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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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주혜 李柱惠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자두』 등이 있음.

leestori@hanmail.net

 

 

 

장편연재 1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학살자가 죽은 날, 그의 죽은 몸이 운반된 병원에 갔다. 그의 끝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 간혹 비치는 그의 산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아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이었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다. 아침 뉴스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유당이 제거된 우유에 천천히 그래놀라를 말아 먹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외출복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을 끄면서 한 문장을 떠올렸다. 모든 죽음은 느닷없다. 죽음의 평등함을 말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살자는 죽음조차 불평등함을 조소하고 가버렸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병원 후문은 온갖 언론사의 중계차들로 혼잡했다. 붉은색 표지판이 위압적인 응급실 입구에 묵직한 카메라를 어깨에 인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누가 새로 도착할 때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한곳으로 몰렸고, 그 바람에 바로 옆에 보이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안내판이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 씨발새끼가 사과도 않고 죽어버렸어. 내 말에 택시 운전사가 움찔 놀라더니 백미러를 흘끔거렸다.

좀 어떠셨습니까? 의사는 과거형으로 질문했다. 이주일 동안 복용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가 잘 맞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처음 처방받은 약은 끝없는 졸음을 유발해 문제가 되었다. 한낮에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깜박 잠든 적도 있었다. 입안에 든 음식물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처음 약을 처방하면서 의사는 낮에도 졸리면 부작용이니 곧바로 내원해 약을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치 약을 다 먹고 예약일에 병원을 찾아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의사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뭔가를 메모했는데, 나는 속으로 ‘쓸데없이 고지식한 게 문제임’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약을 바꾼 후 낮에 졸린 증상은 사라졌지만 대신 밤잠이 허술해졌다. 의사는 원하는 취침시간 한시간 전에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한시간은커녕 두세시간이 지나도 잠이 쉽게 들지 않았고 겨우 잠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도 몸의 스위치만 꺼지고 의식은 반 이상 깬 채 밤을 통과했다. 이 역시 부작용일까 생각했지만, 그때도 일주일 치 약을 다 먹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정신과 약이란 게 원래 처음 몇주는 개인별로 적절한 종류와 용량을 찾아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법이니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약 몇번 먹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참을성이란 내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덕목이었으므로 조바심을 내는 쪽은 내가 아니라 의사일 터였다. 세번째 처방에 의사가 약 하나의 복용량을 조금 늘렸는데 그후로 낮에 졸리지도 않고 미약한 가위눌림 상태로 밤을 통과하는 일도 점차 줄었다. 약이 드는 모양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내원했던 것을 두주일에 한번으로 바꾸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지 두달이 다 되었을 때 학살자가 죽어버렸다.

지금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약효에 이어 의사가 현재형으로 감정을 물었다. 분노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의사가 모니터 너머로 내 얼굴을 살폈다. 마스크를 쓴 상대의 감정을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일에 대한 분노일까요? 역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학살자가 죽었어요. 잘 먹고 잘살다가 죽어버렸어요. 의사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덜컥 죽어버렸다고요. 의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이나 인정의 표현은 아니었다. 오래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그런 일로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군요. 수년 전 독재자의 딸이 가뿐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늦은 밤 인터넷 까페 게시판에 울분의 글을 올렸다가 그 댓글을 보았다. 조롱이나 비난의 기미는 없었다. 그냥 좀 신기하고 낯설다는 말이었다. 앞에 앉은 의사의 표정도 비슷했다. 개인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과를 찾아와 두달째 약을 먹고 있는 당신이 개인적인 감정을 묻는 말에 꽤 정치적인 이유를 들다니 신기하군요, 정도랄까. 물론 순전히 내 추측이고, 나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고는커녕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으므로 그 추측은 틀렸을 가능성이 컸다. 의사가 물었다. 그 사람이 사과 없이 죽었다는 사실이 환자분의 개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유가 뭘까요? 예전이었다면 단호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니까요.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다분히 수세적이었다.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나요? 입도 있는 새끼가! 의사는 웃지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다만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야심 차게 준비한 농담에 실패한 사람처럼 주눅 들었다. 환자분은 사과가 중요한 사람이군요. 의사의 말이 허를 찔렀다. 석구와 해준이 떠올랐다. 석구는 끝내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해준이 바라는 사과를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석구와 해준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을 학살자의 죽음이 아니라. 나는 버티듯 석구와 해준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시 이주일 치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떠났다. 병원을 떠나는 길은 평소보다 혼잡했다. 병원 직원들이 여기저기 서서 끊임없이 뒤엉키며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탈까 하다가 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쳐 연희동 방향으로 걸었다. 다음 행선지는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처음 과호흡이 찾아왔을 때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임시방편이 걷기였다. 공황장애약을 삼년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떠나보낸 대학병원 앞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요. 무작정 빨리 걸었죠. 한시간 가까이 앞만 보고 걸었는데 호흡이 편안해졌다 싶었을 때 처음 보는 낯선 거리에 와 있더라고요.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후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뒷산을 오릅니다. 아직 약을 끊지는 못했지만 걷는 동안에는 적어도 발작이 오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어요. 정신질환 환우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험담이었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에 검사를 예약하고 진료일을 기다리는 동안 우선 걷기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면 아득히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동네를 몇바퀴 돌았다. 그러다 건널목을 만나면 자꾸 걸음이 중단되어 집에서 조금 떨어진 큰 공원으로 갔다. 오피스텔 건물에서 난지천공원 입구까지, 거기서 다시 하늘공원 입구까지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 왼편 구름다리를 건너 월드컵 평화의 공원에 들어가면 한시간이 걸렸다. 인공연못 앞 벤치에 앉아 10분 정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끄러미 수면을 바라보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두시간 넘게 걸을 수 있었다. 매일 그 길을 걸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운 행위였다. 숨이 안 쉬어지고 땅이 꺼질 것 같아 자꾸 눈을 질끈 감게 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길이었다. 어느새 불안과 공포는 감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증상이었다. 걷는 동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증상이 시작되기 전 즐겼던 산책과 같지 않았다. 난지천공원과 하늘공원, 월드컵 평화의 공원의 나무들은 가을 채비에 분주했다. 매일 주변의 나뭇잎 색깔이 달라졌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타오르는 붉은색, 노을 같은 주황색, 등불 같은 노란색 단풍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았다. 예쁜 게 예뻐 보이지 않아서 내가 단단히 고장 났구나 생각했다. 무지개처럼 다채로워야 할 감정이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가라앉았다. 연못 앞 벤치에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혼자라는 것이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랑스럽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뭔가가 내게서 저 보드랍고 따뜻한 것을 앗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면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잿빛 뼈가 연상되었다. 어떤 것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샤워기 줄이 올가미로 보였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고 어둠은 곧 죽음이었다. 눈을 감을 수가 없어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입을 벌릴 수도 없었다. 음식물은 질식을 떠올리게 했다. 불안이 몸 안의 모든 통로를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갔다.

약물치료는 급한 불을 꺼주겠지만, 약이 환자분의 불안과 공포를 깨끗이 몰아내지는 않아요. 첫 진료일에 의사가 말했다. 상담치료나 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고, 지금처럼 걷기나 운동에 몰두하는 것도 좋아요. 또 일기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기라니. 나는 그날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의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일기라면 사십대에 들어서면서 쓰기를 그만뒀다. 마흔살이 된 걸 기념하듯이 이십대부터 삼십대에 걸쳐 쓴 수십권의 일기를 사무용 세단기를 사서 죄다 갈아버렸다. 사흘이 걸렸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요. 자신과의 거리가 0일 때 우리는 그것을 문제적이라고 합니다.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자신과의 거리가 0을 지나 음수에 수렴하는 중이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내면의 동굴로 걸어 들어간 패배자였다. 실제로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직전 나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태아 자세로 웅크린 채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중얼거리며 덜덜 떨었다. 겁쟁이가 되어 동굴에 숨어드는 것과 일기 쓰기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의사의 말을 의심하면서 인터넷에서 ‘일기 쓰기’를 검색하다가 ‘연희방글스튜디오’를 발견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정원의 동백나무가 보였다. 연희동 2층 양옥을 개조해 1층은 까페와 글쓰기 교습소로 쓰고 2층은 운영 사무실과 강사들의 작업실로 썼다. 개조 후에도 정원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철마다 동백, 목련, 능소화, 배롱나무, 모과나무, 감나무가 차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까페로 운영하고 (이 시간대에는 출입구에 ‘방글’이라는 팻말이 달렸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글쓰기 교습소가 되었다. (이때 출입구의 ‘방글’ 팻말이 뒤집혀 ‘글방’이 되었다.) 요일마다 소설창작교실, 시창작교실, 비평쓰기교실, 에세이쓰기교실 등이 열렸는데 그중 놀랍게도 일기쓰기교실이 있었다. 누가 일기 쓰는 방법을 돈을 내면서까지 배울까, 생각하며 일기쓰기교실 배너를 클릭했다.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두 문장이 한 구절씩 차례차례 화면에 떴다. ‘쓰면 만나고’가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로 이어질 때 까닭 없이 아득해졌다. 나는 자세한 안내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삼개월 일정의 일기쓰기교실에 등록했다.

학살자가 죽었는데 연희방글스튜디오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전직 대통령과 같은 동네에 산다고 자랑해왔던 마웨는 시무룩하게 앉아 프린트해온 과제물을 읽고 있었고 고슴과 도치도 평소처럼 바짝 붙어 앉아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강사는 아직 2층 작업실에서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화요일 일기쓰기교실의 수강생은 단 네명이었다. 인기가 없을 줄은 알았지만 소설창작이나 에세이쓰기 수강생의 절반도 안 되었다. 강사 림자는 오년 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작가였는데 아직 자기 이름으로 낸 소설책이 없어서 홈페이지에 소개된 프로필이 다른 강사들에 비해 짧았다. 강좌 첫날 강사는 일기를 쓰는 일에 어떤 가르침이나 배움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다소 맥 빠지는 소리로 시작하더니 자신은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니 선생님이나 작가님 같은 호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통하는 자신의 별명 ‘그림자’를 줄여 ‘림자님’ 혹은 ‘림자씨’로 불러달라고 했다. 또 수강생들도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별명을 지어 서로 불러주자고 제안했다. 이는 일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익명성을 원칙으로 하려는 스튜디오의 방침이라고도 했다. 이어서 수강생들이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칠십대 노인이 자신은 늙은이라 요즘 맞춤법도 모르고 평생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바빠서 어려운 말도 배우지 못했으니 선생님의 아니, 림자님의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별명은, 에, 에,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마이웨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하니 마이웨이로 불러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젊은 수강생이 그럼 두 글자로 줄여서 간지 나게 ‘마웨’가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노인의 별명은 마웨가 되었다. 노인은 어쩐지 중국의 부호 같은 느낌이 든다며 흡족해했다. 앳된 얼굴의 여자애와 남자애는 커플인지 시종일관 딱 들러붙어 있었는데, 네가 먼저 해, 아니, 네가 먼저 하라고, 한참을 옆구리를 찔러가며 키득거리더니 여자애가 먼저 말했다. 자신들은 커플이니만큼 커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별명을 짓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바퀴’와 ‘벌레’를 제안했고 자신은 바퀴벌레라면 끔찍하게 싫어해서 ‘잉꼬1’과 ‘잉꼬2’를 제안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너무 올드하고 구려서 한참 고민하다가 둘이 함께 키우는 고슴도치를 떠올리고 ‘고슴’과 ‘도치’로 정했다고,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모두 내 쪽을 돌아보아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오십대가 되어 한번쯤 삶을 반추해보고 싶었다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수강 동기를 적당히 둘러대고 별명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 다음 시간까지 지어 오겠다고 덧붙였다. 다들 시시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사 림자가 큰 화면에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띄웠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림자가 얼굴에 비해 다소 커 보이는 안경을 살짝 추어올리며 잠시 통유리창 너머 정원을 보았다. 내 시선도 림자를 따라 정원을 향했다. 정원은 이미 어두웠고 바닥에 설치한 조명이 마른 나뭇가지를 주황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저 나무가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동백일까? 동백이 맞는다면 나는 봄까지 이곳에 드나들며 붉은 동백꽃이 피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검은 유리에 반사된 림자의 옆얼굴이 피로해 보였다. 림자는 다시 수강생 쪽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어요. 여기서 성찰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되돌아보는 것? 마웨가 대답했다. 예, 되돌아보는 것, 돌이켜보는 것이죠. 그런데 왜 되돌아봐야 할까요? 평가하려고요. 젊은 남자애 도치가 말했다. 림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평가도 하죠. 그런데 자기 삶을 평가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백점, 오십점, 빵점, 이렇게 점수를 매기는 걸까요? 반성하기? 나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반성도 좋은 말이네요. 반성은 흔히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원래는 거울에 비춰본다는 뜻이니까요. 여러분의 말을 종합해보면 성찰이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평가하고 반성하는 일이네요. 일단 보는 행위가 먼저겠고요. 보고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것이죠. 보고 생각해보고 그걸 글로 쓰면 그게 바로 일기입니다. 그 일기를 전부 모으면 뭐가 될까요? 자서전, 하고 마웨가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사실 일기와 자서전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기의 총체 혹은 확장이 자서전이죠. 림자의 설명에 마웨가 한번 해볼 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림자가 펜 모양 리모컨을 누르자 슬라이드 화면이 바뀌었다.

 

자서전은 뒤늦게 쓴 일기의 총합이다.

 

나는 펜을 꺼내 수첩에 그 문장을 옮겨 적었다. 자서전은 뒤늦게 쓴 일기의 총합이다. 우리는 왜 굳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려 할까요? 림자의 질문에 고슴이 말했다. 선생님이 시켜서요. 도치와 마웨가 하하 웃었다. 고슴님은 선생님이 시켜서 말고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적이 있나요? 림자가 물었다. 설마요. 고슴의 즉각적인 대답에 도치와 마웨가 또 하하 웃었다. 림자가 안경을 고쳐 쓰고 고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사춘기 때부터 지금껏 일기를 써오고 있어요. 물론 매일 쓰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쓸 때도 있지요. 그럼 일기가 아니라 주기나 월기가 아니오? 마웨가 말하고 자기 혼자 껄껄 웃었다. 예, 일기를 쓸 때도 있고 주기나 월기를 쓸 때도 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매년 막바지에 한해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의식이 생겼어요.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죠. 림자가 잠깐 말을 멈추고 수강생들을 훑어보았다. 다소 무심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림자는 뜻밖에 뛰어난 연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동안 쓴 일기에 등장하는 나는 내가 아니더라고요. 림자가 대단한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처럼 속삭였다. 분명 사실만을 기록했고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썼지만 일년 후 그 기록을 읽는 나와 그 기록 속을 살아가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왜 그럴까요? 내가 어벙한 말투로 물었다. 림자가 내게 속삭였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이 강좌를 맡기로 했습니다. 림자가 리모컨을 눌러 슬라이드를 바꾸었다.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본 강의 소개 문구였다. 무엇과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도치가 물었다. 내가 기록한 나와. 내가 기록 속에 가두어놓은 나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나와. 림자는 신들린 듯 대답을 쏟아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왠지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헤어지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록하세요.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집니다. 림자가 다시 슬라이드를 바꾸었다. 과제물을 미리 보낼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급할 때 연락할 전화번호가 떴다. 처음 몇주는 제가 길잡이로 키워드를 드릴 거예요. 그 키워드를 주제어 삼아 자유롭게 일기를 써오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분량도 문체도 자유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상관없어요. 부담 갖지 말고 맘 편히 써서 주말까지 제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세요. 다음 시간부터는 각자 써온 일기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주제어가 뭐라고요? 마웨가 받아쓸 준비를 하고 물었다. 림자는 주제어를 즉흥으로 떠올리려는지 다시 통유리창 너머 검은 정원을 돌아보았다. 바깥은 쓸쓸하고 쌀쌀해 보였다. 우산. 림자가 작게 읊조렸다. 우산으로 하죠. 우산을 생각하고 떠오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보세요.

 

*

 

시옷에게도 자신만의 우산이 있었다. 일곱살이었나, 여덟살이었나. 아빠가 시옷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가 직접 골라준 우산이었다. 레몬색 천 위로 흰 장미가 가득 인쇄된 비닐을 덧씌운 이중우산이었다. 우산을 처음 펼쳤을 때 시옷의 귀를 가볍게 때렸던 팟 하는 소리, 그리고 거의 동시에 코를 쏘았던 새 물건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옷이 기억하는 시옷만의 첫 우산이자 마지막 우산이었다. 펴는 즉시 샛노란 천 위로 하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던 그 우산은 아름다웠다. 우산을 사 들고 온 날부터 시옷은 어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살면서 유일하게 비를 기다린 때였다. 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서는 반듯한 댓돌 옆 우산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는 제 우산을 보며 언제쯤 저것을 펼쳐 들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시옷은 매일매일 비를 기다렸다. 마른하늘을 향해 우산을 펼쳐 들고 공연히 마당을 오락가락하다 할머니에게 뒤스럭을 떤다고 핀잔을 듣기도 여러번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린 날 아침 시옷은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우산을 팟 소리 나게 펼치고 학교로 향했다. 부러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빗방울이 우산 위 장미 꽃잎을 타고 알알이 미끄러졌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눈앞이 아니라 우산 속을 쳐다보며 걸었다. 그날따라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등굣길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 시옷이 지루한 수업을 견디는 동안 비가 그쳤고 시옷은 우산을 교실 뒤쪽 우산꽂이에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들춰보다가 불현듯 우산을 떠올리고 깜짝 놀라 학교로 달려갔을 때 교실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밤새 우산의 안부를 걱정하다 다음 날 아침 뛰다시피 학교로 갔을 때 우산꽂이는 텅 비어 있었다. 시옷은 교실 곳곳을 둘러보고 복도 여기저기를 살피고 행여나 싶어 다른 교실도 기웃거렸지만, 아름다운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그후 한동안 시옷은 비 오는 날마다 남의 우산을 골똘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간혹 레몬색 우산이나 흰 장미꽃 우산을 발견하면 멀리서도 심장이 뛰었지만, 가까이 가보면 시옷의 우산이 아니었고 돌아설 때는 어김없이 울고 싶어졌다. 시옷은 그렇게 자신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산을 딱 한번 써보고 잃어버렸다. 마지막 우산이라고 말한 것은 그후 한동안 시옷에겐 시옷만의 것이라고 할 만한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빈곤은 우산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부턴가 시옷의 집에는 우산살이 하나둘 부러져 비를 완전히 막아주지 못하는 허술한 우산만 남았다. 식구들이 집을 나서는 순서대로 우산을 골라 들고 가면 시옷의 차례에는 우산이 없을 때도 있었다. 장마철은 난감했다. 엄마는 급한 대로 옆집에서 우산을 빌려오기도 했고 대나무 살에 얇은 파란색 비닐을 씌운 허술한 우산을 사다 주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파란 비닐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어른이 되어 우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게 된 때에도 시옷은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아침에 눈을 떠 비가 오는 걸 알면 까닭 모를 걱정과 불안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시옷에게 비는 살이 부러진 우산과 젖은 신발을 의미했다. 그 축축함과 막막함은 자연스럽게 군모를 깊숙이 눌러쓴 어느 군인이 국방색 우비 위로 길쭉한 소총을 끌어안고 집요하게 비를 맞고 있던 장면을 머릿속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해 봄 시옷은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갔고 평일 방과 후에 혼자 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합창 연습을 다녔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큰길을 건너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꼭대기에 방송국이 있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철제 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정문 너머로 장갑차와 총을 들고 선 군인들이 보였다. 정문 앞에도 수위아저씨 대신 군인 두 사람이 양쪽을 지키고 서 있었다. 국방색 우비 위로 빗방울이 알알이 흘러내렸고 비스듬히 세워서 안은 총도 비를 맞고 있었다. 시옷은 실물 총을 그때 처음 보았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옷이 번들거리는 총신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때 군인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군모를 깊숙이 눌러써서 눈이 보이지 않는 군인이 말을 하자 시옷은 깜짝 놀랐다. 나는 어린이합창단이에요. 군인은 시옷의 대답이 올바른 암호라도 되었다는 듯 조용히 고갯짓으로 정문 옆 담벼락을 가리켰다. ‘어린이합창단은 언덕 아래 ○○국민학교로 오시오.’ 다급하게 쓴 것 같은 흰 종이가 애처롭게 비를 맞으며 펄럭이고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방과 후 남의 학교는 시옷의 학교와 색깔도 냄새도 달랐다. 커다란 건물에서 문이 열린 곳은 중앙현관뿐이었다. 시옷의 학교 본관 중앙현관은 어른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게 원칙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중앙현관으로 들어갔다간 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불쑥 튀어나와 혼쭐을 냈다. 시옷은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열린 곳이 그곳뿐이라 해도 남의 학교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려니 절로 쭈뼛거리게 되었다. 시옷은 누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우산을 접고 신발을 벗어 들고 남의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시옷의 학교 나무 복도는 단무지의 노란색에 가까웠는데 (일년에 한번 학생들이 복도며 교실 바닥을 노란 물감으로 물들이는 대규모 염색 작업에 동원되었다) 이 학교의 복도는 귤색에 더 가까웠다. 시옷은 낯선 아이들이 귤색 물감을 부어놓고 열심히 바닥을 문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시옷의 눈앞에 긴 귤색 복도가 이어졌고 그 끝에 어스름한 그늘이 웅크리고 있었다. 시옷은 그늘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데 빗속을 걷는 동안 흠뻑 젖어버린 시옷의 어린 발이 귤색 복도에 발자국을 찍었다. 시옷은 제 발자국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계속 전진하면 발자국이 더 생길 것이다. 그러나 후퇴하면 총 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속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어디선가 남의 학교 선생님이 튀어나와 남의 학교 복도에 더러운 물 얼룩을 남겼다고 호통칠 것 같았다. 어느 학교든 선생님은 무서웠다. 어느 집이든 어른들이 다 무서운 것처럼. 시옷은 전진을 선택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을 뗐다. 복도에서 젖은 걸레 냄새가 올라왔다. 한걸음 또 한걸음. 시옷은 보폭을 크게 해서 걸었다. 그래야 젖은 발자국이 조금이라도 덜 찍힐 테니까. 그런데 시옷이 오른손에 든 신발과 왼손에 든 우산도 자꾸 물을 떨어뜨렸다. 시옷은 애써 울음을 삼키고 있는데 이것들은 맘 놓고 물을 흘렸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남의 학교 선생님과 총 든 군인이 서 있을까 무서워 앞만 보고 걸었다. 긴 복도를 다 지나자 위층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계단이 보였다. 위쪽에서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차가운 시멘트에 젖은 발을 올린 순간 딸꾹질이 시작되었다. 시옷은 딸꾹딸꾹 박자에 맞춰 시멘트 계단을 올랐다.

‘음악실’이라고 쓴 팻말을 확인하고 교실 문을 드르륵 열자 지휘자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멈추었다. 합창단원 아이들이 일제히 시옷 쪽을 돌아보았다. 시옷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딸꾹거렸다. 지휘자 선생님이 피아노 앞에서 일어나 시옷에게 다가왔다. 선생님이 상냥한 눈빛으로 시옷을 내려다보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시옷은 딸꾹거리며 울었다. 지휘자 선생님이 시옷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더니 허리를 숙여 시옷과 눈을 맞추었다.

왜 우냐?

딸꾹.

사내자식이 왜 울어?

딸꾹.

순간 시옷은 이곳에서는 자신이 ‘사내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왜 우냐?

총을 보았어요.

총이 무서우냐?

예, 딸꾹.

괜찮다. 군인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려고 총을 든다.

장갑차도 보았어요.

장갑차는 방어를 위한 무기다.

딸꾹.

군인은 우리 국민을 지키려고 왔으니 국민이라면 무서울 게 없다.

시옷은 자신이 국민인가, 어지러운 머리로 생각했다. 시옷은 3학년 때부터 월요일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을 전부 교실 뒤쪽으로 몰아놓고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운 사람만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했다. 한시간 내내 자리에 앉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시옷은 민족중흥이 뭐고 역사적 사명이 뭔지는 몰라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울 수 있었다. 그러면 시옷은 국민인가? 국민인 시옷은 총 든 군인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지만 군인이 소중하게 보듬어 안은 총을 본 순간 시옷은 더럭 겁이 났고 남의 학교 긴 복도를 지나 3층까지 계단을 올라온 지금까지도 공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내자식이 총을 무서워하면 되겠나? 너도 언젠간 총을 들 터인데.

지휘자 선생님이 시옷의 어깨를 힘줘 잡았다. 시옷은 어깨를 잡은 지휘자 선생님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 떨고 있다. 늘 진한 색깔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포마드 바른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화한 솔잎 냄새를 풍기는 지휘자 선생님이 남의 학교 음악실에서 떨고 있다. 어른도 무서운 일이라면 어린 자신이 무서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시옷은 생각했고, 그러자 차갑게 젖은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시옷은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손을 가늘게 떨고 있는 지휘자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사내자식’답게 주먹으로 눈물을 쓱 훔친 다음 합창단원 아이들 사이에 들어가 섰다. 시옷의 옆자리 아이가 교실 나무 바닥에 찍힌 시옷의 발자국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늘 그랬듯이 연습 첫 곡은 「방울꽃」이었다. 지휘자 선생님은 음정을 반음씩 높여가며 그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게 했고 아이들 목청이 터질 지경이 되어서야 연습을 마쳤다. 그게 지휘자 선생님이 요구한 목 풀기 방식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쪼로롱 방울꽃이 혼자 폈어요

산새들 몰래몰래 꺾어 갈래도

쪼로롱 소리 날까 그냥 둡니다

 

산바람 지나가다 건드리면은

쪼로롱 방울 소리 쏟아지겠다

산 노루 울음소리 메아리치면

쪼로롱 방울 소리 쏟아지겠다

 

*

 

고슴: 이게 언제 이야기예요? 왜 방송국에 총 든 군인과 장갑차가 들어와요?

마웨: 6·25 이야기는 아닐 거고 4·19나 5·18인가?

나: 1980년의 이야기입니다.

고슴: 와, 그럼 몇살이세요? 1980년에 초등학생이면 (주먹셈을 해보더니) 와, 오십이 넘었네요?

마웨: 아이고, 여기 낼모레 여든인 사람도 있습니다.

림자: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개인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묻거나 거론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는 익명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기 위해 모였습니다.

도치: 그런데, 이건 일기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소설처럼 읽혀요. 주어를 ‘나는’이 아니라 ‘시옷은’이라고 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나: ‘나는’이라고 시작했더니 한줄도 쓸 수가 없었어요.

마웨: 그러면 그걸 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나: 잘 모르겠습니다.

림자: 일기라고 해서 글을 쓰는 주체와 글 안의 화자가 반드시 같은 기호로 일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작자와 화자 사이에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글이 써지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아마 이분도, 그런데 선생님은 아직 별명을 짓지 않았네요? 생각해온 이름이 있나요?

나: 죄송합니다. 아직.

고슴: 그럼 시옷이라고 해요. 어차피 일기의 주인공도 시옷이니까.

림자: 그럴까요?

고치: 수많은 자음 중에 시옷을 선택한 이유 정도는 물어봐도 됩니까?

나: 그냥…… 시옷은…… 어쩐지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생겨서요.

 

*

 

내내 7로 시작했던 달력 속 큼직한 숫자가 8로 바뀌었을 때 시옷은 열살이 되었다. 연도 중 십의 자리가 바뀌면서 자신의 나이도 두 자릿수로 바뀐 점을 시옷은 매우 특별한 일로 여겼다. 나는 71년에 한살, 72년에 두살, 79년에 아홉살, 그리고 80년에 열살이에요. 나는 연도 숫자와 나란히 나이를 먹어요.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말했을 때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조금 웃어주었지만, 아빠는 호들갑스럽게 반응했다. 우리 딸이 그런 이치를 혼자서 깨치다니, 다 컸구나. 아빠는 시옷의 마른 몸통을 번쩍 안아 들고 방 안을 몇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시옷의 까르르 소리가 안방 천장에 부딪혔다. 인제 열살도 되고 4학년 언니도 되었으니 밥도 많이 먹고 김치도 잘 먹고 쑥쑥 커야 한다. 할머니가 불경에서 눈을 떼고 돋보기 너머로 시옷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할머니는 늘 시옷의 편식을 걱정했다. 안 그래도 또래보다 일년 먼저 입학해 키도 작고 몸도 말랐는데 입까지 짧아 더디 큰다고 했다. 아빠가 시옷의 뺨에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지러운 시옷이 비틀거리다 안방 요 위에 풀썩 넘어졌다. 저거 봐라. 애가 영 부실하다. 할머니는 끌탕을 하는데 아빠는 속 편한 목소리로 언제까지나 품 안의 아기로 남게 안 컸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그런 아빠를 흘겨보다 피식 웃어버렸다. 그날 시옷의 마음은 기쁜 예감으로 부풀었다. 시옷은 집안의 중심이었다. 봄이 오고 새 학년이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마냥 즐겁고 특별할 줄 알았던 그해 시옷의 집은 요란한 변화를 맞게 된다. 집안에서 한 남자가 사라지고 한 남자가 쳐들어오며 한 남자가 잉태되고 한 여자애가 사내자식으로 둔갑한다.

 

*

 

도치: 이야기가 급발진하는 느낌이에요.

마웨: 근데 뭔가 분위기가 바뀌면서 흥미진진해지는데?

고슴: 마웨님 말처럼 기대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한 문장으로 미래를 요약해버리니까 진짜 소설처럼 읽혀요. 그것도 아주 올드한 소설이요.

 

*

 

전조가 없지는 않았다. 많은 부분이 먼 훗날 돌이켜보고서야 비로소 아귀가 맞아떨어지듯 이해되었지만, 막연하게나마 불안한 기운은 어린 시옷도 감지할 수 있었다.

79년 가을 이른 아침, 시옷은 잠결에 담배 연기를 느꼈다. 머리맡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담배 냄새 때문에 잠은 벌써 달아나버렸지만, 시옷은 눈을 뜨지 않고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뒤숭숭해요.

옆집 애니 아빠의 목소리였다.

허, 이거 참.

아빠의 탄식이 들려오고 곧바로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아직은 공무원들만 전달받은 극비사항이니 공식발표가 날 때까지는 형님도 아무 말씀 마세요.

응, 그래야지. 자네도 조심해.

예, 그래야죠. 그런데 우리 애니가 일찍 일어난 바람에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입단속을 시켜야겠군.

네가 입을 잘못 놀리면 이 아빠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고?

훌쩍훌쩍 울더라고요. 계집애들이란.

순간 두 남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잠든 척하는 시옷을 보고 있을 것이다. 애니 아빠가 말한 계집애들이란 애니와 시옷을 한꺼번에 말한 것이었을 테니까. 애니도 시옷도 외동이므로 양쪽 집안에 계집애들이라고 복수형으로 싸잡아 말할 자매는 없었다. 시옷은 잠든 척하는 걸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럴 때 괜히 몸을 뒤척이거나 잠꼬대를 흉내 내면 안 된다. 어설픈 연기는 들통의 지름길이다. 뭔가를 숨기려면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두 남자가 한꺼번에 담배를 피우는지 담배 냄새가 한껏 진해졌지만, 그보다 잠결에 엿들은 비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시옷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

 

비밀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과 ‘총’이라는 단어가 한꺼번에 들어간 짧은 문장은 저울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고, ‘죽었다’라는 마지막 단어는 마침표를 찍듯 어린 시옷의 목울대를 쿡 찔렀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눈을 뜨고 말았을 때 아빠와 애니 아빠는 방을 나가고 없었다. 꿈이었나? 그때 엄마가 시옷의 이름을 부르며 방문을 열었다. 어휴, 담배 냄새. 재떨이를 집어 드는 엄마의 얼굴이 체한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날 시옷은 교실에서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평소에도 학교에 가면 말이 없었지만, 그날은 입을 여는 즉시 비밀이 포르르 입 밖으로 날아가버릴까봐 힘주어 입을 다물었다. 그날따라 아이들은 주눅이 든 것처럼 조용히 지냈다. 선생님도 내내 이마를 찌푸리며 자습을 시키고 교과서 내용을 베껴 쓰게 했다. 학교 전체가 괴괴했다. 토요일 특유의 들뜬 분위기는 없었다. 4교시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하도 힘을 주어 턱 끝이 얼얼했고 연필을 꼭 쥐고 쓰는 버릇 때문에 검지와 중지 사이가 푹 패어 있었다. 내내 긴장한 탓인지 시옷은 저녁상이 나오기 전에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누군가 시옷의 이마를 한번씩 만져보고 갔다. 아빠가 시옷을 흔들어 깨웠을 때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아스피린 반조각을 숟가락에 물로 개어서 시옷의 입안에 밀어넣었다. 아스피린의 끝 맛이 시큼했다. 아빠가 시옷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아빠의 손바닥은 서늘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애니 아빠의 속삭임이 떠오르자 울음이 터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비밀을 누설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아빠가 끌려간다. 쥐도 새도 모르게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비밀을 누설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아빠가 끌려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시옷은 아빠를 잃는다.

뚝. 괜찮아. 아스피린은 효과가 좋단다. 한숨 자고 나면 열이 떨어질 거야.

그러나 시옷의 이마에 닿은 아빠의 손이 떨고 있었다. 아빠는 괜찮지 않았다.

다음 주 월요일의 학교는 시끄러웠다. 아이들은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잘도 주절거렸다. 주말을 지내는 동안 비밀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애들은 총을 쏘았다는 남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대통령과 함께 총에 맞아 죽었다는 다른 남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내가 김재규고 너는 차지철이다. 입으로 탕탕 소리를 내며 총질놀이를 하는 남자애들도 있었다.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이 ‘내가 김재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남자애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선생님은 아이를 복도 벽에 밀어붙이더니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선생님의 눈자위가 붉게 부어올랐다. 시옷이 보기엔 멱살을 잡힌 아이보다 선생님이 더 겁에 질려 있었다.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협박 같기도 하고 애원 같기도 한 그 말이 온종일 시옷의 귓가를 맴돌았다.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멱살이 잡힌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울음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어떤 아이는 대통령이 불쌍해서 울었고 어떤 아이는 혼난 아이가 가엾어서 울었다. 옆의 아이가 울자 저절로 눈물이 나와 우는 아이도 있었다. 시옷은 울지 않았다. 시옷은 무서웠지 슬픈 게 아니었다.

 

*

 

마웨: 사건이 일어나니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구먼.

고슴: 역사소설 같아요.

도치: 그래서 재미있다고?

고슴: 재미라기보다는…… 그냥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잖아.

림자: 마웨님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엄밀히 말하면 역사적인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했을 뿐 화자인 시옷에겐 아직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만약 이 글이 픽션이라면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도입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웨: 그 사건하고 그 사건하고 다릅니까?

림자: 픽션에서 말하는 사건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같지는 않아요. 흔히 소설 구성의 삼요소로 인물, 배경, 사건을 들잖아요?

고슴: 와, 국어시간 같아.

도치: 그래서 재미있다고?

고슴: (그럴 리가 있냐는 듯 눈을 흘긴다.)

나: 하지만 이 글은 픽션이 아닙니다.

림자: 아, 그렇죠. 우리는 일기쓰기교실에 와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이 아니어도 모든 산문에는 나름의 구성과 체계가 있습니다. 특히 읽는 사람을 상정하고 쓰는 글은 경험이든 순전한 창작이든 스토리텔링의 구성이 탄탄할수록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마웨: 맞아! 누가 읽어줘야 글 쓰는 맛도 나지.

도치: 하지만 일기는 누가 읽으라고 쓰는 게 아니잖아요.

림자: 그렇죠. 하지만 모든 글은 사실상 독자를 상정해요. 아무리 일기라도 독자는 있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이 최초의 독자가 되겠죠. 게다가 여러분은 지금 남이 읽을 일기를 쓰는 중이고요.

나: (‘남이 읽을 일기를 쓰는 중’이라고 수첩에 기록한다.)

 

*

 

애니는 이름처럼 예뻤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곱슬거리는 머리를 포니테일이나 양 갈래로 묶고 큼직한 리본을 달았다. 프릴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자수가 놓인 하얀 타이츠를 신고 메리제인 구두를 신었다. 무엇보다 애니에겐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시옷의 집은 애니의 집보다 훨씬 컸지만 시옷에겐 시옷만의 방이 없었다. 애니와 시옷은 애니네가 시옷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던 여섯살에 처음 만났고 곧 단짝 친구가 되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애니 엄마와 시옷의 엄마도 친구가 되어 담장 너머로 콩자반 그릇이나 잡채 접시를 주고받았고 도청 공무원인 애니 아빠는 전직 공무원이었던 시옷의 아빠를 형님이라 부르며 간혹 같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애니와 시옷은 마당이 넓은 시옷의 집에서 바지랑대에 고무줄 한쪽 끝을 묶어놓고 단둘이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장난감이 훨씬 많은 애니의 방에서 놀았다. 인형놀이를 할 때면 애니는 제가 가진 인형 중 가장 최근에 산 인형을 시옷에게 빌려주었다. 인형의 곱슬거리는 금발과 프릴 달린 드레스를 만지작거리며 시옷은 애니의 머리 모양과 옷을 흘끔거렸다. 애니 엄마는 아침마다 애니를 거울 앞에 앉혀놓고 촘촘한 빗으로 머리를 빗기고 직접 만든 큼직한 리본을 달아준다고 했다. 애니는 엄마가 머리를 당겨 묶을 때마다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아프다며 그 시간이 정말로 싫다고 했지만, 그런 풍경에 들어가본 적 없는 시옷은 그저 거울 앞의 애니가 부러웠다. 애니는 자기가 가진 것의 힘을 몰랐다. 늘 바가지머리에 티셔츠, 바지 차림인 시옷은 애니 옆에 있으면 동화책에서 본 공주님의 시종이 된 기분이었다. 애니네 집은 기와지붕 한옥이었지만 내부는 세계동화전집에서 엿본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의 집 같았다. 애니 엄마에겐 흰 레이스 식탁보를 깐 식탁이 있었고 시옷의 집에는 큼직한 옻칠 밥상이 있었다. 애니 엄마의 접시는 희고 매끄러운 도자기였지만, 시옷의 집은 누런 유기에 음식을 담았다. 엄마는 무거운 유기를 닦을 때마다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다며 나직하게 불평했다. 실제로 애니네 집에는 유럽에서 온 물건들이 많았다. 유럽에서 왔다는 드레스, 유럽에서 왔다는 인형, 유럽에서 왔다는 과자, 유럽에서 왔다는 커튼. 그런 애니가 진짜 유럽 사람을 시옷의 집에 데려왔을 때는 정말이지 깜짝 놀라 믿을 수가 없었다. 애니가 소중한 보물처럼 안고 온 어린 여자애는 금발이었다. 인형이 아니고 진짜 사람이 금발을 찰랑이는 모습을 시옷은 그때 처음 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속이 들여다보일 것처럼 살갗이 투명하게 희었고 햇살을 받은 금색 머리카락은 천천히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질 것 같았다. 아이는 시옷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종알거리며 시옷의 집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애니는 그런 아이가 넘어질세라 조바심을 내며 뒤를 쫓아다녔다. 늘 시옷에게 가장 좋은 장난감을 양보하던 애니가 그날만은 어쩐지 뻐기는 표정을 지었다.

내 동생 클라라야.

거짓말. 외국 사람이 어떻게 네 동생이냐?

우리 이모 딸이니까 내 동생 맞아.

거짓말. 네 이모가 어떻게 외국 사람을 낳냐?

진짜야!

애니는 뾰로통해져서 금발 아이의 손을 낚아채고 제집으로 돌아가버렸다. 텅 빈 마당에 햇살만 그득했다. 시옷은 손등에 내려앉은 희귀한 금빛 나비를 눈 깜박할 사이에 놓쳐버린 것처럼 서운하고 아득했다. 금발 아이를 만져보고 싶었다. 금빛 고수머리를 손가락으로 휘휘 감아보고 싶었다. 금발 아이를 할머니 경대 앞에 앉혀놓고 참빗으로 얼굴 가죽이 벗겨질 만큼 단단히 머리를 빗겨주고 싶었다. 애니가 가장 아끼는 붉은색 벨벳리본을 훔쳐 금발 아이에게 달아주고 싶었다. 시옷은 부아가 나서 괜히 발끝으로 마당 흙을 툭툭 차올렸다. 된장을 푸러 나온 할머니가 시옷에게 말했다. 그러다 개미 밟을라. 목숨 죽이지 마라. 죄로 간다. 금발 아이가 간호사로 독일에 간 애니 이모가 백인 남편을 만나 낳은 아이라는 이야기는 훨씬 나중에 들었다. 그 당시의 시옷은 검은 머리의 한국 사람이 금발의 독일 사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들었던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옷의 식구들은 시옷이 내심 애니처럼 드레스를 입고 긴 곱슬머리를 찰랑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시옷은 엄마가 시장에 데려가 늘 좀더 큰 사이즈로 골라주는 헐렁한 말표 운동화 말고 애니처럼 기차표 메리제인 구두를 신고 폴짝거리고 싶었다. 치맛자락이 무릎을 간질이며 흔들리는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혀놓고 얼굴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아프게 머리를 빗겨주는 어른이 있기를 바랐다. 애니처럼 금발 아이를 낳은 이모를 소망했다. 어쩌다 한번 만나는 시옷의 이모들은 이모라기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웠다. 엄마는 딸 부잣집의 늦둥이 막내였다. 역시나 할머니에 가까운 시옷의 고모들도 명절을 쇠러 시옷의 집에 오면 어린 시옷의 궁둥이를 토닥이며 예쁘다, 예쁘다, 말했지만 진짜 예쁜 드레스나 구두를 사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시옷의 아빠는 할머니의 늦둥이 외아들이었다. 양가 사촌 언니 오빠는 전부 시옷보다 나이가 훌쩍 많아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렸지만, 이들도 금발 아이를 낳는 재주는 없었다. 금발 아이를 놓쳐버린 그날, 시옷은 저녁 밥상 앞에서 드레스와 구두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시옷을 빤히 보았고 아빠는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당장 사러 가자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할머니는 묵묵히 수저질을 멈추지 않았다. 시옷은 할머니의 반응이 제일 신경 쓰였다. 할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미술시간 준비물로 찰흙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호미와 바가지를 꺼내더니 시옷을 데리고 동네 언덕에 올라갔다. 할머니는 수풀이 우거진 비탈길을 헤매더니 산그늘 아래 축축한 곳을 찾아 붉은 기운이 도는 흙을 퍼 바가지에 담았다. 다음 날 미술시간에 다른 애들이 문방구에서 파는 매끈한 찰흙을 꺼내 그릇을 빚는 동안 시옷 혼자 할머니가 거즈 수건에 싸준 흙덩이에서 잔돌을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다. 뭘 빚으려 해도 돌멩이가 나와 손끝을 찔렀다. 시옷의 흙덩이는 어떠한 형태도 되어주지 않았다. 옆에 앉은 애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어린 시옷은 그때 처음으로 ‘망신’이 뭔지 체감했다. 시옷은 할머니가 당장 숟가락을 내려놓고 벽장 안에 차곡차곡 포개놓은 천을 꺼내 할머니 방 재봉틀로 시옷의 드레스를 만들어준다고 할까봐 겁이 났다. 할머니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 부잣집 딸 클라라가 입는 프릴 달린 드레스는커녕 하이디가 입는 초라한 드레스조차 만들지 못할 것이다. 누더기 같은 치마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시옷이 밥을 먹다 말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와 아빠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옷을 보았는데, 그때 할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드레순지 뭔지 하나 사줘라. 애가 얼마나 맺혔으면 저러겠냐. 엄마가 별스럽다는 듯 시옷을 향해 살짝 눈을 흘겼는데, 엄마의 입은 분명 웃고 있었다.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애니가 데려온 금발 아이의 머리통에 금빛 햇살이 가파른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엄마가 사준 드레스는 얇은 재질이었다. 뛰는 속도에 맞춰 나풀거리던 치맛자락의 느낌이 생생하다. 타이츠를 입지 않았고 구두에 흰 양말을 접어 신었을 테니 종아리 맨살이 드러났을 것이다. 치맛자락이 흔들리며 허벅지를 쓰다듬는 감촉이 좋아서 시옷은 자주 깡총거렸다. 3교시나 4교시였을 것이다. 시옷의 학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컸으므로 등하교 때나 쉬는 시간이었다면 주변에 아이들이 바글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 그곳에는 시옷과 그 남자들뿐이었으니 분명히 수업시간이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갔다면 틀림없이 선생님 심부름이었을 것이다. 시옷은 작은 양동이에 물을 받으러 교사(校舍) 밖으로 나갔다. 당시에는 화장실도 수돗가도 전부 실외에 있었다. 아이들은 교사와 교사 사이에 있는 작은 수돗가에 가 손을 씻거나 물을 먹거나 어항 물을 갈았다. 시옷이 양동이를 들고 수돗가에 이르렀을 때 5학년이나 6학년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팔레트를 씻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여러 색깔 물감이 뒤섞이며 수챗구멍으로 흘러갔다. 남자들은 두명 혹은 세명이었다. 시옷이 수도꼭지 밑에 양동이를 놓았다. 수도꼭지가 열리며 쏴 하고 물이 쏟아졌고 한 남자가 시옷에게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확 들쳤다. 또다른 남자가 외쳤다. 보지를 따먹어! 시옷이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시멘트 턱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시옷은 치맛자락이 얼굴까지 들춰진 모습으로 드러누웠다. 와아! 두명 혹은 세명의 남자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시옷의 속옷을 잡아 뜯었다. 보지 땄다! 두명 혹은 세명의 남자는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팔레트를 마저 씻었다. 달아난 사람은 시옷이었다. 시옷은 선생님의 양동이를 수도꼭지 아래 그대로 두고 교사 안으로 도망쳤다. 시옷의 첫 드레스가 흙으로 더럽혀졌다. 시옷은 울며 교실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그런 시옷을 보고 물었다. 양동이는 어디에 두고 너 혼자 왔니? 그후로 시옷은 치마를 입지 않았다. 엄마는 애가 변덕이 왜 이리 심하냐고 혀를 찼다. 치마를 입고 싶지 않은 이유를 털어놓느니 그냥 변덕이 심한 아이가 되는 편이 나았다. 초여름 수돗가에서 벌어진 일은 오직 시옷의 기억에만 속했다. 시옷은 어른이 되어서도 간혹 그 일을 떠올릴 때면 양동이 위의 수도꼭지는 누가 잠갔을까,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감쪽같았던 그 남자들은 시옷이 버리고 간 양동이가 물로 넘치기 전에 수도꼭지를 잠가주었을까? 시옷은 고작 그런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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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웨는 거, 그, 보, 그런 단어는 좀, 너무 노골적이 아닌가, 나는 늙은이라 그런지 좀, 거북하다, 더듬거리며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뜻밖에 고슴이 보지를 보지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했다. 도치와 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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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죽고 국무총리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시옷이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대통령이었고, 그 이름이 곧 대통령이라는 일반명사와 동급인 줄 알았던 사람은 죽으면서 고유명사로 돌아갔다. 그래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칠판 위에 태극기 액자가 걸린 것도 변함없었고 칠판 왼쪽에 국민교육헌장 액자가 걸린 것도 똑같았다. 4학년이 되면서 담임선생님은 바뀌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무섭게 혼내는 것도 똑같았다. 내가 김재규다! 하고 외쳤던 아이의 멱살을 잡고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협박했던 3학년 담임선생님과 험상궂은 표정이 너무 비슷해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특히 이 선생님은 아이들 이름을 외우지 않았다. 그냥 반장, 주번, 58번, 거기 빨간 샤쓰, 하고 불렀다. 언젠가 무슨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얼굴을 확 찌푸리더니 거기 3분단 뒤에서 두번째 줄 쥐색 샤쓰 앞으로 나와, 했다. 선생님은 호명당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노려보았다. 시옷은 그 아이를 몰랐다. 같은 반이었던 적도, 동네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걸음에 박자를 맞춰주려는지 오른손에 든 지휘봉으로 자신의 왼손바닥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에 선생님의 맨살을 때리는 지휘봉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아이가 교탁 옆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지휘봉으로 교탁을 한번 탁 내리치며 여기에 올라앉아, 지시했다. 아이는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선생님이 시킨 대로 맨 앞자리 책상에 발을 디뎌 힘겹게 교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60명 아이들이 일제히 선생님 키보다 높이 올라앉은 그애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지휘봉 끝으로 아이의 쥐색 윗도리를 확 들쳤다. 윽. 앞쪽에 앉은 아이들이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아이들 눈앞에 드러난 그애의 배에는 입고 있는 윗도리 색깔보다 진한 잿빛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시옷은 그런 상태의 피부를 처음 보았다. 이것 좀 봐라. 선생님이 지휘봉 끝으로 아이의 옷자락이 내려가지 않게 고정하고 말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보다 추악한 일이다. 무식과 더러움은 똑같이 감출 수 없다. 봐라, 당장 이토록 악취를 풍기지 않느냐. 그 말을 신호로 앞자리 아이들이 코를 싸쥐었다. 시옷은 그애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의 눈은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참 크고 속눈썹이 짙고 길었다. 검은 눈동자가 무척 크고 까맸다. 외갓집 동네에서 본 송아지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아이의 속눈썹이 축축해지는가 싶더니 버짐이 핀 뺨 위로 굵은 물줄기가 쑥 흘러내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흐름이라 시옷은 그게 눈물인 줄도 몰랐다. 아이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내일까지 이 때를 깨끗이 벗겨오지 않으면 사랑의 매로 열대를 때릴 것이다. 벽의 오른쪽, 그러니까 왼쪽의 국민교육헌장과 대칭되는 자리에 ‘사랑의 매’라는 이름표가 붙은 나무막대가 걸려 있었다. 선생님이 딱 한번 아이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인 적이 있는데, 그 사랑의 매를 어루만지며 박달나무를 깎아 만든 귀한 물건이라고 자랑했을 때였다. 눈이 아름다운 그애는 내일까지 때를 벗겨오지 않으면 단단하기로 이름 높다는 박달나무 매로 열대를 맞을 것이다. 아이의 눈물 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선생님이 지휘봉을 거두자 아이의 옷자락이 내려가 어린 배를 감췄다. 아이는 조용히 울며 교탁에서 내려갔다. 아이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옆에 앉은 아이들이 차례로 코를 감싸 쥐었다. 아이가 시옷의 옆을 지나갔다. 시옷은 절대로 코를 감싸 쥐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이가 바로 옆을 지나갈 때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모욕이다. 시옷은 그때 모욕의 뜻을 제대로 깨달았다. 어린아이에게 저런 모욕을 가한 선생님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날 저녁 시옷은 엄마가 시키기도 전에 욕실에 들어가 오래도록 몸을 씻었다. 엄마는 우리 시옷이 다 컸네, 칭찬했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이 그애의 몸을 검사했는지 어쩐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가 박달나무 매로 열대를 맞았는지 어쩐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일년 내내 그애는 다른 아이들과 말을 섞거나 어울려 놀거나 하지 않았고 한동안 그애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반 아이들이 코를 감싸 쥐며 혐오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장면들은 또렷이 기억난다. 그럴 때마다 그애가 그 아름다운 눈을 내리깔고 묵묵히 제 몫의 모욕을 감내했다는 것도. 어떤 일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되었다.

그 일을 목도한 후로 시옷은 어른을, 정확히는 어른의 지목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학교에 가면 최대한 선생님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아빠가 사다준 만화잡지에서 본 투명 망토가 절실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어보라거나 문제의 정답을 요구하며 시옷의 번호를 부르면 시옷의 심장은 당장 가슴을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어느날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 담임선생님은 오지 않고 처음 보는 선생님이 시옷의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선생님보다 더 나이 든 선생님이라 아이들은 당장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교탁 쪽을 쳐다보았다. 낯선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앞에서 뒤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어보았다. 그러곤 잠시 후 너, 거기 너, 너, 거기 3분단 뒤에서 세번째, 하고 몇명을 지목해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선생님의 지휘봉 끝이 (당시 선생님들에게 지휘봉은 손의 연장 기관이었다) 시옷을 향했을 때 시옷은 그대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도 앉아 있는 아이들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했다. 낯선 선생님이 일으켜 세운 아이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더니 그중 몇명은 다시 자리에 앉게 했다. 끝까지 남은 사람은 시옷과 2분단 둘째 줄 여자애였다. 애니처럼 늘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다니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시옷과 여자애를 가리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낯선 선생님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가자 담임선생님이 창틀에 팔꿈치를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옷과 여자애 쪽은 보지도 않고 낯선 선생님에게 가볍게 묵례하더니 담배 끝을 창턱에 짓이겨 불을 껐다. 시옷은 양쪽 귀로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낯선 선생님은 지휘봉을 가볍게 흔들며 복도를 걸어갔다. 시옷과 여자애는 긴장한 얼굴로 뒤를 따라갔다.

낯선 선생님은 4학년 교사를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 건물로 들어갔다. 본관은 교무실과 교장실, 행정실, 양호실, 그리고 1, 2학년 교실이 있는 학교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시옷도 1, 2학년 시절을 그 건물에서 보냈지만, 교무실이나 교장실, 행정실처럼 팻말만 봐도 왈칵 겁이 나는 곳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어른들이 싫고 무서운 시옷은 어른들 가까이에 가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숙제든 준비물이든 시험공부든 꼬박꼬박 해갔던 것도 순전히 어른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교무실로 따라와’는 시옷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그랬던 시옷이 낯선 선생님 뒤를 따라 교무실 문턱을 넘었다. 교무실은 책상 배치도 수런거리는 공기도 풍기는 냄새도 교실과 달랐다. 시옷의 어깨가 떨렸다. 시옷은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주먹을 꼭 쥐었다. 낯선 선생님이 시옷과 땋은 머리 여자애를 교무실 맨 앞의 육중한 책상 앞으로 데려갔다. 책상 위 검은 명패에 무지개가 어른거리는 젖빛 글씨로 ‘교감 김충렬’이라고 쓰여 있었다. 먼저 온 아이들이 교감의 책상 옆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시옷과 땋은 머리 여자애가 합류하자 교감이 그럼 시작해볼까, 하고 일어났다. 교감은 자기 앞에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서 있는 가엾은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교감의 눈빛은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어른들처럼 신중했다. 그것은 평가와 감정의 시선이었다. 교감의 시선이 시옷을 향했을 때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시옷은 다리와 배에 힘을 주고 버텼다. 사내자식이 참 곱상하게 생겼구나. 교감의 말에 낯선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그렇죠? 사내자식이 얼굴도 하얗고 이목구비도 올망졸망한 게 꼭 계집애처럼 생겼더라고요. 교감이 고개를 찬찬히 끄덕이며 시옷을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남자 화동을 시킬까요, 교가 제창단에 넣을까요? 낯선 선생님의 질문에 교감이 시옷에게 말했다. 교가 1절을 불러봐라.

시옷은 지금도 왜 그때 자신은 사내자식이 아니라고 밝히지 못했을까 생각해본다. 오줌을 참느라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까? 아무리 오해라도 선생님 말은 무조건 옳기 때문이었을까? 시옷은 오해를 바로잡지 못하고 곧바로 교가 1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기린봉 높이 솟아 해를 품을 때

더불어 빛나는 우리 온주인

찬란한 웃음 속에 피는 새싹들

나무로 기둥으로 우뚝 솟아라

우리 온주 우리 온주 대한의 자랑

눈부시게 뻗어나갈 세계의 햇살

 

시옷의 노래가 끝나자 주변 선생님들이 장난스럽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교감 앞에 줄지어 선 아이들도 얼떨결에 손뼉을 쳤다. 시옷은 다시 배에 힘을 주어 오줌을 참았다. 사내자식이 목소리도 옥구슬이구나. 교감이 흡족한 얼굴로 말하자 낯선 선생님이 빈소년합창단에 들어가도 되겠어요, 하고 맞장구쳤다. 교감이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잠깐 생각해보더니 목소리가 아까우니 교가 제창단에 넣읍시다, 하고 결론지었다. 하긴 남자 화동은 곱상한 놈보다는 씩씩하고 우람한 놈이 낫죠, 하고 낯선 선생님이 또 말했다. 교감과 낯선 선생님이 남자 화동과 여자 화동을 고르고 또 교가 제창단에 넣을 다른 아이들을 고르는 동안 시옷은 다리까지 비비 꼬며 오줌을 참아야 했다. 시옷은 이주일 후 학교를 방문한다는 교육부장관 환영 행사에서 학년 대표로 교가를 부르게 되었고 땋은 머리 여자애는 여자 화동으로 뽑혔다. 낯선 선생님이 시옷에게 오늘부터 매일 방과 후에 본관 음악실에서 교가 제창단 연습을 하고 집에 가라고 했다. 땋은 머리 여자애한테는 행사 당일 한복을 입고 머리에 댕기를 묶고, 가능하면 화장도 좀 하고 오라고 일렀다. 시옷과 땋은 머리 여자애는 본관을 나와 4학년 교사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옷은 여자애의 이름을 몰랐다. 그러나 여자애가 계속 시옷 쪽을 흘끔거리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거짓말쟁이. 여자애가 속으로 시옷을 비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시옷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말 없는 거짓말. 그날부터 이주일 동안 시옷은 원치 않는 비밀을 품고 묵직하게 버텼다. 방과 후 음악실을 찾아가 각 학년 대표와 함께 교가를 연습했고 행사 당일에는 엄마에게 미리 말해 준비한 남자아이 양복을 입고 갔다. (어쩐지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옷의 말대로 남자아이 양복을 준비해주었다.)

행사는 어찌어찌 흘러갔다. 시옷으로선 아무리 봐도 교장, 교감과 구별이 안 되는 양복 입은 남자와 그의 부인이라는 투피스 양장을 입은 여자가 단상에 오르자 한복 차림에 화장까지 한 남녀 화동이 꽃다발을 건넸다. 시장, 도지사, 교육감처럼 시옷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직책의 어른들이 차례로 소개되고 잠시 후 감색 세일러복을 맞춰 입은 아이들 스무명 정도가 질서정연하게 단상으로 올라갔다. 사회자가 (시옷을 교감 앞으로 데려간 그 낯선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이라고 소개했다. 어린이합창단이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부르고 이어 ‘전북의 노래’라는 처음 듣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동요를 한곡 불렀는데, 화음을 넣어 부르는 합창을 시옷은 그때 처음 들었다. 합창단의 노래가 깊고 풍성하게 넓은 강당 안을 채웠다. 사회자 선생님이 어린이합창단의 노래에 답가를 부를 교가 제창단을 소개했다. 시옷은 다른 학년 대표와 함께 마이크 앞에 나란히 서서 교가를 불렀다. 이주일 동안 연습한 대로 어느 부분을 강하게 부르고 어느 부분을 약하게 부를지 신경 써가며 불렀다. 이 순간만 지나면 거짓말에서 놓여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불렀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과해 실내를 채웠다가 다시 귀로 돌아오는 제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 노래하는 내내 소름이 일었다. 교가를 2절까지 부르고 입을 꾹 다물었을 때 시옷은 비로소 안도했다. 사회자 선생님의 손짓을 신호로 교가 제창단은 단상 바로 아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후 행사가 어떻게 흘러갔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시옷은 단상 위를 쳐다보는 척하면서 아마 멍하니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제 방과 후 연습도 끝났으니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가 쪄주는 고구마를 먹으면서 밀린 만화잡지를 읽어야지, 하는 생각들을. 박수 소리와 함께 행사가 끝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지기 시작했을 때 누가 시옷의 어깨를 가만히 잡았다. 아빠처럼 포마드로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양복 차림의 신사였다. 신사가 허리를 숙이고 시옷과 눈높이를 맞추더니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장 꺼내 주었다. 어머니한테 여기 적힌 전화번호로 꼭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렴. 신사는 양복을 입은 남자 어른답지 않게 다정한 말투를 썼다. 너를 발견해서 참 기쁘구나. 신사가 건넨 명함에 시옷이 매일 저녁 9시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알파벳 세 글자가 찍혀 있었다. 신사는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의 지휘자였다.

그날 저녁 명함을 받은 엄마는 한참 궁리하는 기색이더니 (시옷이 보는 데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다음 날 시옷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시옷을 데리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30분 넘게 시내를 가로질러 낯선 정류장에 시옷과 엄마를 내려주었다. 정류장에서 큰길을 건너 가파른 언덕길을 끝까지 오르자 꼭대기에 송수신탑을 화관처럼 무겁게 인 큰 건물이 보였다. 건물 벽에 시옷이 신사의 명함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알파벳 세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시옷은 그날 바로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원이 되었고 다음 날부터 매일 방과 후 혼자 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가 합창 연습을 했다. 교육부장관을 환영하는 행사가 끝났는데도 시옷은 말 없는 거짓말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시옷은 방송국에서도 ‘사내자식’이 되어 노래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합창단에 시옷이 아는 아이는 없어 보였다. 지휘자 선생님이 들뜬 표정으로 시옷을 다른 합창단원에게 소개했다. 시옷은 다른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지휘자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는 동요를 몇곡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지휘자 선생님이 말했다. 이렇게 맑은 소년을 만나서 선생님은 참 기쁘구나. 시옷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느새 어둑해지는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맑은 소년인가. 나는 맑은 소년이 되어서 기쁜가. 그렇지 않았다. 그럼 맑은 소년이 아닌 나는 더러운 거짓말쟁이인가. 담임선생님의 지휘봉 끝에 걸려 때가 낀 배를 드러내야 했던 눈이 아름다운 아이가 생각났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추악하다 했다. 하지만 어쩐지 추악하다는 그 말은 그애보다는 맑은 소년도 아니면서 맑은 소년인 척하는 시옷에게 더 어울렸다.

 

*

 

징후의 시작은 만년필이었다. 적어도 내가 감지한 시작은 그랬다. 아무리 해도 만년필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 여는 방식이었다. 오년 전 석구가 생일선물로 사준 독일산 만년필이었다. 만년필은 남보다 작은 내 손에 맞춤하게 작고 가벼웠고 EF닙은 흰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기분 좋게 지나갔다. 내가 만년필을 어디에 쓴다고 이런 고급품을 줘? 내 말에 석구는 지금부터 쓰면 되지, 했다. 정작 글을 쓰고 싶어했던 사람은 석구였다. 나는 몇달 후 찾아온 석구의 생일에 비슷한 만년필을 사줄까, 물었지만 석구는 물어본 사람이 당혹스러울 만큼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석구의 만년필 선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시간을 보냈다. 석구는 시를 쓰고 싶어했고 시를 쓰기도 했다. 이제는 사용할 수도 없는 플로피 디스크 어딘가에 젊은 석구의 시가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석구는 이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만년필 선물이 꿈의 체념을 약간 비틀어 선언한 방식이었나 생각했다가 이런 내 생각이 더 비틀린 것 같아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상대의 의도를 굳이 해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사십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고 손편지를 쓰는 일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렸으니 만년필을 쓸 일이 없었다. 나는 가계부에 ‘해준 운동화 138,000원 홈플러스 월드컵점, 석구와 「윤희에게」 감상 20,000원 아트하우스모모’ 같은 글자를 만년필로 썼다. 위클리 플래너에 ‘학원 홍보자료 인쇄 감리 2월 15일, 석구 모 2주기 기일 2월 18일’ 같은 글자를 쓰기도 했다. 만년필을 쥐고 사각사각 감촉을 느낄 때면 석구의 손을 잡은 기분이 들었다. 석구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사건은 석구에게 들었다. 석구는 식탁 앞자리에 나를 앉혀놓고 자신의 아이폰을 내밀었다. 거기 석구가 활동하는 정당의 당원 게시판에 장문의 글이 떠 있었다. 고발의 글이었고 고발 대상은 석구였다. 성폭력 가해자이자 스토커 현석구 당원을 고발합니다. 고발의 주체는 석구와 같은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이었다. 석구를 통해 이런저런 인상을 전해 들은 사람이었고 실제로 몇번 스치듯 만난 적도 있었다. 고발글에 의하면 석구는 지난 일년간 이 여성을 스토킹했다. 늦은 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사랑을 고백했으며 거절하는 여성의 몸을 강제로 끌어안았다. 이런 행위가 여러차례 반복되었고 참다못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같은 신념을 품고 활동하는 당원끼리의 우정으로 일년간 석구의 행위를 참아줬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폭로와 고발이라는 방편을 선택했다. 이 여성은 형사처벌 대신 석구의 접근금지와 당원 제명을 요구했다. 게시글의 조회 수는 폭발적이었고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나는 댓글까지 열어볼 담력은 없었다. 내 손이 떨리는 걸 보고 석구가 아이폰을 가져갔다. 잠시 후 내가 뭐라고 물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어떡할 거야? 그랬던가. 왜 그랬어? 했던가. 두개의 질문이 묻는 바는 사건의 머리와 꼬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때 나는 사건의 몸통조차 제대로 해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물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석구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기억한다.

내 행동이 부끄럽지는 않아. 진심이었으니까.

석구는 서울을 떠나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이년 동안 빈집으로 남아 있는 고향집에 가겠다고 했다. 학원과 아파트 전세금은 내게 넘기고 자신은 십년 된 자동차와 얼마 되지 않는 예금을 가지겠다고 했다. 고향에 내려가 좀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석구가 제 물건을 정리하고 시골집에 가져갈 짐을 꾸리고 자신의 수업을 대신할 강사를 알아보고 하는 동안 나는 석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석구는 해준의 기숙사로 찾아가 이 모든 일에 관해 자신이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석구는 해준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아빠가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너와 너의 엄마 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행동은 진심이었으니까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했을까? 석구가 떠나는 날,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느라 허리를 숙인 석구의 뒷모습을 향해 소심하게 물었다.

너는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석구가 굽혔던 허리를 천천히 펴고 내 쪽을 물끄러미 보았다.

널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아.

개자식.

석구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졌다.

잘 지내.

내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사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준은 석구가 떠난 게 내 탓이라고 주장했다. 해준에게 석구는 다정한 아빠였고 내밀한 친구였다. 내가 그런 존재를 잃게 했다. 해준이 보기에 나는 남편과의 관계도 딸과의 관계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혹은 모른 척하는 ‘관계 무능자’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해준은 한달에 두번 정도 집에 오던 것을 석구가 떠난 뒤로 아예 발걸음을 끊었다. 이듬해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도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어 본격적으로 독립했다. 원룸 전세보증금은 누가 내주었을까? 석구일까? 석구는 고향집에 도착한 후로 간간이 소식을 전했다. 시골집을 단정하게 수리한 모습이나 화단과 묵은 텃밭을 새로 정리한 모습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기도 했다. 봄이 오면 꽃을 심어볼까 해. 네가 좋아하는 작약도 심어볼게. 이토록 다정한 안부를 전할 줄 아는 석구가 왜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함께 이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나는 여전히 석구의 사랑법을 해독할 수 없었다.

후폭풍이 거셌다. 석구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학부모 하나가 학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부원장이 성폭력 가해자라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가 화를 내거나 호통을 쳤다면 덜 무서웠을 것이다. 그는 거기 학원의 고2 수학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라고 묻는 어조로 석구의 사건에 대해 물었다. 나는 석구의 전 동거인이 아닌 학원의 원장으로서, 전 부원장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으며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현재 부원장직에서 물러나 학원을 떠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선생님을 모셔서 차질 없이 수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말하면서도 내 성대를 건드리며 밖으로 나온 ‘지목’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차질 없이’ 같은 말들이 나를 찔렀다. 기만이다. 기만이다. 기만이다. 내 말에 내가 찔리며 움찔거리는 사이 수화기 너머 학부모는 여전히 차분한 말투로 성폭력 가해자가 부원장으로 재직했던 학원에 더는 자신의 아이를 보낼 수는 없으므로 얼마 전 납입한 수업료를 전액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학부모의 요청을 수락했고 죄송합니다라고 두번,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한번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후 수업료 환불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썰물보다 빨리 빠져나갔다. 단 사흘 동안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수백번 반복했다. 사과의 말을 반복할수록 진심은 빠르게 희석되었다. 학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집기를 처리하고 강사들의 밀린 급여를 정리했을 때 내 손에 남은 건 거의 없었다. 셋이 살 때는 좁았지만 혼자 살려니 터무니없이 넓어져버린 아파트에서 나와 옆 동네 낡은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전세보증금 차액으로 학원 일로 진 빚을 정리했다. 빚이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당분간 쉬고 돈이 떨어지면 과외나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졌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었다. 계절을 몰랐다. 바깥 날씨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피스텔 천장에 달린 매립식 냉온풍기가 더우면 식혀주고 추우면 덥혀주었다. 씻지 않았다. 일어나 걷지 않았다. 요란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소리만 흘려들었다. 거울을 보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두었다. 배달음식을 한번에 2인분씩 주문하고 여섯끼로 나눠 먹었다.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마셨다. 술도 담배도 카페인도 전혀 당기지 않았다.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았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자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깼다. 너무 누워 있었나 싶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좁은 오피스텔에 앉을 곳은 식탁인지 책상인지 모를 테이블 앞의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거기 앉으니 탁상달력과 책 몇권과 물컵과 배달음식을 담았던 스티로폼 대접과 문구류가 눈에 보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들. 거기 석구가 준 만년필도 있었다. 별생각 없이, 거의 습관적으로 만년필을 집어 들고 뚜껑을 비틀었다. 아무 말이나 서걱서걱 써보고 싶었다. 배달의민족 원할머니 보쌈도시락 15,000원, 마켓컬리 이연복 목란 짬뽕 12,540원, 이런 것들을. 뚜껑이 스르르 돌아가며 금색 닙이 드러나야 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이 미끄러져 신발장 서랍에 넣어둔 빨간색 고무 코팅 목장갑을 찾아와 끼고 돌렸다. 소용없었다.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만년필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석구의 손 같은 만년필이 나를 거부했다. 너까지 왜 이래? 나는 만년필을 패대기쳤다. 새의 등뼈처럼 작고 가벼운 만년필이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날 밤 처음으로 과호흡이 찾아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곧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내 목을 붙잡고 만년필 뚜껑처럼 비틀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방바닥을 기었다. 살려줘. 그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

 

원래 시옷에게는 여자애와 남자애, 계집애와 사내자식의 경계가 없었다. 구체적인 구별법을 배우지 못했다. 시옷의 집에 어린애는 시옷뿐이었고 양가 사촌들은 전부 시옷보다 나이가 많았다. 엄마는 시옷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옷의 머리를 짧게 잘라주었고 치마를 입히지 않았다. 언젠가 시옷이 어른이 되어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그랬나? 할 뿐이었다. 엄마가 시옷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늘 바지를 입혔던 것은 시옷을 사내아이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계집아이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시옷은 지금도 그 두가지가 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엄마의 취향이었을까? 아빠나 할머니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을까? 그저 모든 게 우연이었을까? 시옷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시옷의 드레스가 생기고 수돗가에서 고학년 남자들의 공격을 받은 후로 시옷의 옷차림은 분명한 목적을 지녔다. ‘보지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다.’ 시옷의 머리는 더 짧아졌고 바지의 색깔도 푸른색, 회색, 검정색 등으로 좁혀졌다. 시옷의 이름은 남자애 이름으로도 여자애 이름으로도 통했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도 시옷의 성별을 자주 오해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비좁게 들어찬 교실에서 학생에게 별 관심이 없는 무뚝뚝하고 험상궂은 선생님일수록 시옷을 잘 오해했다. 예외라면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의 지휘자 선생님인데, 그는 꽤 다정한 사람이었는데도 처음부터 시옷의 성별을 오해했고 끝내 그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오해를 바로잡기에 그는 맑은 소년 시옷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시옷이 여자애인 줄 아는 어른들은 시옷의 얼굴을 보고 예쁘장하다거나 시옷의 목소리를 듣고 맑고 곱다고 칭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시옷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애니 같은 여자애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했고 귀엽다며 사랑했다. 드레스 자락을 펄럭이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애니의 모습은 시옷이 봐도 요정처럼 발랄하고 어여뻤다. 시옷이 남자애인 줄 아는 어른들은 시옷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거, 사내자식이 낯빛 흰 거 봐라. 그들은 시옷의 하얀 얼굴을, 올망졸망한 이목구비를, 맑게 울리는 목소리를,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는 미성을 칭찬했다. 사내자식이 되었을 때 시옷은 늘 칭찬을 듣고 매료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사내자식이 되어버린 게 그리 꺼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말 없는 거짓말의 무게만 견디면 되었다.

시옷은 60명 중 46번이라는 무채색 무정형의 상태로 교실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왕복 버스비 백원을 받아 들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안내양에게 백원을 내면 거스름돈 오십원을 돌려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 방송국 정문을 통과해 스튜디오로 들어가면 시옷은 그저 46번이 아닌 ‘빈소년합창단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맑은 미성의 소유자’가 되었다. 합창단에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훨씬 많았다. 4분의 1 정도 되는 남학생들은 전부 시옷보다 체격이 우람했고 목소리가 낮고 굵었다. 시옷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남학생은 없었다. 지휘자 선생님은 시옷이 어쩌다 마음에 쏙 드는 소리를 내면 피아노 반주를 멈추고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시옷을 보았다. 이대로 영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런 말을 들은 날에는 시옷의 옆자리에 서서 노래하는 5학년 남학생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옷의 뒤통수를 신발주머니로 툭 치고 달아났다. 그는 나이에 비해 몸집이 크고 벌써 변성기가 오고 있었다.

4월이 시작되고 동네 담장마다 봄꽃을 터뜨릴 무렵 어린이합창단은 「고향의 봄」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지휘자 선생님이 십년 전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이 녹음했다는 「고향의 봄」을 들려주었다. 동굴 같은 스튜디오에 어린이들의 음성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풍성하고 성숙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2절은 솔로로 시작했다. 소프라노가 깊고 높게, 떨리는 소리로 노래했다. 어른들이 흔히 천상의 소리라고 부르는 그런 음색이었다. 시옷이 태어나기도 전인 십년 전 열두살 나이에 2절 솔로를 부른 소프라노 언니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여전히 노래하고 있을까? 시옷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언니에게 반했다. 사람이 목소리만 듣고도 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소프라노 언니는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목소리로 시옷에게 말을 걸었다. 2절을 듣는 내내 시옷은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고향이 그리워 울고 싶어졌다. 가본 적도 없는 수양버들 춤추는 냇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휘자 선생님은 4월 내내 「고향의 봄」을 연습하고 5월 넷째주 특집방송에 출연할 단원을 선발한다고 했다. 어린이합창단은 일주일에 한번 방송하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동안 어린이합창단원 가운데 서너명이 무대에 올라 율동과 노래를 했다. 출연이 결정된 단원은 예쁜 옷을 맞춰 입고 카메라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했다. 시옷은 예전부터 그 모습을 안방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초조하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노래자랑 출연자들과 달리 합창단은 조금 뻐기는 듯한 얼굴로 노래했다. 시옷은 합창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방송에 나간 적이 없었다. 매주 방송 출연자를 선발할 때마다 시옷은 지휘자 선생님이 자신을 지목할까봐 두려웠고, 지목하지 않으면 조금 서운했다. 그렇게 오락가락했던 시옷이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이 녹음한 「고향의 봄」을 듣고 이 노래는 꼭 방송에 나가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옷의 가슴이 떨렸다. 시옷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려 2절 솔로까지 부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옷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시옷이 뭔가를 욕심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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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호흡은 뇌가 산소가 부족하다고 오해해서 생깁니다. 사실 산소는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그러니 과호흡이 찾아오면 숨을 욕심내지 말고 외려 크게 내뿜어야 합니다. 호흡곤란이 느껴지면 숨을 훅하고 내뱉어보세요. 산소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뇌에 가르쳐주세요. 그러려면 평소에 호흡법을 연습해두는 게 좋습니다. 저도 매일 시간을 내서 연습하는 방법입니다. 자, 따라 해보세요. 하나 둘 셋, 하는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는 동안 내뱉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예, 좋습니다.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매일 5분씩만 연습해도 좋아집니다. 저는 내뱉는 시간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까지 늘렸습니다. 몇년 동안 연습해왔으니까요.

수학 공식을 외우듯 머릿속에 주문을 입력한다.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공식은 한동안 나의 만트라가 될 것이다. 한밤중에 깨었다가 문득 두려움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 때마다 이 공식은 미끄러운 절벽을 다시 기어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이 되어줄 것이다.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의사는 하루 5분씩 연습하라고 했지만 나는 한동안 걸핏하면 눈을 감고 이 호흡법을 연습할 것이다. 호흡은 늘 엉킬 것이고 그 틈을 타 불안이 귀신처럼 스며들며 내 뇌를 산소 욕심쟁이로 만들겠지만, 나는 기어이 울음을 삼켜가며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외울 것이다. 약효가 나타나고 시도 때도 없이 내 몸을 덮치는 불안이 잦아들기까지 나는 이 간단한 주문으로 검은 낮과 하얀 밤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가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이 갑자기 날뛰고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손이 덜덜 떨리는 증상이 되돌아와 이대로 모든 걸 집어던지고 영원히 검은 우물 속으로 뛰어들고만 싶어질 때도 나는 이 단순한 만트라를 뇌까리며 큰 발작 없이 하루를 또 살아갈 것이다. 때때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고통을 내리셨는가, 누구에게인지 모를 항변을 하고 싶어질 때도 나는 국민체조보다 쉬운 호흡법에 매달려 울분을 가라앉힐 것이다. 그렇게 몇달을 보내고 언제부턴가 하나 둘 셋, 잠깐 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더이상 읊조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생각할 것이다. 이제 나는 살았나?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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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에게 피아노가 생겼다. 시옷이 방송국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애니도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애니의 엄마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도 전에 피아노부터 사주었다. 유럽 같은 애니의 집에 유럽에서 만든 것 같은 하얀 피아노가 생겼다. 애니 엄마는 직접 짠 레이스로 애니의 피아노를 덮어주었다. 열살이 되면서 애니와 시옷은 평일 방과 후에 만나서 놀 시간이 없었다. 둘은 토요일에 겨우 놀았다. 토요일마다 시옷은 애니의 방에서 인형놀이를 하거나 애니의 새 피아노를 조심스럽게 뚱땅거렸다. 애니 엄마가 애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시옷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 애니는 반주할 만큼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고 시옷은 방송국이 아닌 곳에서 노래하고 싶지 않았다. 시옷은 일요일에도 놀 수 있었지만, 애니 엄마 아빠는 일요일 아침마다 애니의 양손을 사이좋게 나눠 잡고 교회에 갔다. 애니의 엄마는 놀랄 일이 있을 때마다 ‘오, 주여’ 했다. 애니를 만날 수 없고 합창단 연습도 없는 일요일에 시옷은 심심했다. 일요일이면 할머니는 방 안에 틀어박혀 불경을 외우거나 필사했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그 앞에 밥상을 펴고는 밀린 가계부를 쓰거나 애니 엄마에게 빌려온 잡지를 읽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는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옷을 데리고 극장에 가거나 (시옷은 아빠와 함께 담배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슈퍼맨」이나 「킹콩」 「메리 포핀스」 같은 영화를 보았다)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중앙동으로 나가 제비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가끔은 기차를 타고 근교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텐트와 낚싯대를 챙겨 들고 너른 저수지로 낚시여행을 가기도 했다. 적어도 70년대에는 그랬다. 그러나 시옷이 고대했던 80년이 되면서부터 집 안 풍경이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불경 외는 소리는 어딘가 절박해졌고, 엄마는 가계부를 쓰다 말고 지독한 두통이 몰려온 것처럼 이마를 싸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빠는 일요일에도 공장에 나갔다. 아빠가 불콰해진 얼굴로 잠든 시옷을 깨워 아직 따뜻한 찐빵 봉지를 안겨주던 토요일 밤의 풍경도 언제부턴가 중단되었다. 아빠에게서 농담과 장난이 사라졌다. 그 무렵 시옷은 어른들끼리 은밀하게 주고받는 대화에서 ‘부도’라는 단어를 주워들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도가 불길하고 불행한 단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단어가 집 안 공기 속을 부유하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은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조용히 다퉜다. 엄마는 더이상 시옷이 바라는 것을 선뜻 사줄 수 없었고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에 기름기가 걷혀갔다. 시옷은 과자나 사탕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준비물을 사달라고 할 때조차 엄마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천천히 사라졌다. 아빠의 출장이 길어진다고 생각할 즈음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엄마를 닦달했다. 엄마는 핼쑥한 얼굴로 그들에게 시달렸다. ‘빚쟁이’라는 단어도 그때 습득했다. 엄마의 언니들이 찾아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얼마간의 현금을 쥐여주었다. 그들은 시옷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딱하다, 딱해’ 했다. 아빠의 누나들도 찾아와 할머니와 함께 한숨을 쉬고 엄마의 어깨를 두드리고 옆에 앉은 시옷을 갑자기 와락 끌어안았다. 큰고모는 쌀 한말을 부려놓고 갔고 작은고모는 텔레비전 위에 흰 봉투를 놓고 갔다. 그 안에 현금이 들어 있고 그 현금이 시옷의 학교 준비물이나 방송국에 다닐 차비가 되어준다는 걸 시옷도 알았다. 빚쟁이라는 단어를 습득한 시옷은 가난뱅이라는 단어의 감각을 익히는 중이었다.

어느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집 안 곳곳에 빨간색 딱지가 붙었다. 안방 텔레비전에, 할머니 자개농에, 응접실 소파 세트와 전축에, 부엌 찬장 속 백자와 유기에, 아빠의 자전거에 빨간색 딱지가 철썩철썩 들러붙었다. 할머니는 방 안에서 굵은 염주를 꼭 쥐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뇌까렸고 엄마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남자들을 따라다녔다. 남자들이 떠난 뒤 집은 시장통처럼 어수선해졌다. 빨간색 딱지를 붙인 집 안 물건들이 둥둥 떠올라 어디론가 날아가버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할머니와 엄마가 번갈아 앓아누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간호했다. 부엌에는 항상 죽이 끓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흰죽에 간장을 찍어 먹으며 버텼다. 시옷은 삼양라면이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빠는 어디 갔냐고, 언제 오느냐고 묻고 싶은 것도 참았다. 엄마와 할머니 앞에서 아빠라는 단어는 금기어였다. 그런 눈치는 저절로 습득되었다.

아빠가 사라진 자리에 모르는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불쑥 찾아왔지만 아무도 그의 무례를 탓하지 못했다. 남자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했다. 남자는 군복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군복과 같은 색깔 가방을 메고 왔다. 남자는 집 안을 한번 둘러보더니 아빠의 공간이었던 응접실을 용케 찾아 자리를 잡았다. 시옷의 집은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이었지만, 기역 자 모양 집 한가운데에 있는 부엌을 중심으로 왼쪽의 할머니 방과 대칭을 이루는 오른쪽 공간이 양식으로 꾸민 응접실이었다. 응접실은 널찍했다. 진한 초록색 카펫 위에 초콜릿색 소파 세트를 놓고 천장엔 눈물 모양 유리 장식을 잔뜩 늘어뜨린 샹들리에가 있었다. 한쪽 벽 가득 책장을 짜 아빠의 책을 꽂아두었고 맞은 편 통유리창엔 미색 커튼을 달았다. 또다른 벽면엔 오디오 세트가 있었다. 아빠는 평일 저녁이면 응접실에 들어가 전축에 LP 음반을 올려놓고 책을 읽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여름 저녁이면 활짝 열어놓은 통유리창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미색 커튼을 부풀렸고 낮 동안 열기를 견디느라 바짝 말라붙은 마당으로 아빠가 틀어놓은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간혹 토요일 밤이면 아빠의 친구들이 잔뜩 몰려와 중국요리와 술을 시켜놓고 밤새 마작판을 벌였다. 시옷이 할머니 심부름으로 과일 접시를 들고 들어가면 불콰해진 아저씨들이 호기롭게 지폐를 꺼내 시옷의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응접실은 아빠의 휴식과 오락의 공간이었고 시옷에겐 낯선 매혹이 가득한 이세계(異世界)였다. 그 공간을 낯선 남자가 차지해버렸다. 남자는 메고 온 가방에서 반듯하게 접은 모포를 꺼내 초콜릿색 소파에 깔고 잤다. 버너와 냄비를 꺼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응접실에 남자의 라면 냄새와 담배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 남자는 응접실에 딸린 작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씻었고 아빠의 책을 아무렇게나 뽑아 훑었다가 탁자 위에 던져두었으며 아빠의 전축을 함부로 사용했다. 볼륨을 높이고 송창식이나 산울림을 들었다. 늦은 밤 엄마가 응접실 문을 두드리며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했을 때 남자가 문 너머로 외친 말을 시옷은 또렷이 기억한다. 돈만 돌려주시면 당장 나갑니다. 저희 어머니 엽차 팔아 모은 눈물겨운 돈이에요. 엄마는 이마를 짚으며 응접실 문 앞에서 물러났다. 안방으로 돌아온 엄마가 시옷은 처음 듣는 독기 어린 말투로 내뱉었다. 어머닌지 늙은 애인인지 알 게 뭐야. 남자는 처음 시옷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할머니와 엄마 앞에서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하더니 ‘제비다방에서 왔슴다!’ 했다. 할머니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날 저녁 밥상 앞에서 시옷 쪽으로 몸을 바짝 숙이고 신신당부했다. 절대 그 남자 옆에 가지 마라. 사람이 영 불량해 뵌다. 할머니가 남 흉을 보는 것을 시옷은 그때 처음 보았다.

시옷은 제비다방을 알았다. 제비다방 마담이 움직이면 한복 치맛자락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마담이 단단한 팔각 컵에 ‘엽차’를 담아 주었다. 겨울이면 다방 한가운데 석유난로가 이글거렸고 그 위에는 늘 커다란 주전자가 올라가 있었다. 주전자 안에서 끓고 있는 보리차를 팔각 컵에 담으면 엽차가 되었다. 간혹 컵 아래에 까만 보리알갱이가 가라앉아 있곤 했다. 엽차는 엄밀하게 말하면 잎을 따서 말린 차나 그 차를 우려낸 물이지만 그 시절에는 다방에서 주는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다 엽차라고 불렀다. 집에서 마시면 보리차인 것이 다방에 앉아 마시면 엽차가 되었다. (시옷은 어른이 되어 진짜 엽차를 즐기게 된다. 홍차, 녹차, 우롱차, 보이차, 철관음 등등 찻잎을 언제 어떻게 따서 어떻게 말리고 어떻게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수색과 맛을 낸다는 사실에 매료된다. 어느날 중국인 친구가 선물한 철관음을 마시다가 다완에 가라앉은 넓은 찻잎을 보고 문득 이게 진짜 엽차지,라고 말해본다. 시옷의 무심한 독백은 곧바로 제비다방에서 엽차를 홀짝이던 시절을 소환한다. 찻잎은커녕 까만 보리알갱이만 가라앉아 있던 투박한 팔각 컵을 떠올리다 제비다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용히 궁금해한다. 제비다방 마담은 살아 있을까, 내처 생각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서향인 부엌 창문이 온통 붉게 물든 걸 보고 까닭 없이 울고 싶어진다.) 마담은 아빠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설탕과 크림이 담긴 작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시옷 앞에는 따끈하게 데워 설탕을 탄 우유를 내려놓았다. 마담은 아빠의 취향대로 설탕과 크림을 커피에 넣고 작은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커피잔을 아빠 쪽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다방에 손님이 많지 않으면 마담은 시옷의 옆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주기도 했다. 우리 공주님은 반곱슬이니 머리를 기르면 아주 예쁘겠어요. 마담은 시옷을 공주님이라고 불러준 단 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마담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지한 대화는 아니었고 주로 아빠가 농을 건네면 마담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낮게 웃는 식이었다. 아빠는 마담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쓰는 남자애 같았다. 마담은 반숙으로 삶은 달걀을 달걀 모양 그릇에 올려놓고 껍질을 절반만 까서 찻숟가락으로 속을 파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진득한 달걀노른자가 시옷의 입안을 고소하게 메웠다. 머리를 길러오면 이모가 예쁜 리본으로 묶어줄게요. 마담은 시옷에게 늘 존댓말을 썼다. 시옷은 제비다방이 좋았다. 제비다방 마담이 좋았다. 그 사람에게선 생강 냄새와 커피 냄새가 섞인 알싸한 향이 풍겼다. 언젠가 시옷은 그 향기에 취해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날 아빠는 커피 대신 위스키를 시켰고 언제부턴가 목소리가 커지고 떠들썩해졌다. 시옷은 아빠의 말소리를 흘려들으며 서걱거리는 마담의 치마에 폭 싸인 채 잠들었다. 마담은 아빠를 상대하면서 동시에 시옷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슬며시 정신이 들었을 때 사위는 어두웠고 시옷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목련은 역시 밤 목련이지. 시옷은 눈을 살짝 뜨고 주위를 보았다. 시옷을 업은 사람은 경운전 담장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경운전은 시옷의 학교 바로 옆에 붙은 넓은 공원으로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 경운전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오래된 나무와 꽃도 많았다. 곳곳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한옥과 홍살문 같은 것도 있었다. 시옷은 경운전 잔디밭에서 열리는 사생대회와 백일장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더 어렸을 때는 아직 살아 있을 때의 할아버지와 사이다 한병을 사 들고 경운전까지 산책을 가기도 했다. 경운전 담장 너머로 하얀 목련이 가지에 매단 등처럼 희부윰하게 빛났다. 목련은 역시 밤 목련이지. 시옷은 나중에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을 때 써먹으려고 아빠의 그 말을 외웠다. 목련은 역시 밤 목련. 다시 스르르 눈이 감기려는데 아빠가 아이쿠, 소리를 질렀다. 낯선 목소리가 ‘앞을 잘 보고 걸으세요, 사장님’ 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시옷을 업은 등이 우렁우렁 울렸다. 시옷은 아빠의 등에 업혀 있지 않았다. 시옷은 눈을 크게 뜨고 등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하얀 목련 봉오리 속에 들어앉아 밤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시옷을 태운 꽃봉오리가 경운전 위를 날아 제비다방 건물 위를 지나 더 멀리 갔다. 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기린봉이었다. 기린 모양 봉우리가 목을 빼고 시옷을 맞았다. 시옷은 기린의 등에 옮겨 타려고 꽃봉오리 밖으로 기어 나왔다. 시옷의 짧은 다리는 기린의 등에 닿지 않았다. 꽃봉오리가 펄럭이며 시옷을 밖으로 뱉어냈다. 시옷은 까마득한 기린봉 아래로 떨어졌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방문 밖은 밝았고 부엌에서 국 끓는 냄새가 풍겨왔다. 이불 속이 축축했다.

시옷이 기억하는 제비다방은 폭신한 봄밤과 희게 빛나는 밤 목련 같은 곳이었다. 그런 제비다방이 낯선 남자의 불량한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시옷은 남자와 마담을 도무지 하나로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없었다. 마담의 아들이라는 남자는 아빠의 응접실을 낯선 곳으로 만들었다. 늘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고 담배 연기가 떠돌았다. 남자는 시옷의 집에 쳐들어오고 처음 일주일 동안은 정말로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답답했는지 아니면 시옷과 할머니와 엄마가 야반도주할 깜냥은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가끔 낮에 나갔다가 해 질 무렵 돌아왔다. 남자는 꽤 성실한 감시자였다.

『고향의 봄』을 수십번 연습하고 돌아온 어느 금요일이었다. 지휘자 선생님이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의 「고향의 봄」을 카세트테이프에 반복 녹음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주말 동안 집에서 많이 듣고 정확한 음을 연습해오라고 했다. 카세트테이프는 응접실 오디오 세트로만 들을 수 있었다. 시옷은 남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바심을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응접실로 들어가는 댓돌 위에 남자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외출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지휘자 선생님의 숙제라고 알리고 응접실에 들어갔다. 오디오 세트에 붙은 빨간색 딱지에 손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전원을 켜고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었다. 볼륨을 줄이고 큼직한 스피커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풍성한 화음이 어린 시옷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만큼 아름다운 노래가 시옷의 몸을 통과해 응접실 곳곳으로 퍼졌다. 1절이 끝나고 간주가 나올 무렵 시옷은 열두살 많은 천상의 소프라노 언니의 솔로를 기대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소프라노 언니의 음색은 몇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시옷을 슬프게 했다. 시옷은 눈을 감고 수양버들 춤추고 꽃이 만발한 파란 들 고향을 떠올렸다. 거짓말처럼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졌다. 눈물 한줄기가 가만가만 시옷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쭈, 사내자식이 제법이네. 노래를 들으며 울 줄도 알고. 시옷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남자가 시옷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스피커에서 「고향의 봄」이 처음부터 다시 흘러나왔다. 시옷이 정지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시옷 옆에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시옷과 남자는 그렇게 앉아서 자꾸 반복되는 노래를 들었다. 남자가 어느새 눈을 감았다. 시옷은 눈을 감지 않았다. 남자에게서 알 듯 말 듯 시큼하고도 향그러운 냄새가 풍겼다. 「고향의 봄」 선율이 아직 쌀쌀하지 않은 응접실에 천천히 차올랐다. 숨 막히는 봄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