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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지은 李知恩
중앙대 문예창작전공 3학년. 2000년생.
yexxje@naver.com
뮤트의 세계
이명이 시작되었다, 트로트 좀 틀어봐라.
그가 바닥에 누워 말하면 우린 쪽방으로 맥없이 밀려난다. 아무래도 나, 조만간 트로트 반대시위에 나갈 것 같아. 오빠는 말한다. 맨 앞줄에서 깃발을 흔들고 시간이 남으면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릴 것 같아. 우리는 손만 꿈지럭댄다. 일곱시에 저녁 미사가 있어. 그때까지 우리가 거실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고 성호를 긋는다.
들을 수 없어서 가장 소란스러운 사람이 된 나를 이해해주렴. 어차피 나는 칠십에 죽을 거란다. 너희들의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진동은 느낄 수 있단다. 내가 사막에 있었을 때도 진동은 늘 가까이에 있었지. 그 움직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보면 비명 한두개쯤은 모른 척할 수 있었단다.
우리는 아주 공평하다구요. 여기서도 들을 수 있는 건 비브라토밖에 없잖아요. 문틈 사이로 익숙한 화음이 쌓이고 오빠는 방금 누군가 장기 하나를 토해낸 것 같다고 소곤거린다. 소리에도 날이 있다는 말. 잘 갈린 소리는 무나 당근도 자를 수 있다는 말. 어떤 소리는 깨지기 쉬우므로 잘 다뤄야 한단다. 굴절은 많으면 많을수록 근사하단다. 우리가 귀를 막았으므로 그의 문장은 이해되지 않는다. 파동이 되어 흩어진다.
사막에도 백야가 있단다. 아무렴, 교과서 같은 데선 등장하지 않는 상식이지. 위성보다 더 명료한 빛들이 매일 밤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진단다. 산발한단다. 밝아서 잠들 수가 있어야지. 그때 못 꾼 꿈을 지금 몰아서 꾸는 거란다. 그가 중얼대면 나와 오빠는 가만히 앉아 손바닥을 편다. 칠십부터 육십구, 육십팔, 육십칠…… 하나씩 빼어본다.
이명이 계속되는구나, 소리 좀 키워봐라. 그는 오로지 들리는 것만 듣는다. 나와 오빠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는다. 일곱시에 저녁 미사가 있는데. 십자가 아래서 그를 위해 성호를 그어야만 하는데. 그는 흥얼거린다. 트로트는 심장을 반으로 쪼개 하나를 내어줄 것처럼 불러야 한단다. 그는 이제 잠자코 듣는다. 결국에는 진동과 나…… 그게 다란다. 그는 적막하다.
계육공장, 닭들은 춤을 추고
방 안에 있는 내가 문득 낯설고 기이할 때면
레깅스를 골라 입고 강변을 달립니다
무릎을 스치는 질긴 나일론의 입김
잘근잘근 씹어도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도 내 허벅지 위에서 몇개의 동물이 멸종했군요
괜찮습니다, 우는 건 돈이 들지 않으니까요
심장 언저리에서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 들 때쯤
시야 안으로 계육공장 하나가 들어옵니다
오늘의 냄새는 혼탁한 노랑, 골이 찌르르 울리고
일꾼 몇은 배수구 위에 멍하니 앉아 있군요
나는 대체 어디로 숨을 쉬어야 할까요
레깅스를 입은 내가
레깅스를 입고 맥없이 더운 숨 뱉는 내가
그곳을 가볍게 지나칠 때
이상하게, 경쾌한 한숨이 겹칩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숨을 고르고 깃털 없는 살덩이는 꺅꺅 울고
배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고기는 이상하고
공장 안은 라단조로만 이루어진 세계 같습니다
나도 닭들도 레일 위에서 발을 구릅니다
원은 신이 점지한 도형
우리는 같이 동그라미 되어 세상을 돌고
세상이 돌고
방 안에서만 잠자코 있어도 여전히 배는 고픈데
나는 나일론을 입고 강변을 달립니다
그들은 텐더가 되고 어쨌든 나는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으로 남고
해체, 아니 이따금 다시 합쳐지는……
결국에는 둘 다 뼈만 남아 저물 텐데
얇고 기다란 비명만큼 진부한 것도 없습니다
쩝, 입맛을 다시면 불쾌한 짠맛이 혀 위에서 발을 구르고
왜 나일론은 하필이면 바다로 돌아가 동물들의 식도를 점령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세상은 나를 속이는 것 같고
나는 내가 가여워지고
생각해보면 닭과 눈 마주쳐본 적 없는데
나는 레깅스를 입고 강변을 달립니다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갠지스 왈츠
언니, 우리 애도 밴 적 없는데 어머니가 되었죠. 얼굴도 없이 흐느껴 우는 저 아이는 누구의 손가락으로 낳은 딸인가요, 어떤 거룩한 운명을 이어받은 신의 자식인가요.
검은 강물이 더욱 짙어지는 밤이면 누군가 수평선 뒤로 풍덩, 뛰어드는 소리가 들려요. 축제의 막이 내려가고 이제는 장작 위로 올라갈 시간. 아무런 역사가 없어요, 시계도 달력도 우리에겐 과분하죠.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언니, 들개의 신부로 사는 것보단 아무래도 낫지 않겠어요.
아무나 사랑하지 않을게요
아, 들키는 걸 잘하는 사람이란 왜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발끝으로 원을 그릴 때마다 이마 위로 점이 돋아났죠. 보이나요, 강변까지 떠밀려온 저 숭고한 뼈가. 사분의삼박자 속으로 뛰어든 우아한 운명들이. 이제 나긋한 선율에 호흡을 기대보는 건 어때요. 다음 생에는 신의 엄지손가락에서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빙글빙글, 머리 위로 가느다란 불꽃이 태어나면 우린 영원한 처녀로 남을 수 있어요.
질긴 내장을 씹을 때마다 달큰한 사랑의 맛이 났죠.
언니도 참, 심장은 하나인데 또 누구에게 나눠줄 생각을 하고 있나요.
세븐일레븐에 불이 꺼지면
비극마저 서로의 것이라고 우겨대는 세상이지 않나요. 이 새벽도 나의 몫, 나쁜 패를 몽땅 쓸어가는 것도 나의 몫이죠. 어깨에 소복이 쌓인 분침들은 잠시 잊기로 해요. 들리나요, 진열대 속 가지런한 운명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빈 병들은 부딪히고. 삼, 이, 일, 우린 전자레인지 속 레토르트처럼 부풀다 식어버려요. 복면 속에 감춰진 표정을 읽는 눈동자. 따다 만 통조림처럼 시큼한 대화를 나누는 우리. 모든 밤들이 순서대로 떠오르듯 우리의 만남도 결코 우연이 아니죠. 당신이 원인, 나는 결과. 이 불규칙한 맥박이 나는 마음에 들어요. 오늘 밤이 당신에게 달콤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 몸짓이 새벽을 깨우는 기지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얼마를 원하나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알죠, 함부로 사랑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꼭 나무에 토를 한다니까요.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을 주워 담는 건 언제나 당신의 몫이구요. 날 선 비명에선 유쾌한 맛이 나요. 바구니에 담아놓은 우리 다음도 바코드를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죽고 싶다는 말처럼 비겁한 문장은 없다는 거 알잖아요. 탕 탕 탕, 차마 끝을 맺지 못하고 사방으로 솟구치는 낱말들. 몇개의 입김만이 우리 주변을 서성일 때. 우리는 여기 교훈처럼 남아 서로의 새벽을 서서히 허물어버립니다. 두려울 건 없죠, 단지 사물이 되는 것뿐이니까요.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시
강남역 십번 출구 제임스 킴 영어학원에는 귀신이 살지. 혀에 올려놓았던 단어들을 실수로 삼켜버려 죽은 귀신이지. 그가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 농담처럼 식어갈 때, 303호 강의실에는 서른네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지. 원어민 선생 나탈리의 야한 농담을 알아들은 척 깔깔 웃고 있었지. 303호에는 아직도 그의 환청이 들린다는 소문이 있지. 아이 마이 미 마인, 유 유얼 유 유얼스…… 하며. 원어민 선생 나탈리의 증언에 따르면 생전 그의 재킷 안주머니엔 큰따옴표가 가득했다 했지. 하지만 그가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은 없다고 했지. 아이 라이크 프라이드치킨 (나는 외국인들을 기름에 튀겨 먹고 싶습니다) 아이 러브 아메리카 (아무튼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입력과 출력이 정해진 로봇처럼 답했지. 물론 그의 목젖 아래 감춰진 문장들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지. 왜 알파벳을 더듬을 때마다 심장이 머리에서 뛰기 시작하는지. 어째서 이 구강구조로는 물렁한 발음을 흉내 낼 수 없는 건지. 원어민 선생 나탈리는 그를 일으켜 세워 물었지. 당신은 왜 영어를 배우나요? 그녀는 한국어도 유창하게 내뱉었지. 그녀의 질문에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지. 비커즈, 켁, 아이, 켁…… 원어민 선생 나탈리가 한숨을 쉬며 옆 사람을 지목할 때까지 그는 단 한 문장도 만들 수 없었지. 뾰족한 낱말들이 자꾸만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았지. 켁, 켁, 발화되길 거부하는 문장들이 위장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걸 느꼈지. 그는 시야가 아득해질 때쯤 생각했지. 나는 왜 멜버른 토론토 런던 캘리포니아에서 빅맥 피시앤칩스 크리스피도넛 페퍼로니피자를 먹을 수 없는 걸까. 원어민 선생 나탈리가 미동 없는 그에게 아 유 오케이? 하고 물었을 땐 이미 늦어버린 후였지. 그건 그가 아임 파인 땡큐, 하고 대답하지 않았던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지. 그가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괄호를 닫기도 전에 입을 다무는 것이었지. 어차피 말 못하는 멍청한 동물들의 죽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수강생이 어렴풋하게 그의 유언을 들은 것 같기도 했지. 켁, 켁, 씨발, 아이 원투 고우 홈…… 하며.
심사평
이번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에는 총 297명이 응모했다. 지난해 383명에 비하면 응모자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는 팬데믹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읽혔으나 그럼에도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응모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11월 한달여에 걸쳐 세명의 심사자가 각각 응모자 99명의 작품 495편씩을 읽었고 11명의 작품 55편을 선별했다. 12월 초의 본심에서는 심사자들이 함께 모여 11명의 작품을 재차 읽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두편의 흥미로운 작품을 응모한 경우는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르게 완성도를 유지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이유로 어느 때보다 응모작에 숨겨진 재능의 핵심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종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디스토피아」 외 4편, 「정원에 공」 외 4편, 「뮤트의 세계」 외 4편이었다.
최종 대상작은 아니었지만 심사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몇편의 개별 작품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선 「앵무 스피커에 관한 토론」은 이 세대가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귀한 지점이 있어 오랫동안 심사자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언어화한 「뭉뚱그려 패치워크」도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 중 하나다. 다만 풍성하게 큰 그림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파리’라는 한정된 공간이 작품의 확장을 막아선다는 지적이 있었다. 「심쿵 펀치」 「망겜 유저가 된 기분은 어떠세요?」 「시티보이룩의 순정」 세편이 지닌 경쾌한 리듬을 따라 읽는 즐거움이 컸다. 리듬을 의식하면서 펼쳐 보이는 긴장감 있는 세계는 시의 중요한 미덕을 안고 가는 작업이라서 끝까지 심사자들을 고민하게 했다. 나머지 두 작품이 지닌 가벼움이 끝내 아쉬웠다.
최종심에서 언급된 「정원에 공」 외 4편은 문장을 쏟아내는 경향이 강했던 이번 응모작들과 변별되는 지점이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을 한다」의 경우 행간을 확보하면서 섬세하게 언어를 작동시키고 있어 거듭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다만 그 힘이 응모자 개인이 지닌 독특함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이번 응모자들과의 변별점에 눈길이 갔지만 기존의 시 어법을 갱신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디스토피아」 외 4편은 세명의 심사자가 마지막까지 숙고하며 읽었던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의 경우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요 내가 엄마를 찾아볼게요.”와 같은 구절이 인상 깊어 시를 재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언어를 명료하게 사용하는 점, 인류의 쓸쓸한 환부를 무리 없이 서사화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다만 「유키」 「유리의 마음」의 경우 화자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요즘의 시적 경향이 디자인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는 점, 「사춘기」가 시인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 읽혔는데 네편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이질적인데다가 감정 표출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점들이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반면 「뮤트의 세계」 외 4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접점에서 겪게 되는 문제의식을 회피하지 않으며 집요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로 펼쳐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심사자 모두가 주목했던 「계육공장, 닭들은 춤을 추고」는 멋있게 잘 쓰려는 노력보다 화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서를 끝까지 끌고 가보려는 힘이 느껴졌다. 빨리 정답을 내리고 편안하게 “강변을 달”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계육공장”의 “닭들”처럼 “레깅스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자세를 선택하는 쪽이다. 「뮤트의 세계」에서의 화자 역시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되 할 말은 어떻게든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공평하다구요.”라는 항변이 자기방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적막하다.”라는 쓸쓸한 이해에 닿는 균형감에 대한 지지도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봉합을 위한 것이 아닌 발화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앞으로 그가 자신감 있게 써내려갈 문장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곧 다른 지면에서 그의 신작시 읽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김경후 이병률 임승유
당선소감
아무거나 사랑합니다. 작고 너절할수록 좋아 미칩니다. 몸을 웅크려야만 마주할 수 있는 세계에 마음이 갑니다. 말을 할 땐 대개 입안에 호수가 들어찬 기분이므로, 낮에 못한 말들은 밤이 되면 종이 위에 뱉습니다. 종이는 되묻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범인의 몽타주를 더듬어보는 목격자의 기분으로, 혹은 영문 모를 오브제를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문득 외로워질 땐 먼저 떠난 사람들의 뼛가루를 흑심 삼아 적습니다. 원할 때마다 사구의 능선 위로, 물렁한 단어들이 범람하는 낯선 해변으로, 입 맞추는 연인들로 소란스러운 다리 위로 떠납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장력이 나를 세상 안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전시장 로비에서 감사를 전합니다. 고마운 사람들을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바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시 앞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저를 의자에 앉혀주신 이승희, 이혜미, 안명옥 선생님께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시가 멀어지던 순간에 찾아갔던 이소호, 이영주 시인님, 그리고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엉망이라 행복했던,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에게도 잊지 않고 감사를 전합니다. 규랑 오빠, 민정 언니, 유나에게도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제 시를 선택해주신 김경후, 이병률, 임승유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두분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는 당신들을 위해 견고하고 커다란 유리 온실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규인 오빠에게는, 시를 쓸 때보다 좀더 어려운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합니다. 당신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싶을 때마다 나는 손바닥을 폅니다. 서른부터 스물아홉, 스물여덟, 스물일곱. 하나씩 빼어봅니다. 그러면 나도 곧 당신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더 많이 읽고, 배우고, 돌아다니고, 깔깔거리겠습니다. 어떤 구석도 들여다볼 줄 아는 섬세한 동공을 가지고, 주저하지 않고 쓰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 명랑하겠습니다. 경박하게 뛰어다니고, 누군가의 무덤 위에 발라당 눕고, 함부로 사랑하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치열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