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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성준 朴晟濬
1986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몰아 쓴 일기』가 있음. a18000w@naver.com
왜 그것만을 요구하지 못했을까
말이 필요한 날이면, 울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불을 깊숙이 뒤집어쓰면 더 좋은 꿈을 꿀 수 있을까봐 꿈을 꿀 수 있을 때까지 살을 만졌고 간혹 썩 좋지 않은, 나의 과거도 인간의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용서라는 단어를 배우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중력이 위험한 나날들
주사위가 추락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유령을 나눠가진 공동체
철 조각 씹는 맛이 났다
불쾌는 법이자 구속이라고 했다 날씨가 필요했다 의문을 내려놓기 전까지만 걷잡을 수 없이 또 그 육체는 솔직해져갔다
그해 여름 이웃에게 평판 좋고 친절했던 아들은 어머니의 목을 졸랐고, 옆집에 사는 중국 여자는 강간을 당했다 완강하게 저항했던 그 소리들을 오해하면서, 나는 수차례 자위를 하다가 잠이 든 적도 있다
몸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멈추고 만 것처럼
인파 속에 종종 어깨를 묻으면, 묻고 싶은 질문들도 때마침 사라져갔다 모두 내가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나를 떠났다
이별에는 질량보다 질문이 필요했을까
때때로 뜻하지 않은 슬픔 때문에 뜻을 갖게 될 때
울음을 그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할 몹쓸 선악을 믿고 싶을 때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싶다
이제야 그리운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 없이도
인연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라면을 끓였다 달걀은 풀지 말아달라고, 친구는 내게 부탁한다 봉지 속에 면발을 사등분으로 부술 때마다 경미하게 눈가가 떨려왔다 가벼웠던 종교만큼 당혹은 겸손이었고 다시 비밀이었다 그게 누구였냐고, 왜 그랬냐고, 물으려다가 가위로 얼린 파를 싹둑싹둑 자른다 양은 냄비의 뚜껑을 덮고 온몸에 열이 돌 때쯤에도 도무지 친구가 무섭지 않았다 고백이란 늘상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죽였다는 그 손 또한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질투가 필요했다 이따금씩 서로의 눈을 찾아오는 짐승들에게도 얼룩을 허용해야 했다 라면이 다 익을 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상관이 없어진다 의심이 있었고 또 의심도 없었다 단지 라면이 매웠을 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공포가 난투처럼 창을 만든다 서로의 얼굴에 환하게 솟구치는 천국이었다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