼의 거리에서 사나이 사나이가아아 과거를 못 잊어서 무너진 인생탑을 인생탑을 쌓으려 애를 쓰나아아아아 영창에 가로막혀 영창에 가로막혀……

전화는 진작 끊어졌다.

아줌마, 아줌마들, 딴 데로 가세요, 딴 데로 가.

남의 가게 앞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노래를 부르면 어떡해.

여기서 확진자 나오면 책임질 거야, 어?

어, 안 일어나네.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씨발.

마스크를 쓴 편의점 직원이 의자를 뒤에서 빼려고 하자 현주가 버팅긴다. 일어나긴 일어날 테지만 이왕 시작한 노래는 기어코 끝마치고 일어날 태세다. 금방 일어날 테니 내버려두라고 대거리를 하려고 하자 현주가 손짓으로 나를 막는다. 가만히 있자는 신호일 테다. 내 의자는 이미 빼져 있는 상태라 나는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현주를 따라 나도 노래한다. 영창에 가로막혀 영창에 가로막혀 황혼의 거리에서……

어느덧 황혼이 밀려오고 있다. 노래를 하다 말고 현주가,

“둥덩이양반은 어디로 갔어?”

“말 타고 떠났지. 말 타고 멀리멀리 떠나버렸지. 영창에 가로막혀 영창에 가로막혀……”

노래를 다 부른 현주가 내내 버팅기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간다. 노래를 부르면서 간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현주를 피해서 지나간다. 현주는 어두워오는 거리 저쪽으로 노래와 함께 멀어지고 나는 아직 끝내지 못한 내 이야기와 함께 저문 거리에 서 있다가 성큼 길을 건넜다. 먼 데서 배롱나무가 가늘게 흔들리고 내 노래도 흔들린다. 영창에 가로막혀 영창에 가로막혀 황혼의 거리에서…… 날은 이제 완전히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