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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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거리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

 

 

최현숙 崔賢淑

구술생애사 작가. 저서 『할배의 탄생』 『할매의 탄생』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공저) 등이 있음.

bebreaking@hanmail.net

 

 

글을 시작하는 11월 초는 거리 홈리스들에게 단풍과 추수의 시절이 아닌 이미 겨울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처음 맞는 겨울을 앞두고 2020년 코로나19 첫해 거리 홈리스들의 삶을 되짚어본다.

 

 

집에 머무르라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후 하루 한두명에 불과하던 확진자 증가세는, 2월 17일 오전 9시 기준 누적 30명으로 여전히 소강상태였다.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임이 밝혀지면서 대구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한국도 코로나19 팬데믹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은 상식이 되었고, ‘거리두기’와 ‘집에 머무르라’는 방역지침은 계엄령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중했지만 그만큼 시국은 흉흉했다. 그 김에 집에서 ‘언택트’를 즐기며 푸욱 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라고 하자. 집이라는 게 대체 뭔지, 머문다는 건 또 어떻게 하는 건지, 감염 예방 이외의 생활은 어쩌라는 건지 도무지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집에 머무는 것이 해고나 소득 단절이나 죽음을 의미하는 사람들, 애초에 집이 없는 사람들, 거리두기 2미터면 당장 생존이 불가능한 사람들, ‘2미터’ 소리에 자신의 노동과 존재가 조롱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좁든 넓든 함께 머무는 게 오히려 감염경로가 되어버리는 집과 가족 문제도 있었다. 무지 혼란스러웠지만 맞고 틀리고를 떠나 방역당국은 하여튼 집에 머무르라는 엄명을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팬데믹 혼돈의 초기였던 2월 25일 수원의 한 노숙인자활시설에서는 이용자들 중 일부를 ‘집’에서 쫓아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방역을 위해 집에 머무르라!”라는 정부의 지침과는 정반대로, “방역을 위해 집에서 나가라!”라는 것이었다.

2020년 코로나19 관련 노숙인 인권운동 진영의 대응은 수원 노숙인자활시설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시설 측 요구의 핵심은 외부로 일하러 다니는 이용자는 시설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노숙인에게 집(주거)과 일(노동)이 무엇인지, 감염병에 관계없이 공(公)이 노숙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한 상징적 사건이라 여겨진다. 노숙인자활시설은 시설의 어떠함은 별도로 치고 입소한 사람들에게는 당분간의 집이다. 시설에서 잠자며 바깥으로 일하러 나가 돈을 모아서 노숙을 ‘극복’하고 자활을 하라는 것이 자활시설의 목적이다. 그런데 시설 측 조처는 시설에 머무르려면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고, 일을 계속하려면 시설에서 나가 노숙을 하거나 없는 돈을 털어 하루하루 잠잘 곳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털리고 가장 허술한 주거와 가장 싼 일자리에 매달려 더 무너지지 않으려고 혹은 다시 붙들고 일어나보려고 하는 시설 홈리스들에게, 남은 두가지 중 무엇을 마저 포기할지를 결정하라는 요구였다. 이 사건이 상징하듯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2020년 내내 ‘집에 머무르라’는 정부의 일관된 대국민 방역지침 속에서, 거리 홈리스들은 방역을 빌미로 더 야멸차게 쫓겨나고 털리고 흩어졌다. 물론 살아 있는 한 이들은 다시 모이거나 돌아와야 한다.

5월 6일 코레일 부산·경남본부는 민원과 방역 강화를 이유로 심야시간에 부산역 대합실을 폐쇄했고,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이 조치를 영구히 하겠다고 밝혔다. 팬데믹을 기회 삼아 ‘홈리스 퇴거’라는 오랜 염원을 날치기 자행한 셈이다. 같은 달 용산역 인근 노숙 텐트촌의 출입구가 널빤지와 철판으로 막혔다. 서울교통공사와 철도공사, 서울시와 중구청과 용산구청은 지하철과 역사 안팎 곳곳에 전에 없던 출입금지 구획선을 치고, 엉덩이 붙일 곳들에 철제 공사를 하거나 화단을 만들고, 의자를 없애거나 필요도 없는 설치물을 두어 홈리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2011년부터 고객 편의와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노숙인들이 역사 안에서 야간에 잠자는 행위를 금지하는 ‘강제퇴거조치’를 발표했다. 철로도 승강장도 아닌 역사 안에 사람이 머무는 것이 철도안전과 대체 무슨 상관인가? 특히 2000년 5월부터 서울종합민자(민간자본)역사 사업이 진행되면서 ‘잠자는 행위 금지’를 넘어 밤낮없이 수시로 홈리스들을 역사에서 쫓아내더니, 코로나19를 맞아서는 비말이 튄다며 인권활동가들과의 대화마저 제지하는 일이 늘고 있다.

“역 근처에 앉아서 쉬거나 졸기도 했는데, 다 못하게 해요. 앉지도 말고 집에 가래요. 서울시민청에 있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쫓겨났고, 탑골공원이 폐쇄됐고, 종로의 지하철역들에 노숙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원각사나 공원 주변으로 밀려났어요. 화가 나요. 자꾸만 집에 가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데가 집인데……”1 홈리스행동 아랫마을야학 학생회장이자 인권지킴이 활동가 로즈마리(여성, 64세)의 말이다. 거리 노숙의 위험을 피해 여성 노숙인들이 일이천원을 내고 하룻밤을 쭈그려 눕던 피씨방과 만화방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았고, 형편이 나을 때 모처럼 가던 찜질방도 문을 닫거나 허름한 차림이면 출입을 금지당했으며, 야밤에 가서 잠자고 씻던 공중화장실이나 개방형 화장실들이 폐쇄되거나 단속이 강화되었다. 얼마 전 11월 6일 오전엔 서울역광장 한쪽 노숙인들이 모여 살던 터를 공무원들과 역무원들이 또 밀고 들어와 사람들을 쫓아내고 일부 살림살이를 쓸어갔다. 전부터 때론 계고장도 없이 쓰레기차와 물차를 동원해 하던 공무집행이 팬데믹 이후 더 심해졌다. 구역을 나눠 인권지킴이 아웃리치를 하는 활동가들은 자기 구역에 늘 계시던 분들의 거처와 안부를 다른 구역 활동가들에게 수소문하거나, 상담과 지원이 이어지던 경우 일부러 찾아다닌다. 그렇게라도 확인이 되면 다행이지만, 아예 소식이 끊긴 후에 무연고사망자 공지로 확인되기도 한다.

같은 날 저녁 서울역사 내부에는 한결 많은 관리자들이 배치되었고, 홈리스들이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시거나 활동가들이 제공하는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조차 단속해댔다. 모든 시민들에게 공공장소인 역과 공원은 노숙인들에게도 당연히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거리를 집 삼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역과 공원은 더 절실한 공공장소이자 생활공간이다. 이 공간은 단순한 역사(驛舍)가 아니라 앉아 쉬거나 쪽잠을 자고, 음식과 이야기와 술을 나누며 친구를 만나고, 할 수 있다면 한쪽에 짐도 부려놓으면서, 어디든 머물거나 떨려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하루 일상과 한 시절의 삶과 십수년 혹은 수십년의 생애 역사(役事)와 기억이 쌓여 역사(歷史)로 이어지는 길목이자 거처다.

 

 

예를 들어 서울역엔 이런 역사가 있다

 

열여섯살 때인 1990년 울산 집을 나와 서울역 노숙을 시작한 난초(여성, 45세)에게 서울역은, 뭣도 모르던 초짜 시절 네댓살 많은 전라도 언니가 먼저 다가와 ‘나이도 어린 가시나’를 걱정해주며 있는 돈 다 털어 컵라면과 음료수와 담배를 사주고 밥 먹을 곳과 잠잘 곳을 알려주던 곳이다. 그 언니와 함께한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쌓인 곳이며, 작년 동짓날 홈리스추모제 때는 먼저 죽은 언니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한 곳이다. 쌀 한되에 이천오백원 하던 스물세살 외환위기 무렵엔, 인근 서소문공원에서 집 나온 십대 ‘머스마들’ 대여섯명을 만나서 거둔 곳이기도 하다. 모처럼 돈이 생기면 담배도 사 나눠주면서, IMF 실직 노숙인들에게 빌린 냄비에 냄비밥을 하고 국수도 삶아 김치 하나만으로 세상에 없는 성찬(聖餐)을 나눠 먹던 곳이다. 2011년 서울역 측이 대합실 노숙인 강제퇴거를 시작했을 때 인권단체들이 계단 아래 천막을 쳤고, 밥 냄새를 쫓아 그곳에 들어갔다가 일주일 만에 뜨거운 밥을 ‘노나’ 먹은 곳이고, 말을 참 따뜻하게 해준 ‘밥쏴’와 ‘배고파’를 만나 강제퇴거 반대투쟁을 함께한 곳이다. ‘빵살이’를 해도 ‘병원살이’를 해도 울산 엄마 집에 내려가도, 서울역과 서울역 사람들이 그리워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요즘 그녀는 서울역과 아랫마을(남영역 인근) 중간쯤에 고시원 방을 구해 서울역으로 인권지킴이 활동을 나가거나 기자회견과 집회를 나가고, 아랫마을야학 컴퓨터반과 권리반과 만들기반을 함께하며 하루 두끼 밥도 같이 먹느라 아랫마을에 눌러 있다시피 하고, 잠이 깬 새벽이면 언제라도 역 광장으로 가서 산책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술 담배도 나누며 산다.

 

 

재난지원금

 

3월부터 지급이 시행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팬데믹 첫해인 2020년 내내 거리 홈리스들을 능멸하는 중이다. 많은 홈리스들이 신청할 엄두조차 못 내거나 받을 방법이 없어서다. 당사자들과 인권단체들의 수많은 성명과 기자회견, 집회와 민원 제기와 실태조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거주불명등록, 주민등록지와 노숙지역의 불일치, 가구 분리 문제, 지불수단(카드) 문제 등 거리 홈리스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신청 및 지급 방식으로 인해 결국 ‘전국민’에 거리 홈리스는 빠져 있음이 증명됐다. ‘전국민 수령률 99.5% 대 서울지역 거리 홈리스 신청률 35.8%’.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처지와 맥락을 무시한 행정편의로 인해 국고로 환수되었다. 주민증도 있고 집도 서울인 서울역 지하도의 60대 남자는 모처럼 환한 얼굴로 활동가의 설명을 듣다 말고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누웠다. 처자식 놓고 집 나온 사람이 무슨 낯으로 가족 몫의 돈을 신청하겠느냐는 거다. 서울역광장의 70대 노인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려다가 오래전 여동생들에 의해 실종·사망 처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 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관점의 대자보를 2주마다 새로 써 당신 살림 옆에 세워놓는 그의 얼굴은 일이주에 한번 볼 때마다 검고 홀쭉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다시 살리는 중인 신분증으로 그가 누릴 시민권은 어떤 것일까?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 작은 공원 화장실에서 십년째 노숙 중이라는 50대 후반의 여성 홈리스는 재난지원금 자체를 모르고 있고, 설명을 해도 관심이 없다.

4차 추경과 2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진행되던 9월 초, 홈리스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은 기존의 신청 및 지급 방식이 유지되는 한 거리 홈리스들은 또 배제될 것이라는 염려 속에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다시 펼쳤고,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긴급민생’이라는 4차 추경과 ‘맞춤형’이라는 2차 재난지원금 대상에 노숙인은 아예 없었다. ‘선별’에도 ‘전국민’에도 ‘긴급’에도 ‘맞춤형’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K-방역과 재난지원금에서 조금이나마 ‘국가’를 느꼈다면, 그건 당신들의 국가일 뿐이다. “이게 나라냐?”라던 2017년 탄핵정국 속 촛불과 ‘태극기’ 양측의 구호는 2020년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음울한 웅얼거림으로 광장과 지하도와 거리에서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일자리와 의료

 

코로나19로 노숙인들을 위한 민간 일자리들이 대폭 축소되는 마당에 지난 5월 말 서울시는 ‘2020년 노숙인 공공일자리 하반기 개편안’을 만들어 노숙인 관련 일자리 기관들에 하달했다. 핵심은 서울시의 노숙인 공공일자리 보조금 지원을 축소하겠다는 것이고, 그에 맞춰 근로시간을 줄여 임금을 줄이라는 것이며, 임금 줄이기의 핵심은 그중 가장 싸고 많은 일자리인 ‘반일제 근로’의 근무시간을 1일 5시간에서 4시간으로 축소하고 근무일수를 월 15일 미만으로 줄여 결과적으로 월 60시간 미만 근로로 주휴수당을 회피하라는 것이고, 연차수당 대신 지급하던 월차수당을 주지 말고 강제로 유급휴가를 쓰게 하라는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근로시간은 하루 1시간 월 1일을 줄이고 월급을 64~81만원에서 48~62만원으로 대폭 삭감하는 묘책을 짜내 일자리 기관들에 하달한 것이다. 악덕 기업주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빼닮은 서울시의 ‘홈리스 쪼개기 고용’은 참 깨알같이 악랄했는데, 당사자들과 인권단체들의 줄기차고 집중적인 항의행동과 서울시인권위원회의 철회권고문으로 시행 하루 전 철회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8월 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진 50대 노숙인 김모씨는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 다섯군데를 돌다가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서울 홈리스들이 이용하던 9개의 공공병원 중 5개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입원 중이던 홈리스들이 강제 퇴원당했다. 9월 16일 현재 동부시립병원을 제외한 8곳의 응급실이 폐쇄됐고 외래진료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부산역에서 노숙하던 이모씨는 부산의 노숙인지원기관을 통해 피부암을 확인했고, 9월 28일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어떤 의료지원도 받지 못한 채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노숙인 암환자를 놓고 부산시와 서울시가 치료의 책임을 떠넘기는 명분은 이씨가 노숙 3개월 이상, 그리고 건강보험 미가입 혹은 6개월 이상 체납이라는 노숙인 의료급여의 요건을 온전히 갖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2

 

 

3

 

2011년 6월 제정된 ‘노숙인 등 복지법’에 엄연히 급식시설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지난 10년간 서울시는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한 채 위탁운영만 하거나 종교·구호 단체 등 민간의 자원봉사에 의존해왔다. 서울시가 건물 임대료를 내며 위탁운영 중인 서울역 근처 ‘따스한채움터’ 역시 집단급식소 신고를 미루며 ‘급식장’ 딱지를 붙인 채 운영 10년째를 맞았다. 현장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고 민간단체가 끼니마다 돌아가며 음식을 실어와 나눠주므로 ‘급식소’가 아닌 ‘급식장’이다. 당연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그 집 밥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라는 말과 함께 사람대접이 너무 엉망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초부터 민간단체들의 급식이 대거 중단되거나 간헐적인 빵과 주먹밥 등으로 제공되자, 말 그대로 ‘코로나 기근’ 속에서 노숙인들은 감염보다 끼니 걱정이 더 급하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유행을 맞아 민간급식 서비스가 중단·축소되고 있으니 지자체 운영 무료급식을 확대하라’는 지침을 의례 삼아 발표했고, 서울시는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다. 음식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거리가 가깝고 세끼는 다 주는 ‘따스한채움터’로 서울역 노숙인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는데, 서울시는 방역을 위해 사람을 분산해야 한다며 아침밥을 없애고 점심과 저녁 배식시간을 늘렸다. 활동가와 서울시인권위원의 면담 자리에서 자활지원과 공무원은 두끼로 줄인 이유에 대해 “아침밥은 근처의 다른 급식소에 가면 준다. 거기도 서울시 지원이 좀 들어간다”라고 답했다. 자활지원과가 말한 근처 서울시 지원 급식소는 서대문에 있는 구세군브릿지종합지원센터다. 하루 한끼만 주는 그 구세군센터가 매일 새벽 5시부터 주는 아침밥을 먹으려면, 서울역에서 새벽 3시 전에 짐을 챙겨 새까만 길을 걸어 4시에는 길거리에 줄을 서야 한다. 지난 10월 15일 목요일 두 활동가가 전해온 탐방 보고에 따르면, 새벽 3시 30분에 줄에 합류한 여성 홈리스는 5시 23분에 급식소에 입장했고, 5시 30분에 정해진 200개의 식권이 모두 떨어져 뒷사람들은 그냥 돌아섰다. 오전 11시부터 주는 ‘따스한채움터’ 점심이라도 먹으려면 10시에는 줄을 서야 하고, 그사이에 졸음과 추위와 허기로 꾸부려지는 몸을 어디든 뉘여야 한다.

급기야, 점심과 저녁 끼니를 위해 ‘따스한채움터’로라도 몰릴 수밖에 없는 노숙인들에 대한 서울시의 방침이 작금에는 ‘최대한 급식 제공’이 아닌 ‘엄격하게 분류해서 급식인원 줄이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서울시는 ‘감염예방’을 빌미 삼아 9월 14일부터 ‘따스한채움터’에 RFID(무선인식) 형식의 ‘노숙인 밥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축적한 노숙인 데이터를 통해 노숙 이력이 확인된 사람들에게만 이름과 사진이 박힌 카드를 발행해 밥을 주겠다는 것이다. 또 올해 말까지 시범기간을 거쳐 차후 다른 노숙인 시설들에도 이런 종류의 ‘ RFID 노숙인증’ 발급을 확대하겠단다. 발급하면서 동의를 물었으니 강제는 절대 아니란다. 효과는 명백했다. 코로나로 인해 노인 대상 급식들도 중단되자 그 집으로 오던 가난한 65세 이상 노인들과, 코로나19로 생계가 더 어려워진 기초수급자와 쪽방주민들, 주민증 없는 노숙인들과 외국인 노숙인들이 ‘현재 노숙 중’이라는 확인을 받지 못해 돌려보내졌고, 차림이 비교적 깔끔해 ‘노숙인 같지 않아 보이는’ 할머니 등 여성 홈리스들이 ‘집에서 해 먹으라’는 비난을 들으며 돌려보내졌고, 다음부터는 오지 말라는 면박을 참으며 끼니를 채운 사람들은 더 오기가 겁나며, 차라리 굶고 말지 더럽고 치사한 ‘밥증’은 안 만들겠다는 노숙인들은 가지 않았다. 홈리스들과 인권 활동가들의 항의로 일단 시범기간에는 ‘밥증’ 없는 사람도 출입명부를 작성하면 밥을 주겠다는 답을 마지못해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미 홈리스 판에 “쯩 없으면 밥 못 먹는다”라는 소문이 퍼져 서울시의 급식인원 줄이기 작전은 성공 중이다.

 

 

21세기형 생명권력의 폭력

 

역광장 한가운데 노숙인들을 모아 마이크에 대고 찬송이니 복음이니를 떠들어대다 종국에는 길게 줄을 세워 ‘안수기도’라는 걸 받는 사람에게만 먹을 것을 주는 일부 교회의 행태야 늘 있어온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어떤 민간 급식소가 두번 먹는 일을 막겠다며 음식을 받아가는 이들의 손목에 빨간색 매직으로 표시를 벌이는 것이 면전에서 가해지는 천박하고 일회적인 낙인이라면, 서울시의 ‘밥증’은 밥을 빌미로 빈곤한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두고두고 통제하겠다는 음흉하고 통합적인 ‘21세기형 IT 생명권력의 폭력’이다. 서울시가 ‘따스한채움터 회원증’이라고 명명한 ‘밥증’에 대해 자활지원과장은 코로나 예방을 위한 방문기록 용도일 뿐이어서 시민들이 밥 사 먹으러 식당 갈 때 쓰는 방문기록과 똑같다는 알량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노숙인 밥증’은 단지 코로나 예방 차원을 넘어 노숙이력의 반영구적 축적이다. 밥증을 발급받을 자격 여부를 이미 서울시가 축적한 노숙인 관련 복지정보시스템을 통해 조회하고, 발급 후에도 RFID를 통해 밥 받아먹은 기록이 계속 축적된다.

게다가 이렇게 누적된 정보는 행정상 필요에 의해 언제라도 복지의 이면인 배제를 위한 분류에 악용된다. 지난 7월 30일 행정안전부는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사업’ 중 아동·청소년 관련 사업에서 노숙인을 배제했다. 애초 발표한 사업 내용 중 학교생활지원 일자리에 노숙인이 포함되자 일부 언론이 비판했고, 이에 행정안전부는 아동·청소년을 만나는 일자리에서 배제할 이들로 기존의 갱생보호대상자, 출소자, 아동학대 관련 범죄자에 이어 노숙인도 추가해 수정·발표했으며, 배제를 위한 ‘간단한’ 분류를 위해 면접과 복지정보시스템 조회를 하겠다고 첨언했다. 노숙인은 ‘노숙인복지법’상 주거가 없거나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일 뿐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이러한 공모는 독재정권 시절 집 없는 사람들을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해하는 부랑인’으로 규정해 형제복지원 등으로 쓸어갔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문민정권판이다.4 행정안전부는 홈리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의 제도화이자 빈곤의 형벌화를 위한 신속한 검색에 의료와 주거 등 노숙인 복지를 이용한 기록들을 악용하고 있고, 서울시는 코로나19 속 노숙인 기근 시절을 기회로 배곯는 사람들 앞에 밥을 들이밀며 신원과 이력을 축적하는 비열한 생명권력의 선두에 나선 것이다.

 

 

UN의 코로나19 지침을 조목조목 거꾸로

 

4월 28일 UN 주거권 특보는 「코로나19 지침: 홈리스 보호」를 발표했다. 전세계의 코로나19 대책이 “집이 있다는 가정에서 제시되지만, 홈리스는 그렇지 않다”라며 “전염병 상황에서 적절한 주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잠재적인 사형선고”와 같기에 각 국가가 홈리스의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이다. 모든 거리 홈리스들에게 즉시 숙소를 제공하고 대유행이 끝나도 홈리스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할 것, 이를 위해 호텔 또는 모텔의 객실을 확보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군대 생활관이나 빈 건물을 개조해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통행금지 또는 봉쇄조치를 시행할 때 범죄자 취급하거나 벌금 또는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고, 개인 물건 또는 거리 청소에 대한 불안감을 포함하여 홈리스의 소외를 증가시키는 법 집행 관행을 종료할” 것을 명시했다. 더불어 “홈리스의 야영지 강제퇴거 또는 철거를 중단하고 일부 야영지가 쉼터와 같은 다른 이용 가능한 숙소보다 더 안전할 수 있음을 인식할” 것을 요구했다.5 대한민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UN의 코로나19 지침을 조목조목 거꾸로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 바로 뒤 양동 쪽방촌은 그동안 미뤄져온 재개발이 코로나19 속 집회금지 조치로 주민들과 인권단체들의 항의가 수그러진 틈을 기회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 버리고 버렸지만 길거리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남긴 노숙인들의 살림과 잠자리와 음식이 담긴 봉지를 쓰레기차와 물차를 동원해 싹쓸이 ‘청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산역의 한 여성 노숙인이 ‘홈리스뉴스’에 기고한 글 전문을 싣는다.

 

의자 옆에 있는 개인 소유 물건. 그것이 여행 가방이든, 헝겊 가방이든, 비닐 가방이든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을 지닌 사람의 것이다. 내가 겪은 공무원 기차역 근무자들의 의식이 없는 모든 행위는 겪는 사람의 인격 모독일 뿐만 아니라 국가 공무원 모두에게 좋지 않은 매김을 주게 하여 서로에게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공무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의도하는 대로 저지르는 악행에는 용서가 없다. 너희는 겉 차림새대로, 너희들의 머릿속에 짜여 있는 잣대대로 값어치를 매겨 모든 것들을 대접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너희들의 집에 있는 사는 데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먹는 것까지도 쓰레기라 하는 너희 공무원들은 쓰레기를 지지고 볶고 먹느냐. 쓰레기 버리라고 남의 살림살이에 대고 말하는 너희 집문서부터 쓰레기통에 던지거라.6

 

 

그리고 죽음 혹은 반격

 

10월 29일 홈리스행동이 장례를 치러드린 이영환님은 용산역 노숙인이었다. 홈리스행동의 부고 중 ‘만 66세’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이라는 문구를 읽으며, 외람되지만 ‘오래 사셨구나…’라는 생각에 이어 ‘죽고 싶으셨겠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7월 홈리스행동이 연이어 보내드린 이주현님은 서른하나였고, 멍치님은 50대였고, 서울역 13번 출구에서 휠체어에 탄 채 노숙하던 김한수님은 67세로 드물게 오래 살았다. 길거리에선 50대, 40대, 30대의 죽음이 흔하다. 지난 1년 사이 코로나19에 감염돼 노숙인이 사망했다는 국내뉴스는 없지만, 코로나19로 더 거세게 밀어닥친 빈곤과 허기와 더위와 떨려남 속에서 전보다 훨씬 많은 홈리스들이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을 집어들었을 거다. 고령사회 속 평균연령의 증가니 요양원이 아닌 마을과 집에서 살다 죽기니 따위의 말들은 홈리스들에겐 ‘당신들의 나라’ 이야기다.

거리 홈리스들이 다른 가난한 계층과 다른 점은,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가장 끝자리 혹은 그 바깥의 사람들이어서 노동시장과 가족으로 돌아갈 처지도 아니고 욕구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국가와 자본과 시민에 의한 낙인과 혐오는, 거리 홈리스들에게 모멸과 수치뿐 아니라 분노와 저항도 쌓아가게 한다. 기대도 희망도 다 끝나고 절망이어서 오히려 하염없이 버티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한편 유일한 다행이다. 물러설 곳 없는 자들이야말로 그래서 반격이 가능하다. 이제 겨우 1년이 되어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어떤 변화와 혼란을 더 불러올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거리에 더 많은 홈리스들이 쏟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함께 살지 혼란을 자초할지, 그 나라 시민과 정부에 아직은 선택권이 있다.

 

 

  1. 「“밥, 공간, 자존” 코로나 시대 홈리스로 산다는 것」,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0.10.26.
  2. 「반복되는 홈리스 의료공백」, 홈리스뉴스 81호, 2020.9 ; 「홈리스 의료권은 어디에?」, 홈리스뉴스 82호, 2020.10 참조.
  3. 이 절의 일부는 졸고 「‘드럽고’ 치사한 밥」(경향신문 2020.10.17)을 토대로 쓰였음을 밝힌다.
  4. 홈리스행동 성명서 「행정안전부의 희망일자리사업 ‘노숙인’ 참여 제한조치 철회하라」, 2020.7.31 참조.
  5. 홈리스행동 성명서 「코로나19를 빌미로 자행되는 홈리스에 대한 폭력과 배제 즉각 중단하라!」, 2020.5.27 참조.
  6. 「“너희 집문서부터 쓰레기통에 던지거라”」, 홈리스뉴스 79호, 2020.8.

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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