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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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은영 崔恩榮

1984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등이 있음.

euni153@naver.com

 

 

 

파종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꿨다.

소리의 글은 그 문장으로 시작했다.

소리가 학교 교지에서 개최한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은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읽고 싶었지만 아이는 고집을 피우며 글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에게 일기장을 보여주고 싶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고 따져 물으면서. 그녀도 그 말에 동의했기에 더는 소리에게 글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기장이라고 할 만큼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교지에 낸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글에서도, 어떤 인터뷰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이주일 전, 소리는 그녀에게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소리는 망설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엄마. 소리는 그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소리가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도 다시 그 주제를 꺼내 묻기가 어려웠다.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가 학교를 관두고 싶어할 만한 상황을 가정할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던 중에 소리의 담임교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단정한 감색 투피스를 입고 옅은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담임교사는 소리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봐왔다고 했다. 신중한 아이여서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그녀는 소리가 학교를 관두고자 하는 이유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사가 모든 사실을 다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학교에서 아이가 상처받은 일이 있었는지도 물었다. 그녀에게는 딸과 아주 가깝지는 않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와 아직 그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느냐고 곧 질책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쉬고 싶다고 해요.”

교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쳤대요. 자기가 이십사시간 내내 돌아가는 컴퓨터 같다고, 잠시 전원을 꺼두고 싶다고요.”

교사는 소리가 매사에 성실했다고 말했다. 무엇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교사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는 어려서부터 그런 아이였으니까.

“집에서는 어떤가요.”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르는 동안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놓였다. 침묵이 길어지자 교사는 화제를 바꿨다.

“관두기로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아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어머니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소리에 대해 당신이 뭘 그렇게 많이 안다고 엄마인 나에게 충고하는 거지, 하는 반발심조차 들지 않았다. 교사의 말대로 그녀는 소리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소리는 학업도 잘 따라가고 있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모두 소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다 믿고 싶었다.

면담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교사가 입을 열었다.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소리가 어머니 자랑을 많이 해요. 이번 작품도 꼭 보라고.”

“소리가요?”

“네. 어머니에 대해 쓴 글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저번 교지 공모에 낸 거요.”

“보지 말라고 해서……”

“여기 한권 있는데 드릴게요.”

교사가 책꽂이에서 교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속이 깊은 아이예요.”

칭찬이 분명한 교사의 말에 그녀는 익숙한 슬픔을 느꼈다. 교사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차 안에서 소리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글에 빨려 들어갔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리는 그와 그녀와 함께 텃밭을 가꾸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셋이 같이 텃밭에 가서 일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새참을 먹던 시절을 기록했다.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이후에 더는 텃밭에 가지 않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소리는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소리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소리에게 지난 오년은 자신의 과거가 아주 자그맣게 보일 정도의 거리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고작 오년 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그때의 일을 꼭 꿈처럼 느낄 시기였다. 그런 소리가 어린 시절에 그와 함께 텃밭을 가꾼 이야기를 잊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자기 언어로 그 작은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더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인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소리의 그 모른 척이, 침묵이 좋았다. 자꾸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고,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리는 어리니 금세 잊을 것이다. 그냥 모른 척하면 돼. 자극하지 말자. 사라질 거야. 그녀는 자신의 그런 주문에 어느정도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는 무너지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 감정에 흔들려 주어진 일을 그르치는 상황 따위를 만들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얼마간 안심했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그가 자신에게 바란 모습일 거라고도 믿었다. 그를 계속 떠올리면서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장 바라지 않을 사람은 그일 테니까.

 

그는 그녀보다 열다섯살이 많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그는 그녀가 여덟살 때부터 실질적으로 그녀의 부모 역할을 했다. 아침마다 밥과 반찬을 해서 도시락을 싸주고 숙제를 봐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들어줬다. 그래서 그녀가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웃을 때 그의 얼굴이었다. 웃을 때 입가와 눈가에 지던 옅은 주름…… 소리 내어 웃던 목소리. 밖에서 어떤 일이 있든지 집에 돌아와서 그에게 말하고, 그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봐주면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여러 말은 필요 없었다.

‘삼촌은 나를 귀여워해서 자주 웃어줬다.’

그녀는 소리의 그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그의 웃는 얼굴을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봤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 그녀는 오래도록 그의 마지막 모습에 머물렀다.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모습도, 젊었을 때의 모습도, 중년이 되어서의 모습도, 한지가게에서 일하던 모습도, 텃밭에서 일하던 모습도, 소리와 잘 놀아주던 모습도 모두 그 야위고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졌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그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리의 글 속에서 그는 삽으로 능숙하게 깊이갈이를 하고 이랑을 만들었고, 호미를 들고서 김을 매고 단단하고 향기로운 토마토를 수확했다. 흙장난을 좋아하는 소리를 말리지 않았고 감자를 소리의 손으로 땅에 심게 했다. 삼촌, 물 뿌리고 싶어, 하면 물뿌리개를 잡고서 마치 소리가 물을 뿌리는 것처럼 연출해줬고 샌드위치며 얼음을 넣은 미숫가루, 주먹밥 같은 것을 해 와서 소리와 나눠 먹었다.

“민주야, 나 좀 도와줘.”

처음에 그는 그녀의 도움을 구하며 소리와 그녀를 데리고 텃밭으로 갔다. 남편과 이혼하고 다섯살짜리 소리와 그의 집으로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잠시만 신세를 지고 나갈 거라고 약속했을 때, 그는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렸을 때처럼 장을 봐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찌개를 끓여 그녀와 소리를 먹였다. 그녀가 어째서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텃밭에 가는 건 그들만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는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했다. 가지든 상추든 호박이든 토마토든 소리가 먹는 것이라면 가장 흠 없고 싱싱한 것을 골랐다.

소리는 힘이 들고 지칠 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적었다. 삼촌과 그 작은 밭에서 작물을 키우고 수확했을 때의 재미, 함께 주고받았던 말들, 흙과 풀 냄새…… 하지만 그런 기억이 하루하루 옅어지고 흩어져 이제는 삼촌의 목소리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됐다고 썼다. 하루는 애써서 삼촌의 목소리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서 슬펐다고. 소리는 그렇게 썼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글을 써서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적어놓기도 했다.

소리가 그리워하는 텃밭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팔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시 농사를 지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소리는 그가 떠난 후 몇번 텃밭을 다시 가꿔보자고 말해왔고, 그때마다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소리는 텃밭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텃밭 가꾸기에 관한 정보가 담긴 삼촌의 노트를 읽지도, 네모난 비닐봉지에 담긴 작물의 씨앗을 그녀가 보는 앞에서 흔들어보지도 않았다. 소리는 글 속에서도 다시 텃밭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기 마음을 서술하지 않았다.

소리는 그런 아이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조르지 않았다. 슈퍼에 데려가서 먹고 싶은 것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면 세살짜리 아이가 삼백원짜리 껌 한통을 가져왔다. 당시 아직 이십대였던 그녀는 그런 소리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그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말문을 잃었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아무거나 괜찮아. 소리가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라며 소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엔 언제 가? 묻는 소리를 보던 그의 얼굴을 그녀는 기억한다. 내색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를 웃기는 걸 좋아했다. 천진하게 웃는 그 얼굴을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가 슬픈 사람이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서 그랬다. 웃긴 이야기가 그의 슬픔의 크기를 줄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그녀의 그런 막연한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그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늘 겉돌았으며 기본적으로 슬픈 감정을 지니고 살았다. 한지가게를 열기 전까지는 같은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했고 사람들의 모임에도 잘 속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와 그녀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천성을 공유했다는 것을. 그 또한 그녀의 슬픔을 너무 쉽게 알아보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이 소리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그녀는 다시 애써 농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미소 짓던 그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문득 두려워졌다.

“무슨 일 있어?”

그녀가 물었다.

“아니……”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네가…… 여기 오고 나서 계속 쉬지 못한 것 같아서.”

그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마음이 비틀리며 가라앉던 순간을 그녀는 기억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응.”

“내가…… 그렇게 비겁했어?”

“뭐가.”

“그런 결혼 했던 거.”

그가 눈을 찡그리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밥 먹어.”

“……오빠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힘들었다는 거 알아.”

그가 말했다.

“……”

“내가 어떻게 널 비겁하다고 생각해.”

그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내가 많이 실망스러웠을 거야.”

그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민주 넌 지금 살아 있잖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거면 돼.”

시선을 피하는 그녀에게 그가 다시 말했다.

“그거면 돼, 민주야.”

 

소리의 학교에서 돌아와서 그녀는 서재를 정리했다. 소리가 많이 지쳐 있다는 담임교사의 말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서 그녀를 아프게 했다. 자신에게는 지쳤다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던 걸까. 서재를 정리하고 나서 그녀는 다시 소리의 글을 읽었다. 소리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했고,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며 그녀는 소리가 그때의 기억을 많은 부분 미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을 왜곡해서가 아니라, 그때를 바라보고 있는 소리의 시선이 그랬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돌아보니 어쩌면 소리에게는 모든 것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는 텃밭에 가는 걸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흙을 만지는 일을 즐겼고, 밭을 가꾸는 데 자신도 이바지한다는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미간을 찌푸리고서 일에 집중하던 어린 소리의 얼굴. 그녀는 그 얼굴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작물이 자라고, 작물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소리가 어떤 감탄을 했었는지 그녀는 잊고 있었다. 소리 정강이의 흰 흉을 볼 때마다 밭에서의 사고는 생생하게 떠올렸으면서도.

소리가 여덟살 때의 일이었다. 밭을 매다 잠시 자리를 비운 그가 바닥에 호미를 두고 간 것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호미의 뾰족한 부분이 위쪽을 향해 있었고, 그 위로 소리가 넘어졌다. 아이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자기 정강이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가와서야 소리는 엄마의 놀란 얼굴에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턱대고 소리를 업고서 달렸다. 차 트렁크를 뒤지던 그가 그런 그녀를 보고 사색이 됐다.

“가장 가까운 응급실 어디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좁아졌다.

“소리야.”

그가 소리의 상태를 살피려고 다가왔다.

“응급실 어디냐고.”

그녀는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운전석에 타서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그녀는 주유소에서 받아둔 휴지를 뽑아서 소리의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애가 있는데 호미를 그렇게 두면 어쩌자는 거야.”

그녀는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애 흉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제정신이야?”

그러자 소리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만해. 소리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리는 파상풍 주사를 맞을 때도, 벌어진 상처를 꿰맬 때도 눈을 꼭 감고 통증을 참았다. 처치를 마치고 그녀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를 투명인간 대하듯 했다. 그가 질문하면 짧게 답하고 침묵했다. 한동안 그녀는 그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소리의 흉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에게 잔인하게 말했다.

그가 언제나 그녀에게 져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참고 견뎌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그토록 애틋하게 여겼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대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식으로도 지난 일을 만회할 수 없었다.

 

소리는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서 마셨다. 그러더니 사인용 식탁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졌다. 할 말이 있을 때 소리는 그런 식으로 식탁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담임선생님 좋으시더라.”

그녀가 소리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소리는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선생님이랑 얘기 많이 한 것 같던데.”

소리가 핸드폰을 뒤집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녀를 마주 봤다. 그녀를 향한 소리의 은은한 분노가 느껴져서 그녀는 문득 두려워졌고, 그런 모습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네가 많이 지쳤다고 말했다며. 쉬고 싶다고.”

소리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부엌 벽 쪽을 바라봤다.

“쉬고 싶으면 학원을 다 관두든지 그렇게 하자. 학교를 관둔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엄마.”

소리가 다시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그럼 뭔데. 네가 말을 안 하면 내가……”

“신경 쓸 것 없어.”

“솔직히 말해봐.”

“큰일 아니야, 진짜.”

소리는 어른이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녀에게 답했다. 그녀는 소리의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주는 척을 하기가 어려웠다.

소리는 일찍 철이 들었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일 때부터도 집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싱크대에 더러운 그릇이 있으면 재빨리 설거지하고,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차면 낑낑거리며 내다 버리고, 어른들이 모두 집에 없으면 자기 혼자서 밥을 차려 먹었다. 그는 소리의 그런 모습을 마냥 대견해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녀에게 소리가 혹시 자기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혼자서도 다 잘하고 소리도 이제 다 컸네.”

집에 놀러 온 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리 아직 아이예요.”

그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소리가 가끔 짜증을 내고 고집을 피울 때도 소리를 야단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애 버려, 오빠.”

그때는 그런 균형이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소리의 역성을 들어주고, 그녀가 훈육하는 식의 균형. 올바른 육아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녀와 그는 소리에게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그들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부모가 함부로 뱉는 말이 어린 자식에게 얼마나 파괴적으로 다가왔는지 아버지는 알았을까. 폭언으로 물들던 유년의 밤을 그녀는 떠올렸다. 나가 죽으라고, 너 같은 게 살아서 뭐 하느냐고, 그냥 죽어서 없어져버리라고. 아버지의 말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서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그녀를 물리적으로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차라리 맞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일었다. 그러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았으니까.

그녀가 여덟살이었던 겨울에 그가 동네의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리고 온 일이 있었다. 그는 몹시 추운 날인데다 개가 자기를 따라와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입가가 까맣고 마른 황구였다. 어린 그녀는 개를 쓰다듬으면서도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했다. 늦은 밤에 들어온 아버지는 그들에게 개가 불쌍하면 밖에 나가서 개랑 같이 자라고 소리쳤다. 그녀가 아버지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서 자기 이불을 들고 개와 함께 아파트 복도로 나가자 그도 그녀를 따라 나왔다. 아버지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는 개를 아파트 밖으로 쫓아냈다.

그는 말을 하기 전에 눈을 크게 두번 찡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손가락 모양으로 부어오른 뺨을 만지면서 그는 계속해서 눈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그는 계속해서 눈을 찡그리기만 했다. 그녀는 복도 난간 사이 구멍으로 아파트 앞 광장을 바라봤다. 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알았다. 입을 최대한 꽉 다물고 침을 삼키면 됐다. 눈물이 흐르면 재빨리 옷소매에 닦으면 됐다. 그녀는 괜히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려온 그가, 개와 함께 이불을 들고 복도로 나가는 자신을 말리지 않은 그가, 풍선 터지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뺨을 맞는 그가, 떠돌이 개에 잠시나마 희망을 갖게 한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일평생 그를 부당하게 원망하고 때로는 부끄러워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연습게임이라면, 본 게임이 시작되고 다시 그가 떠돌이 개를 데려왔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발길질을 당한다고 해도, 벽에 던져진다고 해도 그를 위해 아버지에게 맞서고 싶었다. 그와 함께 울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죽어서라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단순한 진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으며, 그가 그녀에게 준 마음을 갚을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고,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지울 수 없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을 것이다.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문득 그녀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죽으면 끝이야.”

그녀가 그를 타박하듯이 말했다.

“엄마는 분명히……”

“나약하니까 그런 생각 하는 거지.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가 없으니까. 이해가 안 되니까. 그걸 받아들일 용기가 없으니까.”

“네가 맞을 수도 있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글쎄? 난 그런 거 안 믿어. 비겁하다고 생각해.”

그녀는 그런 상상을 하는 그가 부러웠었고, 지금도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도, 그 몸이 잿가루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리라는 그 낙관이 부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그와 같은 사고를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 비과학적인 믿음은 자기기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때, 그것이 그녀에게는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이별을 남들이 만들어놓은 진부한 상상으로 덧칠하지 않는 것이 떠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민혁이 영혼 위해 기도할게. 민혁이가 하늘나라에서 민주 잘 보살펴줄 거야.”

고모가 장례식장에서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안 믿어요. 그리고 오빠가 저를 뭐 언제까지 보살펴줘요?”

오빠.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있다면……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 더는 머무르지 마. 그냥, 다 잊고 멀리 가버려. 이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마. 그녀는 울며 생각했다.

그녀는 그에게 받은 것이 많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고통스러운 결혼을 여전히 끝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작가의 꿈은 진작에 접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선택을 믿고 지지했고 소리의 육아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그녀가 대학 선배의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저녁 시간에 소리를 돌보았고, 서른이 넘은 그녀에게 작가의 꿈을 버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소리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뒤 습작을 할 때, 그는 그녀에게 그 어떤 집안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간을 아껴 글을 써. 너부터 생각해.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몇년 후 마침내 그녀가 첫 단막극으로 입봉했을 때, 그는 ‘각본 이민주’라고 쓰인 드라마 오프닝 장면을 캡처해서 자기 가게에 표구해 걸어뒀다. 작은 가게에는 시계 하나 걸 수 있는 좁은 빈 벽이 있었는데, 시계를 빼고 그 자리에 액자를 걸어둔 거였다. 왜 그런 걸 걸어뒀냐고, 당장 치우라고 타박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는 어떤 것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고, 과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남들에게 그녀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동생이 이토록 멋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농담 목록에는 늘 그의 환갑잔치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그가 그녀보다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과장해서 놀리는 방법이었다. 그가 환갑을 맞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입원 후 그는 의사에게 직접 자기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잘 해낼 거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서 그녀는 집념을 읽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래 삶을 이어가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의사 말만 잘 들으면 돼. 하라는 건 다 할 거야.

치료가 이어지면서 그는 한낮에도 계속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몸은 불덩이였고 그녀는 물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닦아줬다. 내색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고통은 몸과 얼굴에,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 식사가 나오면 고작 국물 몇모금 먹고 더는 먹지 못했다. 그녀에게 익숙했던 표정이 사라졌다. 가끔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농담을 던지면 그제야 희미하게 미소 짓는 정도였다.

“오빠가 미웠던 것 같아.”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말해달라는 듯이 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래. 밉고, 꼴 보기 싫어.”

“그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전, 아직 말을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던 시기였다.

“오빤 늘 그랬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날 도울 거라고……”

그가 눈을 깜빡이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의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에 들이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창밖으로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민주야.”

“응.”

“너 힘든 거, 나 줘…… 가지고 갈게.”

그녀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

그는 그녀의 마음이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자기 손 위에 그녀의 이야기를 올려달라는 듯이.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붉은 얼굴을 둘러싼 흰 머리칼이 꼭 유리섬유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민주는 여전히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말을 잃었고, 희미한 미소를 잃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소리마저 사라졌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힘겨워도 의미가 있을 것이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가 삶을 원했다. 살며 어떤 것에도 특별히 욕심을 내지 않았던 그가 더 살고 싶어했다. 그가 초연했더라면, 순순히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그녀도 그 순간을 다르게 기억했을까.

모든 치료가 중단되었고, 마지막 사흘 동안 그에게는 의식이 없었다. 그녀는 육주 만에 처음으로 소리를 병원에 데려왔다. 의식이 있을 때 그는 소리가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놀라지 마.”

그녀는 몇차례나 소리에게 경고했다.

소리는 그를 보고도 우물쭈물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달려가서 누운 그를 끌어안고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기다렸어, 삼촌. 기다렸어.”

 

‘믿을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가 쓴 그 구절에 다시 시선을 뒀다.

그 문장이, 석달 동안 엄마를 기다리던 때를 떠오르게 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책가방을 메고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던 일이. 동네에서 깔깔대며 모여 노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그 세계를 떠났다는 걸 알았다. 다시는 그 아이들과 같이 모래 장난을 하고 그네를 탔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여덟살이었던 그때, 그는 스물셋이었다. 갓 제대해서 복학했다가 어머니의 투병으로 다시 휴학했다. 그와 이모가 돌아가며 어머니를 간병했다는 걸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 그에게 듣게 됐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전화하는 소리, 가끔 집에 들어오는 그가 깊은 잠을 자는 모습…… 막연함은 차츰 분명함으로 변해갔다. 하루하루 집 안에 쌓이는 비통함의 공기는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며 그녀를 일깨웠다.

그는 그녀가 어리므로 큰 병원에는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에는 병균이 많고, 그래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어느날인가 그는 그녀를 데리고 어머니의 병실로 갔다. 병실 문을 열기 전까지 떨려서 가슴이 뛰던 일을 그녀는 기억한다. 문을 열고, 창가 침대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을 때, 어머니는 그녀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이 굳은 채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 쪽으로 오라고 몇번 손짓하다가, 그녀가 여전히 한 자리에 서 있자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몸을 들썩이며 울었다. 그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얼어붙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민주야…… 민주야…… 어머니의 거친 음성을 들으며 그녀는 차마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민주야, 일어나.”

그녀는 오빠를 따라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른들도 때로는 아이처럼 운다는 걸 알았고, 어른들이 자신을 염려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호기심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어린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저 멀뚱히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신발주머니를 들고서 가장 먼 길을 택해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로. 민주야, 오래 기다렸지. 잠깐 무슨 오해가 있었대. 그런 말을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랬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엄마가 세상에 없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 상상으로 그녀는 자신이 느껴야 했던 마음을 영원히 유예했다. 그리고 아직도 꿈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도,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이십분 지각을 한 친구에게, 내가 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꼭 버려지는 일 같아서였다. 눈물이 나도 그 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녀는 소리의 글을 매일 읽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에 눈이 갔고, 그런 문장에서 그녀는 오래 머물렀다.

밤 열시. 수학 학원에 다녀온 소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소리가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기를 기다렸다. 소리는 다 씻고서 잠옷 차림으로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거실로 나왔다. 회색과 빨간색이 섞인 체크무늬 잠옷이었다. 처음에는 품이 컸지만 소리가 자라면서 지금은 딱 맞는 옷이 됐다. 소리는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파 아래에 앉아서 소리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다 끝나자 소리는 동유럽 팔박 십일 패키지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방송에 채널을 고정하고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자퇴하는 거, 생각해봤어?”

그녀가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못 들었어. 뭘 생각해봤냐구?”

그녀가 소리 쪽으로 몸을 돌려서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웠다.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한 거. 아직도 그런가 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소리가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해.”

그녀가 말했다. 소리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생각나? 너네 삼촌이 항상 물어봤었잖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하자 갑자기 목이 메었다.

“소리야, 뭐 하고 싶어? 네가 아무거나, 하고 답하면……”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꼭 감았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그랬지.”

소리가 끊어진 문장을 이어서 말했다.

“맞아.”

그녀는 눈물을 참고서 소리를 바라봤다.

“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좋아.”

“……”

“부탁할게.”

 

소리와 그녀가 다시 텃밭을 찾아갔을 때, 밭은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다 쓴 부탄가스 통, 담배꽁초, 통조림 캔, 일회용 플라스틱 컵, 크고 작은 생수 컵, 일회용 나무젓가락, 다 먹고 남은 닭뼈, 마스크, 소주병, 맥주병, 깨진 유리조각, 바퀴가 없는 자전거, 컵라면 용기, 장화, 개똥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아직 날이 쌀쌀해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날이 풀리고 그들은 퇴비와 석회, 붕사를 차에 싣고 가서 밭 전체에 골고루 뿌리고 삽으로 깊이갈이를 했다. 전날 큰 봄비가 내려서 작업을 하기 좋았다. 그다음에는 쇠갈퀴로 흙을 잘게 부수고 평평하게 골랐다. 그의 방에서 남아 있는 씨앗들을 살펴보았다. 사월 중순에 뿌리기 좋은 순무 씨앗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하루 날을 잡아 밭을 고르고 이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과, 농사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그림으로까지 남긴 그의 노트를 참고했다. 이랑을 다 만들고 나서 그녀는 가져온 순무 씨앗을 꺼냈다.

“손바닥 내밀어봐.”

그녀는 순무 씨앗을 소리의 손바닥 위에 쏟아놓았다. 둘은 한참 동안 아주 작은 구슬처럼 생긴 씨앗들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서는 모두 보라색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어떤 것은 갈색, 어떤 것은 붉은색, 어떤 것은 진한 보라색이었다.

“구멍 하나에 두개씩 넣으면 된대.”

그녀는 작은 막대기로 땅에 구멍을 내고, 소리는 그 구멍에 순무 씨를 넣고 흙으로 덮었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일을 그르칠 것처럼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씨를 다 뿌리고 소리가 물뿌리개로 두둑에 물을 줬다. 그녀는 그런 소리 곁을 가만히 따라다녔다.

그들은 일을 끝마치고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밭을 바라봤다.

“정말 무가 자랄까?”

소리가 물었다. 그 말 앞에 ‘삼촌이 없는데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자라지 않을까? 잘 돌봐주면.”

“그렇겠지?”

“응.”

그녀는 그렇게 답하고 습관처럼 소리의 정강이에 시선을 뒀다. 그 시선을 눈치챈 소리가 말했다.

“키가 자라니까 길어지면서 흉이 옅어졌어.”

소리가 검지로 다리의 흉터를 만졌다.

“그때 기억나?”

그녀가 물었다.

“응.”

“많이 아팠지?”

“그럼. 엄청 아팠지. 그때 삼촌이 막……”

거기까지 말하고 소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삼촌이 막……”

소리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리가 흉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난 이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소리가 곧추세운 제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시원한 바람이 소리와 그녀에게 불어왔다. 연한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봄볕이 눈을 따갑게 했다. 그녀도 소리를 따라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그곳으로 찾아올 햇볕과 비와 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