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긴 것’과 ‘느린 것’의 철학
조경란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
박진영 朴珍英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이물(질)의 서사와 ‘것’들의 상상력」 「빨간 소설 줄까 파란 소설 줄까」 등이 있음.
「일요일의 철학」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앞을 못 보는 ‘루카스’가 ‘나’의 “손목 안쪽, 동맥이 있는 부분을 세심하게 매만”지자, 나는 “뭐랄까, 그때 내가 꼭 책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문득, 소설을 이루는 글자 한자 한자를 손으로 만져가며 써내려갔을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읽기를 멈추고 언어의 문양을 매만지게 하는 소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글자 속 동맥을 찾아 피돌기를 느껴야 하는 소설. 섬세한 내면묘사와 환기력이 강한 서정적 문장은 『일요일의 철학』(창비 2013)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언어는 좀더 담담해지고 이야기는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주장한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이미 전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 2008)에서 조경란(趙京蘭) 소설의 어떤 예외적 장면을 만난 적이 있다. 풍선의 상승과 유영을 통해 그간 고요하게 정지된 세계는 폐쇄성을 ‘넘어’ 세상 밖으로, 1인칭의 독백들은 자기완결성을 ‘지나’ 상호적 관계로 열릴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징후는 이 책에서 새로운 관계를 향한 지향과 시간에 대한 적극적 성찰을 통해 구체화된다. 『풍선을 샀어』에 등장하는 관계들이 상담가-상담자의 ‘치료/치유’의 목적하에 형성되거나 가족과의 이별에 따른 정신적 부채감을 극복해가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이번 소설집에서 그것은 좀더 다양하게 변주될 뿐 아니라 병증의 치료나 상실의 극복과 같은 목적의 서사를 띠지 않는다. 이를테면 ‘무순’ ‘세이지’ 같은 아이들과의 관계, 여행지에서 만난 ‘원숭이 남자’와 루카스, 혹은 “씨앗”의 상징을 보라. “멋진 투포환 선수가 되는 것이 꿈”(「학습의 生」)인 무순과의 만남을 통해 생의 감각을 되살릴 때에도, 소년은 단지 ‘나’의 젊음을 보상해주거나 생기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존재와 함께 『일요일의 철학』에서 눈여겨볼 것은 어떤 ‘운동’들이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쇠공의 운동처럼 바람을 가르며 포물선을 그리는 활동적인 운동들이 그 예이다. 그것은 “조밀하고 응축된, 어떤 단단한 것”을 이용해 역동적으로 스윙을 날리는, 에너지와 동일한 것으로서의 동작 자체이며, 깊은 밤 이따금 옥수수밭으로 걸어들어가는 대신 세상 속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마흔살의 용기를 의미한다. 스윙 고고(swing gogo). 그것은 (정신의 요구보다는) 몸의 요구와 관련되며, (내면에의 고요한 응시보다는) 세상을 향한 열린 관계의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생의 약동과 속도감은 자기만의 방에 갇혀 끝나지 않을 애도의 서사적 제의를 올리던 이전의 소설적 경향에 비추어 더욱 선명히 부각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의 프로필이 실은 타자성의 무수한 흔적들의 예시라면, 조경란 소설의 이러한 ‘운동’은 자아의 단독성과 운명의 퇴행성을 넘어 스스로를 세상 쪽으로, 타자를 향해 기투(企投, Entwurf)하는 어떤 움직임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성은 시간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출현한다. 조경란 소설은 그 전에도 과거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토로함으로써 시간 위에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나이 듦’의 감각이다. “사만 삼천 피트 상공에서 마흔번째 생일을 맞”(「봉천동의 유령」)거나 “마흔살 생일을 목전에 둔 일요일 오후”(「일요일의 철학」), 혹은 “조금만 부주의해도 표정에 침울함이 그대로 드러나”(「단념」)는 나이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녀들은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나온 길뿐 아니라 현재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그들에게 ‘현재’란 걷고 사색하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어디에서건 생각하고 생각한다. 혹은 자정이 넘도록, 등이 흠씬 젖을 정도로 걷고 또 걷는다. 이때 걷기는 운동이 몸을 이용한 가장 순수한 한 ‘동안’의 의미를 갖듯, 몸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통해 시간을 전유하는 한 형식이 된다.
조경란 소설에는 시간 속에서 덧없이 쪼그라드는 현재를 중지하려는 자아의 안간힘이 있다. 그렇게 같이 스쳐지나가지(만) 말고, 그렇게 변화와 과정만이 아니고, 현재를 현재로, ‘좋은 시간’으로서, ‘적절한 시간’으로서 살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때로 조경란 소설에 ‘동일자’를 붙들려는 어떤 고전주의적인 집요함과 무거움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립 속에서도 단락이 아닌 연속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자아의 노력은 ‘사색적 삶’의 한 예시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조경란 소설을 고백의 형식, 고해의 언어에 의한 1인칭소설이라 부를 때,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속악한 현실에 우울로 ‘대응’하거나 불화를 넘어 관계를 ‘회복’하는 장면보다는 느리게 생각하고 길게 걷는 ‘사색-을-함’ 자체에 있다. 걷기의 철학, 사색의 철학이 조경란 소설의 지배적인 것을 유동화하는 어떤 변곡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