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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선임 鄭善任
1978년 인천 출생.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svet.novel@gmail.com
몰려오는 것들
수경은 다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도개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개교는 본래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를 대비한 것이지만 이 도개교의 목적은 달랐다. 언젠가 다가올 그때 아무나 함부로 섬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침 일곱시에 내려온 다리는 밤 열시가 되면 다시 올라갔다. 다리가 내려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십분. 다리가 완전히 내려오려면 아직 오분 정도 남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 안이 더웠다. 수경이 창을 내리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앞 차량 운전자가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수경은 창을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 이제 삼월 초인데 벚꽃은 이미 졌다. 사람들은 반소매를 입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날씨가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이었다. 가시거리가 길어서 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섬은 중절모처럼 생겼다. 실제 중절모를 닮았다기보다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삽화와 흡사했다. 그래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모양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섬이 한창 언론보도에 오르내릴 때도 섬의 지형을 모자나 코끼리, 뱀에 비유하는 기자들이 각각 나뉘었다. 수경은 그때그때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말하는 쪽이었다. 뱀은 어딘가 불길하지 않니. 아버지 노석은 가끔 못마땅한 듯 얘기했다. 중절모 챙의 양 끝 혹은 코끼리의 코와 꼬리, 그도 아니면 뱀의 꼬리와 머리 끝에서 넘실거리는 물에 시선이 닿자 수경은 고개를 돌렸다.
앞 차량 운전자가 꽁초를 던지고 출발했다. 뒤따라가는 수경의 뒤로 차량이 줄지어 따라갔다. 주말이어서 섬에 사는 부모를 찾는 이들이 더 많은 듯했다. 노석이 섬으로 이주한 것은 삼년 전이었다. 수경은 일년에 두세번 정도 섬을 방문했다. 다리는 섬의 중턱과 이어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검문소에서 신분증과 방문할 주소를 확인했다.
“1단지, 1001호요.”
수경이 대답하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수경은 스타벅스에서 드라이브스루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검문소 바로 옆에는 5층 규모의 복합쇼핑몰이 있었다. 1층에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GS25 편의점, 이마트가 들어서 있고, 층별로 중국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식점은 물론 미용실, 약국, 헬스장, 수영장까지 있었다. 검문소와 복합쇼핑몰을 지나 나뉘는 두 갈래의 길 중 거의 모든 차량이 우측의 오르막길을 택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수경도 오른쪽 도로로 진입했다.
도로를 따라 왼쪽은 상아색 담장으로 막혀 있었다. 마치 휴전선처럼 담장을 경계로 섬은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뉘었다. 담장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포세이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느 가족을 수경은 빠른 속도로 스치듯 지나갔다. 유명한 조각가를 고용하려 했지만 여의찮아 구청장의 친척이 맡게 됐다더라고 노석은 설명했다. 그 사람도 꽤 실력이 뛰어난 작가야. 수경은 노석이 자신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인 말을 떠올렸다.
나선형의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던 수경은 휴대전화 긴급재난 알림음에 흠칫 놀랐다. 해수면이 또 1센티미터 상승했다는 문자였다. 지역별 해수면 상승 수치와 수몰지역 피해 상황,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수경은 무심한 표정으로 확인했다. 십여년 전 코로나 감염병 확진자 수를 알려주는 긴급 알림이 일상이 됐듯 사람들은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씨 정보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이 섬은 본래 산이었다. 아직도 완전한 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섬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코로나 감염병이 잠잠해질 무렵, 3·19수몰사태가 일어났다. 며칠 후면 십주년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많은 양의 빙하가 녹으면서 세계 곳곳의 섬 수십만개와 대륙 일부가 사라졌다. 한반도도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다.
노석의 집은 주택단지 입구에 있었다. 코끼리의 머리와 등, 즉 두개의 봉우리가 시작되는 지점, 그러니까 섬의 상층부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 높은 담과 유럽풍의 웅장한 저택들, 그 성채와 같은 집들 사이에서 노석의 집은 가장 규모가 작았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였다. 노석은 집에 없었다. 수경은 작은방에 짐만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앞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가 옆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왜 아이들은 두고 혼자 왔냐고 의아해하면서도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바빠서요. 운전자의 무심한 대꾸가 이어졌다.
수경은 여느 때처럼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담장을 따라 한바퀴 돌 생각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두시간 정도 걸렸다. 노석은 담장 너머를 ‘저쪽’이라고 불렀다. 담장이 높아 저쪽은 보이지 않았다.
수몰사태처럼 급작스레 빙하가 녹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수면은 계속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셈이었지만 남은 시간은 각자 달랐다. 부호들은 산악지대의 땅을 사들였다. 바닷가 전망이 좋은 지역의 땅값은 떨어졌고 고도가 높은 지역은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지역마다 향후 몇년까지 안전한지를 추정했고 그 정보를 공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신문사가 단독으로 결과를 유출했다. 대부분 지역이 백년 이상을 보장할 수 없었다. 향후 오백년은 안전한 몇몇 지역들이 공개되자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이 섬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 살던 주민 대부분은 땅을 팔고 이사했다. 백여가구 정도 남았을 때, 새 땅 주인은 남은 주민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 오백가구를 지어 분양했다. 그사이 하나둘 보상을 받고 이사를 더 나가면서 열가구 정도만 남게 되자 도로를 따라 담장을 세웠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부조된 조각들 위에는 비둘기 떼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들개와 길고양이가 한동안 골칫거리였는데 대대적인 정비사업 이후 근방에서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비둘기는 쫓아내지 못했다. 쫓아낼수록 그 수는 이상하게도 자꾸 불어나기만 했다. 수경의 원룸이 있는 지역에도 비둘기 떼가 새벽부터 거리를 배회했다. 비둘기는 가끔 사람들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기도 했다. 아마도 배고픔을 참지 못한 탓일 거다. 이곳의 비둘기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였지만 수경은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릴 때마다 어깨를 움츠리며 걸었다.
한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은 까마귀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 부조된 담장 앞이었다. 구청장의 친척이라는 조각가는 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어른 주먹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구멍은 수경이 허리를 숙였을 때 눈높이 정도에 있었다. 수경은 섬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휴전선 너머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반대했고 구멍을 메워달라고 했지만 조각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놈의 작가정신은 무슨. 노석은 중얼거리다 슬쩍 수경의 눈치를 봤다. 수경은 소설을 썼다. 수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소설집을 한권 냈다. 이후에는 방송 원고, 에세이, 영화나 책 리뷰, 인터뷰 등 닥치는 대로 여러가지 글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노석이 소개해준 자서전 대필만은 응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이 산을 사들였던 부호였다. 이것저것 가리면 못 쓴다. 젊을 때는 닥치는 대로 해야지. 뭐든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살면 되는 거다. 노석의 말에도 수경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석은 한숨 끝에 덧붙였다. 제 엄마 닮아서 고집은.
수경은 한숨을 쉬며 허리를 굽히고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손질하지 않아 우거진 수풀과 건물 일부였다.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수경은 섬을 방문할 때마다 빠짐없이 이곳에 들러 저쪽을 쳐다보고는 했다.
수경은 잠시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쳤다. 그때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경은 숨을 죽였다.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고 느낀 순간 수경은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가 악,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물러났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검은 동공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뒤로 물러났던 상대방이 풀을 밟으며 다시 구멍 앞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경도 천천히 구멍 가까이 다가갔다. 구멍을 통해 바라본 아이는 열살 정도 되어 보였다. 수경은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안녕.”
아이는 대답이 없다.
“왜 울고 있어?”
아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한바탕 울 기세였다. 아차 싶었던 수경은 주머니를 뒤졌다. 밀크캐러멜 하나가 잡혔다. 수경은 구멍 안으로 캐러멜을 조심스럽게 들이밀었다. 아이는 울먹임을 멈췄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구멍 안으로 손을 넣었다. 캐러멜을 재빨리 낚아채더니 후다닥 달려갔다. 또래 친구는 있는 걸까. 삶보다 죽음 쪽에 가까워진 사람들은 더이상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반기지 않았다. 구멍을 벗어난 아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수경은 구멍 너머를 바라봤다.
집 앞으로 돌아오자 정원 안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노석의 모습이 보였다. 잘 정돈된 잔디밭 한가운데 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마치 교통사고가 일어난 사건 현장을 표시해두듯 하얀 페인트로. 주택단지 분양 당시 광고에서 특히 강조됐던 것은 묏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입주자들 대부분이 노인으로, 죽음이 머지않은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노후는 물론 사후까지 보장해줄 집을 원했던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석은 입주민이 아니라 1단지 관리인으로 주된 업무는 무덤 관리였다.
노석은 뒷짐을 진 채 생각에 잠겨 그 원을 따라 돌고 있었다. 수경은 담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 대문 앞에 멈추더니 음식을 담은 비닐봉지를 건넸다. 수경은 얼떨결에 받아 들었고 노석이 그제야 수경을 발견했다.
거실 탁자에 음식을 두고 마주 앉았다. 혼자서는 탕수육까지 시키기가 좀 그래. 노석의 말에 수경은 불편해졌다. 섬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고 했던 노석의 제안을 거절했던 터라 그 말이 질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수경은 TV를 틀고 옛날 예능 프로들을 방영하는 채널을 찾았다. 새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줄면서 재방영이 많아졌다. 화면 안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개그맨이 지금은 반쯤 사라진 섬에서 땀을 흘리며 돈까스를 튀겨내고 있었다. 다행히 노석이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노석은 본래 공무원이었다. 죽음의 등급을 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과 묻힐 곳을 결정하는 일을 했다. 죽음도 공평하지 않아. 노석이 취하면 가끔 술주정처럼 얘기하고는 했다. 은퇴했던 노석은 3·19사태 이후 다시 복귀했다. 수몰사고로 유해가 셀 수 없이 넘쳤기 때문이다. 땅의 면적이 줄어들면서 매장할 곳이 줄어들었다. 묘지도, 납골당도 부족했다. 퇴직한 이들로 특별팀이 꾸려졌다. 공로가 있는 사람들의 묘지를 안전한 지역으로 이장해야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발을 딛고 설 땅도 부족해지는데 죽은 사람의 자리까지 있어야 하냐며 논쟁이 벌어졌다. 노석은 논쟁이 쓸데없다 여겼다. 재력만이 제대로 묻히기 위한 유일한 기준이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별팀이 해산된 이후 부호와 친분이 있던 고위직의 소개로 노석은 이 자리를 얻었다. 노석은 수경에게 운이 좋았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거실을 둘러보면 노석이 근무시간 외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재미를 붙인 취미는 분재인 모양이었다. 수경은 그 취미가 마땅치 않았다. 왜 굳이 넓은 땅에 뿌리 내린 식물을 데려다 좁은 화분에 심어놓고 인위적으로 꾸미는 걸까. 예전에 노석은 수석을 수집했다. 강이나 계곡에서 주워온 돌을 윤이 나도록 닦은 뒤 형태에 맞는 나무 받침을 만들어주었다. 돌은 더이상 바람과 물살에 닳아 형태가 변할 일이 없었고 흙먼지로 더럽혀지지도 않았다. 그 이전에는 박제에도 흥미를 가졌다. 노석은 창자가 사라진 부엉이의 빈 속에 솜과 방부제를 채워 넣고 유리로 만든 의안을 끼워 넣었다. 부엉이는 더이상 날 수 없지만 부패하지 않았다. 수경은 노석이 가진 취미의 공통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낚시나 바둑처럼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이라는 것.
“미래는 생각하고 있는 거니?”
과거를 박제하듯 붙들어놓고 사는 노석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미래라니. 노석은 자신이 생각해놓은 수경의 미래를 얘기했다. 글은 어디서나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말 할 생각 없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라던데.”
부호의 자서전 의뢰를 얘기하는 거였다. 그 사람 정말 대단하지 않니. 백년 후를 내다보는 사람이야. 노석의 말을 수경은 흘려들으려 애썼다. 수경은 백년 후는커녕 십년 후, 아니 바로 다음주 일도 계획하지 못했다. 수몰사태 이후 수경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만큼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호는 산을 사들였고, 어떤 이는 국가 지정 산림보호지역의 보호 해제를 요청했고, 높은 타워를 짓거나 대형 선박을 제작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수경이 미래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고작 수영을 배우는 것이었다.
수경이 사는 원룸 건물은 다행히 백년은 거뜬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집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전세를 월세로 돌린 동시에 월세를 턱없이 올렸다. 수경은 노석이 전해주는 숫자를 흘려들으려 애썼다. 노석이 더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여버릴 것만 같았다.
노석이 어느 순간 말을 멈췄다. 시선은 여전히 TV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멀어진 카메라가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파도, 하얀 모래사장, 우거진 숲과 오름 등 섬 곳곳의 풍광을 담아냈다.
“이런 날 별거 있나. 핑계 삼아 우리끼리 밥이나 먹는 거지.”
오늘은 어머니 연수의 기일이었다. TV 속의 섬은 노석이 퇴직 후 노후를 보내려고 집을 마련했던 곳이었다. 마침 바닷가 근처 전망 좋은 집이 헐값에 나왔었다.
“어쩐지 유난히 싸다 했다. 있는 놈들은 알았겠지.”
하지만 이사한 직후 연수는 암 진단을 받았고 집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이년째 되던 봄, 연수의 장례를 치렀다. 땀에 푹 젖은 상복을 입고 수경은 이번 봄은 유달리 덥구나,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 앞 벚나무에 만개한 벚꽃을 보고도 아직 삼월 초인데 이르네,라고만 생각했다. 수경은 알지 못했다. 이미 잃은 어머니를 한번 더 잃게 될 줄은.
연수는 해안가에 있는 묘지에 안장했다. 산에 두려다가 바다를 좋아하던 연수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곳이었다. 발인을 마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곤히 잠들었던 노석과 수경은 집 안까지 밀려든 물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아예 수몰된 다른 집들과 달리 다행히 발목 정도만 잠기는 정도였다. 상황을 수습하고 연수의 묘지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수많은 관이 먼바다로 떠내려간 뒤였다. 해양경찰과 구조대가 동원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우선 구해야 했기에 관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나중에 떠내려간 관들 중 일부는 해안가로 다시 밀려왔다. 하지만 그중에 연수는 없었다.
기일이 되어도 찾아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연수의 기일이 되면 수경은 평소 반나절 잠깐 머물고 쫓기듯 돌아가던 것과 달리 노석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갔다. 연수의 관이 어디로 갔을지 몰라도 노석과 함께 있는 곳이 연수와 가장 가까운 곳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아주 멀리 떠다니고 있으면 좋겠다. 그놈의 바다, 맨날 노래를 불러댔으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노석이 중얼거렸다. 그러곤 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어야 일년이란다.”
수경은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노석이 오늘따라 수경의 미래에 대해 더 집요하게 물어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탕수육은 절반 이상이 남았다.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던 수경이 일어났을 때 노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열시. 일요일인데도 노석은 1단지 일대를 순찰하듯 돌고 있을 것이다. 노석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위에 녹색 표지의 대학 노트가 놓여 있었다. 그날 걸은 걸음 수, 분재의 건강 상태, 우연히 발견한 수석에 대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수경은 노석의 별일 없는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안심이 됐다. 종양은 자라다 멈추기도 한다. 해수면도 더이상 상승하지 않을 수 있다. 수경은 낙관하려 애쓰며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코끼리의 머리와 등, 두개의 봉우리 사이에는 광장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아직 물줄기가 솟지 않아 잠잠했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절도 있고, 교회와 성당도 있었다. 수경은 성당 앞에 차를 세웠다. 어릴 때 수경은 연수를 따라 성당에 가고는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가지 않았고 연수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수의 기일에는 수경 혼자 성당을 찾았다. 연수가 믿었던 신에게 기도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경은 미사 내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언젠가 어린 수경의 이마에 사제가 재를 묻혀주며 읊조렸던 말을 떠올렸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를 만지자 회색 재가 묻어났다. 손을 비벼 털었다. 재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을, 어쩌면 깊이 가라앉았을지도 모를 연수도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수경은 연수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암으로 투병하던 연수의 마지막은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노석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노석을 위해서라도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완전한 쾌유를 비는 것은 기만이었다. 노석의 곁에서 지내면서 노석이 걱정하지 않을 만한 수경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평화를 빕니다. 옆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수경도 따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서로의 평화를 빌어줬다. 수경도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와 같을지는 몰랐다. 수경은 결국 아무것도 빌지 못하고 성당을 나왔다.
그사이 분수대는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3·19사태 이후 바다와 강은 예전과 달라졌다. 오수가 흘러들어 악취가 진동했고 때론 짐승과 사람의 사체가 뒤섞여 떠다녔다. 이제 사람들은 강가와 바닷가로 놀러 가지 않았다. 되도록 물에서 멀리 떨어져 살려고 애썼고 외면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방울이 정오의 햇빛에 빛났다. 사람들이 분수대 가까이 모여들었다. 물줄기는 하늘로 춤추듯 치솟았다. 그 투명함이 불편해 수경은 서둘러 그곳에서 멀어졌다.
결국 수경이 향한 곳은 프로메테우스가 부조된 담장 구멍 앞이었다. 수경은 허리를 굽히고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바닥에 책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여자가 포쇄 중이었다. 쌓여 있는 책을 하나하나 펼쳐놓고 있었다. 여자가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수경은 눈이 마주칠까봐 한걸음 물러서다가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당신이죠? 캐러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경은 구멍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연한 갈색 눈동자. 짙은 쌍꺼풀과 긴 속눈썹.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있었지만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수경이 대답하기 전에 여자는 빠르게 설명했다.
“엄마예요.”
그리고 덧붙였다.
“요즘은 쉽게 눅눅해져서. 여기가 해가 제일 잘 들어요. 서점을 하고 있거든요.”
수경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서점이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도 웃고 있었다. 예상했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물어요. 서점을 하고 있다면 매번 그런 목소리와 어조로. 사실은 요새 누가 책을 읽는다고요? 먹고는 살아요?라고 묻고 싶은 거겠죠. 3·19 이후에는 아마도 제정신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걸 참는 것 같고.”
수경은 그런 뜻은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여자가 이어 말했다.
“어느 시대에도 서점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으니 억울한 것도 없어요.”
물에 젖으면 가장 쓸모없어질 물건 중 하나였다. 눅눅해지지 않도록 햇볕에 한장 한장 정성스레 말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수경은 복잡해졌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저도 뭐라고 할 말은 없어요.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수경은 그 말을 해놓고 이내 후회했다.
“요즘은 쓰지 않아요.”
다급하게 덧붙였으나 여자가 감탄사와 함께 말했다.
“글을 쓰시는군요.”
여자는 구멍에서 멀어져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책을 펼치며 말했다.
“도시에 있다가 변두리로 밀려났죠. 그러다 이곳을 찾았고. 그 난리통이 있기 전에요. 그땐 그쪽들이 여기까지 탐낼 줄은 몰랐거든요.”
우리가 ‘저쪽’이라고 부른다면 담 너머의 사람들은 우리를 ‘그쪽’이라고 부르는 걸까. 수경은 무심코 우리라고 지칭한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쪽들. 여자도 수경을 당연히 그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여자는 책을 내려놓고는 구멍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경은 여자의 기세에 조금 뒤로 물러섰다.
“지금이라도 써요. 당신은 우리보다는 남은 시간이 많잖아요. 재밌는 얘기 하나 더 해줄게요.”
수경은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면회하듯이 동그란 구멍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수경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남편은 그림을 그려요.”
여자가 웃었고 수경도 웃었다.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다 수경 혼자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 그러지 말아요.”
여자의 말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수경은 무슨 말인지 되묻지도 못하고 여자가 이어서 말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쪽에 살고 있잖아요. 이쪽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요. 캐러멜로 달래질 수 있는 슬픔도 아니라고요.”
여자는 주머니를 뒤적여 캐러멜을 꺼내더니 구멍으로 던져 넣었다. 수경은 여자가 사라진 뒤에도 허리를 구부리고 발밑에 떨어진 캐러멜을 바라보았다.
집 앞에 트랙터가 여러대 서 있었다. 노석은 트랙터 기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민들도 나와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와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수경이 다가오자 노석이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이 발인이어서 땅을 팠는데 다른 유해가 나왔단다. 이장하지 않고 팔아버린 거야, 봉분만 없애고. 양심도 없지. 그래서 원하는 집에 한해서 다 파헤쳐보기로 했다.”
노석은 트랙터 기사들에게 몇군데 표시한 마을 지도를 건넸다. 파헤쳐보고 유해가 발견되면 연락을 달라고 한 뒤 기사들을 보냈다. 노석은 관리인들에게 지급된 하늘색 티셔츠 위에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노석은 조끼부터 벗었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노석은 마당에 표시된 원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노석의 복잡한 심경을 수경은 짐작할 수 있었다. 원 주위를 돌고 있던 노석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정원 한구석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걸어가서 수풀 사이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끌고 나왔다.
놀라서 바라보고 있던 수경은 이내 캐러멜을 줬던 아이, 서점 여자의 딸임을 알아챘다. 아이는 손을 뒤로 하고 있었다.
“뭘 감춘 거냐?”
노석이 다그치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아이예요.”
수경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왔냐며 몰아붙이는 노석을 제지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뒤 말했다.
“캐러멜 이모야.”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수경을 바라봤다. 이윽고 감췄던 것을 내밀었다. 죽은 비둘기가 투명한 락앤락 통에 담겨 있었다. 수경은 많이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묻어주고 싶어요.”
수경은 아이가 이 집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왜 하필 여기에다?”
“여기는 물에 잠기지 않을 것 같아서요.”
수경은 락앤락 통을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노석을 돌아봤다. 노석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수경이 부탁하듯 말했다.
“아주 조금 차지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조금, 조금 하다가는 끝이 없다. 태워버려라. 고작 새잖니.”
노석은 못마땅해했다. 수경은 말없이 노석을 바라봤다. 어차피 죽었잖아. 어머니의 관을 찾아다닐 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두두는…… 물을…… 무서워해요.”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비둘기의 몸은 하얀 가제 손수건으로 감싸여 있었다. 노석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다. 수경은 노석이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노석이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해라. 봉분도 만들지 말고. 벌레가 꼬일 거야.”
최대한 구석에 있는 나무 밑으로 합의를 했다. 노석이 트랙터 기사의 전화를 받고 나가자 아이는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수경은 물었다.
“너 이름은 뭐야?”
“가온이요.”
“왜 이 통에 담았어?”
“물이 새지 않는대요.”
수경과 노석은 연수의 관을 오동나무로 할지 향나무로 할지 한참 고민했었다. 결국 가격이 저렴한 쪽을 택했다. 노석은 어젯밤에도 술에 취해 중얼거렸다.
“오동나무여서 다행이야. 물에 강하다고 했으니까.”
수경은 모종삽을 가져와 구덩이를 팠다. 비둘기를 묻고 흙을 덮으려다 주위를 둘러봤다. 노석의 분재에서 싱싱한 잎을 떼다가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아이는 락앤락 통 위에 잎사귀를 올려놓더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엔 확인하듯 수경에게 물었다.
“여기는 잠기지 않는 거죠?”
“아마도……”
수경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뒤 흙을 덮었다. 뭐라도 표시는 해두어야겠다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나뭇가지를 꺾어 작은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두었다.
“이건 임시야. 나중에 비석 같은 걸 만들어주자.”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집으로 데려다줄게.”
“엄마가 일하는 데로 가야 해요.”
“서점으로 가면 되니?”
“맥도날드요.”
수경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서점은 어떡하고?”
가온은 수경이 엉뚱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서점에는 손님이 없잖아요.”
수경은 가온을 차에 태우고 안전띠를 매주다 물었다.
“너는 안 무섭니?”
“뭐가요?”
“물.”
“수영을 잘해서 괜찮아요.”
수경은 피식 웃으며 가온이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내가 너랑 수준이 비슷한가보다,라고 중얼거렸다.
검문소 앞에 도착하니 맥도날드 유니폼을 입은 서점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가 이쪽을 보더니 놀라 달려와 가온을 끌어안았다. 가온이 여자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다가 수경이 시동을 걸려는데 여자가 다가왔다. 창을 내리자 여자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언제든 와요. 서점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수경은 갈 생각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육지로 돌아가야 해요.”
여자는 한번 더 말했다.
“언제든 와요.”
수경은 곧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여자와 가온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수경은 집으로 가던 도중 차를 산책로 입구에 세워두고 구멍 쪽으로 걸어갔다. 여느 때처럼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수경에게 여자가 보여주고 싶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최대한 가까이 들여다봤지만 구멍으로 보이는 일부만으로는 저쪽의 모습을 알 수 없었다. 구멍 안쪽을 노려보던 수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작은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구멍 안으로, 저쪽을 향해 힘껏 던졌다. 담장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트랙터가 단지 안 곳곳을 파헤치고 있었다. 노석의 정원도 원 안을 포함해 여러개의 구덩이가 생겼다. 노석은 보이지 않았다. 쌓여 있는 흙더미들을 바라보다 수경은 비둘기가 묻힌 곳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네. 수경은 한숨을 쉬고는 표시해둔 작은 십자가를 치워버렸다. 짐을 챙겨 나온 수경은 노석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달에 올게요.
건강이나 미래에 대한 말을 덧붙이려다 그만뒀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옆집에서 흥분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날 보았던 앞 차량 운전자였다.
“팔 수 있을 때 팔자고요. 지금 당장 먹고살 게 없는데 죽은 다음까지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운전자는 소리를 지르며 대문을 닫고 나오다 수경과 눈이 마주치자 겸연쩍은 듯 고개를 돌리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수경은 도망가듯 차를 몰았다.
수경은 검문소 앞에서 차단기가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아직 오후 여섯시였다. 망설이던 수경은 편의점에 들러 가온이 좋아할 법한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맥도날드로 가 여자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퇴근했다고 다른 직원이 알려주었다. 수경은 다시 차를 몰았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왼쪽 도로, 내리막길로 향했다.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찰은 의아해하면서 당부했다.
“밤 열시가 되기 전에는 나오셔야 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도로는 제대로 닦이지 않아 차가 덜컹거렸다. 담장의 뒷면은 그저 석회질 덩어리였다. 울퉁불퉁하고 뭉개지듯 거친 회색 벽. 그 어떤 신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성의 없이 해놓고는 작가정신은 무슨. 수경은 노석처럼 중얼거리다 씁쓸하게 웃었다. 서점 여자를 떠올렸다. 수경과 대화하는 동안 여자는 이 벽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회색빛 담장과 무성한 풀들, 빽빽하게 자라 있는 나무들뿐이었다. 서점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우선 구멍부터 찾아야 했다. 그 구멍을 찾으면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담장 옆 도로를 따라 운전했다. 차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아지자 수경은 차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그러다 작은 오솔길을 발견해 걸어 들어갔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흙더미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여러개의 봉분이었다. 아직 떼를 입히지 않았다. 벌건 흙무덤들. 마르지 않은 흙으로 이제 막 누군가를 묻었음을 알 수 있었다.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수경이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비둘기들이 담장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는 해를 등지고 있어 마치 박쥐 떼 같아 보였다. 수경은 뒷걸음질 쳤다.
무덤 옆쪽으로 건물들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통창 유리가 깨져 있고 문도 부서져 있었다. 땅 매매 문구와 전화번호가 쓰인 광고지, 엉킨 전깃줄, 더러운 옷가지만 함부로 굴러다니고 있어 건물의 원래 용도를 알기 어려웠다. 그 옆은 슈퍼마켓이었다. 불이 꺼진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고 선반 위에는 찌그러진 통조림과 빈 과자봉지가 보였다. 유리문에는 ‘가맥’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파라솔이 달린 둥근 테이블이 있고, 다리 하나가 없는 의자가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테이블 아래 떨어져 있는 맥주잔에는 반쯤 흙이 담겨 있었다. 더 걸어가자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집이 나타났다. 화단 안에는 제멋대로 풀이 자라 있었다. 작동을 멈춘 스프링클러와 바퀴가 빠진 세발자전거와 비어 있는 개집.
수경은 다른 때보다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고 느꼈다. 군데군데 가로등이 서 있었지만 깨져 있었다.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돌아갈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앞쪽에서 노란 불빛이 깜박거렸다. 서둘러 다가간 건물 앞에는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영원서점.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직접 적어 넣은 듯했다. 글자는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나무를 다듬고 못질하고 하얀 페인트로 칠한 뒤 잘 마르길 기다렸겠지. 수경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적었을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서점 앞에는 마당과 같은 터가 있었고, 아직 연기가 남아 있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캠핑의자 몇개가 둥글게 원을 그리듯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비닐봉지와 포장용기가 쌓여 작은 둔덕을 이뤘다. 방금까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식사를 했던 흔적이었다.
저기요. 수경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인기척이 없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경은 망설이다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선반 위에 비둘기 사진이 보였다. 아마 두두일 것이다. 그 앞에는 깃털이 놓여 있고, 반쯤 남은 초가 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서점을 방문한 이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도 놓여 있었다. 유심히 바라보다 가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는 여자와 남자를 발견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살펴보다 가운데 놓인 매대 위로 다가갔다. 낯익은 표지. 수경의 첫 소설집 초판이었다. 표지 앞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초록색 펜으로 또박또박 적어놓은 문장. 여자가 적은 듯한데 추천사인지 감상인지 알 수 없었다.
완전한 고요와 평화라니. 지금까지 읽은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욕망이 크다. 그 평화와 고요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고단한 싸움을 해야 할까.
수경은 소설집을 낸 뒤 수십번의 검색 끝에 간신히 찾아낸 리뷰 두개를 떠올렸다. 인물들이 욕망이 없어 이야기에 힘이 없다, 맥이 빠진다는 평가였다. 그뒤로는 리뷰를 찾아보지 않았다.
서점 옆에는 아뜰리에가 있었다. 이젤과 어지럽게 놓인 붓과 물감. 완성한 그림과 완성하지 못한 그림들이 뒤섞여 있었다. 영원히 팔리지 않을 책들이 있는 서점과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그림이 있는 아뜰리에 앞에서 수경은 불가능한 세계를 바라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렸다. 여자의 말대로 인물들은 완전한 고요와 평화를 원했다. 다만 싸우지 않고 얻길 바랐다. 그들은 자신을 빼닮았다. 수경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구나.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그만 발을 빼야 한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 이곳에선 깜박하는 사이에 바로 발밑까지 물이 차오를지도 모른다. 이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때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경은 위로 올라가는 길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의 소설집을 바라봤다. 수경은 결심한 듯 돌아서서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더 아래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비릿한 냄새로 물과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휴대전화 불빛을 비춰도 물과 하늘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이끼가 덮여 있는 바위는 미끄러웠다. 물가 쪽에서 환한 불빛이 보였다. 수경은 발끝에 힘을 주어 한발 한발 다가갔다.
“동풍이야, 뱀 꼬리 끝 쪽으로 가자. 이런 날은 더 많이 몰려오잖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암호 같은 말을 들으며 수경은 그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바라봤다. 랜턴으로 불빛을 비추고 있는 이는 서점 여자였다. 서점 여자의 남편으로 짐작되는 이와 나머지 사람들은 그물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경은 벌건 흙무덤을 떠올렸다. 수경은 그 무덤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쪽에서 파헤치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묻고 있었다. 양쪽의 욕망은 닮은 듯 다르다.
이렇게 아래까지 내려온 것도, 물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일도 얼마 만인지. 검은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자 포말이 일었다. 이곳을 바다라고 불러도 될까.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였다. 수경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들으면 숲에서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와 닮았다고 연수가 가르쳐줬었다.
“오고 있어. 보여?”
여자가 외치는 말에 수경은 눈을 떴다. 여자는 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경의 눈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경은 지금이 몰려오고 있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침식당하지 않고 갉아 먹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되도록 온전한 모습이기를. 수경은 두 손을 모으고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