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예심위원으로 강경석 안희연 이설야(이상 시 부문) 김미정 김정아 송종원(이상 소설 부문)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이상 비문예 부문)를 위촉했다. 예심위원들은 만해문학상 운영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0년 5월 31일까지) 출간된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예심을 진행하였다. 부문별로 진행한 예심회의에서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이 시집 5종, 소설 5종, 비문예물 2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고형렬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박기영 『무향민의 노래』, 신해욱 『무족영원』, 이동순 『강제이주열차』, 황규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이상 시),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숨 『떠도는 땅』, 윤성희 『상냥한 사람』,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이상 소설), 김종철 『대지(大地)의 상상력』, 박래군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이상 비문예).

마찬가지로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위촉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5일 1차 본심을 열고 총 12종의 본심 진출작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앞의 발표문에 나온 대로 시집 3종, 소설 2종, 비문예물 1종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만해문학상은 최종심인 2차 본심에서 수상작(상금 3천만원)을 선정한다. 아울러 본상 수상작과 다른 장르의 작품에 특별상(1천만원)을 수여할 수 있다. 9월의 2차 본심(최종심)을 거쳐 수상작이 결정되며 본심위원 명단 및 자세한 심사평은 『창작과비평』 2020년 겨울호에 발표된다.

최종심 대상작 6편에 대한 예심평은 다음과 같다.

 

 

 

최종심 대상작 예심평

 

 

시 부문

고형렬의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은 “정신의 상류”(「나뭇가지와 별을 쳐다보며 1」)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적 인식의 치열함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감자 한알, 종로5가에서 산 달리아 구근, 멸치와 같은 가시적 사물에서부터 시간(성)과 장소(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시인에게 성찰과 발견의 대상이 된다. 멸치의 ‘멸’을 소멸의 ‘멸(滅)’로 바꿔 읽으며 “소멸이며 중멸이며 대멸이며/어떻게 그들은 이곳까지 다시 오게 되었는가”(「멸치 1」) 읊조리는 시인의 내면에는 허무, 불능, 회의가 여전하지만 결코 그것에 패배당하지는 않는다. 등단 40년 시력에 맞먹는, 아니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기갱신의 열망이 이글거린다. 익숙한 서정이나 달관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도 기꺼운 일이거니와 전보다 한층 농밀해진 언어, 깊이와 스케일을 동시에 선취하고 있다는 점은 마음 든든해지는 일이다. 만해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에 부족함 없는 시집이라 생각한다.

박기영의 『무향민의 노래』는 “북진한 국군에/목숨 붙이려고 엉겁결에/치안대 가담했던 아버지가/눈보라 속에 나타난 인민군 아들/총부리 피해/야밤에 홀로 떠나온 그곳” “평안남도/맹산군 수정리 300번지” (「원적지 1」)에 부치는 긴 편지이자 그 아비의 굴곡진 타향살이를 기리는 아들의 서러운 만가(挽歌)다. 그러나 이 시집의 진정한 묘처는 “전쟁 피해 등 떠밀려 내려온 사람들”의 피란(避亂)을 “병든 세상 구하겠다고 안태자리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던”(「단오제」) 민중개벽의 피안(彼岸), 그 오랜 집합적 비원과 마주 세운 데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거가 아니라 여전한 미래임을 이 시집은 싱싱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증언한다.

황규관의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는 “우리를 옹기종기 모여 앉게 만든 불은 꺼지고/저마다 한 움큼의 불을 찾아 뿔뿔이 떠나버”린(「불에 대하여」) 시대를 향한 관조와 그리움의 시집이다. ‘불의 시대’가 끝나고 진리, 법, 혁명, 노동, 민주주의와 같은 단어가 잔불처럼 남아 있는 시대. “너무 부유하나 너무 궁핍하고/너무 거대하나/모래알보다 작아”진(「문래동 마치코바, 이후」) 시대. “사라진 것을 기억하고 있는/우리”는(「작골」) 주로 공허하고 무력하지만 그것을 워낙 담담하고 곡진하게 이야기하는 터에 저도 모르게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의 비약과 생략이 아니라 말의 직진성에서 오는 힘이다. 아무리 쓰임을 다하고 “낡아가는 흙벽에/말없이 걸려 있”는 호미라 하더라도 “인간은 모두 호미의 자식들이다”.(「호미」) 누군가는 낡았다는 이유로 말하거나 주목하지 않는 그것을 굳이 거듭해서 말하는 시인의 마음에 지지를 보낸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잊었고 잃었는지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소설 부문

김금희의 소설에 대해 생각하면 사람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독특한 이름만큼 개성적이고, 개성적인 만큼 리얼한 인물들.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자주 독자들에게 ‘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김금희만큼 열정적인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작가가 특수성 속에서 보편성을 보고 또 보편성 속에서 역사성을 감지하는 예민한 작업을 열정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김금희의 소설은 우리 시대의 장삼이사들이 어떤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그려내는 중이다.

최진영의 『이제야 언니에게』는 친족 성폭력이라는 인간사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인생을 두동강 내고 마는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끊어진 인생을 이어 붙여서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옥을 건너야 가능한지 작품은 예리한 칼로 긋듯이 쓰리고 아프게 보여준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어쩌면 ‘교통사고’와 같다. 교통사고와 다르다면 가해자는 쉽게 용서받고 피해자는 그 사건(의 기억)을 피해 평생 난민처럼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작품은 기억의 난민이 되어 떠돌며 고통받는 ‘피해 이후의 삶’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피해자를 일으켜 세우는 소중한 사람들의 ‘불행의 연대’를 형상화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최진영은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통해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비문예물 부문

김종철의 녹색사상은 흔히 말하듯 문학과의 단절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문학’에 관한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탐구의 연장선상에 놓인 확장판이었다. 불의의 유고가 되어버린 『대지(大地)의 상상력』은 그러한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해준다. 블레이크와 디킨스, 매슈 아널드와 리비스 같은 거인들을 민중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사유는 에세이의 자유를 행사하면서도 현실의 대지와 역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과거의 문학유산에 몰두하면서도 현재를 잃지 않는다. 요약하기 어려운 사유의 진폭을 보여주지만 ‘하느님의 모든 백성들이 예언자가 되는’ 시대를 꿈꾸는 방향만은 일관된 문학론집이다.

강경석 김미정 김정아 송종원 안희연 이설야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