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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대선 이후 촛불의 갈 길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
역사적 평가와 재구성의 길
윤영상 尹永商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노회찬재단 운영위원,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원 역임.
yzeroup@hanmail.net
1. 시작하며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보정치의 위기는 현실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패배와 국민의힘의 압승,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의 존립 위기로 간단하게 진단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 속에서 대안적 정치의 부재, 진보정치의 위기를 발견한다. 진보당의 약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정의당의 쇠락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문재인정부의 실패와 정의당의 쇠락에서 논란의 여지없이 이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진보정치에 대한 어떤 환상도 미안함도 갖고 있지 않다. 진보정치는 혐오스러운 한국정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민주당이나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등 진보정치세력들 내에서는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소속집단의 이익과 가치에 매몰된 토론 경향이 나타나는가 하면 윤석열정부의 무능과 한계로 인한 반사적 이익을 강조하거나, 당면투쟁에 집중할 필요성을 내세우며 반성과 평가를 소홀히 하는 모습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나 낡은 관성적 사고에 사로잡혀서는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로 인해 진보정치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무게와 국민적 고통이 얼마나 더 가중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진보정치의 의미와 역사적 변천
(1) 진보정치의 한국적 맥락
진보정치의 위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사실 무엇이 진보정치냐에 대해서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유럽식 개념에서는 이념 중심의 좌파적 관점을 중시한다. 이때 ‘진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한 대안적 이념—즉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과 관련되어 있다. 미국식 진보 개념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진보를 의미한다.1 고전적 자유주의를 존중하면서도 빈부격차, 소수자 투표권, 잠정적 우대조치, 동성애·난민 정책 등에서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과 확연하게 구분된 공공적 접근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기본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개념이다.
과연 우리가 말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진보, 진보정치는 어떤 의미일까? 학자나 평론가들마다 다른 개념을 사용해 경우에 따라 유럽식 관점이나 미국식 관점으로, 혹은 그 둘이 섞여서 표현되기도 한다. 이때 놓치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의 역사적 맥락이다. 한국정치에서 진보와 진보정치의 개념은 무엇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양김씨(김대중 김영삼) 등이 주도하는 제도권 야당과 구별되는 재야, 민족민주운동, 민중운동을 ‘진보운동’ ‘진보세력’으로 규정해왔던 역사적 맥락이 있고, 대중들도 그에 더 익숙하다. 그러한 한국적 맥락을 무시하면 설명에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2) 진보정치의 성장신화2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제도권 야당과 구별되었던 진보진영은 198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양김에 대한 입장 차이로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독자후보론으로 분화된다. 야권 분열로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런 흐름은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발전한다. 독자정당, 합법정당, 진보정당이라는 말이 뒤섞여 사용되는 과정에서 ‘진보’라는 말도 점차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들 사이에는 많은 견해 차이가 있지만, 진보정치나 진보정당에 대한 개념 인식은 유사했다. 이때의 진보정치는 양김에 대한 비판적 입장,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철저한 민주개혁,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의 삶에 대한 중시, 자주와 평화에 근거한 통일 강조 등을 의미했고, 진보정당은 양김의 정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합법정당을 가리켰다.
92년과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진보정치세력은 소위 비판적 지지론과 독자후보론으로 크게 양분되었다. 이 둘 모두 김대중 후보를 보수적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3 그러한 인식을 전제하되 진보정치세력의 성장을 위해 김대중 후보와 연합할 것이냐, 별도로 독자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할 것이냐 하는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그 바탕에는 한국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민주대연합과 민주개혁 과제를 중시하느냐, 노동운동 등 대중운동의 발전과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을 통한 진보적 사회대개혁 추진을 중시하느냐가 그것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과정은 과거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를 포함하는데, 무엇보다 과거 비판적 지지와 독자정당론으로 나뉘었던 인적 자원 및 집단이 뒤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 움직임에 부정적이었던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해 인천연합·울산연합 등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역조직 다수와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대중운동조직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다. 또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4에는 소위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상당수와 주요 시민단체 간부 출신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중 많은 이들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NL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PD 계열 혹은 80년대 운동권 내 정파 갈등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도 다수 포함되었다. 학생운동 출신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적 지지론의 주류세력을 대체, 흡수하는 모습은 특히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진보정치의 성장 과정에서 2004년 총선은 의미가 각별하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논쟁을 넘어, 진보정치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정치적 진출이 돋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10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해내면서 87년 이후 최초로 원내 진출하는 진보정당이 되었다. 노회찬 의원과 같은 ‘스타’의 탄생은 진보정치에도 운동권 정파를 넘어선 대중적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이라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만들어냈고, 8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 다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민주노동당이 기존의 논쟁을 뛰어넘는 진보정당의 상징이 되고, 열린우리당은 민주진보세력의 새로운 아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를 전후로 정치권과 언론, 여론조사기관에서 진보, 진보정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르게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두 당을 중심으로 진보라는 단어가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에서는 보수와 중도, 진보를 구별하는 패턴을 보였다. 바야흐로 진보 개념의 확대, 진보정치의 경쟁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3) 성공과 동시에 찾아온 진보정치의 위기
진보정치의 위기는 무엇보다 대중적 위기를 말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성공과 함께 찾아왔다. 2007년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역사상 최악의 패배5를 경험했다. 민주노동당은 2003년 대선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 안고 분당 위기에 처한다.
앞선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승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반동적 행위를 추진했던 세력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결과물이었지만, 당시 운동권 출신 당내 인사들은 이를 자신들의 성공으로 간주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대연합론의 상징이었던 김근태 의원, 그리고 ‘탄돌이’(탄핵 역풍을 타고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로 불렸던 108명의 초선의원들은 민주대연합을 실현할 일관되고 통일된 개혁 전략과 정책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비판적 지지와 민주대연합론을 10년 이상 주장해왔던 역사에 비추어볼 때, 그 내용의 빈곤함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 고(故) 노회찬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를 ‘길 가다 지갑 주운 격’으로 비유했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108 번뇌’라는 자조적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대북송금 특검, 핵폐기물처리장 논란, 4대개혁 입법 추진, 대연정 제안, 한미FTA 추진, 강정해군기지 결정, 부동산 가격 폭등 등 당시 정책 쟁점들 속에서 그 실상이 잘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노무현식 진보 개념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고, 열린우리당을 넘어 진보진영 전반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한나라당의 필사적 저항과 대중의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정책적 능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진보정치의 한 축이었던 비판적 지지와 민주대연합론의 노선과 정책이 완벽하게 무력화되는가 하면, 노무현식 진보 개념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노무현정부 중반 이후 그 많던 정부 산하 위원회들이 힘을 잃으면서 대부분 영역에서 관료들이 정책적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2007년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늘어나고 민주당, 한나라당 탈당파들까지 참여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을 흡수하는 과정은 진보정치의 퇴행과 반동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의 패배는 그에 대한 참혹한 대중적 평가를 의미했다. 민주당 내 진보정치는 당위와 현실의 접점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이전부터 예고되었던 자주파(NL 계열)와 평등파(PD 계열)의 갈등이 전면화하면서, 대중적 요구보다는 운동권 정파의 필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심회사건, 북핵 문제 등에 대한 당의 주장과 메시지의 혼선이 심각한 와중에 정치적·정책적 성과들은 실종되어갔다. 2005년 보궐선거 및 2006년 지방선거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반성과 혁신을 요구했으나, 당을 주도하고 있던 정파들은 이를 외면했다. 특히 2007년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정파 간 담합에 의해 대중적 지지가 높은 후보(노회찬)가 1위에서 꼴찌로 추락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소탐대실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성장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이 준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4) 흔들리고 분화되는 진보정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2008~2017년)은 한국 보수의 재정립 과정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시 정권을 뺏기지 않을 안정적 지지기반을 만들려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보수의 혁신적 재정립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퇴행적 수단들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무너진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이후 민주당은 2015년 더불어민주당이 등장하기까지 6차례에 걸친 당명 변경과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보수 및 중도 성향의 정치세력들이 들락거리며 당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대의명분보다 정치공학이 민주당을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사망이 없었다면 민주당은 더 처참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친노세력이 민주당의 주류로 등장하고, 노무현식 진보 개념이 한동안 민주대연합론에 근거한 민주당 정책의 중심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리는 진보정당의 또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던 노동자 중심의 진보적 대중정당이 내부적 한계로 실패했음이 드러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단일 진보정당의 구심력이 약화되면서 민주노동당·진보신당·녹색당 등 다양한 진보정당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후 전통적인 NL 계열이 잔존하던 민주노동당과 서구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진보신당 탈당파, 친노 성향의 국민참여당이 결합해 만들어진 통합진보당 역시 과거 민주노동당과는 다른 정체성을 형성했다. 진보정당의 외연이 확대되었으나 모든 세력을 망라하기는 어려웠다.
비례대표 선거부정 논란을 거치면서 통합진보당에서 분리한 정의당(당시 진보정의당)은 극단적인 NL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적어졌을 뿐, 애초 통합진보당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후 노동당 이탈 세력, 민주노총 일부 세력이 정의당에 합류하면서 다시 노동 중심 정체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해지는가 하면 페미니즘 경향도 생겨 정의당의 정체성은 한층 복잡해졌다. 결국 서로 다른 정체성을 추구하는 세력 간의 갈등은 정의당 정체성 논란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이질성을 조율할 수 있는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과 같은 리더십이 붕괴된다면 당의 존립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5) 촛불 이후의 진보정치: 진보정치 위기의 실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의 자멸이자 시민의 승리였다. 그러나 촛불항쟁의 성과는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에 의해 선택적으로 전유되었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치세력 역시 자의적 방식으로 촛불의 성과를 해석하고 활용했다. 촛불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촛불연합은 한국정치를 변화시킬 새로운 정치의 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진보정치세력의 무능과 ‘내로남불’은 대중적 비판과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그 반작용으로 윤석열정부의 출범이 이루어졌다.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민주당과 진보정당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여러 정책들을 국정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위원회 중심의 노무현정부와는 다르게 문재인정부는 문재인표 진보정책을 통해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는 듯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고,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은 방향과 목표를 잘 설정했으면서도 다른 정책들과의 조율 및 속도 조절에 한계를 드러냈으며, 부동산 문제는 24차례나 대책을 쏟아냈음에도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민심이반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면서 문재인표 진보정책의 무능과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6 중요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 대중적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런 만큼 정책의 한계와 실패에 대한 논의도 단지 정략적 차원을 넘어 대중적 논란으로 전면화되었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치열한 문제제기가 정치화되기 시작했고, 소위 현실타당성을 둘러싼 대중적 평가 또한 확산되었다. ‘진보’정책의 한계와 ‘진보’정치세력의 무능함7이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서민을 위하려 했던 정책이 서민의 발목을 잡고, 분노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정책적 문제만이 진보정치세력의 무능력과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변화와 진보’를 앞세웠던 사람들의 삶과 도덕성을 둘러싼 논란이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할 것 없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미투운동과 조국사태, 그리고 586 기득권 논란 등 진보정치세력의 ‘내로남불’은 대중적 분노의 화약고가 되었다. 보수정당과 언론의 정략적 공세에 말미암은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실질적 파장이 상당했다. 그러한 도덕성 공격이 민주진보진영의 도덕정치와 만나면서 도덕의 과잉정치화, 선택적 정치화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치열한 논쟁과 진지한 모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론장이 닫히고 토론은 차단된 채 정치적 공방전과 진영논리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잉정치화된 도덕 논란을 넘어서는 수준 높은 정치담론은 부각되지 못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들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도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등의 대안적 접근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에서 얼마간 존재감이 드러났을 뿐이다. 문재인정부와 다른 진보적 성장론, 진보적 부동산 대책, 진보적 노동 정책이 무엇인지도 부각되지 못했다. 문재인정부와 동일한 문제점과 한계를 갖고 있었거나 정책적·정치적 대안이 없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정치적 다양성 보장과 정치제도 개혁을 선도했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무상급식·무상교육 등 진보적 가치를 부각한 무상 시리즈, 서민 삶의 실질적 개선을 이끌어낸 상가임대차보호법, 노동자 지역거점 확보를 통한 대중적 접근 전략 등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열린우리당을 압도했던 정책적·정치적 능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3. 시대적 과제와 진보정치의 혁신 논란
(1) 시대적 과제와 진보정치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상황은 복합적이다. 한편에서는 경제성장, 민주화 성취, 한류 열풍 등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자긍심이 자리 잡고 있지만,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시대적 위기와 혼란에 대한 대응 능력의 부족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가 무능하면 시장원리, 기술주의, 미국 중심의 강대국 질서 편승론이 한국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치열한 경쟁과 대결 논리가 지배하고, 전쟁과 혼란의 위험이 부각되는 고도 위험사회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 다수를 이루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들은 생존의 위기, 삶의 위기에 내몰리고, 복지와 연대의 체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적·국제적 갈등이 특히 첨예하게 얽힌 한반도에서는 전쟁과 혼란의 야만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진보정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이런 시대적 현실에 대한 통찰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한반도의 구조적 현실을 외면하는 근본적·급진적 개혁과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70여년이 넘는 전쟁질서와 핵군비 경쟁 및 한미동맹, 세계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부침을 겪는 경제 문제, 30% 이상의 강고한 대중적 기반을 유지하는 보수정치 등의 구조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근거한 전략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구조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진보정치의 능력 또한 그런 시대적 상황에 맞서 문제해결을 선도할 정책을 개발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특히 통찰력 있는 정치지도자와 전문가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때도 정치적 힘은 대중적 지지로부터 나온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지지뿐 아니라, 선거에서 패배하고 권력을 잃었을 때도 반동적 회귀를 막아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뛰어난 정치지도자 한두명의 존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런 세력과 정당을 만들어내야 가능한 일이다.
(2) 민주당과 정의당의 혁신 논란
그렇다면 현재의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가? 그 답은 다양하지만 민주당 스스로 민주와 진보를 말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을 진보정치에서 아예 배제하거나, ‘민주’당이지만 ‘진보’정당은 아니라는 식으로 차단하는 것이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을 더 민주적으로, 더 진보적으로 만드는 것이 진보정치를 확대하고 한국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민주당의 혁신 논란 속에 소위 ‘586 용퇴론’이 있다. 기득권의 상징이 된 586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97세대론’(90년대 학번·70년대생이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세대론)의 등장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대론은 세대 전체를 배제하는 비합리성은 물론, 반성과 혁신의 내용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정책들을 한국적 현실에서 재해석하고 통합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인권·경제·복지·외교·안보·평화·통일 영역에서 그가 만들어낸 족적은 현재의 민주당을 만들어낸 기초이다. 그의 장점을 계승하고 단점을 보완하려 노력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면서 자기만의 진보 개념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했다. 노무현식 진보 개념은 김대중에 비해서는 유럽식에 더 가까웠고, 영국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제3의 길’ 노선과도 많이 닮아 있다. 586이든 97이든 세대를 막론하고 현재 민주당의 주도세력이 김대중·노무현처럼 치열하게 현실과 대면하며 자신만의 진보적 비전과 가치,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의 유산이라 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자구(字句)를 내세워 애매모호한 중도통합, 국민통합 정당을 주장하는 것이 고작이다. 문재인정부 5년의 경험은 무늬만 진보, 관성적 진보가 얼마나 큰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고민, 미국식 사회적 자유주의의 고민처럼 한국 현실에 기반해 평화와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 민주당식 진보의 길을 제시할 수는 없는가? 진보적 가치와 정책의 현실타당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민주당식 진보를 이루어가야 하지 않는가?
예컨대 현재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은 미국 민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를 수용한 것이고, 권리당원제도는 유럽 진보정당의 진성당원제도에 근거를 둔 것이다. 국민여론을 중시하는 미국식 원내정당 개념과 진성당원의 적극적 참여에 바탕을 두면서 이념적 선도조직 역할을 하는 유럽의 이념정당 개념이 뒤섞여 있다. 민주당의 영향을 받은 국민의힘은 그 장점을 수용해 당대표 선거나 공직후보 선출 과정에서 당원의사 50%, 국민여론 50%와 같이 깔끔하게 조율하고 있는 반면, 정작 그것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던 민주당은 중앙위원, 대의원, 권리당원, 일반당원의 의사를 차등 적용하고, 국민여론 반영 비율도 현격하게 축소시켰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적 제도들이 민주당 내에서는 당내 기득권질서 유지를 위해 기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계파중심정치로 과두화(寡頭化)되고 있는 민주당을 더 민주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돌려놓아야 한다.
존립 위기에 처한 정의당의 반성과 평가 논의는 안타깝다. 민주당과의 연합을 강조하려거든 아예 당을 떠나라는 말이 당내 고위직 인사들 사이에서 가감 없이 흘러나온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나가라는 폭력적인 언사로 비춰진다. 전형적인 ‘뺄셈의 정치’다. 과연 정의당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정의당의 위기는 대중적 위기이고, 지지율의 위기이며, 곧 선거에서의 위기이다. 심상정 의원 책임론이나 지도부 책임론, 심지어 비례대표 의원들 책임론마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선거 위기, 지지율 위기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의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러나 인적 책임만을 강조하면 정작 평가되고 토론되어야 할 본질적 문제들이 은폐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정의당이 당의 존립을 걱정할 정도로 선거에서 패배한 일차적인 요인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한 미숙한 대응에 있다. 조국사태에 대한 입장이나 미투사건 및 페미니즘 문제, 노동정치의 부재도 문제지만, 그것을 결정적 요인으로 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양당제를 비판하며 다당제를 주장하는 정의당의 ‘연합정치 능력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2중대’여야만 민주당과 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치적 사안과 성격에 따라서는 연합과 협력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정의당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이고 이익이다. 정의당의 가치를 지키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연합과 협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난 대선 및 지선에서 정의당은 무조건 협력 반대, 단일화 반대라는 아마추어적 접근에 사로잡혔다. 따라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한 일차적 영역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에 대한 후보와 지도부, 의원단의 입장과 태도여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주목하는 두번째 문제는 주요 현안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과 메시지이다. 조국사태나 대장동 문제 등 중요한 정치 현안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면충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의당은 두 당 중 어느 쪽의 입장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국사태 때는 우왕좌왕하다 민주당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고, 대장동 문제는 국민의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논란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안에 관련한 정의당의 가치와 정책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정치 현안은 하나의 쟁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실관계를 둘러싼 복수의 쟁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차원의 가치판단이 얽혀 있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그것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프레임에 맞춰 단순화하고, 제3자 및 국민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따라서 정의당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양당의 프레임을 넘어 현안을 둘러싼 사실 문제, 가치 문제를 평가하고 독자적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현안 대응에서 가장 많이 강조했던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결국 조국사태나 대장동 문제에 있어 당 안팎에서 끝없는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연합정치나 현안 대응을 둘러싼 정의당의 혼란 상황 이면에는 아마도 당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다른 진보 개념을 주장하며 한 지붕 아래 모여 있지만, 지금 정의당은 그 입장을 조율할 리더십이 붕괴된 상태고 각 세력은 서로를 경원시하고 있다. 과연 정의당은 어떻게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갈 것인가? 정의당의 미래는 민주당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또 진보당이나 녹색당, 민주노총 등의 입장과 태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의당 스스로 자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며, 이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더 민주적·진보적이 된다면, 그리고 정의당이 연합정치를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한국의 진보정치는 역동적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보당·녹색당·노동당·기본소득당, 나아가 언젠가 더욱 힘있는 주체로 등장할 페미니즘당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경쟁과 협력의 정치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4. 정치교체와 진보정치의 발전
(1) 정치제도와 진보정치: 양당제와 다당제를 둘러싼 논란
한국은 해방 이후 독재와 민주의 오랜 양자 대결구도 속에서 양당제적 질서가 정착되어온 정치문화가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일시적으로 존재하던 4당체제는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양당제적 틀로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다만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보수와 자유주의(진보)적 요소가 결합된 한국식 양당제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극한투쟁을 일상화하며 사회 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양당제에 이념적·지역적 균열의 조짐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념적 측면에서 균열의 기회를 마련했던 민주노동당은 주체 세력의 한계로 좌절했고, 호남 지역정치의 균열을 이끌어냈던 국민의당과 민생당도 결국 좌절했다.
양당제와 다당제는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소선거구제를 기초로 선거구별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를 당선자로 정하는 ‘다수대표제’는 양당제에 기여하고, 중·대선거구제를 토대로 여러명을 당선자로 하는 ‘소수대표제’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에 기여한다. 이것이 정치학 교과서의 기본입장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다양한 시민들의 주장과 요구를 더 잘 반영하지만, 대중적 참여와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데는 다당제보다 양당제가 효과적이다. 따라서 ‘양당제는 악이고 다당제는 선’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양당제와 다당제의 장점을 수렴하는 한국적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다수대표제하에서도 다당제는 가능하며, 소수대표제하에서도 양당제 혹은 양대 연합정치가 가능하다. 프랑스의 사례가 이와 같은 수렴형 제도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결합하고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는 제도의 장점만큼이나 정당과 정치인, 시민들의 정치문화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즉 다당제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정당과 시민들의 정치적 수준과 문화도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양당제적 정치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당제적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양당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서 다당제의 가능성을 높여나가되, 더 폭넓은 차원의 변화도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준 높은 연합정치 능력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이는 비단 다수파만 아니라 소수파에게도 중요하다. 다수파는 입법이나 선거 같은 결정적 순간에 소수파의 지지를 얻으려면 평상시 소수파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소수파는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정책 결정과 선거의 향배를 좌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2020년 총선의 위성정당사태는 다수파가 소수파를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이고,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했던 정의당의 대응은 소수파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2) 진보의 재구성과 정치교체
진보적 정책과 기존 질서를 조율하는 문제는 진보정치의 단골 쟁점이자, 핵심적 고민 지점이다. 정치질서의 근본적 변혁이 쉽지 않은 현실이므로 선거를 통한 집권 및 정책 실행의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진보적 가치와 정책들의 현실적 근거를 복원하고 합리적 토론과 검증 문화가 부활되어야만 진보정치의 설득력이 높아지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진다. 진보적 정책들을 생산하고, 그것과 기존 정책들의 관계를 조율하며, 새로운 질서를 확대하는 수준 높은 정치적 능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대중적 반발 속에 정당으로서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 권력의 향배가 좌우되는 현실에서 정책 실패는 곧 지지율의 하락과 표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보정치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적 가치와 정책은 언제나 갈등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관성과 당위가 치열한 실천적 모색과 연구, 토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잘못된 사실, 왜곡된 사례가 정책의 근거로 제시되는가 하면 당위가 토론을 가로막기도 했다. 또 진보적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는 강하지만 현실적 저항을 의식해서 알맹이 빠진 정책들, 소위 ‘무늬만 진보’인 정책을 남발한 결과 엄청난 후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운송 서비스 ‘타다’에 대한 규제처럼 성과와 업적에 대한 강박 때문에 다른 정책과의 균형이나 변수를 조율하지 못한 채 밀어붙이다 논란을 키운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수능 절대평가처럼 현실 고려 없이 당위만으로 밀고 나간 사례가 있는가 하면, 북한에 대한 국가 승인을 방해하는 현행 헌법의 개정 및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처럼 당연한 현실의 요구이자 반드시 필요한 정책임에도 정쟁과 논란을 의식해 회피한 사례도 있다.
정치는 치열한 갈등의 산물이다. 민주정치는 폭력적 갈등 해결이 아니라,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민주적으로 갈등을 전환해내면서 갈등 해결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공존의 기초를 확인하면서 합의를 모색하고, 그것이 어려우면 다수결을 통해 의사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정치는 선거를 통한 공직 선출, 의회를 통한 법제도 결정이라는 형식적 민주절차만 남아 있고, 사실상 전쟁이나 다름없는 격렬한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대중적 상식이나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로 우기기’가 당연한 토론의 기술인 듯 부각되고, 진흙탕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정치적 생존능력으로 각광받으며, ‘가짜뉴스’조차 국회에서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도 좋다는 정치판의 현실인식은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따로 없다. 언론은 공론장의 역할을 상실했고, 국회는 숙의민주주의 공간이길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판은 결국 정치공학에는 능하지만 민생 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정치꾼들이 장악하고,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은 관료들에 의해서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료들과 재벌들의 논리는 이윤추구를 앞세운 기존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고,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퇴행적 법제화가 추진될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실패 과정에서 관료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기억하면서, 관료 주도의 정책 결정 과정을 압도하는 진보정치의 실력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의 재구성은 보수와 진보, 체제 내적 진보와 체제를 넘어선 진보의 공론장이 활성화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난다. 정당, 시민사회, 학계를 넘나드는 치열한 토론과 검증의 과정이 살아 있어야 정치가 바뀐다. 그것은 제도의 변화, 정치판의 변화를 넘어 정책 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세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일각에서 공화주의적 가치의 중요성이 언급되는데,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아우를 수 있는 공존의 기초, 공동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이익,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역동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면 자칫 낡은 기득권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공화주의가 현실의 법·제도, 지배적 질서와 도덕을 옹호하는 것으로 변질된다면 그것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공화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대안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뿌리 위에서 그 공존의 기초로서 사고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적 가치를 진보적으로 해석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보적 가치와 정책을 재구성하기 위한 토론이 훨씬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치열하게 현실과 대면하는 것만이 진보가 살아가는 생명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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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자유주의적 진보를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라고도 부른다.↩
- 진보 개념의 역사적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의 치열한 이념 갈등과 전후 조봉암의 진보당, 그리고 4·19 이후의 혁신계 활동까지를 검토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글에서는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부각되고 변화되어온 진보정치 개념에 초점을 둔다.↩
- 양김을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80년대 운동권 문서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된다. 87년부터 비판적 지지론을 선도해왔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이나 독자후보론, 진보정당을 추진했던 민중의당·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노무현정부가 등장하고 난 뒤 달라진다. 한국형 중도진보의 뿌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재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위 ‘국보급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주당 계열의 정당. 이로써 당시 민주당 계열은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으로 분화했다.↩
-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530만표 이상의 압도적 차이로 패배한다. 민주당 후보가 가장 큰 표 차이로 패배한 사례다.↩
- 부동산 정책 실패를 둘러싼 논란과 평가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연속된 실패로 부동산 정책이 진보세력의 정책적 무능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유세에 대한 미온적 태도, 시장과의 소통 부재 및 시장 현실에 대한 몰이해, 수요 억제 중심의 대책, 관료적 저항을 극복할 실력 부재 등을 핵심원인으로 분석한다. 무엇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정책적 판단력의 문제가 크다고 할 것이다.↩
- 진보정책의 한계와 무능함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진보정책이 충분히 진보적이었는가, 현실타당성이 있었는가, 진보정책과 다른 정책들을 조율하면서 집행할 실질적 능력이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