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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성혜령 成慧玲
1989년 경기 광명 출생.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eve_adam@naver.com
물가
유안의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처음 임신을 알렸을 때처럼 유안은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 메시지를 보냈다. 나 임신했대. 그때도 유안은 불쑥 말을 꺼내왔고 이상하게 화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임신부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거 알아? 유안이 물었다. 인셀(incel)들? 내가 말하자, 이름도 있어? 유안이 되물었다. 유안이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거리에서 임신부를 보면 자기보다 잘난 남자가 이 여자와 섹스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괴롭고, 그 임신부가 자기와는 섹스를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어? 유안은 내게 계속 물었다. 어떤 남자가 섹스를 못하는 게 어떻게 임신한 여자의 잘못이야? 아니, 섹스가 삶의 전부야? 이런 남자들, 인터넷에서만 떠들지 현실에서는 아무 말도 못해. 걱정하지 마. 내가 답하자 대화창이 잠시 조용해졌다. 유안이 조금 후에 답했다. 나는 걱정하는 게 아냐. 분노하는 거지.
유안은 지금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화가 나 있을까. 아이는 이제 막 돌이 지났다. 얼마 전에 유안의 메신저 프로필에서 떡이며 과일과 함께 연필, 실, 마우스 등으로 돌잡이 상을 차린 사진을 보았다. 아이가 뭘 잡았느냐고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는데, 그 작은 아이 몸 안에 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주다 아이의 배 오른쪽에 딱딱한 멍울이 잡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내가 아이랑 더 오래 있었는데 나는 까맣게 몰랐어. 그게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닐 텐데. 유안이 말했다. 유안은 아이의 정확한 병명도 아이가 입원할 병원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큰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뭐든 괜찮다고 바로 답하려는데 버스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버스 경적이 길게 울렸다. 마감조만 하다가 오랜만에 낮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늘어선 차들이 길어진 해를 받아 출렁거렸다. 핸드폰을 주워서 화면이 깨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이 유안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분간 치약이 맡아줄 수 있을까?
치약이는 유안이 결혼 전부터 키우던 치와와였다. 유안과 남편 모두 앞으로는 집보다 병원에 더 많이 있게 될 것이고, 아이가 항암치료 후 퇴원하게 되어도 면역력이 약해져서 집에 치약이가 있는 게 좋지 않다고 의사가 권고했다고 한다. 오빠는 아예 입양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유안이 말했다. 네가 당분간만 맡아줄 수 있을까? 괜찮아질 때까지만. 나는 유안의 메시지를 여러번 읽었다. 당분간은 얼마큼일까? 괜찮아질 때는 언제지? 아이의 치료가 모두 끝나는 때? 선뜻 그럴게,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었다. 유안이 결혼하기 전에는 종종 유안의 집에 가서 치약이와 놀아줬고 유안이 치약이 사진을 보내오면 호들갑스럽게 반응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치약이가 아플 때마다 유안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산책은 꼭 시켜주고 변이 너무 물러도 딱딱해도 걱정하며 습식 사료를 산다 건식 사료를 산다 얼마나 정성스레 돌봐주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못해. 유안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치약이가 아무리 예뻐도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쏟고 싶지 않았다.
임신기간 동안 유안은 내게 종종 인셀이 제목에 들어간 기사를 보내왔다. 총기난사, 묻지마 폭행, 안티페미니스트 시위…… 기사는 언제나 많았다. 딸이어도 아들이어도 걱정이야. 유안은 말했다. 아이가 아들인 것을 알게 된 후에는 한동안 기사를 안 보내는가 싶더니 다시 기사를 공유하면서 내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여덟시간 동안 서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 근처 매장은 항상 붐볐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취향대로 샌드위치를 주문하니 일하는 내내 재료를 잘못 넣지 않았는지 신경 써야 했다. 유안의 부모님은 노무사와 법률사무보조원으로 정년을 넘긴 나이까지 일을 하고 계셨다. 유안은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 졸업 후 외국계 무역회사에 취직했다가 임신 초기부터 휴직 중이었다. 남편은 공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유안의 남편과 결혼 전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내게 적절한 질문을 던졌고 고기를 잘 구웠다. 너는 안전하고 좋은 세계에서 살고 있고 태어날 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너는 샌드위치에 오이를 잘못 넣어서 몇번을 고개 숙여 사과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런 말 대신 나는 임신부가 자꾸 그런 기사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아기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 수도 있으니 좋은 것만 보고 들으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유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비켜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유안의 부탁을 들어줘야 했다.
*
치약이는 수요일 오전에 유안의 남편이 데려다주었다. 그 주에는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 하루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에 유안의 아이는 병원에서 힘든 검사가 있다고 했다. 유안의 남편은 양손에 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사층 우리 집까지 걸어 올라왔다. 아직 5월이었는데 낮엔 한여름 같았다. 나는 유안의 남편 이름을 자꾸 까먹었다. 형우씨 아니면 현우씨였는데 매번 이름을 잘못 말해서 유안이 고쳐주곤 했다. 유안의 남편은 푸른색 반팔 셔츠와 회색 슬랙스 차림에 길이 잘 든 로퍼를 신고 있었는데 이후엔 회사에 잠깐 들어갔다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수건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새 수건을 꺼내 냄새를 한번 맡아보고 가져다주었다. 원룸이 서북향이라 빨래에서 가끔 냄새가 났다. 그는 수건을 목덜미에 두르고 다시 내려가서 사료 포대와 간식이 담긴 박스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올라왔다. 이제 한번만 더 내려갔다 오면 돼요. 그가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으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는 아이가 아프고 아내가 힘들어해도 절대 손상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현관에 서서 좁은 복도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짐들을 내려다봤다. 이동용 가방, 사료, 장난감, 급수대와 배식대, 배변 패드……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복도 천장에서 자동조명이 내 움직임에 따라 깜빡였다. 형우씨 아니면 현우씨는 마지막으로 치약이를 품에 안고 올라왔다. 치약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따금 캉캉 짖었고 나를 알아보는 것 같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여기가 네 집이야. 착하게 굴어. 그가 말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치약이는 나를 알아봤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유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유안과 함께 있을 때 치약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내 앞에서도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고 간식을 줘도 잘 받아먹었는데 우리 집에 온 치약이는 꼬리를 늘어뜨리고 나를 향해 그르렁거렸다. 우선 급수대와 배식대를 설치하고 잠을 자는 방석과 배변 패드를 깔아주었다. 그 주변에는 치약이가 특히 좋아한다는 악어 인형을 놓았다. 치약이는 익숙한 자기 물건에도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치약이가 새 공간에 적응하길 바라며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유안의 남편은 혼자 사는 여자분 집에 들어가기가 죄송스럽다면서 수건을 문고리에 걸어두고 짐은 복도에 그대로 둔 채 돌아갔다. 오후 내내 치약이 짐을 원룸 안에 정리해놓느라 배가 일찍 고팠다. 집 근처 하천 주변에 있던 옛날식 주택들이 점점 상가로 바뀌어갔다. 새로 문을 연 라멘집에 일인석이 있길래 돈코츠라멘을 먹었다. 국물에서 라면스프 맛이 났다. 약간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오자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어디서 개가 짖네요.
내가 사는 집은 오래된 빌라 꼭대기 층이었다. 한층에 현관문을 마주보고 있는 집 두채로 나누어져 있던 옛날식 빌라였는데 리모델링으로 한 집을 두개의 원룸으로 쪼개서 세를 주고 있었다. 두 원룸 사이는 벽이 얇아서 주위가 정말 조용할 땐 옆집 사람의 휴대폰 진동소리도 들렸다. 가끔 내가 알람을 못 듣고 자고 있으면 옆집에서 벽을 탕탕 쳐서 나를 깨우기도 했다.
포스트잇을 떼고 집으로 들어갔다. 치약이는 현관문 앞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오자 실망한 듯 다시 집 안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부엌 싱크대 밑에 오줌을 쌌다. 유안과 있을 때는 치약이가 짖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 없었다. 낑낑대거나 갸르릉거릴 때는 있었어도. 치약이가 짖을 줄 알았나? 다행히 치약이는 저녁도 물도 먹었고 배변 패드에 내가 보기에 적당해 보이는 똥도 쌌다. 유안에게 치약이가 밥을 잘 먹고 똥도 잘 쌌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유안은 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치약이가 캉, 하고 짖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면서 치약이에게 쉿, 하고 말했다. 치약이는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캉캉 하고 짖었다. 불을 켰다. 치약이가 자기 꼬리를 쫓듯 뱅뱅 돌고 있었다. 배가 고픈가, 목이 마른가 싶어 급수대와 배식대를 다시 채워줬다. 그래도 치약이는 짖었다. 치약이를 안아서 머리와 배를 만져줬다. 만져줄 때는 얌전했는데 손을 떼자 또 짖었다. 옆집과 맞닿은 침대 머리 쪽 벽이 쿵쿵 울렸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치약이를 안고 달래듯 방 안을 서성이다 문득 오늘 산책을 못했구나 싶었다. 밤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발은 부었고 종아리 정맥은 팽팽했다. 내 어깨에 작은 발을 얹은 채 안겨 있는 치약이는 너무 뜨겁고 가벼웠다. 치약이를 내리고 산책줄을 채워서 밖으로 나갔다.
밤이 되니 한낮의 더위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초여름의 밤공기는 차가웠고 강의 물비린내와 습기는 적당히 불쾌했다. 하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서울 중심부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좁은 산책로의 제방 쪽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가로등의 간격이 넓어 빛이 닿지 않는 길은 이중으로 어두웠다. 치약이는 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보도블록마다 냄새를 맡았고 이따금씩 오줌으로 마킹을 했다. 산책로 중간중간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 강을 보고 있었다. 누워 있는 사람도 가끔 보였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강을 보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치약이가 계속 가고 싶어했지만 삼십분쯤 걷자 발끝에 전기가 오르면서 쥐가 났다. 이렇게 걸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치약이도 자기 방석으로 돌아갔다. 치약이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 나도 바로 잠들었다.
*
오후 출근이라 늦잠을 자던 중에 유안의 메시지가 왔다. 기사 링크였다. 서울 근교 하천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시체는 40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강변 사진이 익숙해서 기사를 자세히 보니 내가 매일 산책하는 강이었다.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산책로를 따라 한시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밤산책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산책을 시켜주어도 밤에 산책을 하지 않으면 치약이는 잠들지 못하고 짖었다.
치약이는 여전히 유안을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내가 유안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고 나면 빠르게 등을 돌리고 집 안을 뱅뱅 돌았다. 유안은 기사만 보내놓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 여기 매일 치약이랑 산책해. 내가 메시지를 보내자 유안은 조심해,라고 보냈다. 나는 아이는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는 계속 자. 유안이 말했다. 너는 어때? 내가 묻자 유안이 말했다. 내가 곱창을 너무 좋아했던 것 같아. 곱창? 곱창을 너무 많이 먹었던 것 같아. 이제 안 먹으려고. 유안이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맛있다는 곱창집을 찾아 대구까지 내려갔다 온 적도 있었다. 그럼 나는 이제 곱창 누구랑 먹나. 유안은 답이 없었다.
유안이 보내준 사건의 후속기사를 계속 검색해봤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범인보다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다. 강을 따라서 토막 시체가 더 발견되면서 피해자의 신원이 특정되었는데 처음 추정대로 40대 여자였다. 다국적 물류기업에 다니며 고급 빌라에 혼자 살았고 애인도 없었다. 삼년 전쯤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잠시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스포츠 브랜드 로고가 가슴에 크게 박힌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을 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빌라 현관 감시카메라에 잡혔고 그후의 행방은 주변 카메라로 찾고 있다고 했다. 범인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체를 옮길 수 있는 가방이나 쇼핑백을 가지고 강에 왔던 사람들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하필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순식간에 그쳤다. 사건 현장이 물에 쓸려 훼손되어갔다.
산책을 나가지 못하자 치약이는 이따금씩 하지만 끈질기게 짖으며 방 안을 뱅뱅 돌았다. 나는 치약이가 잠들 때까지 치약이를 안아 달랬다. 오늘은 못 나가. 위험해. 비가 너무 많이 와. 물이 엄청나게 불어날 거야. 살인마가 숨어 있을 수도 있어. 무섭지? 무서우면 얼른 자자. 물론 치약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쳤다. 매장 마감시간에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리다 놓쳐서 발을 찧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이 지역 커뮤니티 앱을 알려줬다. 그 앱의 게시판에 종종 무료로 또는 약간의 보수만 받고 강아지를 산책시켜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앱을 다운받고 자정 무렵 강아지 산책을 같이할 사람을 구한다고 글을 올렸다.
다음 날 오전에 확인해보니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닉네임이 크림이었다. 크림님의 프로필은 생크림이 잔뜩 든 빵의 단면과 커피가 같이 찍힌 사진이었다. 인사를 하자 곧 답장이 왔다. 오래 길러온 강아지가 있는데 얼마 전에 죽었고 아직 새로운 강아지를 기르고 있지는 않지만 치약이와 같이 산책하고 싶다고 했다. 늦은 시간인데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크림님은 잠이 없는 편이라 괜찮다고 답했다. 비도 그쳤으니 오늘 밤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떠세요?라고 묻자 크림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크림님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마르고 작고 어려 보였다. 왜인지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도 가늘고 멋쩍은 듯 웃으며 하는 인사도 어색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크림님은 치약이에게도 인사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치약이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낯을 별로 안 가리네요. 크림님은 치약이를 능숙하게 만졌다. 치약이가 쪼그려 앉은 크림님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강물이 불어났다. 그 기사 때문인지 장마 때문인지 산책로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가 커서 처음에는 크림님이 내게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치약이는 몇살이에요? 네? 치약이, 몇살이에요? 유안이 두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던 치약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려 했다. 유안이 그때 만나던 남자친구가 애견숍에서 치약이를 사서 선물로 주었다. 유안은 강아지를 작은 유리상자 안에 가둬두고 전시하는 애견숍들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치약이를 보자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유안은 언제나처럼 예뻤고 양꼬치에 꽂혀 있었고 막 취직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던 스물서너살 무렵이었다. 그게 벌써, 십년도 더 전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나도 스물서너살이었을 것이고 지금과 비슷한 혹은 더 나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을 것이고 유안을 따라 양꼬치를 많이 먹었을 텐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아직 할아버지는 아닌데 치약이 귀가 잘 안 들리나봐요. 크림님이 말했다. 네? 나는 치약이 산책줄을 무의식적으로 당기면서 말했다. 치약이가 힘을 주고 앞으로 나가서 줄이 풀려 나갔다. 걷는 것을 보니까 균형감각이 좀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귀 문제인 거 같아요. 냄새는 잘 맡는 거 같고. 나는 병원비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 하나 찍는 데 오만원인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유안이 해준 적 있었다. 내가 데리고 있는 동안 병원비는 내가 내야 하는 걸까? 나 때문에 아픈 것도 아닌데? 그건 아니겠지,라고 나는 생각하다가 그래서는 안 되지,라고도 생각했다. 마음이 딱딱해져서 조금 빨리 걷자 치약이가 멈춰 섰다. 크림님이 치약이를 품에 안았다. 치약이 고집 있어요. 내가 말하자 똑똑해서 그래요,라고 크림님이 말했다. 크림님의 품에서 치약이는 잠이 들어버렸다. 이런 적 없었는데. 내가 말하자 크림님이 낮은 목소리로 잠깐 쉴까요,라고 말하며 근처 벤치로 가서 앉았다.
검은 강물에 가로등 불빛이 부서졌다. 우리는 말없이 강을, 가로등을 또는 건너편 강변을 가끔 지나다니는 그림자들을 봤고 이따금 치약이를 쓰다듬었다. 하품이 나왔다. 피곤하세요? 크림님이 물었다. 일하고 오는 길이라서요. 내가 말했다. 산책을 매일 하세요? 크림님이 또 물었다. 어떤 일을 하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웬만하면 매일 하려고 해요. 내가 말했다. 매일 무언가 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크림님이 말했다. 네? 내가 되묻자 크림님은 또 말했다. 매일 할 일이 있고 그걸 한다는 거요. 그게 좋은 거 같아요. 보통 다 그렇지 않나요? 내가 말했다. 매일 적어도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뭘 먹고 씻긴 하잖아요, 누구나. 누구나 그렇지는 않아요. 크림님이 말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내일도 산책하시나요? 크림님이 또 물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그럴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내일도 산책 같이해도 될까요? 크림님이 물었다. 그럼요, 나는 답했다.
*
내가 일하는 샌드위치 가게에는 올 때마다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이 있다. 빨간 뿔테 안경을 쓴 남자 손님으로 언제나 ‘구운 닭가슴살 샌드위치’에 오이와 피클을 빼고 소스는 허니머스터드만 뿌렸다. 그 손님에게 샌드위치를 전해주면서 구운 닭가슴살 샌드위치, 오이, 피클 빼고, 허니머스터드 맞으시죠?라고 물었다. 손님은 카드를 나에게 건네다 말고 나를 바라보며 그건 제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라고 말했다. 그럴 리가. 나도 그 손님을 쳐다봤다. 빨간 뿔테, 맞는데.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한 지난 이년 동안 단 한번도 그 손님은 다른 메뉴를 시킨 적이 없었다. 네? 내가 되묻자 그 손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구운 닭가슴살이 아니라 치킨으로 주문했는데요. 아까 확인하셨잖아요. 제가요? 그 손님의 주문을 받았던 게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손님은 내 대응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지금 제가 우긴다는 거예요? 나는 우선 죄송하다고, 다시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다. 그 손님은 계속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기본도 안 돼 있네, 기본도.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서 물도 마시고 뭐라도 먹고 치약이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일어날 수 없었다. 크림님이 오늘은 몇시에 볼지 채팅을 보내왔다. 나는 오늘은 산책을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크림님이 피곤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 제가 치약이를 데리고 다녀올까요? 크림님이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봤다. 나는 크림님의 본명도 모르고 사는 곳도 전화번호도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크림님이 걸음이 빠른 편이라는 것과 브랜드 운동화가 종류별로 있다는 것, 발목에 다비드별 모양 문신이 있으며 한달이 넘도록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일 나와 치약이와 산책을 했다는 것뿐이었다. 치약이가 캉, 하고 짖었다. 나는 얼른 집으로 오실 수 있냐고 물었다.
크림님에게 주소를 알려주자 십분도 안 돼서 건물 앞으로 왔다. 치약이를 크림님에게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집에 오랜만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천장만 쳐다봤다. 벽 너머 옆집에서 여자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헐떡이고, 소리를 질렀다. 포르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옆집 사람은 여자였는데 가끔 포르노를 틀어놓고 요란하게 자위를 했다. 자위하는 게 자랑스러운가? 왜 이어폰을 끼지 않지? 벽을 칠까 매번 고민했지만 늘 내가 이어폰이나 귀마개를 끼고 말았다. 유안은 내게 또 그런 소리가 들리면 반야심경을 크게 틀어놓으라고 조언해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반야심경을 검색하려다가 타임세일 광고 알림을 보고 들어가 세일하는 운동화를 하나 샀다. 그러고 보니 치약이는 지금쯤 크림님과 첫번째 다리 밑을 지났겠구나 생각했고 유안에게 치약이 귀가 안 좋은 것 같대,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휴대폰이 울려서 눈을 떴을 때는 날이 밝았다. 유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았다. 유안은 치약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오전 중에 우리 집에 잠깐 들르겠다고 말했고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래,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치약이가 없잖아,라는 생각은 침대에서 일어나서야 들었다. 나는 바로 앱으로 들어가 채팅 창을 열었다. 어젯밤에 치약이를 데리러 온 이후 크림님에게서는 아무런 문자도 없었다. 크림님에게 어디시냐고, 치약이 잘 있냐고 채팅을 보냈지만 삼십분이 지나도 읽지 않았다. 어제 씻지 않아서 머리가 무거웠고 냄새도 나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유안이 문을 두드리고 나 왔어,라고 조그맣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나는 크림님 어디세요?라는 내 메시지만 떠 있는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크림님이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유안을 직접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유안이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가장 몸이 약할 때는 바이러스가 걱정되어 보러 갈 수 없었고 유안이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온 후에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같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가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유안이 아직 아이를 임신 중일 때 배가 아주 약간 부풀었을 때 숄더백에 핑크 리본을 달까 말까 고민하던 때, 일년도 훨씬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때 유안은 임신성 고혈압이 왔다고 했고 내게서 자꾸 알 수 없는 음식 냄새가 난다고 했다. 샌드위치 가게의 온갖 재료들이 내뿜는 어떤 냄새가 내 몸에 배어버렸겠지. 유안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자기가 그저 모든 음식 냄새에 예민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물론 상처받지 않았다. 유안이 자기중심적인 것은 당연했다. 유안 같은 삶을 산다면 그렇게 되지 않기가 더 어려울 테니까.
나는 거울을 잠깐 보고 얼굴이 부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유안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장하지 않아도 깨끗한 피부와 결 좋고 잘 관리된 긴 머리, 눈꼬리가 긴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유안이 나를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 바로 내 어깨 너머로 원룸을 살펴봤다. 치약이는? 유안이 물었다. 치약이는, 산책 중이야, 나는 말했다. 산책? 유안이 물었고 나는 유안이 보내준 기사와 크림님과 빨간 뿔테 손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안이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최대한 자세히 말하려 했다. 유안이 보내준 기사를 보고 혼자 살며 애인도 안 사귀던 여자가 강변에서 토막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과, 산책을 못 갈 때 치약이가 짖어서 받은 옆집 사람의 쪽지와 크림님을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해서, 또 빨간 뿔테 손님이 구운 닭가슴살이 아니라 치킨을 시켰다고 말했을 때 단순히 착각을 했다거나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어떤 배신감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지만 유안은 우리 집에 처음 왔던 치약이처럼 원룸을 서성이면서 치약이를 찾는 듯이 뱅뱅 돌고 있었다.
나는 말을 멈췄다. 유안도 발을 멈췄다. 유안의 발아래에 치약이가 물고 놀던 악어 인형이 뒤집혀 있었다. 유안은 때가 타고 솜이 꺼진 인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우리 어릴 때 인형뽑기 열심히 했던 적 있던 거 기억나? 유안이 물었다. 인형뽑기 기계가 동네 골목마다 생겼던 때가 있었다. 유안은 인형을 잘 뽑았다. 내가 하나도 뽑지 못한 날엔 자기가 뽑은 인형을 전부 주기도 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언제든 다시 뽑을 수 있다는 듯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 유안이 말했다. 그냥 너랑 인형뽑기 하면서 학원 가기 싫다고, 영어 재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
그치, 그때가 좋았지,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때가 딱히 좋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이 별로 그립지 않았다. 아빠가 조기퇴직 후 치킨집을 시작한 때였고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아르바이트 직원이 사고로 다리를 절단했던 때였고 엄마, 아빠와 함께 그의 병실로 찾아가서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하소연과 원망을 가만히 듣고 오던 때였다. 당시 아마 열아홉 아니면 스무살이었던 아르바이트 직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그 모든 일들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자기 앞에 어린 여자애가 불편한 원피스를 입고 내내 서 있다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유안은 인형을 주워 들고 쓰다듬었다. 그애 기억나? 유안이 계속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 실종된 여자애 있었잖아.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2학년 때였나. 공장 옆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줄 알고 그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데리러 갔더니 없었다고. 그때 경찰이 우리 집에도 왔었다. 나보고 그애를 마지막으로 언제 봤냐고. 그애는 아랫동네에 살았고 우리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런 걸 물어보는 경찰이 우스웠어. 내가 경찰이었으면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우리 동네는 아랫동네와 완전히 달랐으니까. 브랜드 아파트단지가 있고 체육공원이 있고 문화센터가 있고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으니까. 범인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 중 하나겠지, 모두 그렇게 수군거렸잖아.
나도 기억났다. 경찰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학교에 갔을 때 모두가 그 여자애의 이름을 비밀처럼 속삭이고 학교 앞에 부모님들이 북적거리며 모여 있다 하나둘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가던 장면들. 그랬지, 사라진 여자애가 있었지. 내가 말하자 유안이 말했다. 그 여자애가 우리 동네 체육공원에서 발견된 것도 기억해? 나는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무언가를 봤을 수도 있었어. 그 공원에 거의 맨날 올라가서 줄넘기를 했거든. 엄마가 내가 매일 줄넘기를 해서 살이 빠지고 예뻐지면 인형의 집을 사준다고 해서. 그후로 나는 공원에 안 가고 아랫동네 놀이터에 가서 놀았어. 친구도 거기서 만들었지. 유안이 나를 봤다. 유안의 아름다운 눈매가 나를 보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유안이 인형을 치약이 방석 위에 놓았다. 집에서 크림님을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 같았다. 크림님을 만난 앱에 치약이 사진과 함께 강아지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나와 유안은 밖으로 나왔다. 정오가 되기 전이었는데 해가 이미 높고 컸다. 우리 집까지 십분 만에 왔으니까 아마 근처에 살고 있을 거야. 나는 말했다. 동네는 오래된 빌라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골목을 돌아다녔다.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치약이 사진을 보여주며 본 적 있냐고 묻긴 했지만 이렇게 해서 치약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유안도 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하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하고 있다는 것을 유안도 나도 알았다.
우리는 하천으로 갔다. 밤사이 비가 내린 모양인지 강물이 또 불어 있었다. 폭포라도 있는 것 같아. 유안이 말했다. 물소리가 컸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음악이 나오는 분수가 있긴 했다. 우리는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몇번 치약이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아무도 치약이를 본 적 없다고 했다. 지금 나와 있는 사람들은 밤에 강에 나오는 사람들과 매우 다른 사람들일 테니 당연했다.
우리는 많이 들어본 듯한 클래식이 나오는 음악분수까지 말없이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 더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붙잡고 치약이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유안은 가끔 햇빛에 눈이 부신 듯 눈을 찡그리거나 손차양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낮에 밖에 있는 거 오랜만이야. 유안이 말했다. 치약이 못 찾으면 어떡하지. 내가 말했다. 크림님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본 사람인데도 생김새를 재구성해보려고 하면 남는 이미지가 없었다. 못 찾으면, 못 찾는 거지. 유안이 자르듯이 말했다. 그럼 너는? 내가 묻자 유안이 다시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것까지 신경 쓰진 마. 유안은 나를 보지 않으며 계속 강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것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나는 뭘 해야 하는데? 너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인데? 나는 유안에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우리는 첫번째 다리를 지났다. 그늘이 서늘하게 우리를 갈라놓았다. 다시 해가 뜨겁게 부서져 내렸다. 점점 사람이 뜸해졌다. 길은 계속 강 상류로 이어졌다. 어? 유안이 손짓으로 강 쪽을 가리켰다. 사람이다. 유안이 말했다. 정말로 사람이 강에 있었다. 어떤 남자가 수영을 하는 것 같기도 허우적대는 것 같기도 한 몸짓으로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봤어? 뭘? 저 사람 웃고 있던데. 유안이 말했다. 설마. 내가 말했다. 진짜. 유안이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웃고 있었다고? 지금 떠내려가고 있는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내 말에 대답 없이 유안은 계속 걸어갔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크림님에게서 메시지가 왔을까? 나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물가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