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두를 위한 녹색으로 가는 길
노동운동의 시선으로 본 정의로운 전환
이승철 李承哲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실장.
108mph@gmail.com
‘기후’와 ‘전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없다. 기후 관련 뉴스도 하루를 거르지 않는다. 기후 이슈가 ‘메가트렌드’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최근의 사례는 지난 5월의 ‘P4G 서울정상회의’였다. 이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47명의 세계 각국 정상급-고위급 인사와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수장 21명이 참석했다. 도요타와 씨티그룹, GM, 델, 네슬레, 코카콜라, SK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들도 참가했다. 정부는 사전부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참석을 타진하는 등 명망 높은 최고위급 인사의 참여를 조직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 심지어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포스코 회장, SK발전 대표이사는 ‘탄소중립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ESG 경영1이니, RE1002이니 하는 소위 친환경 경영 전략이 유행을 넘어 기업경영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노동조합 역시 기후정의 실현과 ‘정의로운 전환’에 크게 주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은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금속·공공운수·건설·사무금융 등 유관 산별노조와 함께 기후정의 단체협약안 마련, 전조합원 기후 관련 교육, 정부·국회 논의 등 본격적인 기후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선거 요구안에도 정의로운 전환이 주요 항목으로 격상해 자리를 잡았다.
정부도 사용자도 노동조합도 탈탄소 정책에 적극 환호하며 나서고 있으니 잘된 일일까. 모두가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제 갈등과 반목은 사라지고 화합과 협력이 찾아올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서로가 지향하는 ‘녹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와 사용자의 잰걸음은 노동자가 주장하는 ‘탈탄소’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초록은 동색이 아닌 시절이 왔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소용없다: 시장의존형 전환의 함정
정의로운 전환의 첫 단계는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체계로의 이행이다. 우리나라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727.6백만톤 CO2eq3 중에서 에너지 부문의 배출량은 632.4백만톤 CO2eq로 87퍼센트를 차지한다. 정부 대책 중 가장 먼저 화력발전소 폐쇄가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실험대로 에너지 산업이 언급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환의 방향을 둘러싼 첫 전장인 셈이다.
표면적으론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정부도 발전노동자들도 같은 의견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경로와 방안인데, 노동조합이 공공중심형 전환을 주장하는 반면 정부와 기업은 시장의존형 전환으로 치우치는 모양새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민영화 추진이 무산된 직후부터 소위 ‘경쟁체제 도입’이란 명분으로 민간발전소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고4 이렇게 스멀스멀 커진 민간발전 비율은 2020년 들어 30퍼센트를 넘어섰다. 여기에 더해 전력산업 민영화의 일환인 전력 판매시장 개방 움직임도 쉼 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발전사와 기업구매자 간의 직접 전력 구매계약을 가능하게 해서 발전부문의 경쟁을 부추기는 PPA5 법안도 ‘녹색에너지’를 명분으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왔다. 발전대기업의 이윤 보장 수단이 된 천연가스 직수입 비율도 매년 올라 지난해에는 22퍼센트를 기록했다.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이러한 민간기업과의 지속적인 경쟁 압력과 수익성 추구 압박 속에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민간기업의 직접 구매량이 늘수록 국가 전체적으로는 수급이 불안정해지며 일반 소비자 요금의 인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렇게 공공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가운데, 재생에너지에서의 민간 진출과 확대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R&D 지원, 자금융자 규제완화, M&A 지원, 기업지원법 및 사업전환법 개정 등 대부분 ‘기업 지원’으로 제시돼 있다.6 이는 지금까지 공공부문 중심으로 진행되던 석탄발전이 퇴출되는 자리를 민간 재벌대기업이 차지하는 ‘발전산업의 우회적 민영화’의 또다른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과 기업에 맡겨두는 에너지 전환이 성공할 수 없다는 신호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007년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퍼센트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2020 기후변화 행동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시장 기반의 정책을 주로 활용하는 포괄적인 국가 계획이었으나 2017년 독일의 온실가스 감축은 30퍼센트를 밑돌았고, 결국 독일 정부는 감축 목표를 낮추었다.7
유럽에서 최근 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가 줄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도한 비용 발생 문제로 FIT 제도(발전차액지원제도)8가 축소되자, 쏟아져 들어오던 민간자본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투자 붐은 여러 나라에서 5년 정도 지속되다가 FIT가 축소되면서 급격히 사그라지는 추세다. 즉 시장에 맡겨둔 에너지 전환은 속도와 규모의 면에서 기후위기의 긴급함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각국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공공에너지’에 천착하고 관련 요구를 내놓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이유다. 프랑스에너지노조(FNME-CGT)는 2020년 하반기 공공에너지 시스템을 사수하기 위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이 파업은) 에너지 공급의 공공성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배제와 지구온난화에 맞선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영국노총(TUC)은 2019년 전력부문의 완전 재공영화를 요구했으며, 같은 영국의 유나이트 유니온(Unite the Union) 역시 ‘노동자 전환’(Workers Transition) 개념을 통해 ‘적극적인 공공소유와 공공투자가 정의로운 전환 성패의 핵심 요소’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노총(STUC)은 영국 정부가 전체 에너지 부문을 공공소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멕시코 전력노조들(SME/UNTyPP)은 전 정부에서 이뤄진 민영화 조치를 철회하려는 현 정부와의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이 일이 (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산업인) 에너지 산업 정책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에너지 산업에 대한 ‘친공공적 접근’ 사례로서 의미가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
민간기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일 수밖에 없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출하지 않으며, 진출한 뒤에도 수익 위주로 운영되고, 수익이 줄거나 사라지면 철수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논리다. 하지만 에너지는 국민의 기본권이자 공공재다. 지역과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공급돼야 한다. 안정성도 중요한 이슈다. 시장 상황과 비용논리를 넘어 항상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필수재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에너지’와 ‘민간’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탄소발전 중단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당연하며,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발전은 ‘민간의 돈벌이 수단’이 아닌 ‘평등한 공공재화’여야 한다. 바로 ‘공공중심형 전환’이다.
국민의 에너지 기본권과 공공중심형 전환
탈석탄·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체계로의 이행은 에너지 산업구조와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 없이 불가능하며, 그 방향은 ‘에너지 기본권이 보장되는 공공 중심의 전환’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발전 6개사의 수평적 통합과 민영발전소의 공영화다. 현재의 5+1(화력 5개사 및 원자력 1개사) 발전공기업 체계는 서로의 수익 경쟁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사기업 형태의 경영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사기업 형태 경영의 폐해는 여러 곳에서 드러났는데, 대부분 이윤 확대 목적과 연결되는 내용들이다. 발전사 간의 비용 절감 경쟁은 소매요금 안정화를 저해했으며, 인건비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및 외주하청 확대를 불러왔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비극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발전공기업 체계를 일원화하는 ‘통합발전공기업 설립’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민영화된 발전소의 공영화가 병행돼야 한다. 특히 정부가 강제하기 어려운 민간발전소가 많아질수록 그 가동 기간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 기간이 더욱 늘어나는 ‘탄소 자물쇠’(Carbon Lock-in) 효과가 심화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재생에너지를 기저전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환교각 및 백업전원의 역할을 맡을 LNG발전소의 공영화도 필요하다.
물론 발전회사 통합이 궁극적 목표일 수는 없다. 통합발전공기업 설립을 통해 현재와 같은 경쟁체제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 이를 석탄화력발전의 빠른 중단과 공공 재생에너지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로 돌려야 한다. 발전공기업들은 현재도 재생에너지 의무할당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제한된 입지 요건 및 사업 환경, 발전소 간 경쟁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통합된 발전공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업 전략을 유기적으로 재설정하고, 지역별 사업단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협력체제 아래에서 보다 책임있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착수할 수 있다. 통합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이러한 획기적 기여는 ‘통합발전공기업의 녹색화’라 할 만하다.
‘통합발전공기업의 민주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공기업이 빠지기 쉬운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정부부처 관료통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시민, 노동자가 직접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공기업 체제가 아닌 ‘녹색화·민주화된 통합공기업 체제’로 가야 한다.
국가책임 일자리가 필요하다
전환의 방향이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노동의제는 ‘대량 해고’와 ‘실업’ 문제다. 발전노동자들이 겪는 불안감은 그중에서도 가장 크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한다는 계획인데, 이는 다시 말해 2021년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약 2만 5천명 규모의 고용이 백척간두에 놓인다는 뜻과 같다. 현재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중 정규직은 1만 4천여명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 설비 및 운전 등)는 1만 천여명으로 집계된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 LNG발전소 전환배치 등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업무특성상 이들 모두를 포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대로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경우, 최소 8천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
고용 규모 약 36만명의 자동차 및 부품 산업의 경우도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에 따라 고용 위협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직간접 고용인원이 19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보건대 이는 단지 몇몇 업종의 현안을 넘어 노동자 전반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노동 및 일자리 대책은 여전히 ‘직업훈련과 취업 알선’ 정도에 머물러 있으며, 이마저 실효성이 없는 발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 지원책의 대부분은 오히려 기업에 쏠려 있는 모양새다.9
기후위기는 몇몇 산업의 일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대규모 기후일자리의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발전장치 제조·설치·유지관리 일자리, 자동차 중심의 사적 교통체계를 대체할 공공교통 확충에 따른 일자리, 에너지 효율과 단열 보강에 필요한 건물 리모델링 일자리, 생태적 농·축산·어업 일자리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와 보건의료·양육·요양 등 돌봄노동 일자리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돌봄노동 일자리는 개별 가족에 떠넘겨진 양육과 보살핌을 사회 공동의 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돌봄노동은 코로나19 이후 중요성이 가시화된 대표적인 필수노동 영역으로서 노령화와 저출산 등 가족구조 변화에 따라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노동집약적이고 자동화가 어려운 특성상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10 더군다나 현재 한국의 돌봄서비스는 99퍼센트가 민간에 의해 공급되고 있어,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제한되는가 하면 항상적인 공급 부족에 놓여 있기도 하다. 특히 돌봄산업의 사유화(민간 중심 공급)와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가령 사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1인당 임금은 2018년 월평균 190만원 수준으로 공공 어린이집 교사의 임금보다 50만원 정도 낮은 수준이며, 시간 외 근무 비율은 61.2퍼센트로 매우 높다.11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3월 발표한 2조 달러 규모의 일자리 계획에서 ‘돌봄경제’(Care Economy)에 6500억 달러를 투입할 것을 제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요자(국민) 입장에서는 공공부문이 공급할 때 더욱 효과적이고, 공급자(노동자) 입장에서도 좋은 일자리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국가책임 기후일자리’가 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제공되고, 이 일자리는 국가 또는 공공부문의 책임하에 ‘공공성(국민의 삶에 대한 국가책임)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적절한 임금과 양질의 노동조건이 보장되는 3대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각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시장 개입이 전면화되고 있는 상황은 이제 고용의 측면에서도 민간 못지않게 정부가 결정권을 가지는 단계에 왔음을 의미한다. 민간부문의 고용유발계수가 코로나19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더이상 민간기업의 경쟁력 강화만으로는 현재의 고용 수준조차 유지하기 힘든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책임 일자리(고용보장)’ 요구는 국가가 ‘고용의 최종 수요자’ 또는 ‘최종 고용주’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가가 직접 고용을 창출하고 구성원들이 원할 때 언제든 국가가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부문 고용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투자적인 측면과 정부가 고용의 마지막 보루라는 실업대책적인 측면, 그리고 향후 노동조건 및 임금수준 등에 있어 민간 일자리 시장으로의 파급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역할준거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12
즉 일부 정치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확장된 공공근로’ 수준의 일자리 보장이 아닌, 공공부문의 확대와 공공중심의 고용구조 개편 등과 같은 ‘공공성 확장 전략’이 결합된 의미로 제기돼야 한다.
기후위기로 바뀌는 삶과 노동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변화는 대량해고만은 아니다. 안전 위협, 노동강도 악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항공기 조종 및 승무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생겨난 난기류와 강풍으로 비행 안전 문제를 갈수록 크게 맞닥뜨리고 있다. 대기 중 탄소 증가가 대부분 비행 고도에서 생겨나고, 이는 위험한 돌풍을 야기해 제트기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의료노동자들도 기후위기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는 전염병 증가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이는 의료노동자들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병원 현장에서 이상폭염과 대형 태풍, 산불, 전염병, 환경성 질환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며 기후위기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가 의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후위기가 도시화를 더욱 자극하고, 재생에너지 대안체계가 지역분권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 등 지방자치와 연결되는 이슈도 적지 않다. 나아가 학교 급식, 건설, 택배, 배달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건강권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20년 온열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1078명 중 378명이 실외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쓰러진 사람들이었다.13 옥외 작업을 주로 하는 건설노동자, 택배 및 배달 업무를 하는 노동자, 학교 급식실 노동자, 마스크를 장시간 착용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은 폭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한다.
건설현장은 특히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난 2018년에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낮에 일을 할 수 없어, 새벽 3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현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54일에 걸친 장마 동안 현장 일이 중단되어 일당을 받는 건설노동자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95년에 발생한 열파 현상으로 인해 총 노동시간의 1.4퍼센트, 약 3500만개의 정규직 일자리에 해당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세기 말까지 기온이 1.5도 상승할 경우, 2030년까지 열 스트레스로 인해 손실된 총 노동시간이 2.2퍼센트(8000만개 정규직 일자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14
노동자가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과 내용에 주목하고 적극 대응하려고 하는 이유는, 기후정의가 삶과 노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인간에 노한 신의 징벌이 아니다. 자연의 역습도 아니다. 자본 중심 경제체제의 탐욕과 파괴가 만들어온 결과다. 기후정의운동을 체제전환운동이라 칭하는 이유도,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이 만나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자본에 맞서는 삶의 연대가 바로 기후정의운동이자 노동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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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사회책임투자 또는 지속가능투자로 통칭한다. ESG 경영은 기업의 이윤과 가치를 높이는 데 있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및 사회공헌, 건전한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의 중요성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제기됐다.↩
-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약속한 대규모 기업들이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 확대를 위해 협력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뜻한다.↩
- 주요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에 지구온난화 지수를 곱해 대표적 온실가스인 CO2로 환산한 단위.↩
- 민간발전의 설비 비중은 이명박정부 시절 발표된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8) 실행 이후 2009년부터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발전산업 시장개방 정책, 즉 신규 설비를 중심으로 한 민간업자 진출과 이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 정책에 따른 것이다. LNG 복합화력 건설이 민간기업에 의해 진행되기 시작한 데 이어 2011년 순환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LNG뿐 아니라 석탄화력에도 재벌대기업의 진입을 허용했다.↩
- PPA 제도가 도입되면 재생에너지를 재벌대기업이 사실상 독점하며 결과적으로 대기업에게는 값싼 전기요금을, 일반 시민에게는 비싼 전기요금을 부과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조치가 전력산업을 이윤의 메커니즘에 종속시키며, 이는 전력산업의 완전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규제위원회가 기업 PPA를 불허한 것 역시 ‘일반 고객들이 요금 인상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형평성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PPA 허용은 전력 판매시장 개방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RE100 캠페인과 최근 국회를 통과한 PPA 법안은 기업의 이윤논리와 시장주의 환경단체의 이해가 극적으로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RE100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그린피스의 경우 기업의 RE100을 위해서 전력시장의 민영화를 초래하는 PPA 제도의 도입을 촉구해왔다.↩
- 「한국판 뉴딜 2.0 추진계획」, 정부 관계부처 합동 2021.7.14.↩
- William Wilkes, Hayley Warren and Brian Parkin, “Germany’s Failed Climate Goals,” Bloomberg 2018.8.15.↩
- 민간이 생산한 전기의 거래가격이 에너지원별로 표준비용을 반영한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 이는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민간 발전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주로 사용됐다.↩
-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2021.7.22.)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용자 지원: R&D·자금융자·규제완화 및 인센티브 부여, M&A 활성화 위한 금융·세제·규제 완화, 기업 특성에 맞는 지원제도 컨설팅 등
* 노동자 지원: 재직자 장기유급휴가 지원(사용자 인건비 지원), 훈련비 면제 및 직업훈련기관 훈련단가 상향 지원(훈련기관 사용자 지원), 재취업 준비 위한 근로시간 단축 인건비 지원(사용자 인건비 지원), 재취업을 위한 전직훈련 지원 및 고용촉진장려금 지원(재취업교육자 채용 사용자 지원), 중장년 기술창업센터 설치 확대를 통한 창업지원(기술창업센터 설치 지원).↩ - 구준모 「변혁적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국민기후일자리 제안」, ‘기후위기 시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전략’ 토론회, 2021.5.28.↩
-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 보건복지부 2019.7.1.↩
- 「OECD 국가와 비교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방안」,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17.↩
- 「2020년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 질병관리청 2021.5.13.↩
- 「뜨거워진 지구에서 일하기: 열 스트레스가 노동 생산성과 양질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국제노동기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