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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우영 鄭宇泳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등단.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 등이 있음. jwychoi@hanmail.net
허기에 먹히다
고독사, 들
혼자서 뭐 하는 거야?
이렇게 깜깜하게 누워서.
그런가. 이러면 안 되는 건가.
한데 참 이상하지?
낯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오히려 얼마나 고맙던지.
이 작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따뜻한 햇살 느낄 수 있다는 게.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는 게.
고소한 강냉이 코에 닿는다는 게.
이런 느낌 오랜만이야.
부러움도 안타까움도 없어.
장사치 외치는 소리들로
귀는 붕붕 떠오르고
허기를 씹는 입도 즐거워.
그 어떤 호출도 없이
누군가의 신호도 없이
며칠 동안 나 홀로 가득 찼어.
정신은 개나 물어 가라지.
얼마나 나른했는지 몰라.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해.
걔들 떠올리니 눈 밑이 달궈지네.
원망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방바닥이 날 잡아먹나봐.
도저히 눈이 떠지질 않네.
어이, 잠들면 안 돼.
후딱 일어나봐.
깨어서 저 밖을 좀 보라고.
벚꽃들이 팝콘처럼 터지고 있어.
현묘한 고양이
당신도 그러한 때 있으신가요.
나른하게 졸고 있는 봄날 저녁에,
현묘한 시상님이 갑자기 오셨어요.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
황송해서 머리털 꼿꼿이 섰는데요.
제가 채 붓을 꺼내 들기도 전에
현묘란 냥이가 튕겨 나와서는
홱, 낚아채버리는 거예요.
안타까움 쫑긋 세워 둘러보는데
검은 괭이털만 여기저기 분분합니다.
현묘는 어디 갔나 뒤를 쫓자니
날렵하게 굴뚝 타고 오릅니다.
저놈, 현묘 잡아라.
고함치다가 소스라쳐 깨어났지요.
난장이들은 굴뚝에서 40년씩이나*
사람 살리라는 외침들 쏟아내는데,
저는 왜 여태껏 현묘에나 휘둘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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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1978년을 기준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