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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재일 河在一
1962년 충남 태안 출생. 1984년 『불교사상』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그늘』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는 왜 은빛으로 빛날까』 등이 있음. 고양 화정고 교사. tatar38@naver.com
해후
헤어진 뒤, 이십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는
눈이 크고 두 눈 사이가 움푹 패어 삼식이를 닮은 채
불빛 흐린 수족관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실업의 고통으로 머리에는
단단한 가시들이 발달되어 있었고,
눈 아래쪽에는 어둠이 먹장구름처럼 덮여 있었다.
삼식이는 입이 매우 크며,
양 턱에는 작고 가느다란 송곳니가 무리지어 있어서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작은 대화에도 예리한 이빨을 드러냈다.
위턱 앞부분과 아래턱을 제외한 몸 전체가 작은 빗비늘로 덮여 있어
나의 흔한 웃음에도 까칠한 피부를 드러내며
순간순간 탱자나무 가시로 변하는 물고기.
바다에는 늘 조류가 빠른 암초 지역이 널려 있고
삼식이의 사냥 습관은 오직 외로운 야행성뿐이다.
추운 겨울에는 깊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고,
따뜻한 봄에는 얕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셋방살이 십년에 반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저서생물(底棲生物)이 된 삼식이를 보며 나는 수족관을 응시했다.
몇 순배의 잔을 돌리기 전에
삼식이는 자신의 서러운 내장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나무도마 위에서 식칼에 등짝이 찍혀 비틀거리다
미처 뱉지 못한 울분이 가득 찬 누런 알을 왈칵 쏟아내더니,
일당으로 벌어들인 새우와 갯지렁이를 꾸역꾸역 바닥에 토해낸다.
그러자 마침내 보기 좋게
낮은 시궁창으로 헤엄쳐 도망가는 작은 물고기들.
삼식이의 재산은
아무런 독도 품지 않은 연약한 탱자가시뿐인가.
술자리를 접고 그만 귀가하자고 내가 삼식이를 끌어안자,
낮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등지느러미가
갑자기 붉은 빛을 띠며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더니
메마른 내 손바닥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찬바람 부는 이른 아침,
식감 좋고 얼큰한 속풀이국을 식구들과 나눠 먹으며
간밤에 캄캄한 바다 밑으로 다시 떠난 삼식이를 떠올릴 때
자꾸만 목에 잔가시가 컥컥 걸리는 것이었다.
달항아리
평생을 유랑한 나는 결국 달항아리 속에 머물렀다.
배다리가 퇴화되어 걸을 때 자로 재는 듯 수평 위에서
땀 흘리며 움직이는 자벌레처럼.
내 걸음의 이동은 무수한 둥근 원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살던 초가집도 원을 그리다 만 반원의 둥근 빈방이었고
맨 처음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반 위의 밥사발도 뚜껑 없는 원이었고
어머니가 밤마다 달을 보며 나를 위해 빌던 장광에도
즐비한 원으로 이루어진 장독들이 달빛 아래 눈동자로 빛났다.
나는 우람한 몸과 큰 날개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으나,
한번도 원을 벗어나 힘차게 허공을 향해 날아갈 수 없었다.
날개를 수평으로 편 작은 자나방처럼 원의 방정식에서
내 몸을 구부렸다 폈다만 반복하다가, 원이 그은 운명의 경계 안에서
우화(羽化)하지 못하고 정작 애벌레로만 살았기에.
밤마다 달의 둥근 몸체와 유백색 태깔을 배우기 위해
동산에 떠오르는 달빛만 봐도 비음(鼻音)을 흘리는 즐거운 벌레가 되었지만
항아리가 뱉어낸 어둠 속에서 본래 달이 아닌
우물에 어린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만 보고 유쾌하게 춤을 췄다.
구부리거나 반듯이 펴거나 둥근 그릇인 항아리로부터
완벽하게 굴레를 벗어나 멀리 바깥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늦은 밤 들리는 소쩍새나 부엉이 울음소리까지도
자벌레는 습관적으로 다시 소리 한마디씩 자로 재고 끊어서
자기 몸 크기만큼의 둥근 원으로 깎고 다듬는 일을 반복했다.
이럴 때면 집 앞 연못에 어김없이 어머니께서 떠올라
둥근 원에 갇힌 나의 구부러진 일생을 희게 누에고치로 씻어서
하늘로 곧게 솟은 높은 바지랑대 끝 푸른 별자리에
둥근 알을 품은 초승달로 밤마다 다시 매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