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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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서수 李書修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 『헬프 미 시스터』 등이 있음.

apeironbook1230@naver.com

 

 

 

춤은 영원하다

 

 

꽁초의 춤

오래전 그날, 나는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늦게 귀가한 날이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거실 한구석에 세워놓은 장 스탠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가가 불을 켜고 갓을 벗겨냈다. 빛나는 알전구가 드러나며 벽면에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벽 앞에 서서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연이어 왼팔도 들어 올렸다. 그림자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나에게 홀린 관객 같았다. 뒤돌아 오디오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엄마가 자주 듣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정수라의 「환희」.

나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발에 리듬을 실어 바닥을 쿵쿵 찍다가 손뼉을 쳤다. 이내 거추장스러운 교복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던졌다. 골반을 좌우로 흔들다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가랑이를 넓게 벌리며 점프해 거실 이편에서 저편 끝으로 이동했다. 두 팔을 들어 올려 둥그렇게 모은 뒤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다리를 높게 차올리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객관적으로 그것을 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나는 일종의 현대무용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만일 그날의 나를 비디오 캠코더로 녹화해 볼 수 있었다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춤이 아니라 몸부림에 가까웠다. 열일곱살의 나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지쳐 있었다.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 때문이었다. 입시교육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 상실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예감했던 대로 나는 정해진 행로를 따르며 살아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작은 회사에 입사했고, 규모가 더 큰 회사로 이직을 거듭했다. 회사에선 경직된 자세로 일했고, 경추 통증에 시달렸다. 나중엔 두경부 동통으로 번져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회사 사람들 모두 속으로는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괜찮았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매일 돈 걱정을 했고, 자주 자신감을 잃었다. 소득세를 내고,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직장가입자로서의 의료보험 자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했다. 버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동의어가 되었다. 열일곱살의 어느 밤에 떠오른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야 했다. 그래야 살 수가 있었다.

담배꽁초를 비벼 끄는 누군가의 손을 볼 때마다 흠칫 놀랐다. 그 꽁초가 꼭 나 같아서.

 

이매의 춤

나는 좀처럼 웃지 않았지만 소주를 마실 땐 항상 웃었다. 빈 소주병을 세어보며 실없이 웃는 날들이 이어지더니 어느날 마흔이 되었다. 갑자기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엄마에게 하는 잔소리가 늘어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보다 엄마가 더 걱정되었다. 나는 늙는 일만 남았고, 엄마는 죽는 일만 남았다는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늙어도 엄마는 영원히 죽지 않길 바랐다.

도통 운동을 하지 않는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의 불룩한 아랫배를 기습적으로 만졌다. 엄마는 질색하며 도망쳤다. 엄마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춤이라도 배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쪽파를 다듬다가 물었다. 춤을 왜 배워?

배우면 잘 출 수 있잖아. 운동도 되고.

난 안 배워도 잘 춰.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의아했다.

그럼 한번 춰봐.

엄마는 다듬고 있던 쪽파를 그대로 쥐고 일어나더니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했다. 나는 유튜브에 접속해 90년대 댄스 음악을 검색했고, 눈에 띄는 곡을 클릭했다.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선매 이모의 애창곡이었다.

한 손에 쪽파를 쥔 채로 엄마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좌우로 몸을 흔들다가 비로소 흥이 오른 듯 온몸을 흔들어댔다. 박자 무시, 자태 무시, 눈앞의 딸 무시. 엄마의 춤은 춤이 아니라 취객의 몸부림 같았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쥐고 있던 한줌의 쪽파를 천장으로 휙 던져 올렸다. 동시에 헛! 하고 기합 소리를 냈다. 쪽파는 형광등과 충돌한 뒤 바닥으로 추락했고, 곧이어 엄마의 발에 밟혔다. 쪽파 머리가 짓이겨지는 줄도 모르고 엄마는 발을 힘차게 들어 올려 허공을 찼다. 그토록 해괴한 춤은 본 적이 없었다. 국적 불명, 시대 불명의 춤.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뚱이. 혼령을 불러내는 춤 혹은 혼령을 내쫓는 춤. 작두를 타는 강신무도 추는 법이 있고 박자를 맞추는데, 이건 뭐 혼령을 오라는 건지, 오지 말라는 건지. 나는 엄마의 춤을 보며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엄마, 음악을 듣고 있는 거야?

박자를 무시하고 음악과 완벽히 분리되어 춤을 추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춤에 몰입하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캉캉 춤을 추는 것처럼 치마를 걷으며 다리를 힘차게 차올렸는데, 엄마의 다리는 캉캉 댄서처럼 높이 솟아오르는 대신 허리 높이까지만 간신히 올라왔다. 그렇더라도 엄마가 얼마나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지 알 수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고개를 흔드는 요상한 막춤을 추며 엄마는 계속 웃었다. 반면에 내 얼굴에선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헛! 헛! 하는 소리를 내며 깃발처럼 휘두르다가 마침내 몸을 둥그렇게 만 채로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음악을 껐다. 온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뭐 그런 이상한 춤을 추느냐고 면박을 주려는 찰나, 엄마가 갑자기 입을 열더니 방언 같은 말을 쏟아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버지 욕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바람을 피우며 밖으로 나돌다가 암 환자가 되어 돌아왔고,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끝까지 병상을 지켰다. 엄마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죽은 아버지를 욕했다. 상놈의 새끼, 끝까지…… 끝까지 참았어, 내가. 이윽고 엄마는 탈진한 사람처럼 바닥에 반듯하게 드러누워 멍한 얼굴로 천장을 보았다. 모든 열기와 의지가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는 척했다. 엄마의 깊은 회한에 내 속이 다 울렁거렸다. 엄마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다시 쪽파를 집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짓이겨진 쪽파 머리를 잘라내고, 잎 끝의 시든 부분도 떼어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쪽파를 다듬는 엄마를 보다가 나는 물었다.

엄마, 춤을 왜 그렇게 춰?

뭐가.

이상해.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춤은 원래 이런 거라는 듯이. 엄마는 숟가락으로 생강 껍질을 벅벅 긁어냈다. 양푼에 담긴 물이 뿌옇게 변해갔다. 엄마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엄마의 우주가 활짝 열렸다가 닫힌 것을 목격한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열일곱살의 내가 추었던 이상한 춤의 근원은 엄마에게 있었던 걸까. 나의 엄마, 김이매 역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춤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고, 더께 같은 슬픔을 털어내는 사람일까.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그걸 몰랐을까.

엄마의 동생 선매 이모는 어릴 때부터 춤을 잘 추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이모는 가수가 되겠다며 일찍이 서울로 올라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고, 지금은 지방의 작은 행사장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었다. 반면에 엄마는 일찍 시집가서 바람기 많은 남편을 평생 참고 살다가 사별 후 혼자가 되었다. 살풀이춤으로도 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엄마에겐 사연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연은 환갑이 넘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아니, 한다스쯤은……

내 춤이 그렇게 이상하냐?

엄마가 물었고, 나는 상념 속에서 빠져나왔다.

어, 정말 이상해.

엄마는 샐쭉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춰야 하는데?

박자에 맞춰서 보기 좋게 춰야지.

엄마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그렇게 대답해놓고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모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춤이란 어떻게 춰야 하는지. 그리고 엄마의 괴상한 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나는 해왕성만큼이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보듯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쪽파를 씻어서 물기를 탁탁 턴 뒤 커다란 대야에 툭 던져 넣고 나를 불렀다.

이것 좀 부어줘.

나는 엄마 옆에 쪼그려 앉아서 쪽파가 한가득인 대야에 멸치액젓을 콸콸 부었다.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가 공기 중에 확 퍼졌다. 그 냄새가 꼭 엄마의 춤 같았다.

 

선매와 안녀의 춤

선매 이모는 춤출 때마다 개량한복을 입었다. 종로에 놀러 온 외국인 관광객이 대여하는 한복과 비슷하게 생겼다. 저고리는 짧고, 치마는 지나치게 풍성하며, 화려한 금실로 수놓아져 있다. 이모가 일하는 행사장엔 노래 반주 기계와 타악기가 설치되어 있다. 전문 가수가 오는 일은 드물고, 지나가던 행인이 마음이 동해 애창곡을 부를 때가 더 많다. 이모는 그때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춤을 춘다. 그러면 구경하던 관객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나는 이모가 일하는 모습을 열번 넘게 보았고, 매번 감탄했다. 이모의 깔끔한 춤사위에 홀딱 반했다.

이모의 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알잘딱깔센’에 가깝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이모는 정말로 그렇게 춤을 춘다. 몸을 과하게 흔드는 일 없이 골반을 슬쩍슬쩍 움직이고, 손가락을 한번씩 튕기면서 흥을 돋운다. 그게 전부다. 나머지는 이모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가 다 한다. 한복 치맛자락이 이모의 동작을 약간 늦게 뒤따르며 만들어내는 물결 같은 움직임조차 아름답다. 이모는 한복을 입고 춤추는 게 아니라 한복과 함께 춤추고, 박자를 타는 게 아니라 박자를 이끈다. 나중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그저 논다. 그럼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춘다. 이모의 춤을 본 관객이 홀리듯 의자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나는 여러번 보았다. 그때마다 이모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하는데, 그럴 때에도 이모의 몸은 박자에 맞춰 흔들리고 있다. 관객은 이모와 마주 보고 서서 모든 걸 내려놓고 춤을 춘다. 이모처럼 센스 있게 추지는 못해도 추고 싶은 춤을 열심히 춘다. 엄지를 세운 채로 주먹을 꽉 쥐고 막춤을 추는 아저씨도, 아랫배에 두 손을 올리고 어깨를 들썩거리는 아줌마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춤을 추는 귀여운 할머니도 모두 이모 앞에선 무아지경이 된다. 이모의 표정은 흐트러짐 없고, 동작 역시 정확하다. 흥이 올라도 동작이 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흥이 올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게 이모의 능력이다. 이모는 무대로 나와 춤을 추는 관객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누구든 환영한다. 웰컴. 저와 함께 춤을 추면 세상만사 고단한 일이 다 사라집니다. 나는 이모의 춤사위에서 그런 메시지를 읽는다.

엄마가 비닐로 겹겹이 싸준 파김치를 백팩 안에 넣고, 이모를 만나러 월미도로 갔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이모는 관객들과 춤을 추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알은체를 하진 않았다. 나는 빈 의자에 앉아서 이모를 바라보다가 이모에게 치근거리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춤을 추며 이모의 허리에 자꾸만 손을 얹으려 했다. 그때마다 이모는 춤을 추며 빠져나왔고,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다시 거리를 벌리며 춤을 추었다. 남자는 취했는지 낯빛이 벌겠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모의 일이니까 이모가 알아서 할 것이다. 전에도 이런 광경을 목격했고,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불같이 화를 내던 이모를 보았기에 차라리 안 보고 말지, 하는 마음이 되어 행사장 근처를 배회했다.

젊은 커플과 외국인 노동자, 가족 단위 관광객이 유원지를 걸으며 늦가을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발치를 맴도는 비둘기를 구경했다. 구겨진 자세로 잤는지 오른쪽 깃털이 죄다 일어서 있었다. 처량한 몰골로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비둘기와 나눠 먹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둘기가 파김치를 좋아할 리는 없으니까. 옆 벤치에서 일행과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남자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듣고 싶지 않아도 잘 들렸다.

야, 너는 돈을 왜 그렇게 벌어?

남자의 말에 일행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즘 누가 그렇게 묵묵히 일해서 돈을 벌어. 그러면 언제 부자가 되냐? 투자를 잘해서 한방에 많이 벌어야지. 마흔이나 먹은 놈이 왜 그렇게 순수해?

남자의 순수한 일행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남자의 일행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뭘 어쩌라는 걸까, 하는 생각. 나는 남자가 울분에 휩싸여 토해내는 ‘순수한 마흔’에 대한 지탄을 듣다가, 어쩐지 내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순수한 마흔. 철없는 마흔. 젊은 마흔.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우리는 젊은 마흔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늙지 않은 마흔이라고. 세상에 기대하는 것 없이, 과도한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돈을 벌며 차츰 늙어가되 꼰대는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젊은 마흔이라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보통은 집도 없지.

목이 뻣뻣해지더니 머리가 조이듯 아팠다. 두경부 동통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일할 때마다 거북목 교정기를 착용해도 그때뿐이었다. 평소엔 자세가 자주 흐트러졌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뒷목과 얼굴 전체가 뻐근해졌다. 그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의사는 근육이완제를 권했는데, 갈색 약병엔 향정신성 약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옆 벤치의 남자는 계속 마흔씩이나 먹은 놈이, 하면서 친구를 나무랐다. 묵묵히 돈을 번다는 남자의 친구는 잔소리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뭐든 묵묵히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차라리 이모와 춤이나 추고 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의 얼굴을 슬쩍 보니, 나와 동갑인 것을 모른 척해도 될 만한 상태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저씨, 차라리 이모와 춤을 추세요. 이모와 춤을 추면 모든 걸 잊고 몸만 흔들게 돼요. 아저씨는 어떤 춤을 추나요. 아저씨가 몸을 흔들 때 세상도 같이 움직인다는 거 아세요, 모르세요. 나는 열일곱살에 이미 알았는데, 그걸 알더라도 인생이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춤을 추세요. 그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이모가 일하는 행사장으로 돌아갔다. 이모에게 치근대던 남자가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신들린 듯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모가 강경한 조치를 취했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바다 쪽을 보며 춤을 추었다.

 

행사가 끝나고 이모는 주차해놓은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편안해 보이지만 맵시 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뒷좌석에서 나온 이모는 나보다 파김치를 더 반겼다. 주차장엔 캠핑족이 알음알음 모여들어 취사를 하고 차박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세팅했다. 방파제엔 낚시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고 윤기 도는 등딱지를 가진 작은 게가 곳곳에 기어 다녔다. 바다 건너엔 공단이 보였다.

우리는 바싹 구운 삼겹살 위에 파김치를 얹어 먹고, 소주도 마셨다. 이모는 나에게 요즘 연애는 하는지, 엄마 집에서 언제 독립할 계획인지, 통장에 얼마나 모아놓았는지, 회사에서의 미래는 어떤지 따위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이모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젊은 마흔이라면, 이모는 젊은 예순이었다. 세상에 기대하는 것 없이, 과도한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춤을 추며 차츰 늙어가되 꼰대는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젊은 예순. 나는 그런 이모에게 춤과 엄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모가 가장 잘 아는 두가지였으니까.

이모, 우리 엄마 춤추는 거 본 적 있어?

어릴 때 봤지. 왜?

진짜 이상하게 추더라.

어떤데?

춤이 아니라 몸부림이야. 춤추다가 아버지 욕도 하던데. 방언 터진 사람처럼.

……엄마 닮아가나.

이모가 무심결에 한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가 춤을 췄어?

이모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는 시부모를 모시고 평생 농사일만 하다가 고구마밭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셨을지 궁금했다. 생전에 웃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엄마가 춤을 참 이상하게 췄어.

이모는 바다 건너 공단 굴뚝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할머니가 어떤 춤을 추었는지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날 할머니는 술을 좀 마셨다. 온종일 굶고 밭일만 하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집엔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뿐이었다. 다른 가족은 이웃집에서 벌린 굿판을 보러 가고 없었다. 할머니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혼자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물처럼 들이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마당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쫓으며 놀고 있던 두 딸은 입을 벌리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 염안녀는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춤을 추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다리를 한짝씩 들어 올리고, 두 팔을 휘저으며 크게 원을 그렸다. 손을 내젓고 가슴을 흔들다가 나중엔 온몸을 털었다. 몸에 붙은 벌레를 떼어내려는 동작처럼 보였다. 엄마의 행동을 구경하던 딸들은 처음엔 그게 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음악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염안녀는 혼자만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고, 어깻짓을 하고, 무릎을 굽히다가 폈다. 부드럽던 염안녀의 동작이 점점 과격해졌다. 장독에 한쪽 다리를 척 올리고, 상체를 앞으로 푹 숙이다가 뒤로 휙 젖혔다. 장독을 붙잡고 무언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바닥을 구르며 흙을 움켜쥐다가 놓았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어찌나 괴상한 춤인지 두 딸은 경기 일으킨 아이들처럼 웃었다. 이웃이 보기 전에 엄마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당을 구르며 웃었다. 너무 웃어서 울긋불긋한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그 가을 저녁,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가 짓이겨져 흙마당 곳곳에 그려놓은 땡땡이를 이모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 춤의 피날레는 빨랫줄에 두 손을 얹고 바람에 말려지는 빨래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동작이었다. 빨랫줄에 널려 있는 빨래라기보다 빨랫줄에 내팽개쳐진 빨래 같았다고 이모가 말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현대무용극을 보고 깨달았어. 우리 엄마 춤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

나는 할머니가 장독을 붙잡고 이상한 소리를 토해냈다는 말을 곱씹었다. 할머니 역시 엄마처럼 방언 같은 욕을 터뜨리고 싶었을까. 속에 가득 찬 것을 쏟아내고 싶었을까. 하지만 딸들 앞이라 차마 그러지 못한 걸까. 어쩌면 할머니의 춤은 거기까지였는지도 모른다. 언어가 개입되지 않은 움직임. 마음 가는 대로 팔다리와 몸뚱이를 흔들어보는 것.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그 시대에 할머니의 말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었을지 짐작해보면, 말은 정말로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모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엄마가 왜 그런 춤을 추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마음속에 할머니가 춤으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순간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춤을 추겠다고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어서야 오리라는 것을 엄마는 알았을까.

이모, 할머니가 그때 울었어?

아니.

그럼 웃었어?

다 끝나고 나서. 다 끝나고 허공을 보며 서 있다가 한참 뒤에 우리를 돌아보더니, 웃더라. 우리가 거기 있다는 걸 뒤늦게 안 것처럼.

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딸들을 보며 할머니가 무얼 느꼈을지 짐작해보았다. 계속 살아가겠다는 결심이었을까. 지긋지긋한 세상이라는 깨달음이었을까. 춤을 추던 순간 할머니는 닻을 자르고 아주 높이 솟아올라,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태양을 봤을지도 모른다.

이모, 춤이란 뭘까?

나는 이모와 소주 두병을 나누어 마시고 그렇게 물었다. 이모는 술기운이 올랐는지 점퍼를 벗어서 허리에 묶었다.

춤은 테크닉이지. 근데 테크닉은 누군가 정해놓은 규칙이야. 우스꽝스럽게 움직이지 말라는 규칙. 그러니까 테크닉보다 진심이 중요해.

할머니와 엄마의 춤은 진심만 있고 테크닉은 전혀 없었다.

이모는 춤이 왜 좋아?

이모는 슬며시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공단 굴뚝에서 흰색 연기가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다는 일몰 후의 푸르스름한 기운에 잠겨 있었다. 곧 얼어붙을 것처럼 퍼렜다. 이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내가 정말 싫어했던 애가 있었거든. 근데 학교에서 걔랑 짝이 돼서 부채춤을 췄어. 걔도 나를 싫어해서 처음부터 서로 딴 곳만 보며 춤을 췄는데 나중엔 서로를 볼 수밖에 없었어. 안 보면 동작이 안 맞으니까. 그래서 봤지. 마주 봤더니, 걔 눈이 참 예뻤어. 걔도 내 눈을 빤히 보더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춤을 추고 있었어. 진짜 춤 말이야. 진심이 담긴 춤…… 나중엔 걔랑 친구가 됐어. 아주 가까운 친구.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 안 해?

안 하지.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해.

찾아보지.

싫어. 그냥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좋아.

그게 왜 좋은데?

이모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대답했다.

춤을 잘 추게 되니까.

나는 이모의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춤을 추는 이모가 가여웠다. 그냥 즐겁게 추면 안 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즐겁게 추는 춤은 진심이 아니니까. 적어도 이모에겐 진심이 아니니까. 엄마와 할머니에게도. 나는 그들의 춤을 차례대로 떠올려보다가 아무래도 원인은 할머니라고 결론 내렸다. 열일곱살의 어느 밤에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춤을 추었던 것도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우리의 우주를 활짝 열어버렸던 것이다. 막춤의 우주를.

너 아직도 두통 있니?

있지.

춤을 춰봐. 나아질걸.

나 춤 못 춰.

우리 집에선 나 빼고 다 못 춰. 다들 요상한 막춤만 추지.

큰 소리로 웃는 이모에게 나는 이모처럼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못 봤다고 말했다. 이모는 내가 더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나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고, 이모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너 참 재미없어 보여. 왜 그렇게 사니?

회사 다녀서 그래.

이모는 내 말에 수긍했다. 나는 이모와 대화할 때마다 이모가 나보다 젊고 활기차게 느껴져서 가끔은 싫다고 했다. 언제 시들 거야? 그렇게 묻기도 했다. 취해서 한 말이었는데, 이모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시든다는 표현이 너무 싫다고 했다. 나는 사과했고, 이모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시들어가면서, 그리움을 안고, 계속 춤을 추며 살아갈 거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를 마음껏 그리워하는 이모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출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나 붙잡고 그리워해도 될 것 같았다. 내 말에 이모는 팍팍하게 살지 말고 차라리 회사를 때려치우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큰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숙취해소 음료를 사러 갔다. 출근할 때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꽃씨와 홍시의 춤

초안산 근처에 사는 이모를 만나러 오전에 엄마와 집을 나섰다. 엄마의 생일이었다. 이모는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더니 예약해놓은 고깃집으로 데려갔다. 직접 차린 생일상 같은 건 없었다. 역시 젊은 예순이었다. 미역국도 안 끓였냐고 툴툴거리는 엄마에게 이모는 기막힌 미역국이 나오는 집으로 데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우리는 생갈비와 성게미역국을 안주 삼아 소주를 나눠 마셨다. 엄마는 술기운이 올라 장남에게만 재산을 증여한 할아버지를 욕하고, 자기는 온갖 연애를 다 하면서 여동생들은 엄하게 단속했던 외삼촌을 욕했다. 집에 쌀이 없어서 술지게미를 먹고 늘 취해 있던 박계선이라는 어릴 적 친구를 그리워하고, 냉장고가 없어서 카스텔라를 지붕 위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려서 먹었던 대복이네를 부러워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와 이모는 카스텔라를 훔쳐 먹을 계획까지 세웠는데 결국 실행하진 못했다. 자나 깨나 양반 가문 운운하는 할아버지한테 걸리면 맞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카스텔라 많이 사줄게,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달아서 싫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엄마는 평소엔 먹지 않는 후식 냉면까지 기어이 추가해서 먹더니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계속 신트림을 했다. 고깃집을 나오며 엄마와 나는 깊이 후회했다.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할 거 같아, 이모.

선매야, 나는 바지가 안 잠겨.

이모가 우리를 돌아보며 혀를 차더니 동네 뒷산을 오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낮부터 술기운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초안산을 향해 걸어갔다.

초안산은 동네 뒷산치고는 범상치 않은 장소였다. 엄마는 쓰러진 묘비나 상석을 볼 때마다 멈칫거렸다. 나는 무너져 내린 봉분이나 기우뚱하게 서 있는 석물과 맞닥뜨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이모는 우리에게 초안산이 어떤 곳인지 뒤늦게 알려주었다.

내시는 후손이 없잖아. 죽어서 챙겨줄 가족이 없는 거지. 여기에 그런 무덤들이 많이 모여 있어.

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모에게 초안산에 얼마나 자주 오는지 물었고, 이모는 거의 매일 온다고 답했다. 자식 없는 이모가 내시들의 무덤으로 뒤덮인 산을 자주 오르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 만한 곳이네.

엄마의 말에 이모는 낮엔 괜찮지만 밤에 오면 진짜 무섭다고 말했다.

밤에 여길 왜 와!

엄마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이모는 괜찮다고, 묘비를 볼 때마다 인간의 생은 짧고, 돌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들어 겸허해진다고 했다.

다음 생엔 돌로 태어나면 되겠네.

엄마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이모는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돌로 다시 태어나는 상상을 했다. 다른 사람의 발에 차이고, 물속에 던져져도 다치지 않으니 좋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돌이 되어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말에 차여도, 발표 자리에 던져져도 다치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한 사람씩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심한 두경부 동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도 소용없을 정도였다. 한번은 머리통과 얼굴 전체가 부서질 것처럼 아파서, 그만하면 안 되냐고 묻고 말았다. 사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뭘 그만하겠다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길게 침묵하다가 죄송하다고 말한 뒤 형편없는 실적을 발표했다.

산은 험준하지 않았고 우리는 산책하듯 걸었다. 처음엔 쓰러진 묘비나 석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는데, 나중엔 그런 광경도 익숙해졌다. 어떤 형태로든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져서든, 모로 누워서든,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든 그저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한참 걷다보니 다리가 아팠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나는 점퍼를 벗어서 엄마의 엉덩이 아래에 깔아주었다. 엄마의 생일이니 오늘은 엄마를 공주님처럼 대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하고 보니 낯간지러웠다. 엄마는 내 점퍼 위에 드러누웠다. 먹고 바로 누우니까 살이 찌는 거라고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다. 이모가 엄마의 뱃살을 세게 꼬집었다. 엄마가 이모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이모가 얄궂게 웃더니 엄마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퀴즈 낼게. 맞혀봐.

싫어.

여자도 사정을 할까, 안 할까?

엄마는 저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이모를 쏘아보았다. 이모는 원래부터 엄마 앞에서 야한 농담을 자주 했다. 오늘은 엄마 생일이라서 참는가보다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이모는 엄마가 화를 낼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었다. 평생 동안 남자라곤 아버지밖에 못 만나본 엄마를 놀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못 들은 척하며 허공만 쳐다보았다.

이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올리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셔츠가 짧아서 옆구리가 훤히 드러났다. 엄마가 왜 그렇게 짧은 셔츠를 입었냐고 나무랐다. 여자는 배가 차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모는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춤추면 항상 더워.

수족냉증으로 고생하는 엄마는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나도 춤 좀 배워볼까?

내가 알려줘?

이모가 엄마를 향해 손을 뻗더니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의외로 엄마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가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적당히 빠른 리듬의 트로트였다.

여기서 추려고?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모가 먼저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모다운 깔끔하고 센스 있는 몸짓이었다. 이모는 손가락을 튕기더니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한복을 입지 않아도 이모의 몸짓을 따라 너울거리는 아우라가 이모를 감쌌다. 엄마는 이모와 마주 보고 서더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이모를 따라 골반을 좌우로 흔들면서 슬쩍슬쩍 움직였지만 엄마에게선 도통 맵시가 나오지 않았다. 이모가 웃었다. 왜 그렇게 몸이 뻣뻣하냐고 했다. 엄마는 그 말에 휙 돌아서더니, 반대편을 보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몸짓이 점점 커졌다. 나는 춤추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이모가 같이 추자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나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이윽고 엄마의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테크닉은 전혀 없고 진심만 가득한 춤을 추었다. 두 팔을 뻗어 마구 휘젓고, 고개를 휙휙 돌리고, 다리를 척척 들어 올리더니 몸부림에 가까운 막춤을 추었다. 이모는 그런 엄마를 보며 웃다가, 박자 좀 맞추라고 소리치다가, 나중엔 자기도 박자를 놓쳤다. 멈칫거리던 이모는 갑자기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막춤은 엄마의 막춤만큼이나 이상했다. 이모는 기울어진 묘비 앞에서 머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야했다. 엄마가 그런 이모를 보더니 바닥에 두 손을 짚고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세상에. 엄마도 야했다. 나는 누가 볼까봐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죽은 내시들이 묻힌 산은 괴괴했다. 이모와 엄마의 춤에 경악해서 모두 입을 꽉 다문 것 같았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바닥에서 일어나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더니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모는 근처 나무로 달려가 둥치를 끌어안고 거친 웨이브 동작을 반복했다. 박자에 맞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춤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춤이 너무 이상해서 말문이 막혔다. 저런 춤을, 대낮에, 죽은 내시들의 무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추다니. 불경했다. 상스러웠다. 야했다. 이상했다. 짐승 같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선 군고구마처럼 뜨겁고 달착지근한 것이 자꾸만 치솟았다. 함께 춤을 추라고 포효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상도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박령처럼 살다가 죽은 여자. 고구마를 노잣돈처럼 손에 꼭 쥔 채로 저세상으로 떠난 여자. 장독에 기대어 울음을 토하며 춤을 춘 여자. 빨랫줄에 매달려 자신의 숙명을 온몸으로 표현한 여자. 나는 막춤의 우주를 연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 쓰러진 묘비를 맴돌며 춤을 추는 불온한 여자들. 원시적인 여자들. 홍시처럼 다디단 과육이 가득 차올라 터질 것 같은, 어쩌면 이미 터져버린 여자들. 과육만 먹고 씨는 툭 뱉어내며 자란 삐딱한 나와 그런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준 여자들.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또다시, 막춤의 우주가 열렸다.

할머니와 엄마가 도달하려는 지점은 회귀일까, 진화일까.

이모가 도달하려는 지점은 그리움일까, 재회일까.

내가 도달하려는 지점은 돌일까, 인간일까.

우리의 막춤을 무보(舞譜)로 그리면 어떤 형태, 어떤 의미를 담은 기록이 될까.

기록이 될 수 있긴 할까?

기록되든 안 되든 나는 춤은 영원하다고 믿었다. 우리의 유전자에 흐르는 막춤은 영원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엄마와 이모는 이제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안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동작은 작아졌고, 부드러워졌고, 섬세해졌다. 이모는 다시 자신의 춤을 추었고 엄마는 그런 이모를 열심히 따라 했다. 두 사람의 댄스 클래스가 이제야 시작된 것 같았다. 원시적인 춤으로 준비운동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이모는 손가락을 튕기며 골반을 살짝살짝 흔들었고, 엄마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빙그르르 돌았다. 돌고, 다시 돌고, 계속 돌았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선매야, 찬희야. 나는 꽃씨다. 봐라, 날아간다. 내가 날아가.

꽃씨처럼 가벼워진 엄마는 이윽고 바닥에서 붕 떠올랐다. 나는 엄마가 너무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기 위해 두 팔을 뻗었다. 어느새 나팔꽃 줄기처럼 변한 나의 두 팔이 엄마를 향해 길게 뻗어나갔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가볍게 지나쳐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엄마가 빙글빙글 돌면서 사라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만 가자.

엄마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엄마의 몸 아래에 깔려 있던 점퍼를 집어 들어 축축한 흙을 털어내고 다시 입었다. 그리고 엄마와 나란히 걸었다. 걸으면서 엄마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곁에서 걷고 있는 엄마가 고마웠다. 멀리 날아가지 않아서 고마웠다.

나는 엄마와 이모가 함께 춤추는 광경을 상상하며 비탈길을 걸어 내려왔다. 나의 상상 속에서 꽃씨가 된 엄마는 하늘을 날았고, 이모는 돌이 된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슬프고,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