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논단

 

“우리, 정신 차리자”

소태산(少太山)의 정신개벽(精神開闢)

 

 

안세명 安世明

원불교 교무, 철학 박사. 저서 『만번의 감사, 만번의 행복』 『선요가』 『은혜로운 마음공부』 등이 있음.

anmindgo@hanmail.net

 

 

1. 개벽 담론에 들어가며

 

2021년 『창작과비평』 가을호(193호)에 게재된 김용옥·박맹수·백낙청의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와 겨울호(194호)에 실린 정지창 교수의 글 「오래된 새길, 동학과 개벽」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담론은 주로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의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정지창 교수 또한 원불교를 거의 다루지 않아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의 ‘정신개벽(精神開闢)’에 대한 논의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

특별좌담에서는 소태산의 깨달음과 실천에 대한 평가가 다소 엇갈리기도 했다. 도올 김용옥은 소태산을 “작은 규모에서 출발하는 로컬한 공동체운동가”로 인식하면서 “사상적으로 보면 창조적 사유에 있어서는 수운이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 114면, 이하 이 특별좌담에서의 인용은 면수만 밝힘)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수운과 소태산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포함해 도올과 백낙청이 나눈 몇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즉 수운과 소태산의 대각,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문명과 개벽의 방법론이 그것이다. 이는 개벽사상의 종가(宗家)인 우리 민족이 풀어가야 할 가장 기초적인 합의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우리, 정신 차리자’로 정했다.

 

 

2. 수운의 ‘하느님 마음’이 소태산의 ‘정신’이다

 

‘정신 차리자’는 소태산의 정신개벽을 쉽게 표현한 말이다. 우리 민족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정신 차려”라는 말을 쉽게 한다. ‘정신 차려’ 할 때의 정신은 지금 일어나는 이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는 마음이며, 지극히 맑고 밝아 욕심과 집착에 물들지 않은 우리의 성품을 말한다. 이는 수운이 말한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룬다’는 수심정기(修心正氣)의 공부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다. 소태산은 이를 정신개벽이라 했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만물을 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올은 소태산의 정신개벽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 하나는 소태산이 천명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원불교 개교표어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이다. 또 하나는 소태산의 각행(覺行)이 수운에 비해 작은 깨달음이며, 소박한 실천이라 보는 것이다.

먼저 도올은 소태산의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의 논리적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교표어에 우선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분열이 전제된다면 이것은 원불교의 일원상 진리에 위배된다는 거죠. 왜냐면 물질이 개벽되었으니 정신도 개벽하자는 건 물질 세상, 즉 기차나 자동차나 공장이 들어서며 우리의 물질적 환경이 변해가고 있는데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정신도 개벽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은 물질개벽을 당연한 선진(先進)으로 놓아두고 정신이 따라가자는 얘기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개교의 동기를 말하는 논의 자체가 불균형의 편협한 논의가 되고 말아요.

사실 소태산의 대각 시기, 즉 일제강점 초기의 상황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물질은 개벽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물질환경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인들이 말하는 물질개벽은 인간을 억압하는 병적인 변화입니다. 20세기로부터 우리가 진짜 개벽해야 하는 것은 물질이었습니다. 물질과 분리된 정신의 개벽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러한 개벽은 일종의 유치한 개화기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개화기 때 밀려드는 물질적 변화에 대해서 우리도 빨리빨리 정신개벽을 이룩해서 선진국가가 되자 하는 식의 따라잡기 표어가 된 것이죠.(116~17면)

 

도올은 소태산이 대각하여 그 진리적 세계관을 표현한 ‘일원상의 진리’는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닌 자리이므로, 물질과 정신을 나눠서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원론적 사고로는 일원상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위배된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도올의 인식은 수운의 개벽사상을 창조적으로 확장해온 소태산의 정신개벽사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중요한 단초가 된다. 과연 정신개벽사상은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분열’을 전제하고 있는가.

논의의 전개를 위해 먼저 ‘수운의 대각을 진정한 대각이라 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수운이 깨친 대각의 본질과 소태산의 정신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운의 혁명적 사관과 도탄에 빠진 민중을 위한 탁월한 리더십은 도올의 견해대로 찬탄할 만하나, 수운의 깨달음의 과정은 영적인 계시나 무속적 체험에 비교될 만하다. 수운 스스로 말한 강령(降靈)과 강화지교(降話之敎)가 그것이다. 밖으로 하느님1을 접령(接靈)을 통해 만나고 안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수운은 ‘혼미하지 않고 자신의 기를 똑바로 세워 온전히 정신을 차림’으로써 하느님과 맞대응할 수 있었다.2 그는 강령 후 1년간 끊임없는 성찰로 하느님의 존재를 헤아리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으며,3 결국 천지자연의 이치가 곧 하느님과 다름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4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처럼 무조건 받들기만 하지 않고 독자적인 점검과 수행을 한 것이지만, 일종의 타력에 의한 각성이기에 ‘자력적 득도의 경지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가능하다.

수운의 깨달음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다. 이는 나의 마음이 하느님이요 귀신이며 우리 각자의 본성으로서, 모든 만물을 발현해내는 각성자라는 뜻이다. 나아가 ‘천지자연, 물질의 본질까지도 지극히 영험한 귀신이다’5라는 것이 수운의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또한 수운이 만난 하느님은 ‘혼원하고 신령스러운 기운’, 즉 혼원지일기(渾元之一氣)이다. 보려야 볼 수 없고 들으려야 들을 수 없는, 모든 분별과 생각이 돈공(頓空)하면서도 온갖 덕성(德性)이 구족한 경지이다. 이러한 혼원지일기는 ‘최령(最靈)한 인간은 물론 천지만물 모두가 하느님’이라는 메시지로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기저가 된다.

수운은 이러한 깨침을 통해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기를 바르게 하는 ‘수심정기’를 창안했고,6 성심을 다해 이에 정진할 것을 권면한다. 무극대도로 천명을 이루고 덕을 세워 인격을 양성하려면 정심수도(正心修道)로써 ‘내면의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도올은 이러한 수심정기의 심(心)을 심학(心學)·양명학(陽明學) 계열에서의 마음이 아닌 곧 ‘하느님 마음’으로 설명한다.7

소태산은 수운의 ‘하느님 마음’이 바로 우리 각자의 주체인 ‘정신’임을 말한다. 소태산은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分別性)과 주착심(住着心)이 없는 경지를 이름”8이라 정의했고, 소태산의 법통을 이은 정산 송규(鼎山 宋奎, 1900~1962)는 “성품은 본연의 체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9이라 했다.

좌담에서 백낙청은 물질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20세기의 근대적 개념에 오염된 용법”이요 사고임을 지적하며, 소태산의 정신은 물질에 반대되는 ‘정신적 실체’가 아닌 ‘어떠한 경지’로서 서양에는 없는 개념임을 명확히 한다(117~18면). 소태산의 정신은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유(有)와 무(無) 어느 쪽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원적 진리를 묻는 능력이며 경지라는 것이다.

우주의 본체, 천지자연에 내재된 ‘신령한 알음알이’〔鬼神〕는 우리 각자가 이미 품수(稟受)하고 있는 정신을 말한다. 이러한 정신의 경지를 수운은 ‘21자 주문(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의 첫 대목인 ‘지기(至氣)’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곧 “지란 지극한 극한의 경지이며, 기라는 것은 허령창창(虛靈蒼蒼)한 것으로서 텅 비어 신령하며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치가 다 갖춰져 있으며 모든 일에 다 응하여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고, 천명을 내리지 않는 것이 없다”10는 것이다. 이처럼 수운은 언어와 생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기’라는 경지를 통해 유불선(儒佛仙) 삼교가 공히 밝힌 성리(性理)의 세계를 드러냈다. 수운이 말한 ‘혼원지일기’는 바로 소태산의 ‘정신’인 것이다.

나아가 백낙청은 현대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물질문명 자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놓은 개벽’임을 말한다. ‘물질의 주체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각성이요 개벽임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정신이 약해지고 닫히는 것이다. 곧 소태산의 정신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며, 오히려 물질과 정신이라는 분별이 없는 경지요 우주의 본체요 불성(佛性)임을 분명히 했다.11

정신은 물질에 반대되는 정신적 실체를 말하지 않는다.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가운데 지극히 신령한 경지이다. 이는 근대 과학뿐 아니라 서양의 전통적 철학에서도 거의 실종된 힘이며, 이를 회복하고 응용하는 공부와 사업이 정신개벽이요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길이다. 백낙청의 말과 같이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너무 어렵다거나 아리송하고 비과학적이라며 연마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근대주의의 병폐”요 “물질개벽에 응답할 정신개벽의 포기”인 것이다.12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본원에 대한 궁극적 물음과 치열한 회복이 바로 정신개벽이다.

백낙청은 지금의 ‘물질의 발달’을 ‘개벽’이라는 차원에 비춰 봐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오늘날 디지털기술 등의 발달과 4차산업혁명 문제 또한 개벽의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13 이를 단순히 과학의 진보 수준에서 보는 것은 물질개벽을 바라보는 온당한 이해가 아니며 진실로 개벽되는 물질의 시대에 걸맞은 정신만이 그 위를 살릴 수 있다. 즉 과거의 도덕주의와 정신주의 가지고는 오늘날의 문명을 감당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가 발달해온 몇백년 사이에 일어난 물질문명의 변화야말로 개벽에 해당하는 변화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질개벽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변화”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세상이고 물질이 개벽되는 세상이니까 거기에 상응하는 정신개벽 또는 해월의 문자로 인심개벽을 이루지 못하면” 인류의 고해는 명약관화하다.(120면, 백낙청)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의 개교표어는 수운의 ‘다시개벽’ 사상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도올은 개벽을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찾는 하나의 변혁의 과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14 지금의 물질문명은 “인간을 억압하는 병적인 변화”로 오히려 타락했으며, 진실로 “개벽해야 하는 것은 물질”이요 “물질과 분리된 정신의 개벽은 더더욱 아”(117면)니라고 말한다. 도올의 본의는 정신과 물질을 나눠 보는 서양의 과학적 세계관과 유일신 신앙이 만물 모두가 신령하고 영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고, 오직 인간들의 욕심을 위해 생명을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 ‘아직 물질개벽이 되지 않았다’는 도올의 인식은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타락하고 폭력적인 작금의 물질문명세력들을 겨누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마음을 온전히 하고 기운을 바루는 공부와 주문수행만으로 극복이 가능할까? 시대적 현안을 타개할, 물질개벽에 상응하는 인심과 정신의 개벽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내 안의 하느님을 어떻게 시천주할 것인가? 소태산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백낙청은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대변혁을 위해서는 욕심내고, 성내고 미워하며, 어리석은 삼독심(三毒心)이 체제운영의 원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즉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을 긍정하고 이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이윤의 무한추구와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자본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15는 명제 등의 탐진치(貪瞋癡)가 과학의 이름으로 ‘참 깨달음의 가능성’ 자체를 가로막는 근대적 지식구조의 특징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명(無明)의 구조화’로 과학적 진실마저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체제라는 것이다.16 그러므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소태산의 개교표어는 ‘우리, 정신 차리자’라는 다짐이 되어 물질이 개벽되는 시대에 대한 통찰과 원만한 대응으로서 ‘정신 차리기’를 촉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태산이 말한 정신이란 수운의 하느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천지자연을 주재하는 허령불매(虛靈不昧)한 경지라는 점에서 서양의 정신과 물질을 나눠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아님이 해결됐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소태산은 물질개벽이라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진단을 기반으로 ‘그에 상응하는 정신개벽’을 인류의 최대 과제요 화두로 제시했으며, 물질개벽으로 인한 정신쇠약이 인류의 절체절명의 위기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물질개벽을 “원만히 대응할 정신개벽을 달성한 인류만이 진리에 근거한 새 문명을 세울 수 있”17는 것이다.

 

 

3. 소태산은 소박한 지역공동체 운동가가 아니다

 

도올과 백낙청 사이의 첨예한 논쟁 중 하나가 소태산의 깨달음과 실천에 대한 인식 문제다. 도올은 수운과 소태산의 가장 큰 차이점이 시대가 부과한 ‘문제의식의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수운의 대각(大覺)은 1860년의 사건이었고 박중빈의 대각은 1916년의 사건이었으니까 56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수운은 왕조체제의 붕괴를 리얼하게 감지하면서 보편적인 보국안민의 테제를 구상해야만 했으나 박중빈은 그러한 긴박한 정치사적 과제보다는, 이미 무너진 국가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궁극적으로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운은 민족 전체의 운명을 대상으로 하는 혁명적 사상가였다면, 소태산은 작은 규모에서 출발하는 로컬한 공동체운동가였습니다. 사상적으로 보면 창조적 사유에 있어서는 수운이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운에게는 서학과의 대결이 있으나 소태산은 그런 대결이 없습니다. 소태산에게는 만유를 한 체성으로, 만법을 한 근원으로 보는 포용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소태산의 위대성은, 수운이 이론 정립의 생애 3년의 격렬한 체험을 우리 민족에게 남기고 순도한 것과는 달리, 작은 깨달음이지만 그걸 실제로 공동체운동으로 구현시키고, 인간세를 개혁하는 구체적 모델로 제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양자는 지향점이 달랐어요.(113~14면)

 

도올의 말처럼 소태산은 수운과 같이 순도(殉道)의 길과 민중혁명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 말기 수준의 국내 저항조차도 쉽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류를 구제하려는 방법론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오히려 수운이 더 로컬한 면이 있다. 수운의 인식과 포덕은 난세에 처한 조선 민족의 역사적 현실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테제에 있지만, 소태산의 포부와 경륜은 조선을 말하되 조선을 넘어서 있다.

수운에게 서학과 외세와의 대결이 있었다면, 소태산은 인류문명의 미래를 선도해야 함에도 각종 각파로 분립하여 융통을 보지 못하는 기성 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깨달음의 공동체인 ‘회상(會上)’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대결이었다. 소태산은 인류가 처할 문명의 대전환을 예견하며, 다시개벽, 용화회상(龍華會上), 미륵불 시대는 어떤 특정한 성인이나 사상이 나타나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신이 깨어나고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정신개벽의 책임과 의무 또한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천명했다.

그렇다고 그가 민족해방의 목표를 포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원불교는 일제강점기하에서 선명한 독립운동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태산의 철학과 실천은 당시 일본에게는 극히 불온한 사상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태산은 단지 무너진 국가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문제에만 관심이 있지 않았다. 그는 인류가 처한 과학문명의 발달을 전망하고, 자본주의가 낳은 병맥(病脈)들을 촘촘히 명시했으며, 이를 선용(善用)할 수 있는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강한 비전과 실천론을 제시했다.18

소태산은 국가가 무너지고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식민통치를 당하던 일제강점기, 그 참담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대륙침략의 야심을 드러낸 일본의 폭압과 수탈은 민족을 낱낱이 분열시켰고,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가장 처절한 혼돈의 암흑기를 겪어야만 했다. 소태산은 그러한 일제의 강압적인 제재 속에서도 1916년 새 종교를 창시해 생을 다한 1943년까지 28년간 활동을 이어나갔다. 공부와 일, 수도와 생활을 병행하는 진리공동체를 조성하여 인재양성과 교육사업, 교서발간과 민중의 근면을 장려하는 등 생활불교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서울, 부산 등 주요 거점에 교당(敎堂)을 설립하여 쉼 없이 정신개벽운동을 펼쳤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일제에 대한 분연한 항거였으며 사회변혁의 담대한 행보였다.

특히 소태산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이기적 욕망으로 점철되는 물질문명의 폐해를 직접 견문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는 서울(경성)을 100여차례 이상 오가며 문명이 전환되는 세태를 목도하고, 시대의 당면과제에 해법을 찾았으며, 개벽의 구상과 실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했다.19

소태산은 제자들과 민중에게 ‘정신개벽의 선도자’가 될 것과 자기만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과감히 버리고 공익(公益)에 헌신하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삶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인생임을 설파했다. 특히 소태산은 당시 가장 억압받던 여성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남녀권리동일’의 실현을 개벽의 마중물로 삼았다. 여성이 교무(원불교 교역자)로,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고, 남녀의 경제활동을 동등하게 신장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 이는 수운이 성취한 사상적 돌파의 연장선에 있다.

일제는 불법연구회(원불교의 전신)의 활동을 크게 경계했으며, 익산 총부 안에 일본 경찰이 상주하는 주재소까지 설치하여 폭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태산의 개벽의 여정은 거침이 없었다. 밖으로 찬란하고 편리한 물질문명으로 각자위심(各自爲心)하는 인류에게 돈의 병, 원망의 병, 의뢰의 병, 배울 줄 모르는 병, 가르칠 줄 모르는 병, 공익심 없는 병이 들었음을 크게 경계했다. 소태산은 이 중 ‘돈의 병’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가장 큰 병맥(病脈)임을 각성시켰다.20 자본주의의 광기 어린 물신(物神) 풍조가 인류가 처할 위기의 근원이 될 것임을 간파한 것이다.

또한 소태산은 개인주의의 이기심이 갈수록 굳어져서 남을 위하는 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말과 글로는 공공(公共)과 공정(公正), 정의(正義)를 표방하는 이들이 도리어 유혹과 명예에 끌려 사심이 발동하고 공익정신이 더욱 피폐해지는 현상이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공익을 말하면서 이기적 행태를 자행하는 것은 결코 우리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백낙청은 “서양의 선진국 같으면 이러저러하게 잘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못하는가” 많이 얘기하지만 특히 미국 같은 선진국 사회가 “인류사회의 차원에서 본다면 어떤 면에서는 이 병이 더 깊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자기 나라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는 남달리 공익심을 발휘한다”고 해도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데 약소민족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 (…) 자기네들이 남보다 조금 잘살고 또 좀 앞서 있다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급급해 있는가.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이른바 선진사회라는 것이야말로 공익심도 없는 사회이고 남을 가르칠 줄도 모르는 사회이고 또 스스로 배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실은 물질개벽의 선진이지 정신개벽의 선진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21다는 것이다. 주인 될 정신이 물질의 노예가 된 현실의 뿌리를 찾자면 동양 이상으로 서양의 선진사회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태산은 각자가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인류 사회를 변혁하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자력양성(自力養成), 지자본위(智者本位), 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의 사요(四要) 운동은 병들어 있는 우리 사회를 근원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이유이자 절실한 과제였다. 방길튼 교무는 이러한 소태산의 대각을 한마디로 ‘정신개벽의 대각’이요 ‘인류문명에 대한 대각’이라 말한다.22

소태산은 문명을 말한 성자이다. 전통불교에서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깨달음을 강조하지만 소태산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에 대한 시대인식과 과학적 사고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23 그는 최초법어(最初法語)에서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여 모든 학문을 준비할 것이요”24라는 명제를 던졌다. 그의 개벽은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을 ‘구하는 마음’과 ‘사용하는 정신’25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이러한 소태산의 삶의 궤적을 하나의 지역공동체운동으로, 소박한 실천으로 한정 지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소태산은 수운과 증산(甑山, 1871~1909)으로 이어지는 다시개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확장시킨 인물이다.

실지로 소태산은 수운과 증산을 선지자(先知者)요 신인(神人)으로 존숭하며 그 깨달음의 경지를 둘로 보지 않았다. 소태산은 “우리 법이 드러나면 그분들(수운, 증산—인용자)이 드러나는 것이며, 또는 그분들은 미래 도인들을 많이 도왔으니 그 뒷 도인들은 먼젓 도인들을 많이 추존하리라”26 했으며, “이로운 것이 궁궁을을에 있다(利在弓弓乙乙)”는 수운의 가르침을 두고 제자들에게 “도덕의 본원을 밝히심이요” “천지 허공 법계가 다 청정하고 평화하여질 것이라는 말씀”27이라 이르며 널리 실천하고 전파하도록 했다. 특히 소태산의 제자들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순서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해 “수운 선생의 행적은 세상이 깊이 잠든 가운데 첫 새벽의 소식을 먼저 알리신 것이요, 증산 선생의 행적은 그다음 소식을 알리신 것이요, 대종사(소태산—인용자)께서는 날이 차차 밝으매 그 일을 시작하신 것이라” 비유하는 내용을 듣고 소태산은 “그럴 듯하니라”28고 인증했다. 이렇듯 소태산은 끊임없이 수운과 대화하였으며, 수운의 사상과 개벽의 지평을 더 깊고 넓게 열어가고자 했다.29

 

 

4. 소태산이 꿈꾸는 회상(會上)

 

도올은 특별좌담에서 “원불교는 실상 불교가 아니에요. 불교는 뭐니 뭐니 해도 반야사상이 그 핵이고, 반야의 핵은 무아(無我)이고 공(空)입니다”(125면)라고 언급한다. 도올은 사은이 소태산의 “깨달음의 전체”인 동시에 “순결한 우리 삶의 지고한 언어”이며, 풀잎 하나도 나의 동포이며 경외의 대상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일원상의 진리는 구현될 길이 없다고 극찬하지만,30 동시에 사은에는 공의 진리가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불법(佛法)을 주체 삼아 회상을 건설한 소태산의 사은사상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소태산의 대각의 표상은 ‘일원상(○)’이다. 일원상은 ‘한 두렷한 기틀’을 말하며, 모든 생명이 동귀일체(同歸一體)의 한 포태(胞胎)로 만남을 뜻한다. 그리고 그 내역은 천지(天地)·부모(父母)·동포(同胞)·법률(法律)의 사은이며, 사은은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虛空法界)가 다 부처 아님이 없”31다는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의 가르침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곧 모든 존재가 다 부처이니,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敬畏心)32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하고 직접 불공하기에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동학의 시천주, 인내천,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소태산은 사은에 공과 무아를 꿰뚫는 수운의 무극대도를 담았다. 소태산은 그의 대각의 정수를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인 ‘은(恩)’으로 밝혔다. 사람이 은혜 입은 것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보은하고 감사하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을 실천하려면, 그 기저에 공과 무아를 바탕하지 않고서는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외의 실천이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해 하느님 마음을 얻지 않고서는 진정한 시천주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소태산은 불법의 핵심인 공의 도리와 수운의 하느님을 ‘천지은’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수운의 무극대도, 즉 천도(天道)를 천지은으로 더욱 가깝게 했다. 소태산은 “천지에는 도(道)와 덕(德)이 있으니, 우주의 대기(大機)가 자동적으로 운행하는 것은 천지의 도요, 그 도가 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천지의 덕이라”라고 밝혔다. 천지의 도는 지극히 밝고, 지극히 정성하고, 지극히 공정한 것이다. 또한 순리자연하고, 광대무량하며, 영원불멸하고, 길흉이 없으며, 응용(應用)에 무념(無念)한 것이다.33 이중 마지막 ‘응용 무념의 도’는 천지 8도를 총칭하는 도로써, 천지가 일체 만물을 생존케 하고 화육(化育)하게 하면서도 일체의 관념이나 상(相)이 없는 도를 말한다. 이는 「금강경(金剛經)」의 핵심사상인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와도 직결되는 대목이며, ‘천지 스스로 은혜를 베풀었다는 상이 없기에 스스로 천지가 되는’ 절대은(絶對恩)의 경지를 말한다. 이는 수운이 “나의 도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이며, 조화자 또한 무위이화이다”34라고 말한 것과 “인위적으로 함이 없이 스스로 화(化)되어 간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도덕경(道德經)」의 도법자연(道法自然)과도 같다.35

백낙청은 소태산의 일원상 진리인 ‘유무초월(有無超越)한 자리’, ‘언어도단의 입정처(言語道斷入定處)’를 부연하며,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도올이 번역한 ‘나는 스스로 그러한 자이다’(I am THAT I AM)36로 이해할 때, 원불교 문자로 “여여자연(如如自然)”37, 즉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도 표현할 수 없고 우리가 어떤 상(相)으로 잡을 수 없는 그런 존재, 그런 하느님이 나다”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하느님 속에서 성리(性理)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38

소태산이 천지 8도 중 ‘응용 무념의 도’를 대표로 삼은 것에 대해 정산은 “천지의 도가 밝아도 응용 무념으로 밝고, 정성하여도 응용 무념으로 정성하고, 공정하여도 응용 무념으로 공정하기 때문이다”39라며 천지의 도는 응용 무념한 가운데 운행되기에, 그 도를 체 받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보은이요 신앙임을 말한다. 소태산이 만물을 오직 부처님으로 모시고 경외심으로 대하라는 것의 바탕에는 언제나 천지의 ‘응용 무념의 도’가 있다. 그러므로 원불교에서는 정신·육신·물질로 은혜를 베푼 후 그 관념과 상까지 없게 하는40 공부를 신앙과 수행의 구경처로 삼는다. 감사와 자비를 실천하되 무념(無念)·무착(無着)·중도(中道)의 자리에서 빌 공(空)과 공변될 공(公)의 심법을 끊임없이 단련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는 진정 수운의 무극대도를 실천하는 길이며, 소태산의 사은보은이 그대로 공(空)의 실천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수운과 소태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종교적 체제를 고려하지 않았던 수운과는 달리 소태산은 처음부터 깨달음의 공동체인 ‘회상(會上)’을 건설하고자 했다. 특히 소태산은 기성 종교의 신앙과 수행의 개혁을 통해 진정한 개벽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소태산의 각(覺)이 도달한 곳은 인류의 사상과 정신의 모체인 종교가 근원적으로 혁신되어야만 정신개벽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구한말 민족종교는 우리 전통 속의 유교(儒敎), 불교(佛敎), 선도(仙道)의 종합을 시도했다. 수운은 원시유교의 전통을 복원하고자 한 면이 강했고, 강증산은 선도를 중심으로 유불선을 통합하려 한 데 비해,41 소태산은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42고 선언했다.

수운, 증산, 소태산과 같은 개벽성자들로부터 유불선 삼교의 회통이 이뤄진 것은 인류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태산이 왜 불법을 주체 삼았는가이다. 소태산은 불법이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가 있”43음을 밝힌다. 이는 성리적 근원의 전모를 밝히고 원융무애한 불법의 대의라야 유불선 삼교의 통합은 물론 서양의 다양한 종교와 과학문명, 그리고 도학(道學)44과 과학의 병진까지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45

또 한가지 풀어야 할 숙제는 소태산은 왜 ‘종교’라는 말보다 깨달음의 공동체인 ‘회상’46이라는 말을 앞세웠는가이다. 대부분의 성자들은 처음부터 특정한 종교나 교단을 목적으로 창교한 것이 아니다. 소태산도 종교라는 개념보다 ‘회상’이라는 더 광의적인 언어로 새로운 문명세계를 담아내고자 했다. 회상은 교단과 그 의미가 다르다. 교단이란 ‘같은 교의(敎義)를 믿는 사람들이 교조와 교리, 제도, 의식 등을 갖추고 교화를 목적으로 조직된 종교집단’이지만 회상은 ‘원불교의 명패를 달았느냐 안 달았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성자의 정신, 일원상 정신으로 사느냐 못 사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소태산의 회상관은 그를 찾은 기독교, 천주교, 동학, 증산교 신자들과의 대화에서도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소태산은 타 종교를 증오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모든 종교가 이름만 다를 뿐 한 집안임을 알 것이며,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대로 공부를 잘하면 모든 성자들의 본의를 깨달을 수 있음을 설파한다. 예수교 장로였던 조송광에게 소태산은 말한다.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제자(心通弟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서도 나의 심통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은 저 교, 이 교의 간격을 두어 마음에 변절한 것같이 생각하고 교회 사이에 서로 적대시하는 일도 있지마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 그대의 가고 오는 것은 오직 그대 자신이 알아서 하라. (…) 나의 제자 된 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니라.”47

나아가 정산은 “과거에는 지역을 맡아 성현들이 분산 출현하였으나, 현재와 미래에는 세계가 한 집처럼 가까워진 까닭에 모든 불보살 성현들이 한 회상에 모이시어 판이 큰 회상을 벌인다”48고 하였으며, 세계인이 함께 만나는 회상의 준칙을 ‘삼동윤리(三同倫理)’로 제시한다.

삼동윤리의 첫째는 ‘동원도리(同源道理)’로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요, 둘째는 ‘동기연계(同氣連契)’로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며, 셋째는 ‘동척사업(同拓事業)’이니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49이다.

그러므로 소태산이 말하는 회상은 모든 종교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선 열린 종교이다. 미래 종교의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만이 절대라는 관념을 넘어서 모든 종교의 교지를 통합 활용하여 실천하는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다.50

결론적으로 소태산의 회상은 ‘회통(會通)하는 종교’를 뜻한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은 그동안 교단이라는 개념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에 얻어진 작은 해오(解悟)이다. 소태산이 일제강점기 새 종교를 창시하고 수많은 개벽운동을 전개하였음에도 일제로부터 더 큰 강압과 제재를 피한 것도 경제적 투명성과 남녀 문제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했던 결과이기도 하나, 원융회통의 불법에 근원한 회상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다만 도올과 백낙청은 이러한 소태산의 회상관이 자칫 변질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상당히 변질된 것 아닐까 우려한다.(120~26면) 두 사람이 함께 공감한, 원불교의 사회 참여가 소극적이라는 인식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원불교가 회상주의가 아닌 교단주의로 흐르는 데에 대한 뼈아픈 경책임을 알 수 있다.

원불교는 도올과 백낙청이 종교주의에 빠져 있다는 충고를 깊이 새겨야 한다. 또한 대각을 다중의 참여로 실천했던 소태산의 사회운동을 다시 재건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부지런히 내야한다는 도올의 경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개벽 담론으로 다시 소태산의 회상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재가·출가가 함께하는 회상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이 원불교의 큰 화두로 자리하길 희망한다.

 

 

5. 우리 시대에 맞는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 민족에게는 마음의 근원인 정신을 탐구해온 사상적 유산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정의롭게 실천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K-콘텐츠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지구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러한 본질과의 맞닿음을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즉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정신 차리는 훈련’을 해온 우리 민족의 영성과 담대한 성찰이 전해질 때 인류가 잃고 살았던 자아를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할지 모른다.

창비의 개벽 담론을 통해 역사의 인물과 그들의 사상을 톺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운의 ‘다시개벽’과 소태산의 ‘정신개벽’을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언어와 운동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는 곧 물질문명을 선용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기르는 구체적인 훈련이며, 물질개벽에 상응하는 정신개벽의 확충이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자리이타(自利利他)로 돌리는 공익심의 적공을 말한다. 개벽성자 수운과 증산, 소태산은 인류에게 ‘우리, 정신 차리자!’라고 말하고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우리 시대 인류의 화두이다.

 

 

  1. 이 글에서는 천도교 경전의 ‘한울님’을 도올이 말한 ‘하느님’으로 쓰고 있음을 양해 바란다. 도올은 수운 자신이 쓴 표현이 ‘189_361’ 또는 ‘189_361’으로서 ‘하느님’은 기독교적 용어가 아니라 “한국인의 심성에 각인된 자연스러운 우리말”이므로 본래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옥 『동경대전 2: 우리가 하느님이다』, 통나무 2021, 27~30면 참조.
  2.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동경대전(東經大全)」 논학문(論學文). 「동경대전」 원문 인용은 천도교 홈페이지 경전을 기준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3. 도올은 수운이 하느님으로부터 강령받은 자신을 바라보며 ‘도대체 내가 어째서 이 꼴인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심정기함으로써 온전히 정신을 차렸음을 역설하며, 이 장면이 「동경대전」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유튜브 도올TV 동경대전 77강(2021.11.19.) 참조.
  4.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동경대전」 논학문.
  5.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동경대전」 논학문.
  6. “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동경대전」 수덕문(修德文).
  7. 김용옥, 앞의 책 179~81면 참조.
  8. 「정전(正典)」 교의편(敎義編) 4장 삼학 1절 정신수양. 원불교 경전·법문은 원불교 홈페이지 경전법문집 및 『원불교전서』〔1977〕, 원불교출판사 2017 참조.
  9.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2부 법어(法語) 원리편(原理篇) 12장.
  10.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동경대전」 논학문; 도올TV 동경대전 84강(2021.12.13.) 및 85강(2021.12.16.) 참조.
  11. 백낙청 「물질개벽 시대의 공부길」,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박윤철 엮음, 모시는사람들 2020, 39~41면 참조.
  12. 백낙청 「대전환을 위한 성찰 두 가지」, 같은 책 291~92면 참조.
  13. 백낙청 「촛불혁명과 개벽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23면 참조.
  14. 김용옥, 앞의 책 35면 참조.
  15. ‘There is no alternative’. 마거릿 새처(Margaret Thatcher) 전 영국 수상이 자주 언급한 말.
  16.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앞의 책 190~93면 참조.
  17. 백낙청 「기후위기와 근대의 이중과제」, 앞의 책 362면.
  18. 소태산은 “금강(金剛)이 현세계(現世界)하니 조선(朝鮮)이 갱조선(更朝鮮)이라” “금강산이 세상에 드러날 때, 조선이 새로운 조선이 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에 빗대어 이 나라가 장차 세계의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19. 방길튼 『소태산, 서울〔京城〕을 품다』, 원불교출판사 2016, 12면 참조.
  20. 「대종경(大宗經)」 교의품(敎義品) 34장 참조.
  21. 백낙청 「물질개벽 시대의 공부길」,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38~39면. 백낙청이 처음 이 발언을 한 1992년으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미국이 “자기 나라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는 남달리 공익심을 발휘한다”는 명제조차 의심스러워진 상태가 아닌가 싶다.
  22. 방길튼, 앞의 책 22면 참조.
  23. 백낙청 「변혁적 중도주의와 소태산의 개벽사상」, 앞의 책 256~61면 참조.
  24. 「정전」 수행편(修行編) 13장 최초법어.
  25.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수필자 송도성, 『회보』 제23호(시창21년(1936년) 3월호) 참조.
  26. 「대종경」 변의품(辨疑品) 32장.
  27. 「대종경」 변의품 29장.
  28. 「대종경」 변의품 32장.
  29. 소태산은 “때를 따라 성자들이 출현하여 종교와 도덕으로써 우리에게 정로(正路)를 밟게 하여 주심”이 우주 자연의 정칙임을 일깨웠다(「정전」 교의편 2장 사은 4절 법률은). 이는 이 땅에 수운과 증산, 소태산과 같은 개벽성자들이 계속 출현하여 도덕의 정맥(正脈)을 다시 살리고, 이 나라가 인류 정신의 중심국이 될 것을 예견한 것이다.
  30. 도올 「눈보라 휘날리는 봄바람 속 다시 듣는 대각의 노래: 대각개교절눌함(大覺開敎節吶喊)」, 『원불교신문』 2024호, 2021.4.15. 참조.
  31. 「대종경」 교의품 4장.
  32. 「대종경」 교의품 4장 및 인도품(人道品) 33장 참조.
  33. 「정전」 교의편 2장 사은 1절 천지은 참조.
  34. “吾道無爲而化矣”, 「동경대전」 논학문.
  35. 김용옥, 앞의 책 61~63면.
  36. 구약성서 「출애굽기」 3장 14절.
  37. 「정전」 교의편 1장 일원상 4절 일원상 서원문.
  38. 백낙청 「통일시대·마음공부·삼동윤리」, 앞의 책 240~43면 참조.
  39. 「한울안한이치에」 1편 법문과 일화 3.일원의 진리 10절.
  40. 「정전」 교의편 2장 사은 1절 천지은 참조.
  41. 백낙청 「변혁적 중도주의와 소태산의 개벽사상」, 앞의 책 256면 참조.
  42. 「대종경」 서품(序品) 2장.
  43. 「대종경」 서품 3장.
  44. 도학이란 인류의 정신문명을 총칭하며 도가의 수행과 학문으로서 인류가 밟아나갈 정의·도덕을 연마·개척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과 도학」, 『월보』 제46호(시창18년(1933) 4월호) 참조.
  45. 백낙청, 같은 면.
  46. 회상이란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대중을 일컬어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47. 「대종경」 전망품(展望品) 14장.
  48. 「정산종사법어」 도운편(道運編) 16장.
  49.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35~37장.
  50. 「정전」 총서편(總序編) 2장 교법의 총설.

안세명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