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예심위원으로 양경언 오연경 최지인(이상 시 부문) 박서련 전기화 한영인(이상 소설 부문)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기타 부문)를 위촉했다. 예심위원들은 만해문학상 운영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2년 5월 31일까지) 출간된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예심을 진행하였다. 각 부문별로 진행한 예심회의에서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이 시집 5종, 소설 5종, 기타 2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김명기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김혜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나희덕 『가능주의자』,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근화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이상 시),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숨 『제비심장』, 정찬 『발 없는 새』, 조해진 『환한 숨』,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이상 소설), 비마이너 기획·정창조 외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조효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이상 기타).
마찬가지로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위촉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8일 1차 본심을 열고 총 12종의 본심 진출작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앞의 발표문에 나온 대로 시집 3종, 소설 2종, 기타 2종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만해문학상은 최종심인 2차 본심에서 수상작(상금 3천만원)을 선정한다. 아울러 본상과 다른 장르의 작품에 특별상(1천만원)을 수여할 수 있다. 9월의 2차 본심(최종심)을 거쳐 수상작이 결정되며 본심위원 명단 및 자세한 심사평은 『창작과비평』 2022년 겨울호에 발표된다.
최종심 대상작 7편에 대한 예심평은 다음과 같다.
최종심 대상작 예심평
시 부문
김명기의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는 지금 세상이 아무렇게나 내치고 버린 것들을 구하는 심정으로 쓰인 시편들로 이루어졌다. 시는 버려진 짐승들과, 체념이 익숙한 삶들과, 널브러진 목숨들이 아직 감지 않은 눈에 집요하리만치 시선을 맞춘다. 시인은 한없이 넓은 세상을 막다른 길이라고 여기는 변두리의 존재들이 지닌 힘이 얼마나 드세고 질긴지, 자기 전부를 걸고 살아가는 이들의 생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아름다운지를 위축되지 않은 언어로 전한다. 세속적인 욕망으로는 결코 정의할 수 없는 ‘큰사람’의 몫을 우리 시대의 시인은 과연 감당하고 있는지를 새삼 환기하는 시집이다.
나희덕의 『가능주의자』는 동시대의 아픔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불가능성의 가능성”(「가능주의자」)을 노래하는 시집이다. 우리 곁을 여전히 떠돌고 있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어떤 부활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했다. 시인은 잊히고 사라지는 존재를 생생한 언어로 비춘다. 숱한 사라짐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인간다워졌는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가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의 시편들은 불가능을 응시한다. 그것은 미래로 가는 첫 단계이다.
송경동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는 온몸으로 쓴 투쟁의 기록이다. 거리에서 시를 낭독하는 시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시란 무엇인가’ 묻는 그의 시편들은 언어화되지 않은 이 세상의 시들을 품고 있다. 시와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번 시집은 쩌렁쩌렁하면서도 곱고 가늘다. 시인은 마이크 앞에서 절규하면서 때론 흐느끼면서 “사랑과 연대”(「새로운 세계를 편집하라」)의 세상을 꿈꾼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간절함이다. 자본의 독점과 폭력 없는 세상은 묘연해 보이지만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닿을 수 있는 미래일 것이다.
소설 부문
베이징 뒷골목의 허름한 풍경과 독한 바이주, 그리고 얼후 소리가 교차하는 낯선 향취에도 불구하고 정찬의 『발 없는 새』의 이야기가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폭력에 우리 또한 긴밀하게 연루된 탓이다. 작가는 난징대학살과 문화대혁명, ‘위안부’ 문제 같은 동아시아 역사의 비극을 워이커씽이라는 인물의 삶에 포개어놓음으로써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탐문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난제를 집약한 워이커씽이라는 허구의 인물과 장국영, 첸카이거 같은 실존 인물을 매우 자연스럽게 서사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도 소설의 독특한 매력을 배가한다.
조해진의 『환한 숨』은 “감각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경계선”(「경계선 사이로」) 사이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작가는 경계의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구획의 선명함을 체념하듯 승인하지 않고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환한 나무 꼭대기」)의 존재를,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마련해낸다.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물론이고 진실도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물의 허와 실을 분간하는 또렷한 눈이 잠시 감길 때, 비로소 간절한 ‘진심’이 흔들리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조해진은 이제까지 진심에 대해 이야기해왔지만 그 진심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가깝게 손에 잡힐 듯하다.
기타 부문
보도의 턱이나 계단을 없애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까지 내던져야 했지만,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과 노동의 조건들을 확보하기 위해 필생의 싸움에 나서야만 하는 현실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진보장애언론 ‘비마이너’가 기획한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는 ‘장애해방열사’ 8인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를 여덟 사람의 현장활동가들이 하나하나 되살려놓은 책이다. 분신을 통한 저항이나 의문사 같은 상징적 사건들에 집중하는 대신 열사들의 살아 있는 삶 자체를 생생한 실감으로 추체험하게 해주는 이 책은 장애인차별 철폐라는 우리 시대의 과제가 다른 모든 사회적 과제들에 연루된 역사 문제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조효제의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오랫동안 인권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가 인류세 시대의 기후변화라는 위기에 직면하여 자연의 권리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인권을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한 역작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 비인간 존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논자들이 많지만, 그런 작업 중에서 이 책의 미덕은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의 연관성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제노사이드와 에코사이드가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핌으로써 시민사회의 오랜 관심과 실천들을 확장할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 있다. 인권을 지렛대로 해서 사회생태전환의 길을 열어가자는 저자의 제안은 글쓰기를 통해 인간다움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자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박서련 양경언 오연경 전기화 최지인 한영인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