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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정훈 李政勳
1967년 강원도 평창 출생.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man6120@naver.com
우화 3
토끼풀을 먹고 푸른 생리를 했어
자궁의 실뿌리가
햇빛을 꼭꼭 단내 나게 씹었으면
나팔꽃 향기 하얀 알 풀밭이 좋겠어
머리칼을 새들에게 나눠주고
내 가시로 언덕 가득 덤불숲
강물과 들판과 푸른 하늘
독미끼와 올가미를 질질 끌며
나는 날마다 토끼가 되었다
옥수수수염 검게 타는 밭둑을 베고
죽음을 아주 먼 데로 데려갔으면
몸뚱이에 붉은 빛이 돌아와
인간의 아이를 가져도 될까
그때 돼지비계 같은 구름 숭숭
밭고랑을 밀전병처럼 말며
소낙비야, 쏟아져라
더벅머리 막내 호랑가시 언덕
바람 머리칼 새끼들 뛰노는 날
화연(花宴), 화연(化緣)이라고
산 위에 우르르르 바퀴 소리
내 가죽으로 허수아비를 만들려는
마부의 저 가련한 얼굴도
나는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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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신문엔 토끼풀을 뜯어먹던 북의 젊은 여성이 아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꽃과 제비와는 무슨 상관 있겠는가.
없는 이야기
수항 장전 골골이 얼음 풀리면 장작개비 같은 기 펄떡펄떡 뛰오르구, 진짜 때려잡았어 그래도 어느 골에서 새낄 깠는지 수달래 철 되면 꽃 그림자 잎 그림자 손을 담구문 손바닥에 아른아른 그게 다 열모개 새끼여 하루는 해가 어느 구멍에 박힌 줄도 모르게 안개 자옥한데, 도돈 다리 밑에 뭐이 시커먼 기, 똑 짚토매 같은 기 너불너불 해 내려가보니 다 쏘가리여 추석 지내구 섶다리 놀 때 동바리 세울 돌 찾느라 어리대다니 꼭 세숫대야만 한 호박돌이 맞춤해 집을라구 가는데 그기 이래, 이래 기가 씨껍해서 괭이루 콱 내래찍었지 앞발하구 목 새간으루 날이 들어갔는데 물 밖으루 꺼내놨드니 캭캭, 고내이 독 쓰는 소릴 내드라니 그걸 지금 재생당 하는 이, 그이 아부지가 오래 앓은 허리에 늙은 자래 좋다구 그때 돈 삼백환을 줬어 참, 그 돈으루 강릉 구경 좋았네 그 질루 떴지 배를 탈까 하구 보니 바다가 여간 출렁거리나 산판패들 따라 계방산 자락서 한해 겨울 나보니 고만에 덧정없구 강이 좋구 강물에 사는 기 더 좋구 그래 여까지 왔지 뭐? 그저 흐르는 물살 구경에 여태 이짓이지, 이젠 이 골배이두 수입 들어와서 여 아니문 없어, 웂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