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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K-방역의 그늘에서
개입에 대해 개입하기
조형근 趙亨根
사회학자. 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공저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하여』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좌우파사전』 등이 있음.
remineur21@gmail.com
1.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정신에 깃든 것
서울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던 1129번 확진자는 2020년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설을 했다. 1월 31일부터 인후통이 왔다.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먼 거리도 걸어 다녔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하고 위생장갑을 꼈다. 식기도 소독했다. 증상과 이동경로를 직접 적은 코로나 일지가 38쪽에 달했다. 접촉한 23명 모두 음성이었다. “평소 남에게 작은 피해라도 주는 게 너무 싫었다”는 사려 깊은 처신이 낳은 결과다. 코로나19 시대의 영웅은 이런 모습이다.1
1129번 확진자만큼은 못 돼도 행여 남에게 작은 피해라도 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우리다. 그해 8월 중순의 어느 밤, 휴대폰으로 확진자 접촉 통보를 받은 우리도 그랬다. 처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내게 연락한 역학조사관은 CCTV 확인 결과 처가 확진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알렸다.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 시간에 처는 집에 있었다.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조사관은 완강했다. 실랑이 끝에 받은 CCTV 사진에는 다른 사람이 찍혀 있었다. 아니라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심이 됐을까? 아니, 새로운 공포가 밀려왔다. 조사관은 아파트 우리 라인에 확진자 두명이 동시에 나왔다고 했다. 도시에는 지역감염이 번지고 있었다. 바로 자발적 격리에 들어갔다. 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나도 모든 일정을 온라인으로 바꿨다. 격리가 시작되고 열흘쯤 지나자 정말 우울해졌다. ‘코로나 블루’가 그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무가 아닌데도 생활반경을 최소화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감염이 두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감염이 초래할 다른 이들의 불편이 더 두려웠다. 그러니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19 1차 확산을 겪은 후인 2020년 5월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내가 확진자가 될까 두렵다’는 마음보다(64% 동의), 감염의 결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두렵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86% 동의).2
이 놀라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K-방역 성공’의 원천 중 하나였을 것이다.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공개, 추적(tracing)·검사(test)·처치(treatment)의 3T로 구성되는 정부의 촘촘한 방역행정도 결국 시민들 사이의 배려와 자발적 협력이 있었기에 잘 작동할 수 있었다. 전술한 여론조사를 다룬 기사는 그것을 ‘민주적 시민성’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한국이 팬데믹 와중에 인명피해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가 된 핵심 요인은 타인을 배려하는 자발적 협력의 심성, 그 민주적 시민성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아름다운 서사에 조금 민폐를 끼치려 한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선의의 이면에 깃든 것은 민폐 끼치는 이들에 대한 분노였다. 민폐에 대한 감각에는 단죄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3 나는 이렇게 힘들여 참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참지 못하느냐라는 비난과 원망의 정동이 웅크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정동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자라온 한국사회의 모순들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2. 서구 대 아시아, 국가권력 대 개인이라는 이분법
2020년 1월 23일, 중국 우한과 주변 도시들이 예고 없이 봉쇄됐을 때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묵시록적 광경이 펼쳐졌다. 이윽고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쳤다. 공포 앞에서 나라마다 대응이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중국은 억압적인 봉쇄정책으로 권위주의 방역의 대표 모델이 됐다.4 서구에서도 봉쇄가 잇달았다. 방역의 긴급성 앞에서도 서구인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에 완고했다. 일률적인 마스크 착용도, 개인정보 수집에 기반한 디지털 방역행정도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 대신 확진자가 폭증했고, 사망자도 늘었다. 서구가 치른 댓가였다.
자유를 희생한 중국 모델과 생명을 희생한 서구 모델 사이에 체제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국 방역 모델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한국은 전면적인 봉쇄나 영업·이동의 자유 제한 없이도 끝내 확진자 수의 극적인 감소를 이뤄냈다. 4월에는 총선까지 무사히 치렀다. 중국의 권위주의와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빛났고, K-방역은 그렇게 브랜드가 되었다.
코로나19에 대한 국가 간 대응의 차이, 그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서구와 아시아를 대조하는 ‘문명론적 접근’이다. 프랑스 철학자 기 소르망(Guy Sorman)은 2020년 4월 27일, 『르뿌앵』(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호평하면서도, “유교문화가 선별적 격리조치의 성공에 기여했다. 한국인들에게 개인은 집단 다음”이라고 단언했다.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해 감염자를 추적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매우 감시받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듬해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위계질서나 훈육에 사람들이 잘 스며들어 있다”며 재론했다.5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아시아 모델 비판은 더욱 신랄했다. 그는 한국·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의 방역정책을 중국과 함께 아시아 모델로 묶은 다음 디지털 생명정치로 규정했다. 그가 생각한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아시아가 “문화적 전통(유교)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유럽보다 덜 완고하고 더 순종적이다. (…) 디지털 보안 감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데이터 보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6
이 거친 이분법에서 문명론의 외피를 벗기고 권력의 감시와 개인의 자유라는 대립구도 자체에 집중하는 입장도 있다. 이딸리아에서 코로나19가 파멸적으로 확산되던 2020년 2월 말 아감벤(G. Agamben)의 견해가 그랬다. 그는 문제를 아시아 대 서구가 아니라, “예외 상태를 정상적인 통치 패러다임으로 활용하려는 경향” 자체에서 찾으며 테러 대신 감염병이 예외상태를 정상화하는 구실이 되었다고 짚었다. 코로나19는 통상적인 독감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도 “미친 듯한, 비이성적이고, 절대적으로 근거 없는 긴급조치”들이 실행되고 있으며, 안전에 대한 열망을 명분으로 정부가 부과하는 자유의 제한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7
아감벤에게 지젝(S. Žižek)이 따졌다. “국가권력을 향한 불신이 수반되고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방해하는 공황상태를 조장하는 데 왜 국가권력이 관심을 갖겠는가?” 지젝이 보기에 아감벤 등 좌파 진영은 바이러스 공포를 사회통제를 실행하려는 구실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런 해석으로 위협적 현실을 없앨 수는 없다. “민중이 국가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은 옳은 일이다. (…) 유럽이 직면한 과제는 중국에서 행한 일이 훨씬 더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8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는 지젝과 조우한다. “‘피부 위’ 감시로부터 ‘피부 아래’ 감시로의 극적인 전환”을 초래할 수도 있는 비상사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 시민권의 주요 시험대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프라이버시와 건강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를 구축함으로써가 아니라 시민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프라이버시와 건강 모두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이 추적 응용 프로그램들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광범위한 검사, 정직한 보고 및 정보에 정통한 대중의 자발적인 협력에 더 의존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9 솔깃해지는 서사다.
황정아는 예외상태 담론을 위시한 탈국가 담론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통치가 작동되어야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관심이 없고, “국가 비판이라는 습관적 위치를 고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비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국가의 개입을 촉구하는 동시에 그런 개입 자체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것, 곧 국가의 민주화밖에는 없”다는 것이다.10
이 글이 끼치려는 민폐도 마찬가지다. 서구 모델과 아시아 모델 사이에서 한국 모델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건 관심사가 아니다. 서구의 탈국가 담론에 내장된 오리엔탈리즘이 옳지 않다고 해서 한국 모델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작동한 방역정치의 실천에 개입하는 것, 그와 결부된 우리 욕망의 배치를 성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3. 거침없는 기본권 제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광범위한 기본권 제한이 이뤄졌다. 감염병 예방법과 그 시행령 등에 따라 적법하다고는 해도, 결국 다른 헌법적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었다. 자가격리나 집합금지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영업 제한이나 금지는 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 개인정보 추적은 사생활의 비밀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제한은 말할 것도 없다. 기본권 제한은 그 목적이 타당하고 법률에 근거해야 함은 물론이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최소화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특히 두드러진 것은 개인정보 활용 등 프라이버시 문제다. 한국은 봉쇄나 재택명령 대신 확진자와 접촉자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잠재적 감염자들을 선제적으로 검사하는 3T 방식을 택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기본권 제한이 약하지만, 사생활의 보호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측면에서는 기본권을 크게 제약한다. 서구에서는 이 방식이 불가능했다. 추적을 위한 정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요구 정도가 매우 높아서 실행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11
한국이라고 문제가 없었을까? 아니다. 확진자의 이동경로와 성별, 나이 등 상세한 신상정보가 공개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신원 노출이 두려워 증상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동선 공개가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불륜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로 낙인찍히는 사례도 나타났다. 프라이버시 문제를 넘어 인격권 침해 수준의 부작용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3월 9일, 성별·나이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밝히지 않고 시간별 방문 장소만 공개하는 등 확진자의 사생활 보호방안 강구를 촉구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감염병 예방에 필요한 정보에 한해 공개하도록 지자체에 지침을 보냈다. 그래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미크론 변이 최초 확진자 부부를 보도하며 연합뉴스는 확진자의 가족관계 등 관계도 그림으로 전파 양상을 묘사했고, 뉴스1은 오미크론 확진자·의심환자의 성별·나이·거주지역·선행 확진자와의 관계·백신 접종 여부까지 샅샅이 담은 표를 공개했다.12
2020년 4월에는 자가격리 지침을 위반한 사람의 손목에 전자 ‘안심밴드’를 착용하게 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동의하는 경우에 한한다는 것이었지만, 거부하면 시설격리로 전환하고 비용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게 했으니 사실상 강제였다. 법률적 근거 없이 전자장치를 몸에 채운다는 발상이 충격적이었다.
더 숙고해야 할 것은 대중의 태도다. 확진자의 신상정보가 샅샅이 공개되고 있던 2020년 2월 7일의 한 조사에서는 ‘지금보다 더 공개해야 한다’는 응답이 49.2%로 절반에 육박했고, ‘지금 수준이 적절하다’는 응답도 40.6%에 달했다. ‘지금도 많다’는 응답은 5.7%에 불과했다.13 안심밴드 착용과 관련해서 4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일반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2%가 밴드 착용에 찬성했다.14
집합금지 문제도 심각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흥행·집회·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제49조 제1항 제2호).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개신교의 대면 예배와 노조, 자영업자 등의 집회시위였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과정에서 신천지에 대한 분노가 커진 탓도 있어서 일부 개신교회의 대면 예배 강행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실제 개신교가 종교시설발 집단감염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도 맞다. 어느 정도였을까? 개신교계 여론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코로나19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 평가조사’(2021.1.29.)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코로나19 확진자의 44% 정도가 개신교회에서 감염되었다고 믿었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감염원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회발 확진자는 11%였다.15
집회·시위에 대한 당국의 금지와 강행을 둘러싼 논란들은 더욱 문제적이다. 2021년 6월 15일, 택배노조의 집회와 파업이 있었고 확진자 두명이 나왔다. 금지된 집회였다. 왜 집회를 강행했을까? 2020년부터 그 시점까지 2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산재도 급증했다. 팬데믹 기간에 택배노동자들은 생명을 갈아서 우리의 생명줄이 되어왔다. 이들은 부당하게 강요되고 있는 분류업무만이라도 제외해달라고 요구해왔다. 2021년 1월, 노사정 합의로 업무 제외가 결정됐지만 사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또 죽어갔다. 6월의 집회와 파업 이후에야 2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노조위원장 등 30여명은 감염병예방법 등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처벌받았다.
2021년 7월 14일에는 전국자영업자비대위의 손실보상 요구집회가 열렸다. 역시 금지됐다. 손실보상법 제정도 너무 늦었지만 무엇보다 소급적용 불가 방침이 분노를 일으켰다. 정부가 영업을 막았는데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손실보상을 받기도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2021년 7월 3일의 민주노총 집회를 둘러싼 ‘확진자 사태’는 심각하다. 역시 금지됐지만 집회는 강행됐다. 참가자 중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소속 조합원 1명이 7월 16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어서 동료 2명이 확진됐다. 질병관리청은 참가자 8천여명 전원에게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총리는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여론은 4차 유행의 도화선이 됐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지도부는 입건됐다. 하지만 이 3명은 노조 상근자로서 같은 부서 동료들이라 매일 함께 식사하고 일하는 사이였다. 확진된 날짜도 7월 3일에서 꽤 멀었다. 집회 참가가 감염 원인이라고 볼 근거가 희박했지만, 정부는 역학조사도 하기 전에 일단 집회에서 확진됐다고 발표하고 행정명령부터 내렸다. 역학조사 결과 이들은 함께 간 음식점에서 확진된 것으로 밝혀졌다. 추가 확진자도 없었다.16
대통령선거 국면이 되자 집회·시위 금지의 모순이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정당들의 경선과 선거운동 현장마다 인파가 운집했다. 민중의 생존권 요구 집회는 마스크 착용, 명단 작성, 체온 측정, 거리 유지 등 온갖 방역수칙을 다 준수해도 늘 금지됐다. 반면 이런 정치집회들은 아무 조치 없이도 자유였다. ‘턱스크’ ‘코스크’ ‘노마스크’가 난무하고, 비말 날리는 환호성도 요란했다. 집회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밀집도도 높아졌다. 많이 모여 감동했다는 지지자들의 증언이 소셜미디어에 넘쳤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거기서만 퍼지지 않는 것일까? 부조리하다.17 집회와 시위의 권리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투철하리라 믿었던 민주당 정권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부조리가 진지하게 고민되었다는 소식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부조리하다.
4. 도처에 만연한 차별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재난이었지만 그 영향은 불평등했다. 특히 장애인·홈리스·이주노동자·요양원 수용자·기저질환자 등 차별받던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더한 차별이 닥쳤다. 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고위험군·집중관리군에 포함되지 못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 관리와 사망자 통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된 죽음’이었다.18
장애인이 수용된 사회복지시설은 빈번히 ‘예방적 코호트 격리’로 고통받았다. 시설에 갇히게 된 사회복지사들이 입장문을 발표하고, “비좁은 공간에 뒤엉켜 쪽잠을 자고” “집에도 못 가고” “제시간에 씻지도 못하”는 고통을 호소했다. 정당한 호소다.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이라면 ‘이미’ 오래 경험해왔던 고통이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간주해온 삶의 질서 그리고 일상에 깃든 차별과 배제를 폭로했다.19 홈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취지의 자활시설에서 감염 우려를 빌미로 홈리스들에게 일하러 나가지 말든지 시설을 나가든지 택일하라고 강요했다. 홈리스들은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역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사실상 혹은 아예 배제되기도 했다. “K-방역과 재난지원금에서 조금이라도 ‘국가’를 느꼈다면, 그건 당신들의 국가일 뿐이다.”20
외국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도 뚜렷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이주 외국인의 약 74%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차별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21 공적 마스크 구매 과정에서 외국인은 사실상 배제됐다. 외국인등록증과 국민건강보험증이 있으면 구매가 가능했지만 바로 그게 장벽이었다. 2020년 6월 기준 이주 외국인의 약 70%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종이 보험증을 발급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탓이다. 중앙정부의 ‘국민’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주민’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한 지자체 역시 대부분 외국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이주인권단체의 항의와 인권위의 권고로 결혼이주민과 영주권자로 지급 대상을 넓혔지만, 이들은 전체 체류 외국인의 12%에 불과했다. 2020년 8월 서울시는 전체 외국인으로 지급 대상을 넓혔지만, 경기도 등 대부분의 지자체는 확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2021년 2월 경기도 남양주시 기숙사 공장에서 외국인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외국인이 표적이 됐다. 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5명 이상 고용하고 기숙사를 보유한 제조업 사업장 1만 1천여 곳에 특별 전수점검을 실시했고, 지자체들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외국인만 지목한 검사 강제는 명백한 차별이자 낙인찍기였다. 차별조치를 중지하라는 인권위의 권고, 주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대사단의 강한 우려 표명이 잇달았다. 논란이 커지자 중대본은 서울시에 외국인 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 취소를 요청했고 다른 지자체들에도 정책조정을 지시하게 되었다.22
5. 창궐하는 낙인찍기와 혐오
사실 외국인이 아니라 누구라도 낙인찍기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혐오는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한국사회의 중요한 ‘시대정신’ 중 하나가 되었다. 정치적 대결의식의 극단화, 을과 을 사이 경쟁의 격화 속에서 성별·세대·인종·국적 등 온갖 정체성 범주들에 대한 낙인찍기와 혐오가 사회화되어왔다.
질병의 원인을 도덕적 타락에서 찾고 희생양을 찾아 비난하는 습속은 어느정도는 인류의 성향이다. 병인론(病因論)은 현대까지도 종종 도덕화된다. 암이나 에이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널리 알려진 사례다.23 코로나19에 대한 낙인찍기와 혐오가 한국만의 특징인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조차 다르지 않다. 세균학은 진단상의 인과관계를 둘러싸고 은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박테리아는 정치적 민족주의 프레임 속에서 군사적이고 유기적인 은유의 조합을 통해 ‘적’으로 의인화되곤 했다. 세균의 발견자인 로베르트 코흐(H. Robert Koch)는 박테리아를 싸워서 무찔러야 할 “가장 작지만 가장 위험한 인류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24
질병의 원인을 도덕화하는 오랜 습속과 혐오를 조장하는 현대 한국사회의 토양이 접속하자 혐오는 마치 증식숙주 속의 바이러스처럼 폭발적으로 창궐했다. 경기도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2020년부터 2022년 1월까지 4회에 걸쳐 경기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기도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초기에는 확진 자체와 관련이 있는 중국인, 신천지 교도, 성소수자 등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에는 방역수칙 위반자, 백신 미접종자 등 특정 행위 관련자들에게 혐오가 가해졌다.25
혐오와 비난을 줄인 것은 결국 유행의 장기화였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방역수칙이나 규정을 고의로 어기는 사람들에게로 비난이 옮겨가다가 오미크론이 확산되자 이런 비난조차 사실상 사라졌다. 위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고, 심지어 사망자도 늘었지만 경각심도, 비난도 약화됐다. 왜? 인구 다수가 감염됐기 때문이다.26 감염병에 걸리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감염되는 수밖에 없었다.
6. 민주시민과 권위주의의 동행?
2020년 5월 무렵, K-방역의 성공은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봉쇄 없이 확진자 수를 급감시킨 한국의 성과에 대해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던 때였다. 시사IN과 KBS,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한국리서치가 함께 진행한 코로나19 관련 여론조사(2020.5.7~8) 결과는 경이로웠다. 기 소르망 같은 서구 지식인들이 옳았다면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부의 지시를 잘 따랐을 것이다. 결과는 반대였다. 권위주의적일수록 방역 참여도가 낮았고, 수평적 개인주의 성향이면서 민주적 시민성이 높을수록 방역에 적극 협조했다.27 중국이 당의 압제로 코로나19를 틀어막고 서구가 분열된 개인주의로 무너질 때, 민주정부의 리더십과 시민의 자발적 협력으로 K-방역은 성공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새로운 문명 표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다른 함축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2016년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와 비교했을 때 권위주의 성향이 전반적으로 강화되었다. ‘우리나라를 망쳐놓고 있는 극단주의를 제압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는 문항에 대한 긍정이 2016년 4.42에서 2020년 5.03으로 상승했다(7점 만점 기준). ‘정부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국민을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라는 문항은 3.73에서 3.97로, ‘우리나라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넓은 인권 보장이 아니라 좀 더 강력한 법질서다’라는 문항은 4.00에서 4.62로, ‘우리의 가치관과 법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문제 집단들을 강력히 척결해야 한다’라는 문항은 4.10에서 4.70으로 긍정 응답이 상승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일수록 권위주의 문항들에 대한 긍정 응답률이 높았다는 것이다.28
‘거버넌스의 다양성 SSK연구사업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2020.8.19~24) 또한 동일한 경향을 보여준다. ‘집회 및 시위는 시민의 불편을 초래할 경우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문항에 응답자의 82%가 동의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지자의 68%가 동의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88%가 동의했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에게 현행법에 맞지 않더라도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라는 문항은 응답자 83%가 동의했다. 미래통합당 지지자는 69%, 민주당 지지자는 94%가 동의했다. ‘국민의 자유에 제한을 주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문항은 90%가 동의했는데, 미래통합당 지지자는 84%가, 민주당 지지자는 95%가 동의했다. 이외에도 모든 문항들에서 일관되게 민주당 지지자가 미래통합당 지지자에 비해 자유의 제한, 억압을 옹호했다.29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7. 성공의 신화에서 잊힌 것: 국가의 개입에 개입하기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코로나19를 둘러싼 방역정치는 정당 간 대립의 맥락 속에서 과잉정치화되었다. 한쪽에서 “세계가 감탄한 K-방역”을 자찬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악 ‘허망한 K방역’”이라는 비난으로 맞섰다.30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수정당 지지자에 비해 권력의 억압을 훨씬 더 촉구하는 역설은 ‘방역정치의 정당정치화’라는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에게 K-방역의 성공은 세월호참사와 메르스사태 때 국민의 생명을 방기한 보수정권에 대한 심판임과 동시에 진보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증거였다.31 훼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태도가 신념화되고 습속화된 권위주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제인 건 여전하다.
박근혜정권을 심판한 촛불행동의 특징 중 하나는 ‘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제도가 정해놓은 절차를, 질서를 완벽히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만 부각되면서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의제화와 논쟁은 정권교체 뒤의 과제로 미뤄졌다. 촛불의 성과가 중산층 민주주의로 회수되었다는 평가는 이런 맥락 위에 있다.32 여기에 코로나19 방역정치에서 나타난 권력과 대중 관계의 한 원형이 있다. 방역 현장에서 국가의 책임있는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하다. 한국의 방역정치를 폄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개입 자체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치열하게 동반된다는 전제 아래서만 그렇다. 그 개입이 부재하거나 미약할 때 팬데믹 재난은 기존의 혐오를 만개시키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한다. 무엇보다 시민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를 약화시킨다. 우리가 경험한 바다. 공공의료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요구하고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것이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코로나19타파연대’ 같은 활동이 있기는 했지만, 영역과 지역을 넘어선 네트워크 활동은 사실상 부재했다고 평가된다. 재난과 참사가 일상화되고 있음에도 그 대응 경험은 시민사회에 축적되지 못했다.33 이것들이야말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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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옮길까봐 걸어 다녀, 1129번 확진자 25일간의 ‘코로나 일지’」, 동아일보 2020.3.4 참조.↩
- 천관율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의외의 응답 편」, 『시사IN』 663호(2020.6.2).↩
- 서보경 「감염과 오명, 보복하지 않는 정의에 대하여」, 미류 외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창비 2021, 43면 참조.↩
- 중국의 방역행정을 권위주의 모델이라고 단순하게 보기는 어렵다. ‘인민전쟁’부터 ‘디지털 법가’에 이르기까지 중국 방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 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하남석 외 지음, 백영서 엮음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 책과함께 2021.↩
- 「기 소르망 “한국, 방역대책 최고지만…심한 감시 사회” 주장」, 동아일보 2020.4.29; 「기소르망 “백신 특허 면제해야… 강대국의 이기심은 피해로 되돌아올 것”」, 한국일보 2021.5.2 참조.↩
- Byung-Chul Han, “The Viral Emergenc(e/y) and the World of Tomorrow,” Pianola con Libre albedrío, 2020.3.29.↩
- Giorgio Agamben, “The state of exception provoked by an unmotivated emergency,” Positions politics, 2020.2.26.↩
- 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북하우스 2020, 97~98면.↩
- Yuval Noah Harari, “The world after coronavirus,” Financial Times, 2020.3.20.↩
- 황정아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 모델’」, 황정아 외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창비 2021, 25~27면.↩
- 전상현 「감염병 시대의 방역과 기본권 보장의 쟁점」, 『공법연구』 49집 2호, 2020, 352면 참조.↩
- 장영욱 「알아선 안 되고 알려져서도 안 되는: 오미크론 확진자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단상」, 얼룩소 2021.12.6 참조.↩
- 「코로나 확진자 정보, “더 공개” 49.2% vs “현행 유지” 40.6%」, 뉴시스 2020.2.10.↩
- 「정세균 “지침 위반 자가격리자, 전자 손목밴드 채운다”」, 한겨레 2020.4.11.↩
- 「‘코로나19’로 교회 신뢰도 급락…1년 만에 32%→21%」, 연합뉴스 2021.1.29.↩
- 「민주노총 확진자 3명, 7·3집회 아닌 음식점서 감염…추가확진 없어」, 뉴시스 2021.7.26.↩
- 「집회는 인원제한, 유세는 무제한…차별적 방역기준」, 한국일보 2022.1.29 참조.↩
- 「돌봄 절실한데 진료 후순위…의료 취약층 참담한 마지막」, 한겨레 2022.5.23 참조.↩
- 김도현 「‘시설사회’와 코로나19, 그리고 장애인」, 미류 외, 앞의 책 106~13면 참조.↩
- 최현숙 「거리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 미류 외, 앞의 책 87~94면 참조.↩
-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 모니터링 결과보고」, 2020.↩
- 백일순·고민경 「국내 코로나 19 방역에서 나타난 외국인의 배제」, 『한국이민학』 제8권 1호, 2021.↩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재원 옮김, 이후 2002 참조.↩
- Ulrike Kistner, “Illness as Metaphor, pandemically,” NIAS.↩
- 보도자료 「경기도민 51.9%, “코로나19 위험 통제할 수 있다」 및 보도참고자료 「경기도민 2022년 1월 조사」, 경기도 뉴스포털 2022.2.17.↩
- 장영욱 「소수자가 다수가 될 때 사라지는 혐오: 확진자 공개 비난과 장애인 이동권」, 얼룩소 2022.4.13 참조.↩
- 천관율, 앞의 기사.↩
- 천관율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 『시사IN』 664호(2020.6.9). 해당 문항에 긍정적일수록 점수가 높다.↩
- 거버넌스의 다양성 SSK연구사업단 「코로나19의 사회적 영향과 시민의식에 관한 패널여론조사」, 2020.10.14; 「코로나19 정부 대응 평가에 정치성향별 편차 커」, 한겨레 2020.10.30.↩
- 「거리두기 지키며 2년 버텼는데… 사망·확진 세계 최악 ‘허망한 K방역’」, 조선일보 2022.3.23.↩
- 메르스사태의 교훈에 따라 형성된 ‘제도적 기억’이 민주당정권의 방역정책을 이끌고 총선 승리까지 담보했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Younsik Kim, “Uncertain future of privacy protection under the Korean public health emergency preparedness governance amid the COVID-19 pandemic,” Cogent Social Sciences, vol. 8, Issue 1, 2022.↩
- 조형근 「선을 지키는 사람들, 선 너머의 사람들」,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1년 겨울호 67~68면.↩
- 서울시NPO지원센터·코로나19타파연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공익조합동행 「시민사회 영역별 코로나19 대응활동 연구조사 보고서」, 2020, 99~1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