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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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진영 崔眞英

2006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등이 있음.

metaphor81@naver.com

 

 

 

차고 뜨거운

 

 

남편은 ‘건강’이나 ‘행복’처럼 평범하고도 중요한 가치를 품은 태명을 원했다. 나는 ‘건강’이나 ‘행복’의 기준이 모호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행복은 뭐야?

좋은 거지.

좋은 거?

좋아서 벅차다고 느끼는 거?

오직 좋기만 할 때가 있어? 좋을 때 오히려 불안이나 걱정이 커지진 않아?

그럴 때도 있지.

나는 행복 같은 건 번거로워.

번거롭다고?

남편의 되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은 인기가 많아서 언제나 수많은 팬을 몰고 다녔고 열성적인 팬들—불안, 걱정, 두려움, 연민, 후회, 원망, 의심, 죄책감 등—은 행복을 그냥 두지 못하고 엉겨 붙었다. 나는 온전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던 몇몇 순간을 떠올리며 나의 배를 내려다봤다. 생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어떤 실감도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축하한다고 말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므로 이것은 행복인가?

첫 증상은 고열이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는데 몸은 뜨거웠다. 출근 뒤 과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근처 내과에 들렀다. 의사의 말을 듣고 옆 건물의 산부인과에 가는 대신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이틀 뒤 반차를 쓰고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가 보여준 초음파 영상에는 회색 바탕에 검은 구멍이 있었다. 책이나 뉴스에서 본 이미지가 떠올랐다. 블랙홀이나 별의 소멸 등을 설명할 때 관련 자료로 사용하던 사진들. 내 몸속에 생긴 검은 구멍으로 내가 천천히 빨려들 것만 같았다. 의사가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말해줄 때, 나는 생명의 징조가 아닌 소멸과 적막의 기운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건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나오자 눈이 부셨다. 구름 한점 없이 새파란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타오르는 태양처럼 몸은 뜨겁고 검은 우주에서처럼 나는 추웠다. 추위와 고열의 이상한 공존. 태양을 흘깃거리며 저것은 살아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불타오르는 것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살아 있다’는 표현은 너무 협소해서 우주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는 밝게 빛나는 태양의 상태를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살아 있음과는 다른 상태로 존재하거나 빛나는 것들을 생각하자 돌연 안심이 되었다.

태양이라고 하자.

내 말에 남편은 바로 동의했다.

출산 뒤에도 우리는 아이를 태양이라고 불렀다. 여자애 이름으로 태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시부모도 나의 엄마도 반대했으나 남편과 나는 다른 이름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럼 차라리 해님이라고 하자. 아니, 별이라고 짓는 건 어때. 별이 더 예쁘지 않니. 시어머니가 말했다. 예쁜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늘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오직 하나여야 했다. 나보다 오래 존재해야만 했다.

 

*

 

어디에서나 태양만이 빛났으며 누구든 태양을 먼저 알아봤다. 나의 하루는 오로지 태양 위주로 움직였다. 남편 또한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태양과 나에게 집중했으나…… 나는 남편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매일 내게 고생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의 말은 진흙처럼 들러붙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남편의 사랑과 헌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엄마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남편이 출근하는—날이면 한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우리 집에 왔다. 엄마는 ‘우리 공주님’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태양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가 그런 단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가 ‘공주님’이라고 말할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나는 수십번 엄마에게 부탁했다. 아이를 아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엄마는 내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아이의 기저귀를 갈다가 나는 울면서 빌었다.

넌 정말 별걸 가지고 다 시비다. 내가 개똥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공주처럼 크라고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걸 가지고.

내가 지나칠 정도로 울면서 사정했기 때문에 엄마도 더는 아이를 공주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식으로 불렀다. 별님아, 달님아, 우리 예삐, 꽃순이, 나비야.

엄마는 청소와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내게 계속 잔소리했다. 아이를 그렇게 들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그렇게 눕혀서는 안 된다, 젖병을 그렇게 잡아서는 안 된다, 아이 머리를 그쪽으로 두지 마라, 너는 나이를 헛먹었다, 애만 낳았다고 엄마가 되는 게 아니야…… 엄마가 곁에 있으면 나는 계속 부주의하고 부족한 엄마가 되었다. 생각이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르쳐도 나아지는 게 없는 엄마.

저녁이 가까워지면—남편이 퇴근하기 전에—엄마는 다시 한시간 동안 운전해서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해 질 무렵 엄마도 남편도 없이 태양과 나 둘만 집에 남아 있을 때, 태양의 얼굴을 고요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엄마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고.

 

태양은 자주 우는 편이 아니었다. 필요한 순간에만 우는 것 같았고 원하는 것이 이뤄지면 울음을 멈췄다. 나도 자주 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울려고 하면 자조적인 웃음이 먼저 나오곤 했는데, 태양을 낳고 자주 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배출에 가까웠다. 운다는 자각 없이도 눈물이 흘렀다. 얼굴 피부가 쓰라리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울고 있으면 엄마는 ‘애가 본다’ ‘애가 듣는다’ ‘애가 느낀다’ ‘애는 다 안다’고 말하면서 나무랐다. 나는 아이였던 시절 보고 듣고 느꼈기에 알아버린 것들을 떠올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애는 다 안다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애들은 엄마밖에 몰라서 엄마가 느끼는 대로 다 느끼지.

엄마도 그랬어? 외할머니가 느끼는 거 다 느꼈어?

그건 너무 옛날 일이고.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나는 아빠가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내가 죽고 싶었다. 수십번을 죽으려고 했어.

애가 다 듣는다며 엄마.

니들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거다.

‘너희 덕분에 살았다’로 들리지 않았다. ‘너희 때문에 죽지도 못했다’로 들렸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탓하고 경멸하기 위해 결혼한 사람들 같았다. 그런 감정을 물려주기 위해 자식을 낳은 것만 같았다. 사실 아빠가 아니라 내가 죽어버리길 바란 적이 훨씬 많았다. 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를 없애버릴까, 그러면 이 고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가. 어릴 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라고 꼭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로 질문을 바꿨다. 굳이 답을 내리지는 않았다. 질문 자체가 주는 위안이나 홀가분함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 엄마가 어린 나를 키우던 나이와 내 나이가 가까워지거나 같아지면서 깨달은 바가 몇가지 있다.

엄마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였다는 것. 사랑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는 것.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것. 엄마의 방식이란 무엇이냐. 내 자식은 남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내 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식을 무시하면서 엄마의 자리를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

그렇다면 아빠는? 아빠의 세계에는 아빠만 있다. 아빠의 세계에서 아빠 아닌 존재는 대부분 쓸모없고 멍청하다. 아빠는 자기의 옳음과 우월함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한다. 너를 쓰겠다는 회사가 있어? 너랑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있어?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남들 하는 건 다 하려고 드네. 겨우 그렇게 살려고 돈을 들이부어 대학까지 다녔냐? 이것이 아빠가 나를 언급하는 방식이다. 나의 세계에 아빠는 없다. 아빠는 내가 열세살 때 없애버렸다.

아빠가 시뻘건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화풀이를 할 때—내가 열살이 되기 전까지는—엄마는 아빠를 말리거나 저항했다. 어느 날부터는 징조가 느껴지면 오빠와 나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아빠가 사람 없는 집에서 혼자 날뛰는 동안 엄마와 오빠와 나는 밤길을 걸었다. 한겨울에는 너무 추워 오래 걷지 못하고 기차역이나 불 꺼진 상가의 계단에 앉아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빠는 잠을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밥솥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속옷이 어느 서랍에 있는지도 몰랐다.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탁기 사용법은 알까? 옷을 빨아서 말려야 한다는 것,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어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 식사 후 그릇은 씻어야 한다는 것, 먼지는 쓸고 닦아야 하며 식재료는 시장에서 사 와 냉장고에 채워 넣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 가족의 생일은 외우지 못하지만 통장의 잔고는 십원 단위까지 외우는 사람. 우리 집에서 아빠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 존재였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므로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 아빠는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오랜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거의 버렸다. 이후 오랜만에 엄마를 만날 때마다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엄마가 아빠의 어떤 부분을 닮아버렸다는 느낌. 엄마는 아빠의 말을 엄마의 방식으로 바꾸어서 했다. 내 인생은 망했고 남의 인생은 하찮고 내 불행은 가엾고 남의 불행은 역겹다는 식으로.

내가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자 엄마는 사나흘에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누구네 딸은 이러저러한 남자와 결혼한다더라’라는 말을 전하는 낙으로 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내가 막상 결혼하겠다고 하자 반대했다. 연애하고 결혼할 시간에 돈을 더 벌라고, 돈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나의 남편을 싫어했다. 배포도 없고 그릇이 작아서 미래가 안 보인다고 깎아내렸으며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나를 책망했다. 남편 앞에서는 어떤 유세를 하듯 못마땅한 표정이나 말투를 숨기지 않았다. 엄마는 선택권을 쥔 사람처럼 평가하고 행동했다. 우리의 조건을 남들의 그것과 지겹도록 비교했다. 젊은 아빠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 내 결혼이잖아.

너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다.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야. 그럼 됐지.

네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 어른들 눈에 차지 않는 사람이면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돼.

엄마는 아빠 뭘 보고 결혼한 건데.

네 아빠는 내가 고른 사람 아니다.

그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골랐겠지. 어른들 눈에 차는 사람이었겠지. 그래서 좋았어, 엄마는?

나랑 너랑 경우가 같냐.

엄마는 나의 결혼생활이 실패할 경우에 대해서만 말했다.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엄마를 거의 없앨 뻔했다. 하지만 엄마를 걱정했던 날들이 엄마를 없애려던 나를 가로막았다. 나만큼은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커다란 덫이 되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과 딸의 역할이 있었다. 엄마는 고집스럽게 그것을 수행했고 내게 요구했다. 그건…… 나는 불행하고 너도 행복할 리 없으니 우리 서로 껴안고 세상을 원망하며 같이 울자는 관계였다. 아빠에게는 책임감 따위 없었다. 그래서 무시할 수 있었다. 엄마는 달랐다. 복잡한 감정이 심하게 얽혀서 해결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묶어둔 매듭이 많았다. 때로 엄마는 그 매듭을 가득 모아 내 입속에 처넣었다. 숨을 쉬지 못하고 컥컥거리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떠냐. 맛 좀 봐라. 너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이렇게 살았다. 너라고 다를 수 있겠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그 말은 남편과 나보다 엄마와 나 사이에 더 적합했다.

 

엄마는 태양을 아꼈다. 태양에게는 좋은 것, 건강한 것만 주려고 했다. 동시에 태양이 앞으로 겪을 수많은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걱정했다. 방긋방긋 웃으며 몸을 뒤집으려고 애쓰는 태양을 바라보며 엄마는 옳지, 옳지, 흥을 돋우다가 말했다.

애가 너무 늦는 것 같아. 벌써 뒤집었어야지.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이쯤 되면 엄마 소리도 해야 하는데. 다른 애들은 다 했을 건데.

엄마의 말에 반응하듯 태양이 목에 힘을 주며 나를 봤다. 나는 태양이 몸을 뒤집을 수 있도록 도왔다.

미루지 말고 얼른 둘째 가져. 형제가 있어야 욕심도 배우고 경쟁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클 수 있어. 서로 위할 줄도 알고 나이 들어 외롭지도 않고. 당장 키우기 힘들다고 하나만 낳으면 자기만 알고 못쓴다. 커서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해. 나중에 형제 없다고 너희만 원망할 거야. 두고 봐라. 부모 죽으면 얘 혼자 남는 거 아니냐. 얼마나 불쌍하겠니.

불행을 모으면서 안심하는 사람.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가 불행해야 안심할 것이다. 나의 행복은 의심하고 부정할 것이다. ‘네가 아직 모르는 게 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공주님, 엄마, 해보자. 엄마.

태양을 안고서 엄마는 아이 같은 목소리로 엄마, 엄마, 맘마 주세요, 반복해서 말했다. 태양이 엄마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

 

어느 겨울이었다. 엄마가 이모네 집에 가자고, 짐을 싸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 일기장과 필통과 색연필과 탐구생활 등을 넣었다.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의 의자 시트는 파란색이었고 지금의 지하철 의자처럼 마주 보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기차에서 계란과자와 바나나우유를 사 먹었다. 오빠는 콜라와 프랑크소시지를 먹었다. 기차에서 내렸다. 역 광장에서 이모 부부를 만났다. 이모부는 포대기를 두른 아이를 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전에도 분명히 봤겠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라도 봤겠지만, 마치 그때 처음 본 것만 같았다. 손을 잡은 두 어른. 다정한 사이. 사랑하는 관계. 나는 엄마 손을 더욱 꼭 쥐면서 물었다.

엄마, 아빠도 나를 업어준 적이 있어?

넌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엄마 아니면 안거나 업을 수도 없었어. 누가 널 쳐다만 봐도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나는 조금 뿌듯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모 집은 우리 집보다 좁았다. 작은 방과 더 작은 방이 있었고 주방과 거실은 거의 붙어 있었다. 형광등이 밝아 아주 환한 느낌이었다. 그때 우리 집 거실의 형광등은 미세하게 깜빡거렸고 불을 켜도 어두침침했다. 우리 집은 늘 깨끗했고…… 휑했다. 한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있는 소품이나 생활용품은 없다시피 했다. 이모 집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이 많았다. 수납장 위의 동물 모양 장식품들, 텔레비전 위의 작은 인형들, 발코니의 작은 화분들. 협탁에 놓인 노란 스탠드, 스탠드 아래 액자들. 작은 방의 커다란 바구니에는 장난감이 쌓여 있었고 방 가운데에는 귀여운 코끼리가 그려진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이모부는 이불 위에 잠든 아이를 눕히고 담요를 덮어줬다.

이모가 전화로 양념통닭을 시켰다. 우리는 거실에 둘러앉아 통닭을 먹었다. 이모부는 이모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갖다줬다. 휴지나 젓가락, 물, 맥주 같은 것. 두 사람의 눈빛은 따뜻했고 말투는 다정했다. 비아냥거리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이 다정해서 엄마가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와 둘이 있고 싶었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이모 부부를 흉보고 싶었다. 잠든 아이를 깨워서 물어보고도 싶었다. 야, 너희 엄마 아빠 원래는 안 저러지? 우리가 왔다고 연기하는 거지? 말해봐. 너도 아빠가 무섭지?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는 싸우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앞의 다정한 두 사람은 부모 같지 않았다. 나는 나만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분명히 비밀이 있을 거야. 한명이 불치병에 걸렸거나, 도망자거나, 빚쟁이거나, 사기꾼이거나, 아이의 아빠나 엄마가 따로 있거나, 언젠가는 한 사람이 배신할 거야.

이모 집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 드라마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감시하는 눈으로 이모 가족을 지켜봤다. 그들의 다정함이 연기라는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말투를 닮아갔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 또한 그랬다. 집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두 팔로 나를 안고, 손바닥으로 내 볼을 쓰다듬고, 나의 밥에 계란말이를 얹어주고, 밥을 더 먹으라고 권하고, 잘 자라고 인사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자기 옆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 등등—을 했다. 엄마와 오빠와 나의 목소리는 높고 밝아졌다.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이처럼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했다. 별것 아닌 농담에도 많이 웃었다. 따뜻한 물에 풀어진 휴지처럼 긴장감 없이 떠다니듯 움직였다.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 즐거워서 웃고 좋아서 박수를 쳤다.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서 안겼다.

이모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를 탈 때까지도 엄마는 다정했다. 나는 기차에 타자마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가 나를 깨웠다. 플랫폼에 내려서니 차가운 바람이 나를 때렸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집은 컴컴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거실 형광등이 깜빡거리다가 꺼졌다. 엄마가 안방 불을 켰다. 어쩐지 거실은 더 어두워졌다.

엄마, 배고파.

나는 칭얼거리듯 말했고,

냉장고에 식빵 있어.

엄마는 욕실 문을 열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빵 먹기 싫어.

엄마는 대답 없이 욕실 문을 닫았다.

그 겨울의 경험은 얼마 동안 수수께끼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답을 알고 싶었다. 엄마의 다정함은 정말 연기였을까. 아니면 엄마에게도 있었으나 나올 틈이 없었던 모습이 잠시 새어나와 빛났던 걸까. 엄마는 그렇게 다정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그 모습을 감추는 걸까. 내겐 사랑을 보여줄 가치가 없어서? 답을 내리고 싶지 않아서 이모 가족을 미워하는 편을 택했다.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모네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더욱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어버렸다.

이십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기쁨도 설렘도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어서 의심이 나를 덮쳤다. 나를 좋아한다고?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나? 나는 우리를 고통에 빠트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다. 상대가 맞춰주려고 애쓸수록 나는 난폭해졌다. 상대도 나처럼 표독스러워지길 바라면서. 그걸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나만 나쁜 게 아니라는 것. 우리는 똑같이 엉망이고 구제불능이라는 것. 상대가 참으면 역겨웠고 참지 않아도 역겨웠다. 비교적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았고, 웃긴다고 생각했다. 뭘 모르는 존재들이라고 얕잡아봤다. 몇번의 연애를 처참하게 끝내며 깨달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도 아빠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불러오는 불길한 평온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이모 가족을 떠올렸다. 내 안에도 다정함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그것을 꺼내고 싶었다.

 

*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린 후 나는 상상을 내 편으로 두었다. 원하는 대로 써먹을 수 있는 초능력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태양을 낳은 다음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 이런 상상에 빠졌다. 엄마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상상. 태양을 화장실이나 계단에서 떨어트리는 상상. 발코니에서 빨래를 털던 엄마가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 뾰족한 물건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는 상상. 태양에게 뜨거운 물을 엎지르는 상상. 뭔가가 폭발하는 상상. 폭발하여 불타오르며 동시에 사라지는 상상.

분명 내가 겪은 출산인데도 때로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내 앞에서 연기처럼 흩어진다면…… 그런 상상이나 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한편에는 수긍하는 내가 있었다. 태양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면서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고 그래, 그렇지, 역시 꿈이었던 거야, 내 예감이 맞잖아 하고 중얼거리는 나. 태양이 사라져서 자살할 만큼 고통스러운 나와 태연하게 수긍하며 아무 충격도 받지 않는 나는 상상 속에서 이물감 없이 함께 존재했다.

결혼 전, 갑작스러운 두드러기와 가려움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급성 피부 발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의사는 항히스타민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해줬다. 원인을 해결하는 약이 아닌 증상을 억제하는 약. 예방은 불가능했다. 징조와 증상을 알 수 있을 뿐. 그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불안은 찾아왔다.

어느 새벽, 잠에서 깬 남편이 나를 찾아 주방으로 나왔다.

안 자고 왜.

남편이 물었다.

가스 불을 제대로 껐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불이 분명히 꺼진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면, 방금 나의 확인이 의심스러웠다. 다시 돌아보고, 또다시 돌아보고,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화구격자 위에 손을 대보고, 손을 댄 채 쇠의 차가움을 느끼는 중에도 여전히 의심스럽고…… 나는 침대에 누울 수 없었다.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가스레인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서 어두운 그것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만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급기야 나는 이렇게 믿었다. 내가 저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저것은 잠잠하다고. 내가 방심하는 순간 불은 치솟고 불행은 시작되리라고. 이런 말은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의 불안 심리와 출산을 묶어서 생각할 테고, 나는 그런 생각을 견딜 수 없었다.

잠이 안 와? 어디 안 좋아?

남편이 물었다. 행복이란 강력한 자석을, 그것에 들러붙는 수많은 감정을 생각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불행했다. 나는 그런 것에 들러붙고 싶지 않았다.

호르몬 때문이래. 당신 요즘 우울하고 예민한 거. 출산 뒤에 당신 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고 들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문득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다. 의사가 했던 이야기를.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심장박동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의사의 표정이 떠올랐다. 의사는 잠깐 머뭇거렸다가 완전히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뭔가에 집중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태아가 사망한 것 같다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임신 4개월로 접어들던 때였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들어설 때도 태아가 죽었다는 어떤 예감도 증상도 느끼지 못했다. 입덧과 가슴 통증은 여전했고 매일 피로했다. 불규칙한 우울감에 자주 빠졌다. 우울과 불안. 의사는 그런 감정이 정상이라고 했다. 호르몬의 증가 때문에 겪는 일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러므로 나는 우울감이나 불안증조차 죽음의 예감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몸도 정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죽음이,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죽음이 내 안에서 일어났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죽음은 대체 뭐지? 차후에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계류유산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의사는 말했다. 약물을 써서 임신 산물을 배출시킬 수도 있고 수술로 흡입할 수도 있다고.

태양 이전의 아이.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우리가 ‘무사’라고 부르던 존재.

의사는 죽은 무사를 어떻게 했을까. 의료폐기물 봉지에 넣어서 버렸겠지. 하지만 나는 내 몸속에 뭔가가 남아 있다고 느꼈다. 체온이나 숨과 같은 영역에서, 초음파에 잡히지 않는 형태로, 우울과 불안의 방식으로. 그래서 우울해도 괜찮았다. 불안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때때로 숨이 잘 안 쉬어져도, 복통이나 두통이 밀려와도, 몸에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겨도 놀라지 않았다. 남아 있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여겼다.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다. 두번째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를 사로잡았던 소멸의 기운에 대해. 나는 그때 무사가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느꼈어. 기쁘거나 슬픈 감정 같은 건 느끼고 싶지 않았어. 사라지길 바랐던 것도 같은데 사라져서 무서웠어. 나는 태양도 무사처럼 죽을 줄 알았어. 무사는 그랬는데 태양은 안 그러면 정말 이상하잖아. 하지만 태양은 태어났고 나는 무사의 얼굴도 몰라. 태양이 죽는다면 나도 죽어버릴 거야. 그런데 나는 태양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세상은 그런 곳이잖아. 누구나 이유 없이 태어나고 죽잖아. 당신도 나도 마찬가지잖아. 그런데도 나는 왜 우리가 사라질까봐 불안하지? 우리의 불행이 내 탓일 것만 같지? 호르몬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 나를 그렇게 단순한 존재로 만들지 마.

나는 말없이 어둠을 바라봤다.

괜찮을 거야. 들어가서 눕자.

남편은 나를 다독이듯 말했다. 어떤 세계가 있고 그곳에는 오직 나만 살고 있다. 남들 다 그렇다는 말이 산산이 부서지는 세계. 나의 일부는 그 세계에서만 살다가 그 세계에서 죽을 것이다. 그 세계에 속한 나의 얼굴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남편이 내 손을 잡으며 괜찮을 거라고 다시 말했다. 나는 괜찮아지길 바라지 않았다. 내가 불안한 만큼 모두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런 나의 바람이 엄마와 닮은 것일까봐 두려웠다. 언젠가 나도 태양에게 엄마처럼 말하게 될까봐.

전부 너 걱정돼서 하는 소리잖아. 세상이 네 뜻대로만 굴러가는 줄 알아?

 

*

 

육아휴직이 끝날 때를 대비해 어린이집을 찾아보는 내게 엄마는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돌배기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긴 채로 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나는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를 다 키워놓고 돌아갈 수 있는 자리 같은 건 없었다. 엄마가 생각하는 답은 두개뿐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거나 엄마가 태양을 맡거나. 그외에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엄마에게는 철칙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것. 엄마는 그 철칙을 지키며 살았다. 내가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면 엄마는 비난하듯 중얼거렸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일을 해야겠다는 나의 말을 엄마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나의 꿈, 나의 성취,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같은 건 엄마 머릿속에 없었다.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이 있을 뿐이고, 그건 어쩌면, 엄마가 살아온 삶과 가장 닮아 있었다. 지긋지긋해하며 수십번을 죽으려고 했다던 그 삶. 엄마에게 태양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점점 망가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계속 걱정을 늘어놓았다. 애가 엇나갈 것이다, 남편이 바깥으로 돌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다, 시댁에서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전부 네 탓이 되고 말 것이다. 엄마의 걱정은 이렇게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이서방보다 능력 있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우리가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겠냐.

엄마는 내 탓을 하고 싶은 거였다. 내가 지금 만족스럽다고 해도 엄마가 보는 나는 불행하고 부족한 사람이니까.

엄마가 말하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맞벌이하면서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넌 왜 더 편하게 사는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니. 애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애가 걷고 뛰고 말하고 숫자 배우고, 그런 걸 엄마가 다 지켜보고 기억해야지.

엄마는 기억이 나? 내가 처음 걷고 말하고 그랬던 거?

그땐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지금은 뭐가 달라?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냐.

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거야.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지. 네가 나중에 후회할까봐.

나는 잘못될 생각부터 하기는 싫어. 나는 복직할 거고 태양이는 잘 클 거야. 물론 아프겠지. 다치겠지. 속상하겠지. 가끔 후회하겠지. 애 아빠하고 나는 싸우기도 할 거고 태양이는 울겠지. 그러면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해할 거야. 중요한 일은 같이 고민하고 약속을 지킬 거야. 특별한 날에는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갈 거야. 나는 그렇게 살 거야, 엄마.

내가 아이였을 때는 엄마에게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둘 다 어른이어서,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않으면 충돌하고 깨진다. 깨진 잔여물은 타인을 위협하고 상처는 영영 남는다. 엄마와 아빠의 충돌처럼. 엄마는 나를 자기 구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나는 엄마와 같은 궤도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태양을 돌보는 사이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식자재를 재빨리 카트에 담으며 나는 불안한 상상에 시달렸다. 태양이 침대에서 떨어지는 상상. 새가 집으로 들어와 태양을 쪼는 상상.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태양의 소리가 들렸다. 태양은 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주방에 짐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갔다. 엄마가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말했다. 일어날 수가 없다고. 애를 안으려다가 허리가 나간 것 같다고.

구급차를 부르고 태양의 이유식과 기저귀부터 챙겼다. 엄마는 누운 채 들것에 실렸다. 엄마가 병원에서 허리 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를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오빠를 떠올렸으나 선뜻 연락할 수 없었다. 네 아이를 돌보다가 병이 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을 할까봐. 나는 태양을 안은 채로 엄마 옆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민재한테는 말하지 마.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괜히 신경만 쓴다. 불쌍한 애가.

엄마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빠가 불쌍해?

불쌍하지. 그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오빠는 예전부터 결혼 생각 없다고 계속 말했잖아.

그래도 그게 아니지. 남들 다 결혼하고 자식 보고 사는데.

오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엄마.

나는 걔가 불쌍하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건 오빠나 나나 같지.

남자랑 여자가 같니. 남자는 집안이 번듯해야 돼.

지금이 조선시대야? 무슨 그런 말을 해.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결혼은 그렇지가 않아.

이후에 나올 말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엄마의 상태를 알렸다. 오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병원을 통해 간병인을 알아봤다. 남편은 퇴근길에 집에 들러 간단한 생필품과 편한 옷을 챙겨 왔다. 집에서와 달리 태양은 계속 짜증을 내고 울었다. 나는 태양을 안고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본다는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다. 태양이 깊이 잠든 뒤에야 남편은 태양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는 현장에 나가 있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전화한다는 걸 깜빡했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허리 상태와 예상되는 치료 과정을 알린 뒤 내일부터 낮에는 간병인이 엄마를 돌볼 것이고 밤에는 내가 병원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빠는 가만히 내 말을 듣다가 대꾸했다. 네가 고생이 많다. 나도 시간 내서 병원 들를게. 너도 너무 무리하진 마라.

전화를 끊고 나는 잠시 멍한 상태에 빠졌다.

무리하지 말라고.

복도 의자에 앉아 오빠의 말을 되뇌었다.

무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오빠와 상의하고 싶었다. 오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내겐 오빠의 전화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일을 해결했다. 결국 오빠에게는 통보를 한 셈이겠지.

간병인을 구했다고 말하자 엄마는 돈이 아깝다고 했다.

도와주는 사람 없으면 엄마 지금 화장실도 못 가잖아.

그래도 그런 데다 돈을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돈 걱정은 하지 마, 엄마. 보험 들어놓은 것도 있고.

네가 있을 수 있잖아.

난 밤에 있을 거라니까. 낮에는 태양이 보고.

우리 셋이 계속 같이 있으면 되지, 여기서.

태양이랑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건 무리야. 아이 건강도 생각해야지.

겨우 며칠이잖아.

그래, 겨우 며칠 간병인이랑 지내는 거야, 엄마.

난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자식 내가 거둔다고 생각했어.

무슨 말이야?

엄마 아픈데 며칠 힘든 걸 못 참겠다는 거잖아, 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거야.

너도 네 아빠랑 다를 거 없다. 자기 힘든 건 질색하는 그 성질머리.

나는 엄마를 가만히 쳐다봤다. 손끝으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힘들겠지. 아프겠지. 짜증 나고 화가 나겠지. 화풀이하고 싶겠지. 무조건 자기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내 앞에 아빠가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엄마가 말한 사람. 나와 다를 것 없다고 말한 그 사람. 엄마가 나를 아빠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아빠처럼 해주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게 훨씬 쉬운 방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절대 아빠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이러지 마, 엄마.

나는 약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아니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잘못인 거지. 나도 불행해야 되는데. 매일 남편이랑 싸우면서 못살겠다고 소리 지르고 힘없는 애한테 윽박지르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얘가 왜 이래.

그럼 나한테도 불쌍하다고 하겠지, 엄마는.

솔직히 네가 부족한 게 뭐냐. 제때 결혼해서 남편 있지, 자식 있지. 시댁에서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내가 아파서 지금 잠깐 힘든 걸 가지고……

엄마는 늘 나한테 부족하다고 하잖아.

부모 눈에는 자식이 늘 부족해 보이는 거야. 태양이 커봐라. 너라고 다를 줄 아니.

……

너무 나쁘게만 듣지 마. 너 속상하라고 하는 소리도 아니고. 솔직히 너 아니면 누가 내 맘을 안다고.

엄마가 천천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계속 깔아뭉개다가 내가 완전히 돌아서기 전에 달래는 방식. 나는 그렇게 훈련되었다. 엄마는 우선 내 탓을 하고, 내가 힘들어하면 그제야 나를 보호하려 든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을 아는 건 우리뿐이라고 말하지.

엄만 나 몰라. 나도 엄마 모르고.

됐다. 그만하자. 속 시끄럽게.

엄마는 지쳤다는 듯 눈을 감았다.

너도 집에 가.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병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모로 누웠다. 엄마는 나를 보며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엄마의 모습에서 어떤 미래도 구할 수 없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넌 좋겠다, 아무것도 몰라서, 불쌍해서, 현장에 있으면 되고,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면 되니까, 넌 진짜 좋겠다, 거기 있을 수 있어서, 모를 수가 있어서,

쏟아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나는 불쌍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내가 아픈 게 죄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맘 알아달라는 것도 욕심이지. 내 팔자에 무슨.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라고 있겠나.

오빠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도 이제 좀 내려놓고 엄마 인생 살아요.

오빠가 말했다.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젊은 시절의 아빠처럼, 오빠의 뒤통수를 내려치고 싶었다.

어머니, 허리 치료 끝나면 종합검진 받으세요. 제가 신청해놓을게요.

남편이 말했다.

어디 안 좋다고 나올까봐 무서워서……

엄마가 마른세수를 하며 대답했다.

안 좋으면 고쳐야지. 더 늦기 전에 고치면 되지. 그걸 왜 미리 걱정해.

내 말을 들으며 엄마는 창밖을 바라봤다.

밤 열시 넘어 남편에게 동영상이 왔다. 영상 속에서 태양은 ‘맘마’라고 거듭 말했다. 영상 바깥에서 남편은 태양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아이처럼 웃었다.

 

엄마는 보조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복도를 걸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한뼘 정도 떨어져서 엄마와 같은 보폭으로 걷다가 엄마가 잠시 걸음을 멈추면 같이 멈췄다. 운동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처음으로 입원 병동을 한바퀴 돈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정원으로 올라간 날, 따뜻한 베지밀 병을 손에 쥐고 굴리다가 엄마가 물었다.

회사 언제 간다고?

아직 두달 남았어.

애는 어쩔 건데?

어린이집 신청해놨어.

하루 종일 맡길 거야?

……

오후에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

괜찮아 엄마. 내가 알아서 해.

태양이 아니면 내가 웃을 일이 없어서 그래.

일단 신청했으니까……

공주님이라고 안 부를게.

……

그래도 공주님처럼 크면 얼마나 좋니. 나한테는 그 애가 세계 최고 공준데.

 

이모 부부가 귤을 사 들고 병문안을 왔다. 이모 부부는 엄마와 옛날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다. 배웅하려고 병실을 나섰다가 병원 정문까지 같이 걸었다. 택시를 잡으려는 나를 이모가 말렸다. 우리는 걸어갈 거야. 걸어간다고요? 어디까지요? 이모는 기차역까지 걸어갈 거라고 했다. 병원에 올 때는 택시를 탔지만, 오다보니 걸을 만한 거리더라고.

그래도 역까지는 길이 꽤 멀고 복잡한데요.

괜찮아. 우리는 요즘 이거 따라 걷는 재미에 빠져서. 걷다가 힘들면 택시 타도 되고.

이모부가 핸드폰의 지도 앱을 터치하며 대답했다. 이모부가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는 사이 이모가 내게 청했다. 아기 사진을 좀 보여줄 수 있느냐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태양의 동영상을 틀어줬다. 이모와 이모부는 동영상 속 태양의 말을 따라 하며 웃었다. 너 아기 때랑 똑같네. 이모가 말했다. 이모는 그때가 기억나요? 그럼. 너는 정말 잘 웃는 아기였어. 뭐가 그렇게 신기하고 좋은지 어른들이랑 눈만 마주치면 숨이 넘어갈 듯 웃어서, 네가 있으면 분위기가 금세 밝아졌어. 엄마는 내가 낯가림이 심해서 다른 사람이랑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던데요. 그랬나. 하긴, 내가 모르는 날들이 더 많겠지. 근데 아기라면 낯가림을 하는 게 또 당연하니까. 이모 말에 이모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맞아. 특히 낯을 가리는 시기가 있지.

이모부의 핸드폰에서 130미터 직진하라는 음성이 나왔다. 이모가 이모부의 팔짱을 끼며 내게 그만 들어가보라고 했다. 어서 들어가. 네, 조심히 가세요. 밥 잘 챙겨 먹고. 네, 걱정 마세요. 나중에 태양이랑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 놀러 갈게요, 이모.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고 또 인사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이모 부부를 바라봤다. 정문을 지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모 부부는, 내가 아직 여기 서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뒤를 돌아보며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내가 어떤 아이였든 무슨 상관인가.

걸음걸이마저 닮아버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할 테고 나는 이제 누구의 기억에도 엉겨 붙지 않을 것이다. 지금을 생각할 것이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찾았다. 구름이 빠르게 태양을 가리며 지상에 잠시 그림자를 만들었다. 곧 눈이 부셨다. 우리 중 누구도 아빠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몰랐으며 관심도 없었다. 아빠를 추억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