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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심사평
올해 평론부문 응모작은 총 18편이었다. 엉뚱하게도 영화나 씨나리오에 관한 글들이 섞여 있어 제하고 보니 15편 남짓이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1차 검토를 거쳐 10여편을 제외했다. 대개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치중하고 있거나 비평의 대상이 된 텍스트를 논증 없이 매도하는 부류였다. 물론 아예 요령부득인 경우는 논외다. 문학평론은 작품 뒤를 마냥 졸졸 따르는 것이어도 곤란하지만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경의를 상실한 채 근거 없는 비난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문학평론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진지한 사랑에 있다. 이를 망각한 비평은 궁극적으로 자기모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당선권에 든 응모작은 4편이었다. 김성규 이이체 이영광 황병승의 시와 김훈의 소설을 함께 다룬 「지금-여기, 잠깐 솟아오른 희망을 위하여」와 박민규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길 없는 시대의 걸음」, 김영하 문진영 장강명의 사회성에 천착한 「장편소설 속 20대 인물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전석순 박민규 등의 작품을 대상으로 이른바 루저(loser)문학의 향배를 점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2.7g의 루저들」이 그 목록이다.
「지금-여기」의 경우 전반부의 시 분석이 인상적이었으나 김훈의 『남한산성』으로부터 무리하게 전망을 추출하려 든 점이 걸렸다. 필자의 주관적 주장이 작품의 실상과 본의를 훼손하거나 지나치게 들어올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단련된 문장과 명쾌한 논술이 장점이다. 그러나 루저 문화에 대한 사회비평적 시선으로 문학작품을 제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장편소설 속 20대 인물」 또한 유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안정되고 세련된 논술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미리 설정한 문학사회학적 구도 안에서 작품이 압사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품과 직접 대결하기보단 수많은 주석과 전거에 의존하는 방식도 걸렸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길 없는 시대의 걸음」을 놓고 고민했다. 문학과 사회를 포괄하는 문제의식이 살아있고 자기공부에 있어 일관된 방향이 엿보인다는 점이 미덕이었다. 고정불변의 기성질서를 미지의 것으로 낯설게 만들곤 하는 박민규의 작품세계를 긍정과 부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비전의 시도로 파악하면서 오로지 작품 자체의 예민한 목소리에 귀를 열고자 한 점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부정확하고 거친 문장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다 역시 박민규를 대상으로 쓰인 기왕의 대산대학문학상 당선작들이 이룬 성취에 견줄 때 손색이 없지 않다는 점이 걸렸다. 특히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낙관론의 소산으로 과잉 단순화하는 등의 대목이 심사위원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격론 끝에 「길 없는 시대의 걸음」조차 제외함으로써 아쉽지만 올해는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응모자들의 정진을 바란다.
강경석 최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