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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병해 崔炳海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chbh1050@hanmail.net
부동자세 소쩍새
아파트 문지기 소나무에서 낯선 새를 보았다.
어미 새를 잃었을까 어디 아픈 걸까
삼일 동안 저 자리서 꼼짝 않는다고
굶어죽으면 어떡해요 아이가 걱정을 했다.
늦은 밤 문득 그 나무를 보니
새는 가고 없었다, 다행이구나
떨어지면 묻어주자던 아이를 살짝 깨워 알려주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아침 그 새는
안방 주인인 양 그 자리 그 자세로 사진 박혀 있었다.
부엉이를 반쯤으로 축소해놓은 듯한 그 모습
부랴부랴 사전을 뒤져 찾아보니 바로 소쩍새
야행성이라 밤에 먹이 사냥을 가고
낮이라 꼼짝 않고 주무셨구만.
벌써 한달, 오갈 때마다 마음이 출렁댄다.
엊그제 장마로 백 밀리 넘는 비가 내릴 때
몽땅 젖은 솜뭉치가 빗방울의 몰매를 견디고 있었다.
오늘은 또 마파람의 심술에 온종일 줄타기 광대……
아, 잠시라도 피할 일이지 차라리 다른 데 머물 일이지
그저 그런 소나무 듬성듬성한 그 자리, 그러나 변함없는 그 자세
미네르바의 부엉이 모습을 한 철학자여
왜에… 하필 거기에… 깃드셨는가…… 오래 보며.
얼마나 가벼이 부러워했나.
펼친 날갯짓은 어쩌면 저 막장의 잠시 기지개인 것을
오라 벗이여 내 마음엔 문이 없다
언제까지 함께일 순 없겠지만 우리의 집에서
같이 또 달리 …… 이제 이별이 아프지 않다
다시 콘크리트의 시대가 프레스로 침묵을 찍어대지만
보든 보지 않든 비바람을 뚝심으로 견뎌가는 삶
그 속에 내일도 꽃봉오리도 부동자세로 깃드는 것.
장생포 장인(匠人)
반구대 절벽을
가르던
물길이 바다로 갔다
선바위 토닥토닥
다듬던
물살이 바다로 갔다
태화루 자갈돌 자르르 자르르
사포질하던
물결도 갔다, 바다로
자갈돌이 모래로 다시 찰진 흙가루
외고산 옹기가 어이 붉은가
이마에 맺힌 물방울의 대를 이은 마감질
돌흙을 다스리던 이 솜씨 다 품은 장생포 바다
장날처럼 소란터니 또 그믐처럼 잔잔하더니
마침내 파도 같은 맥박도 실어
질박한 오지항아리 귀신고래
찰랑찰랑 넘치는 호리병 밍크고래
한잔 도오 내미는 막사발 보리고래
미끈한 새색시 맵시 청자로구나 참돌고래
한점 두점 빚어낸
장생포 바다,
토기장이들 거나하게 한판 벌인 제멋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