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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롭 월러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너머북스 2020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인간-자연의 ‘얽힘’까지
주윤정 周鈗涏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araby@chol.net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구정은·이지선 옮김)의 원제는 ‘거대 축산농가가 대규모 독감을 만든다’ (Big Farms Make Big Flu)이다. 원제가 간명히 드러내듯, 롭 월러스(Rob Wallace)는 지금의 신종 감염병은 거대 축산회사, 특히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 농축산과 관련된 산업 일체)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자이자 축산업 전문가인 저자는 다양한 논거를 통해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21세기 들어 급증하는 신종 독감의 확산이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되었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대규모의 애그리비즈니스는 현재의 인수공통 감염병 상황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원헬스(One Health)나 에코헬스(EcoHealth) 등 인간 -동물 -환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진단하고 대응하려는 새로운 보건운동 영역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런 새로운 영역에서 공장식 축산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공장식 축산이 신종 감염병의 확산에 기여한다는 논거의 중심에는 생명다양성의 문제가 있다. 공장식 축산은 유전다양성을 축소시키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유전형을 표준화해 일종의 단종재배(monoculture)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품종 가운데 사육이 용이하고 가혹한 축산 환경을 견뎌내고 맛·사이즈 등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상품화할 수 있는 유전체만이 선택된다. 그래서 공장식 축산 내에서는 단일품종이 키워질 뿐 아니라 대부분 거의 동일한 유전체들만이 존재한다. 특정 유전체를 공유하는 종들은 동일한 질병 감수성을 갖기 마련이라 한가지 바이러스에 동일하게 취약하고 그 바이러스의 증식과 변이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며, 면역이라는 방화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공장식 축산에서는 지속적으로 어린 개체를 도축하기에 가축이 제 수명대로 사는 경우가 없다. 닭은 생후 40일에 도축이 되는데, 바이러스는 특히 면역력이 취약한 어린 개체를 숙주 삼아 증식할 수 있다. 가축은 생명으로 존재하기보다 철저히 상품으로 관리되고 통제된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가축이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가 되고 종간 전파가 이루어짐에 따라 가축의 전염병은 인간세계에도 영향을 준다. 감염병 관리를 위한 영역 역시 산업화되는데 과학적 통제, 그리고 철저한 격리와 살처분의 방식이 채택된다. 이런 방식을 비판하며 저자는 대안으로 대규모 축산보다 소농 중심으로 축산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의 규모와 관습은 신자유주의 생산모델이 아니라 지역의 물리적, 사회적, 역학적 조건에 유연하게 맞춰야 한다. 그래야 생태와 경제가 서로 이어질 수 있다”(135면)는 것이다. 이는 자본-공장식 축산-과학의 공모 관계를 넘어 인간 -자연의 관계망을 새로이 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거대 산업은 이미 축산 현장뿐 아니라 학계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식을 생산하고 대응해야 하는 과학계 역시 근본적인 대응에 미온적인데, 저자 또한 애그리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탓에 대학에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한 강연에서 털어놓는다. 저자의 주장을 통해 최근 더욱 증가하는 신종 감염병 발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비즈니스와 과학 그리고 축산업이 어떻게 얽혀(entangled) 있는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신종 감염병 증가의 핵심원인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을 위한 애그리비즈니스라는 저자의 주장은, 복잡해 보이는 현실에 대한 명쾌한 진단이 설득력 있어 보이면서도, 평자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어떤 위화감을 불렀다. 평자는 2017년에 조류독감 등으로 인한 가축전염병 관련 살처분 트라우마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축산 현장을 둘러보면 저자의 주장과 달리 소규모 영세 농가일수록 가축전염병에 취약하다. 공장식 축산의 경우에는 회사에 의해 제시된 방식에 따라 상당히 체계적으로 방역을 하고 감염원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다. 가축전염병이 상시화된 데다, 농촌의 인력난과 고령화가 겹쳐 모든 인적 접촉을 요했던 작업들의 자동화·기계화·규모화가 빨라진다. 농림축산부에서는 가축전염병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창문조차 없는 무창축사를 강조한다. 감염원과의 차단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닭과 돼지들이 (야생의) 철새나 멧돼지와 접촉하지 못하게 철저히 격리하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정말 말 그대로 공장이 되어가고 있다. 가축전염병 상황으로 인해 기계화·자동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더욱 인공적인 방식으로 철저히 공장을 통제하고 가축을 자연으로부터 격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소농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소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소농이라는 방식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인구 문제, 농축산업의 유통 문제 등 여러 복합적 문제들이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나아가 농축산업이 이윤과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경제영역이 아니라 인간 삶의 방식이자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될 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한 대로 산업의 이윤추구 방식이 종다양성을 축소시키며 질병에 취약하고 바이러스가 반길 만한 대규모의 숙주군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인간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의 문제들이 우연적으로 맞아떨어져 필연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원인만이 아니라 촘촘히 겹쳐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판단, 인간과 자연의 얽힘(entanglement) 관계에 대한 밀착된 이해를 통해 이런 우연이 필연으로 전환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신자유주의 탓만 하고 있어야 할까.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과 애그리비즈니스에 대한 재구조화뿐 아니라, 육식 위주 식문화, 야생동물의 서식지 보호 및 거래 금지, 실내동물원 같은 동물 체험시설 관리 등 인간-동물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야 한다. 인간사회의 취약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 역시 필요하다. 이는 근대의 착취적 방식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한국정부의 그린뉴딜이 이러한 생태적 위기에 대해 응답하고 예방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있는지도 함께 점검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