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은정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후마니타스 2022
장애와 젠더를 둘러싼 정상성의 억압을 들여다보다
이현정 李炫姃
의료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anthrolee@gmail.com
지난 몇년간 국내에 페미니즘과 장애학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이런 흐름을 기쁘게 바라보면서도, 페미니즘과 장애학에 걸친 이론적 논의를 좀더 깊이있게 다루는 책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여성·젠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은정의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강진경·강진영 옮김)은 무엇보다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무척 반갑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과 추가 연구에 기초한 책(Curative Violence, 2017)의 한국어판이다. 저자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장애를 다룬 소설과 영화, 신문기사, 정책 문건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한국의 역사와 정책, 제도,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400면이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텍스트에 관한 풍부한 설명과 장애학, 퀴어이론, 문화비평, 인류학 등 여러 분과의 논의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분석이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장애와 질병의 문제가 한국사회의 정치적·문화적 지형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으며, 장애와 질병을 치유한다는 논리가 사실상 얼마나 장애인 당사자에게 폭력적이었는가를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치유 폭력’이란 타인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이 지닌 고유한 차이를 지우려는 행위이다. 치유 폭력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장애와 질병을 삶의 다른 방식으로 보는 여지를 없애는 폭력이고, 둘째는 치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장애인들에게 신체적·물리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은 이 두가지 형태의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다. 장애인은 국가나 지역 공동체뿐 아니라 신체적·관계적 합의체인 가족 안에서도 치유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사회적 보호로부터 배제되어 일상적인 차별, 낙인과 물리적 폭력에 직면해야 했을뿐더러 이들을 ‘위한다’는 사람들도 현재 상태가 아닌 (비장애 이성애자 규범을 체화한) ‘다른’ 모습을 바라며 이들을 ‘치유’하고자 해왔기 때문이다.
1장에서 저자는 1930년대 식민 우생학운동의 역사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애가 유전되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을 다루는 이른바 ‘유전 드라마’들을 분석한다. 장애아를 낳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선택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우생학적 믿음 속에서 출산에 개입하는 생명정치는 정당화되며, 장애는 계속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 2장은 장애인과 돌봄을 제공하는 비장애인 가족 간의 상호의존성을 다루는데, 이때의 의존성은 결국 장애인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폭력적인 성격을 지닌다. 가족 내 장애인 구성원은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욕구를 대변하기보다 강제적 정상성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참여하며, 비장애인 가족구성원의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해야 하기에 자신의 욕망으로부터도 소외되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장애인에게 규범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을 수행하도록 강제하면서 (‘진정한 여성’이 되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정당화되는 사례, 규범에 맞는 존재가 되지 못해 형벌적 죽음을 맞게 되는 사례들을 다룬다. 영화 「꽃잎」(1996), 「박하사탕」(1999), 「도가니」(2011) 등에 대한 저자의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이 돋보이는 장이다. 4장에서는 한센병을 중심으로, 아픈 몸을 둘러싼 가족 내에서 치료시설이 어떻게 치유의 핵심에 위치하는지, 어떻게 가족은 나환자들이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 되고 공동체는 이들을 비인간이자 악마화된 존재로 여기며 위협을 느끼는지를 살펴본다.
각 장의 논의가 모두 흥미롭고 읽어볼 가치가 있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치유로서의 성경험’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5장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장애인의 성에 관한 담론적 지형은 대개 도덕적 억압이나 성적인 저항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 속에 다루어져왔다. 장애인의 성은 ‘부재’한 것으로 상상되거나, 혹은 생물학적 본능으로서 충족되어야 하는 어떤 ‘과잉’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결코 그 둘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비장애인의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 역시 무성애부터 여러 형태의 친밀감과 관계성, 그리고 이성애적 틀에 갇히지 않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성관계에서 반드시 피해자는 아니지만 피해자일 수 있으며, 장애인의 성욕이 언제나 다른 모든 욕망보다 우선순위일 수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이지만, 저자는 이 당연한 사실들이 어떻게 영화와 문학 텍스트 속에서 은폐되거나 왜곡되고,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탈성화 혹은 과잉성애화라는 틀 속에 가두게 되며, 이들을 규율함으로써—예컨대 불임수술, 인도주의적 성서비스, 근친상간적 강간 등을 통해—폭력을 행사하는가를 보여준다.
5장에는 장애남성에게 상업적인 출장 성서비스를 하는 청각 장애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여성은 비록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겨야 하지만, 성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자신이 낙인찍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첫 경험을 즐겁게 기억하고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그 까닭은—비장애중심주의적 편견이 바라보듯—‘통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주변화되고 고립된 장애인으로서 다른 일을 찾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장애남성에게 성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 돈을 벌어서 청력 회복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여성은 성매매 환경 속에서, 그리고 수술을 해야만 ‘정상적인’ 성원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언제나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지만 이 사례는 성매매, 장애, 젠더 그리고 의료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는지 중요한 교차지점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굳이 꼽으라면, 장애인 섹슈얼리티를 논할 때는 내부적인 다양성이 강조되었던 반면, 가족과의 상호의존성이나 시설화 문제에서는 장애인 내부의 차이들이 상대적으로 무마되고 마치 장애인의 경험이나 입장이 균질적인 것처럼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아마도 문화적 텍스트 분석이기에 실제 장애인의 삶을 모두 반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와 질병의 다양성만큼이나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삶도 저마다 다르다. 장애인 가족 중에도 제한된 자원과 환경 속에서 장애인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하는 다른 움직임이 있고, 시설 내에서 만족하거나 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도 존재한다는 점도 전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텍스트 분석에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지형 분석에 치우쳐, 장애인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좀 아쉬웠다.
설령 아쉬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처음에 가졌던 높은 기대감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장애학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