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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최원식 『이순신을 찾아서』, 돌베개 2020

‘이순신 서사’로 읽는 20세기 한국 혹은 동아시아

 

 

류준필 柳浚弼

서울대 중문과 교수 k004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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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찾아서: 단재와 구보의 이순신』은 적잖은 이들이 오래 기다린 책이다. 그래서 반갑고 감사하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저자 스스로 자임한 “양치기 소년”(5면) 운운은 듣기 민망하다. 앞길을 열어놓은 저자의 선창에 후배와 후학들의 응답이 부족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책의 표제를 살핀다. 누구나 아는 ‘이순신을 찾아서’ 나선다 한다. 누구나 알지만 실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며 계속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겠다. 부제도 붙었다. ‘단재와 구보의 이순신’. 저자는 이순신을 찾아가는 길이 “사람들이 다니는 알려진 길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숲속의 외딴 길”(27면 각주 15)이라 한다. 낯설고 때론 의아스러울 수도 있지만 길동무를 겸한 안내자가 있어 안심해도 된다는 격려처럼 들린다. 그 존재가 단재 신채호와 구보 박태원인데, 실제 둘의 비중은 많이 다르다. 단재가 가까이에 밀착해 있다면, 바둑의 한수 늘어진 패같이 구보는 멀리서 동행한다.

이순신을 찾아가는 저자의 행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 회고가 필요하다. 약 20년 전인 1999년은 ‘임진왜란’(칠년전쟁)의 종전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 무렵 저자는 쿠로사와 아끼라(黑澤明)의 영화 「카게무샤」(影武者, 1980)를 보며 일본 전국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나가시노전투(1575)에 감응한다. 타께다 진영이 오다 노부나가가 이끄는 신흥 세력에 참패하는 장면이다. 그 핵심은 조총으로 무장한 보병부대에 기마부대가 궤멸된 것이다.

신흥 연합군의 승리에서 저자는 “산문적(散文的) 근대”의 도래를 감지한다. 산문적 근대 이면에는 서세동점의 ‘서양’이 버티고 있다. 이 산문적 근대가 조총을 앞세운 임진왜란으로 비화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나아가 1900년 전후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이로부터 예비되었던 터, 저자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가 상징하는 바, ‘아시아의식의 결락’을 근본적 문제로 제기한다.(『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창비 2009, 280~84면; 『이순신을 찾아서』 14면) 그 반대편에 저자의 동아시아론이 마주 선다.

단재는 동아시아론의 사상적 원점 같다. 동아시아론을 위장된 침략주의로 비판하다가 이후에는 동아시아론을 적극 수용하는 데서, 또 무정부주의로의 전회에서 보이듯이 단재의 사상은 오롯이 근대적이면서도 근대에 비판적인 계기를 내포하고 있는 상징이다. 저자의 동아시아론도 그렇다. 한국의 근대사가 이룩한 성취와 한계를 그것 그대로 인정할 때〔實事〕 거기엔 그 부정적 이면까지 넘어서는 계기〔求是〕가 내포되어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를 함축한 ‘임진왜란’, 그리고 동아시아론의 사상적 거점인 ‘단재’가 서로 조우하는 좌표값이 ‘이순신’이다. 여기서 단재는 무엇보다 『수군제일위인 이순신』(1907, 이하 『이순신』)의 작가이다. ‘이순신’을 상대하며 최원식이 동원하는 무기는 아주 단순하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꼼꼼히 읽는 것이다. 먼저 텍스트를 확정한다. 국한문본과 국문본 두종의 『이순신』에서 국한문본을 정본으로 삼은 다음, 선조 이래 생산된 관련 기록과 문학의 맥락 속에서 『이순신』의 역사적 위상을 해명한다. 특히 “충무공을 과감히 단독 영웅으로 부각한”(36면) 점에서 『이순신』을 이순신 서사의 근대적 기원으로 규정한다. 다만 면밀한 읽기를 통해 “충무를 숭모하되 그 영웅화로 질주하지 않았다”(41면)는 단서를 명기한다. 이어 『이순신』의 단재에게서 조선 내부와 외부를 함께 아우르는 복안(複眼)의 시선을 감지하고서는, “단재를 따라서” ‘임진왜란’과 ‘칠년전쟁’이라는 두 용어를 함께 사용하겠다 한다.(47면)

『이순신』 해석의 핵심쟁점인 영웅주의 문제는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대목이다. 『이순신』의 문학다움을 가볍게 환기하고서, 저자는 이순신 서사의 영웅주의 계보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낸다. ‘이광수-이은상(박정희 시기)-김훈’으로 계보화되는 이순신의 영웅주의는, 박해받는 수난자 형상과 고독한 남성의 영웅적 개인주의가 착종된 구성물로 해석된다. 단재의 『이순신』 또한 이 계보의 시작점에 둘 수 있다는 논의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지만 차근차근 비판적 논점을 밟아간다.

단재가 번역한 『이태리건국삼걸전』(량 치차오 지음, 1907)을 원용하고, ‘동국삼걸전’ 3부작 대비를 통해 영웅주의와 탈영웅주의 사이에서 미세하지만 확연하게 변화하는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메이지시대 일본에서의 이순신론까지 종횡하는 저자의 행보는 압권이다.(51~61면) 단재 사상을 ‘유교적 계몽주의로부터 배태된 국민주의’(66면)로 해석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원한으로 고독한 영웅주의, 또는 허무의 개인주의로 질주하는”(68면) 이순신 형상과 단재의 그것은 판연히 다르다고 한다. 요컨대 이순신 서사의 계보화가 필요하다면 단재는 이광수와 이어지는 계보에 놓일 수 없다는 판정이다.

문학사적으로 정당한 계보가 필요하다면 『이순신』 이후의 문제적인 작품들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20세기 초에 국권 회복의 메타포로 선택된 이순신은 일제시대에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해방 이후에는 국민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들어올려졌다”(15면)는 전반기 국면에 이어 이후로도 다기한 변모와 굴절이 뒤따랐다. 저자는 모두 아홉편의 작품을 제안한다. 그 처음에 홍명희의 『임꺽정』(1928~39)을, 끝에 오다 마꼬또(小田實)의 『소설 임진왜란』(1992)을 들었다.

홍명희의 『임꺽정』을 처음에 둔 것부터 특이하거니와 박태원의 『임진조국전쟁』(1960)을 드러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단재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가 박태원이라고 본다. 박태원은 해방 직후 이순신 이야기를 연재했고 이북에서 『리순신 장군전』(1959)을 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임진조국전쟁』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무척 박하다. 대신 “소설보다 중요한 것이 구보가 서울에서 출판한 『이충무공행록』(1948)이다”(16면)라고 하면서 번역자 박태원에게 더 마음을 기울인다. 그런 다음, 이은상·김탁환·김훈에 대해 비평하고서 ‘죽이지 말라’는 원리에 충실한 반전사상을 담은 오다 마꼬또의 『소설 임진왜란』으로 주요 작품의 개관을 마무리한다.(91면)

‘『이순신』 이후’로 거론한 작품을 통해 짐작 가듯,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남과 북, 일본 등을 두루 고려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역력하다. 개별 작품을 다루면서 거론한 관련 자료들까지 포함하면 『이순신』은 동아시아론의 주요 텍스트로 부각함직하다. 하지만 이광수와 박정희를 중핵으로 하는 이순신 서사의 계보에 대응해서, 저자의 계보화 작업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숲속의 외딴 길”일 것이다. 박태원의 번역문 문체를 아끼되 『임진조국전쟁』의 도식적 경향에는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대신 “『갑오농민전쟁』을 위한 일종의 준비”(80면)로 보는 시선의 함축이 예사롭지 않다.

이 책을 저술하는 동안 저자는 『이순신』의 씩씩한 문체를 한 글자 한 글자 더듬어 옮기고 『이충무공행록』의 어투를 본맛 그대로 보이고자 마음 쏟았다. “목하 한국은 중대한 고비에 처해 있다”(91면)라고 한 저자의 심경을 떠올리자니, 글자를 교열하여 바로잡고 번역하며 주해하는 작업이란 어쩌면 자잘한 명징함을 천천히 쌓아 올리는 행위였는지도 모르겠다. “외딴 길” 너머의 풍경이 많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