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최시현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창비 2021
젠더 불평등과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만나는가
김도혜 金度惠
덕성여대 조교수, 문화인류학 dohyekim@duksung.ac.kr
몇해 전, 필리핀에서 수도인 마닐라 다음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앙헬레스에서 현장연구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곳에 오래 거주한 한 한국인 남성분에게 이 도시에 최근 어떤 한국인이 주로 방문하는지 물었는데 첫 대답이 “복부인들”이어서 적잖이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리핀 정부가 과거 미 공군이 주둔하던 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탈바꿈시켰고 한국 건축업자들이 값비싼 초호화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집을 보고 구매하려는 다수의 한국 여성들이 그곳을 오가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입되는 부동산 구매자가 모두 여성인 것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가 말한 ‘복부인’이 관광객이나 어학연수생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첫마디로 복부인을 언급할 정도로 그에게는 이들의 존재가 거슬렸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하던 나쁜 짓을 여기서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한국을 넘어 초국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 여성의 부동산 매매와 그를 둘러싼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매매와 그를 통한 수익 창출에서 ‘여성’이 중요한 주체로 부상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왜 부동산 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부도덕한 존재로 낙인 찍힐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여성은 자신의 부동산 매매와 수익 창출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는 1950~80년대에 태어난 여성 25명의 구술사를 바탕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장과 2장은 ‘집은 여자 소관’으로 이해하는 한국의 성별 규범과 주택 소유자를 ‘정상 시민’으로 인지하는 소유자 사회 이데올로기가 중산층 가정의 계급 재생산 욕망, 그리고 경제적 기여를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여성의 욕구와 교차하면서 ‘내 집 마련’이 여성의 일로 구성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군사정권과 투기 자본주의,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아파트를 투기 상품으로 만들고 투기를 대중화시킨 주범임에도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해 복부인 담론이 탄생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정 경제를 합리적으로 이끄는 여성을 찬양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들은 복부인이 아닌 ‘부동산 전문가’로 불리게 되었지만, 실상 부동산 투기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 어김없이 여성이 부도덕한 행위 주체로 비난받는다는 점을 짚는다.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가 문제시될 때마다 그것을 (부도덕한) ‘부인’의 책임이라고 전가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남성 청년의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세대 분노의 분출, 시대의 울분으로 해석되는 경향에 비추어볼 때, 여성의 경제적 이익 추구 행위가 개인적인 일탈이나 부도덕으로만 여겨지는 현실은 저자가 강조하듯 여성이 지고 있는 불합리한 윤리적 부담을 보여준다.
이 책의 백미는 구술자들의 내러티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3장에서 5장까지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주택이 계층의 표지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좀더 ‘좋은 주소’를 가지기 위해 집을 ‘갈아타고’ 때로 재산을 불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여성들이 집을 사고파는 ‘감각’을 익히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 3장이라면, 4장은 ‘내 집 마련’의 소박한 일념에서 시작한 여성들이 일련의 활동을 거치며 투기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투기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5장은 이렇게 주택 매매를 통해 이익을 취하게 된 여성들이 가정에서 힘있는 주체로 부상하며 일정 정도의 권력 변화를 경험하지만 매매를 통한 수익 창출 행위가 결코 공적 영역에서 ‘인정’받는 업적이 아니고 여성들 역시 이를 ‘가족을 위해 한 일’로 치부하면서 다시 가족주의의 덫에 빠지는 딜레마를 기록한다.
이들의 내러티브는 한국사회에서 거주 공간이라기보다는 수익성 높은 투자 상품이자 계급 상승 욕망의 현현으로 역할하는 주택 부동산이 가족주의와 성별 이데올로기를 만나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순들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더해진 저자의 분석은 한국사회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기묘한 모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례로 분명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부동산 자산을 지닌 여성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겸연쩍음의 표현이나 비현실적 감각의 증거가 아니라, 이들 여성에게 팽배한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분석한다(155면).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만들어낸 주범이 바로 한국사회의 주택 투기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어느정도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 주택을 갈아타며 더 큰 수익을 올리는 일이 일반적인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국사회이기에 “정주는 곧 손실을 의미”(163면)하고, 그 때문에 여성들은 끊임없이 ‘옮겨 타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샀다가 팔기를 반복하며 때로 위험한 대출이나 편법도 불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한국사회의 부동산 투기화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이기만 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 책은 여성들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를 놓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들이 단순히 사회구조의 “희생양도 아니고 투기꾼도 아니”라는 것이다(6면). 저자의 시각은 그가 제시한 ‘주택실천’이라는 개념과 가족주의가 만들어낸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 흔히 ‘(중산층 기혼)여성=투기꾼=복부인’으로 등치되는 불합리함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들의 행위를 ‘주택실천’이라 명명한다. 이를 통해 여성들을 향한 윤리적 잣대를 걷어내고, 이들의 행위 안에 단순 이익 추구를 넘어선 가족의 안위 모색이나 계층 재생산, 주체성의 획득 등 다층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밝혀낸다. 그러나 여성들의 주택실천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여성들의 자아실현이나 개별적 자율성 획득으로 결코 이어지지 않는다(292면). 또한 이들의 주택실천은 부동산 투자/투기의 속성상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를 수반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키는”(같은 면)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꾼’이라고 부르기는 과할지라도 타인의 주거권을 침해하고 계급 관계를 공고히 하는 문제로부터 이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부동산 매매시장의 행위자가 청년층으로 확대되고, 이 글의 서두에 소개했듯이 국가적 경계를 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부동산을 둘러싼 지형이 복잡하게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 이 책은 관련 연구자들에게 추후 연구의 영감을 제공하고 분석을 위한 렌즈를 제공한다. 이뿐 아니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한국 경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 여성의 주택실천을 이해하고자 한 저자의 분석적 시각을 통해 관련 논의와 연구의 지평이 끊임없이 확장되어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