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22년 6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김금희 김수이 정우영 한기욱을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2년 5월 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각 부문에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시와 소설은 단행본, 평론은 발표 원고 기준). 추천위원(창비의 시·소설 기획위와 『창작과비평』 상임위)들이 올린 총 16편의 후보작 가운데 아래와 같은 8편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조온윤 『햇볕 쬐기』, 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이상 시), 이주혜 『자두』, 정성숙 『호미』, 최은영 『밝은 밤』(이상 소설), 김요섭 「피 흘리는 거울: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 성현아 「일상이라는 공동환상」, 인아영 「개와 나무와 양말과 시: 2020년대 시에 나타난 ‘타자’와 비인간 물질의 정치생태학」(이상 평론).
심사위원들은 7월 22일 모임에서 장시간 토론을 펼친 끝에 동시대 청년들의 고단한 삶의 비애와 항의를 다변(多辯)의 시적 어법과 리듬으로 담아낸 최지인 시집(창비 2022),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농촌의 삶을 실감 나는 전라도 사투리로 생생하게 그린 정성숙 소설집(삶창 2021), 분단체제 속의 남성성 왜곡과 군사주의의 폐해를 궁구한 김요섭 평론(『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을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김금희 소설가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신동엽문학상이라는 이 격려를 통해 더 오래 먼 길을 갈 수 있는 작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추구해가고 싶은 자기 세계와 그 성취를 위한 집념과 끈기가 느껴지는가를 주로 살폈고 이는 글의 완미함이나 주제적 돋보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평론 부문 수상작인 김요섭의 「피 흘리는 거울: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은 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을 거쳐 현재의 징병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군사주의를 점검하고 그 과정의 생성물인 일그러진 남성성의 전개를 추적한 글이다. 개개의 작품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 배치해 “희생자이자 가해자인” 채로 존재하는 “흐릿한 악몽” 같은 남성들의 “자기 인식”을 정치하고 면밀하게 드러냈다. 현재 잘 다뤄지지 않는, 혹은 이미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과감히 선택해 독자를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었다. 집단학살이나 전쟁 같은 국가폭력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더 힘있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시 부문 후보에 오른 조온윤의 『햇볕 쬐기』는 존재를 하염없이 무가치하고 비관적으로 만드는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서로 나란히 앉아 “컴컴한 배후”(「단체 관람」)가 없는 “햇빛 속에 함께 있”(「원주율」)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시였다. 밀도있는 시적 형상화와 주제적 깊이, 사려 깊은 시선 등 매 작품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넘쳐나는 수많은 ‘나’의 ‘감상들’ 속에 언어적으로 숙려하고 다듬고 매만져 세상에 내놓는 태도가 귀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시가 바로 그 ‘시다운 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도 조온윤의 시를 오래도록 따라 읽을 것이다.
최지인의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는 젊은 세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비관은 비관으로, 절망은 절망으로 가감 없고 솔직하게 기록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듣고 보는 소음과 장면들, 미디어의 잔해들, 미약한 위안들, 순간적으로 다가왔다가 곧 휘발되고 마는 기대와 희망들이 자유롭게 끼어들어 이 시세계를 추동해나간다. 물류창고에서 육포 하나를 훔쳐 먹었다가 급히 뱉어낸 뒤 거기에서 “갓 태어난 짐승”(「열개의 귀」)을 보고 싶어하는 청년, 물질주의의 세상에서 물질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들씌워지는 가난이라는 죄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사람이 가지는 생생한 저돌성이 이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소설 부문 수상작인 정성숙의 『호미』는 놀랍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한동안 한국문학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농촌이라는 원경을 눈앞으로 끌고 와 읽는 이를 완전히 이입시키는, 첫 소설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흡인력과 생동하는 리얼리티를 보여주었다. 주인공들은 역사의 매 국면에서 착취와 수탈 속에 있었던 농촌 현실을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살아내면서도 바로 그렇기에 거칠고 강하고 지혜롭다. 이때의 지혜란 말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인식되는 것, 표제작 「호미」에 등장하듯 “손에 잡히는 대로 풀잎이고 나뭇잎을 뜯어 오른손에 펴두르고 칡덩굴로 감”아서 비로소 자기 것이 된 지혜다. 자본이 아니라 땅을 상대하고 땅과 타협하며 살아온 이들이 보여주는 그 세련된 활기. 이 새로운 작가를 신동엽문학상으로 호명할 수 있어 기쁘고, 한국문학의 중요한 장을 되살려줄 소설들을 계속 써주기를 기대한다.
김수이 문학평론가
최근 젊은 시인들은 더 새로운 미감과 장치를 발명하고 있다. 언어미학과 상상력, 개인적 믿음과 기분 등을 시와 삶의 현재를 갱신하는 기술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시에서 현실의 실상은 시적 주체의 내면과 삶에 투영될 뿐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시적 성취와는 별개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시가 반드시 현실을 직접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파해야 할 공동의 난제들이 산적한 지금, 현실을 바꾸고 인간과 삶을 재구성해야 할 문학의 사명은 점점 더 갈급한 것이 되고 있다.
최지인의 두번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는 ‘나’의 삶에서 출발해 ‘우리’의 위중한 문제들을 단호하게 발언하면서 시적 깊이와 스케일을 확보하고 있다. 최지인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이미’ 강요된 실패가 한국사회, 자본주의, 현대 문명, 인류 역사의 실패 등이 총체적으로 뒤범벅된 현상임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혁명의 실패’다. 일할수록 지배당하고 공허해지며, 사랑할수록 상실당하고 슬퍼지는 삶의 장소인 “이 세계가 무너지면/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도시 한가운데」). 일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일이 대체로 실패하는 일이며, 실패하지 않고는 ‘인간’이 되기 힘든 세계. 최지인은 애도와 분노가 섞인 다변(多辯) 속에서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실패가 아닌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있다고 역설하며, 살아 있는 일 자체를 희망의 내용이자 방법으로 선언한다. “우리는 죽지 말자 제발/살아 있자”(「제대로 살고 있음」)!
소설은 수상작을 가리기가 가장 어려웠다. 여성의 생명력이 역사의 동력이 된 내막을 강렬한 필치로 서술하는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은 이미 권위있는 문학상 수상으로 탁월성을 인정받은 바 있고, 이주혜의 경장편소설 『자두』는 가부장제·젠더·연대 등의 복잡한 문제를 노인 돌봄의 이야기 속에 깔끔하게 녹여내고 있다. ‘번역’을 통해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읽고 품어내는 삶의 기술로 의미화한 『자두』를 아쉽게 내려놓으며, 『호미』의 수상에 흔쾌히 동의했다. 능글맞을 만큼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로 쓰인 농촌소설의 귀환에 응답해야 할 필연성은 비단 문학의 것만은 아니다. 마비된 몸으로 평생의 도구이자 몸의 일부인 호미 한자루에 의지해 산을 기어 내려오는 영산댁의 처절한 사투(「호미」)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이 계속되는 농촌의 참담한 실상을 상징한다. 농사꾼 작가가 흙투성이의 몸과 숨결로 쓴 이 소설을 적극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유이기도 하다.
평론의 심사 기준은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독창적인 독법을 제시하는 비평적 설계 능력에 두었다. 인아영의 「개와 나무와 양말과 시」는 논리, 문장력, 완성도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 담론과 관점이 다소 익숙하게 다가왔다. 김요섭의 「피 흘리는 거울」은 김승옥 이장욱 박민규 등 대략 60년의 시차가 있는 소설들을 종단하며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모두의 페미니즘’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결말의 미흡함이 약점으로 남았지만, 의제의 성격상 후속편이 쓰일 것으로 짐작하며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세분 수상자에게 마음으로부터 축하를 드린다.
정우영 시인
‘지금 여기’를 바탕으로 나와 너를 살피되 우리를 아파하는 공감력이 짙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작품들을 읽었다. 그러니 내 눈은 평가라기보다는 기대의 확인 쪽으로 향했음을 밝혀둔다.
시 부문 최종심에 오른 시집은 조온윤 『햇볕 쬐기』와 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였다. 조온윤은 내게 기분 좋은 발견이다. 그는 온 힘을 쥐어짜 어두운 시의 현실과 대면하며 앓고 있지만, 나는 외려 들끓었다. 무중력과 무정형의 시공간도 아닌데다 시의 탐색도 만만치 않으니 절로 달아오를밖에. 최지인은 시대와의 불화에 예민하다. 그의 이 불화는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생활을 통해 얻어진 것이어서 체감의 깊이가 남다르다. 그야말로 따르르 울린다. 흔히 ‘루저’라고 통칭되는 불화자들의 곡절이 놀랍도록 생생해서 아리다. 그렇다고 해서 조온윤과 최지인의 지향을 상이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둘 다 시의 안과 밖, 내면과 외면을 두루 갖추고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까닭이다. 차이가 있다면, 조온윤이 내면의 울림에 좀더 귀 기울이고 최지인은 외면의 파장에 눈 두고 있다는 것 정도 아닐까. 나는 이를 내향의 추진력과 외향의 응집력이라고 정리해보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완전히 분화된 것 같지는 않다. 마치 어슴푸레한 바깥과 희미한 안쪽처럼.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아가려는 충동과 밖에서 안으로 모여드는 압박 사이에서 이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모쪼록 더 단단하게 시의 촉을 벼리어 현대사회의 반생명성과 비인간성에 맞서는, 끈질긴 도발을 감행해주길 기대한다.
평론 부문에서는 성현아 「일상이라는 공동환상」, 인아영 「개와 나무와 양말과 시」, 김요섭 「피 흘리는 거울」이 최종심 대상이었다. 성현아는 코로나 시대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부동산 문제·돌봄노동·노인 문제·미래사회 등을 들춰낸 작품들을 통해 들여다보았고, 인아영은 최근 시인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물성과 생물성을 주된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와 달리 김요섭은 요즘에는 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난 한국사회의 남성성과 군사주의의 폐해를 궁구하고 있었다. 셋 다 딱히 불만은 없었으나 파장을 불러일으킬 해석과 솔깃한 설득으로 충만했으면 하는 생각은 들었다. 다만, 김요섭이 눈 돌려 ‘남성성’이라는 소외지대를 살펴봐준 점은 다음을 기약할 만한 일보였다고 믿는다.
소설 부문 최종심에는 이주혜 『자두』와 정성숙 『호미』, 최은영 『밝은 밤』이 올랐다. 최은영의 장편은 이미 다른 문학상을 수상해서 그런지 내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엷었다. 여성 4대의 굴절 많은 행적을 흥미롭게 펼쳐냈다는 점에서는 뿌듯했으나 인물들의 구도가 어쩐지 조금 허했다. 이주혜의 『자두』는 아직도 한국사회에 온존하는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실감 나게 다룬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게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늘 부딪히는 화두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도출되지 않는 이 난제를, 여성끼리의 우애와 벗어남으로 푼다. 이 결말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도 너무 촉급하게 마감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남았다. 정성숙의 『호미』는 익숙해야 하는데 낯선 삶의 현장이 되어버린 한국의 농촌 현실을 진솔하게 파고든다. 제목부터 반가웠다. 호미라니. 저 호미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 할머니, 아짐들 아닌가. 이 소설에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하는데도 투명해져버린 농촌과 농촌 사람들이 오롯이 살아 있다. 이후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물론 우려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의 나이로 보면 이미 중진 반열에 접어들었음직한 연치이다. 세간 평가나 조류에 휩쓸리지 말고 작품 속 당찬 인물들처럼 우리 삶의 전모를 차지게 채워나가길 바란다.
한기욱 문학평론가
올해 최종심 대상작들에서는 계급과 젠더, 지역 등의 경계를 따라 갈라지고 강퍅해지는 우리 시대 삶의 모습뿐 아니라, 그것이 기존 방식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이라는 주체들의 착잡한 마음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주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한국문학은 또 한번의 돌파가 필요한 지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시 부문에서 주목한 것은 조온윤과 최지인의 시집이었다. 두 시인은 우리의 삶이 갈 데까지 갔다고 느끼는 것은 통하지만, 그 대응은 사뭇 다르다. 조온윤이 자신과 타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안으로 깊이 성찰한다면 최지인은 동시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비애를 읊조리고 소리치듯 항변한다. 조온윤의 몸에 대한 사유와 응시의 언어도 예사롭지 않지만, 흑인 음악가 투팩 샤쿠르(Tupac Shakur)의 생애를 자기 가족사와 겹쳐놓은 「마카벨리전(傳)」이 보여주듯 체제적인 차별과 혐오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는 최지인의 래퍼적 어법과 리듬도 특별하다. 두 시인의 대조적인 미덕을 두루 논의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최지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뽑기로 했다.
소설 부문에서 최은영의 『밝은 밤』은 가부장제로 굴절된 한 가족의 역사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다시 쓰기’를 시도한 야심찬 기획이고 작가의 뚝심이 돋보인다. 하지만 다소 작위적인 설정과 감정과잉, 목적의식적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활용하는 방식이 걸린다. 이주혜의 『자두』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가족구조, 돌봄과 간병의 문제, 여성의 주체적 삶의 중요성을 복합적인 서사를 통해 조명하는 가운데 화자와 간병인 여성 사이에 어렵사리 도달한 연대감이 소중하게 와닿는다. 정성숙의 소설집 『호미』는 또다른 삶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여성 주체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것은 앞의 소설들과 비슷하지만,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농촌의 삶과 지방 사투리들이 소설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표제작 「호미」는 출중한 리얼리즘 소설이고 다른 작품들도 “십수년 전에 쓴 소설들”(작가의 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언어와 인물이 펄펄 살아 있다. 심사위원들은 충분한 논의 끝에 『호미』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동의했다.
평론 부문에서는 두편의 글이 경합했다. 김요섭의 평론은 최근의 비평적 흐름에서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분단체제 속의 남성성 왜곡과 그 유산의 문제를 여러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거론하여 적절하게 평하는데, 남성성이 페미니즘 담론과의 연관 속에서도 논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인아영의 평론은 2020년대 시에 나타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물질의 관계를 놓고 서구 첨단의 담론을 활용하여 새로운 경향의 시들을 눈썰미 있게 분석하고 설득력 있게 평한다. 다만 글의 논의가 서구담론 중심인데도 그에 대한 자의식이나 ‘삐딱한’ 비평적 시선이 부재한 것이 걸린다. 심사위원들은 한참 논의한 끝에 김요섭의 평론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수상소감
계속 살아내겠습니다
최지인 崔志認 1990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등이 있다.
오랫동안 신동엽문학상을 꿈꿨습니다. 그 상을 받은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습니다. 수상소식을 전해 듣고 기뻤습니다.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다음 날부터 겁이 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몇주 동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빚이 있습니다. 함께 문학을 하는 한국의 선후배 작가들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문학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 시를 보듬어준 독자들 덕분에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살아내고 있습니다. 시는 제게 삶의 의미와도 같습니다. 시를 삶의 의미로 두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시를 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 삶을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습니다.
두번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는 창비의 이진혁 편집자가 맡아 편집했습니다. 당신의 한때를 이 시집에 보태줘서 고맙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이 애썼습니다.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을 비롯하여 많은 출판노동자가 이 세상의 책들을 위해 쉼 없이 일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집의 얼굴을 맡아준 김은정 작가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초고를 살피며 그려준 작품 덕분에 시집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표지 설명을 적게 된 것은 손병걸 시인 덕분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시를 읽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당신에게 꼭 제 시집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돼줘서 고맙습니다.
김근 시인과 이경수 평론가께 십년이 훌쩍 넘은 세월 동안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여전히 헤매고 있어요. 지도교수인 고명철 평론가와 문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해준 장석원 시인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학원 강의를 들으며 자주 가슴이 뛰었습니다.
양안다 시인과 최백규 시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가시 돋은 말들을 쏟아낸 적도 있습니다. 어리숙한 저의 잘못입니다. 주저앉아 있을 때마다 손을 내밀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껏 걸을 수 있었습니다. ‘뿔’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잊히고 사라지는 것을 예술로 기억하겠다는 거창한 표어에 함께해준 unlook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양주안 작가는 외로울 때마다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당신의 글이 많은 독자에게 닿길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음악인 전유동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은 제게 커다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다정함이 세상을 따스하게 비출 것임을 믿습니다. 음악인 조희원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곁을 내어줘서 고맙습니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음악인 이승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기꺼이 허송세월이 돼줘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박화수 편집자는 좋은 동료이자 평생의 반려자입니다. 시 같은 걸 끄적이겠다고 당신을 외롭게 한 적도 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덕분에 저는 굶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동엽 시인과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계속 살아내겠습니다.
수상소감
면허증을 받았습니다
정성숙 鄭成淑 1964년 전남 진도 출생. 2013년 『한국소설』에 단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미』가 있다.
흰색 바탕에 엷은 보랏빛이 감도는 참깨꽃이 일기 시작한 지 한달 정도 지났습니다. 아래쪽에는 참깨 꼬투리가 여물어가고 위쪽에서는 계속 꽃을 피워댑니다. 참깨는 습에 약한 편인데 날씨가 가물어서 곱게 잘 컸습니다. 참깨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어느 순간 주저앉기 시작하면 수확이 볼품없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참깨는 털어봐야 안다고들 합니다. 섣부르게 장담할 수 없는 게 참깨 농사입니다. 참깨를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경제작물로 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깨 농사는 위험을 품고 있는 유리그릇을 닮았습니다.
참깨는 보통 물 빠짐이 좋은 자투리땅에서 키웁니다. 자투리땅의 농사는 여성 농민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밭두둑이나 논둑 또는 길옆에서 병충해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참깨를 보면 욕심이 나곤 했습니다. 논길 옆에 갈대와 억새 그리고 칡이 무성한 곳을 다듬었습니다. 땅 폭이 트랙터 로터리가 한번 지나갈 수 있는 3미터 정도여서 물 빠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돌을 주워내고 칡뿌리나 갈대를 3년 동안 뽑았더니 이제는 아주 훌륭한 참깨 전용 밭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참깨꽃이 막 일기 시작하고 있을 때 풀을 매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참깨 좀 털겠다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이틀 동안 500밀리미터의 비가 쏟아졌고 3일 동안 논 주변 일대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로 변했습니다. 벼는 무사했지만 참깨는 종자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참깨를 파종하면서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무사해줄까? 계속 조마조마했습니다. 장마에 비가 어느 정도 오느냐에 따라 참깨 농사가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다며 TV고 라디오고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무더위가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참깨가 무탈했으니까요.
푸른색이었던 참깻잎이 약간 누런색으로 변하면서 참깨가 익고 있습니다. 여느 부잣집 정원 부럽지 않은 참깨 꽃밭에서 땀 흘리는 삶이 모처럼 맘에 들었습니다. 참깨 끝을 따면서 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꽃을 못 피우게 맨 위쪽의 생장점을 잘라주면 끝부분까지 참깨 알맹이가 실해집니다.
그때 창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한 게 아니냐며. 그런데 저는 새벽 5시에 나와서 이미 땀을 한사발쯤은 흘린 상태였습니다. 빠짝 긴장했습니다. 아직 내년 일이기는 하나, 미덥지 못한 작가한테 원고 청탁을 해놓고 중간점검차 전화를 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농사짓느라 바쁘신 줄 알지만 마감 기일을 좀 맞춰달라고 점잖게 채근할 줄 알았습니다. 도서관 다니며 나름 애쓰고 있는데 오늘은 도서관이 쉬는 날이라 들일하러 나왔다고 낮은 자세로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신동엽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뭔가 착오가 생긴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 꿈꾸고 있나? 신동엽문학상이 이제 막 작가 흉내를 내고 있는 사람한테 줘도 되는 상인가? 대단하다 여기던 사람들이나 받던 그 상이 맞나?
소설집을 낸 후로 간혹 저를 작가라고 부르는 이가 있었습니다. 친근감의 표현인지 비아냥거리는 것인지 헷갈려서 재빨리 그 자리를 도망치곤 했습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낯설기만 합니다.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너무 무거워서 입고 다니기 불편한 외투 같습니다. 농사라는 생계가 우선이라 학습은 늘 부족해서 작가라는 호칭 앞에 주눅 들곤 했습니다.
면허증을 받은 기분입니다.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운전해보라는 운전면허증 같은 것 말입니다. 아직은 함량미달이라도 부단히 애쓰면, 어떤 이들이 공감하는 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니 기회를 준다고. 그 기회 납작 엎드려 받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흙 농사는 헛수고가 잦았습니다. 자연재해가 휩쓸고 가고 시장가격이 후려치기도 해 허탈과 분노가 체화될 지경입니다. 글 농사와 다른 점입니다. 글 농사는 거듭 다듬을수록 좀 괜찮다 싶은 모양이 만들어지는, 노력이 성과물로 이어지는 농사입니다. 믿고 짓는 농사인데 애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초보운전이라 운전대 꽉 잡고 조심스럽게 가보겠습니다. 면허증, 고맙습니다!
수상소감
발레리 레가소쁘의 말
김요섭 金曜燮 1988년 경기 부천 출생. 2015년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평론으로 「역사의 눈과 말해지지 않은 소년」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등이 있다.
다른 동료 비평가들처럼 내 일상의 대부분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작업하는 시간이다. 마감에 쫓겨도 쉬이 집중하지 못하는 책상생활자의 노동요와 키보드 소음 이외에는 말 걸어주는 이 없는 세상에서 눈만 부지런히 활자를 훑어본다. 내게 가장 많은 말을 걸어주는 이는 여전히 책 속에 있다. 나는 아직 묵독의 대화로 보내는 하루를 좋아한다. 하지만 외면하고 있던 밀린 원고를 피할 수 없어서 씨름하게 되는 새벽에는, 내가 허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한줌의 집중력마저 흐트러질 때면 격려의 말이 듣고 싶어진다. 그럴 때 나는 발레리 레가소쁘의 말을 자주 들었다.
발레리 레가소쁘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폭발사고의 수습책임자였던 소련의 핵물리학자다. 체르노빌에 대한 몇권의 책을 읽었지만, 발레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HBO의 드라마 「체르노빌」(2019) 속에서 각색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따름이다. 드라마는 소련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인 끄렘린 궁에 갑작스레 불려가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직설적으로 경고하는 외골수 발레리와 그를 미심쩍게 바라보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고위관료 보리스 셰르비나, 헌신적 여성과학자 울리야나 호뮤끄가 함께 필사적으로 사고를 수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압적으로 당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꽉 막힌 관료로 보이던 보리스는 발레리와 함께 최악의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는 비통해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카메라에는 보리스의 뒷모습이 자주 잡힌다. 사고 수습에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마지막 화에서 체르노빌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재판을 앞두고, 보리스는 발레리에게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밝힌다. 보리스는 자신이 삶을 낭비했다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저 (발레리와 같은) 중요한 사람의 옆에 있었을 뿐이라 이야기한다. 발레리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자신과 같은 과학자들이 필요로 한 모든 것을 구해주었던 이가 보리스였다고, 당신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답한다. 뒤이은 재판에서 권력자들이 원자로의 치명적 설계 결함을 증명할 발레리의 증언을 막으려 하지만 보리스는 그가 계속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리스는 발레리가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시 그의 곁에 선 것이다.
나는 발레리 레가소쁘의 말을 반복해서 듣고는 했다. 비평가의 일은 곁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작품과 작가의 곁에 서서 그들의 말이 전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비평가는 그들이 왜 중요한지, 왜 그들의 일이 가치가 있는지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 일은 매번 성공할 수 없으며, 금방 잊혀지고 누구도 찾지 않는 글이 될 때가 더 많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몇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하는 일을 반복한다. 여전히 나는 중요한 이들의 곁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발레리 레가소쁘의 말을 생각했다. 나의 작업이 중요한 일이었다는, 한번의 격려가 이 상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격려에 위로받고, 중요한 이들의 곁에 서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나를 응원하고 지탱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믿음을 가져주신 선생님, 부족한 사람을 지탱해준 동료들에게 그리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의 곁에 설 기회가 계속 있었던 것 같다. 이 격려에 힘을 얻어 계속 읽고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