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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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율리아 에브너 『한낮의 어둠』, 한겨레출판 2021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윤보라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judit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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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HBO가 제작한 전설적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행크는 마약단속국(DEA) 소속의 형사다.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단속망을 빠져나가는 마약 카르텔 앞에서 행크는 절망하며, 주인공 월터에게 자신이 대학생 때 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 인부들이 벌목해야 할 나무에 주황색 스프레이로 표시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나무에 표시를 하고, 다음 날 또 숲으로 들어가 온종일 나무에 표시를 했다고. 지금 이 괴물들을 쫓고 있노라니 그때 생각이 자꾸 난다고.

반극단주의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율리아 에브너(Julia Ebner)는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Going Dark, 2020, 김하현 옮김)를 통해 우리 앞에 극단주의자들의 거대한 숲을 펼쳐 보인다. 책에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수많은 단체들이 언급되고 있어, 나 역시 생소한 이름을 여러번 검색해보아야 했다. 과연 저자가 소개하는 유럽 극단주의의 풍경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구체적이었다. 에브너는 몇몇 극단주의 단체에 직접 면접을 보러 가고 텔레그램 채팅방에 합류하고 해킹을 배우고 게시판에 뛰어 들어간다. 극단주의자들과 맞서는 강력한 무기는 바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지를 밝혀내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안우파 단체에서부터 백인우월주의 집단, 노골적으로 반(反)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여성단체, 댓글과 해시태그 공격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뒤흔드는 온라인 댓글부대, 분노와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서라면 어디와든 연대하는 극우단체들, 지하디즘(Jihadism) 테러 단체와 이를 지원하는 이슬람 여성단체…… 겉으로 볼 때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별로 없다. 운동의 목표와 타깃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에브너는 각각의 운동 내부에서 비슷하게 작동하는 일종의 메커니즘을 발견한다. 이들은 먼저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개인의 약점을 파고든다. 이곳에 발을 들인 신규 회원들은 이 안에서 친밀한 내집단 관계를 형성하고 거기에 대단히 감정적으로 얽매이게 된다.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의 정체성과 결합하기 때문에 한번 극단주의 단체에 합류하면 대오에서 이탈하기 어렵다. “집단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은 집단의 이념과 비전, 명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223면)로 이어지게 된다. 외롭고 취약한 개인은 이렇게 ‘급진화’된다.

이들의 전략은 극단주의 활동을 연구하고 감시하는 것이 직업인 저자까지 흔들 정도로 강력하다. ‘트래드 와이브즈’(전통적인 아내들Traditional Wives의 약칭)는 오로지 남성을 기쁘게 하는 것만이 여성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여성단체다. 저자는 자신의 이념, 성향과 완벽히 다른 이 단체의 게시판에서 몇주를 보내는 사이 이들의 강력한 엔진에 거의 빨려 들어갈 뻔한 경험을 고백하며 “계급이나 젠더, 인종, 정치적·종교적 견해는 그 사람이 극단주의자에게 길들여질지 아닐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약해진 시기에는 모두가 극단주의자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99면)고 경고한다.

극단주의자들의 힘은 신입 회원을 늘리고 세력을 확장하는 단계에서만 강력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사실 정보를 왜곡하고, 핵심 쟁점에서 주의를 돌리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140면) 4D 접근방식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능수능란하게 심리전과 여론몰이를 주도한다. 에브너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마치 스타트업 회사처럼 작동하는데, 이들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블랙박스 알고리즘’(파악 불가능한 인공지능 작동 원리), 핀테크 기술 등이다. 전세계 수억명이 즐겨 보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극우적 밈(meme)으로 도배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암호화폐로 간단하게 거액의 후원금을 송금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중 호소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저자가 직접 만나본 극단주의자들은 일명 ‘닙스터’(네오나치Neo-Nazis와 힙스터Hipster의 합성어)답게 대부분 말쑥한 외모를 가졌다. 유럽과 미국의 극우를 연결하는 프랑스의 단체 ‘세대정체성’(Génération Identitaire)은 마치 갓 데뷔한 보이밴드 같은 모습으로 언론에 실렸다. 이러한 전략은 이들이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구성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보상체계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곧 유명해질 것’이며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리라는 격려가 그것이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온라인 네트워크다. 모집부터 사회화, 선동, 네트워킹, 보상 등 모든 것이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의 독자들도 유럽과 서구를 누비는 극단주의 단체들의 생소한 이름들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이버 세계를 움직이고 우리의 행동을 움직이는 열렬한 극단주의적 메커니즘은 한국에서도 대동소이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념으로 무장한 사람들만이 여기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공동체 밖으로 내쫓고, 타깃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몰아붙이며, 나와 같은 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즉각 ‘총공’을 선언하는 사이버 전장이 우리 앞에도 매일같이 펼쳐지지 않는가.

이때 저자의 다소 모순된 진술이 눈에 띈다. “혐오 콘텐츠의 규모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거대했고 극단주의 운동에 참여한 젊은 사람들의 수는 낙담스러울 정도로 많았”(12면)다고 증언하는 한편, “혐오 표현이 디지털 시대 어디에나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환상”(166면)이라고 진단하는 대목이 그렇다. 일반적인 온라인 사용자가 아니라 실제로는 아주 적은 소수가 대부분의 혐오표현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원제 ‘Going Dark’의 뜻처럼 ‘점점 어두워지는’ 중일 수도 있지만, 요한복음 1장 5절처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수년 전 불현듯 한국을 떠나 ISIS로 향한 소년과 지금 온라인 공간 구석구석에 가스처럼 채워진 증오의 정서가 떠오른다. 끝내 실패하지 않을 빛을 만들어내는 지혜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에브너는 책의 말미에 2020년대를 위한 열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참조해봐도 좋을 것 같다.

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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