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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선거제도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지혜로운 추진전략과 실현 가능한 대안

 

 

하승수 河昇秀

변호사,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저서로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배를 돌려라: 대한민국 대전환』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등이 있음.

haha9601@naver.com

 

 

1. 글을 시작하며

 

2024년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선거제도로 2024년 국회의원 총선을 치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2020년 총선에 적용되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20년 당시 두었던 상한선, 즉 준연동형 계산방식을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의석수 캡(cap)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부칙에서 상한선은 2020년 총선에만 두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선거제도는 그냥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 할 수 있다. 이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의 50%를 보장한다는 취지의 제도로서,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10%의 정당 득표를 얻으면 국회의석 300석 중 15석을 보장하는 것이다. 온전한 비례대표제라면 득표율 그대로 30석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준연동형’은 그 절반을 보장한다.

이 선거제도가 진전할지 후퇴할지에 대해서는 현재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은 정치권 안팎에서 모두 찾아보기 어려우며, 선거제도 개혁은 논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준연동형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거대양당의 위성정당들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조차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여러 법안들이 발의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처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지 하는 회의론도 크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는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27일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거제도 개혁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8월 28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도 93.72%의 찬성률로 ‘국민통합 정치교체를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이다. 결의안에서는 2023년 4월까지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전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보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은 몇십년에 한번 기회가 있을지 말지 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6년 가을부터 일어난 촛불이 선거제도 개혁이나 헌법 개정과 같은 제도적 성과를 아직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제도가 유동적인 상태에 있는 현시점이 당분간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려운 일임에도 선거제도 개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거제도 개혁 없이 한국정치가 크게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후위기, 경제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없다.

소위 큰 정치인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왔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을 고민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라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이 오래된 숙원을 현실로 이뤄낼 방안은 무엇일까? 어떤 대안을 가지고 어떻게 접근하면 선거제도 개혁을 현실로 이룰 수 있을까? 시간은 많지 않다. 선거 일정을 감안한다면 2023년 상반기에는 가닥이 잡혀야 하기 때문이다.

 

 

2. 지혜로운 추진전략: 개혁의 주체들을 넓히고 엮기

 

개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주체들을 넓히고 엮는 것에 있다. 현실의 정치 상황은 어차피 매일 바뀌기 마련이다. 거기 끌려다니다보면 중요한 제도개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요동치는 정치 상황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추진해나갈 주체들이 형성, 확장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주체가 모이면 변화하는 정치 상황에 대한 대처도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주체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원하는지, 또는 개혁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거제도 개혁 추진전략의 핵심이라고 본다. 주체가 없는 대안은, 특히 선거제도 개혁에 있어서는 현실성 없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즉 주체들의 욕구에서 출발해 실현 가능한 개혁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나가야 한다.

주체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솔직히 말해 여의도 국회를 보면 선거제도 개혁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현역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2024년 총선에서 한번 더 당선되어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이 없고, 민주당은 의원총회와 대의원대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선거제도 개혁을 열망하고 있는가? 제도정치권 안과 밖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우선 지금까지 제도정치권 내에서 개혁을 요구해온 주체는 주로 소수정당들이었다. 진보적인 소수정당들로서는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이라는 ‘비례성의 원칙’은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소수정당들의 힘만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대정당 내부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력하게 나와야 한다.

그 가능성은 일차적으로 영남의 민주당 세력과 호남의 국민의힘 세력에 있다고 본다. 이들에게도 선거제도 개혁은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영남과 호남에서의 일당지배 현상이 깨지기 어렵다. 선거에서 20~30% 정도의 득표율이 나오더라도 승자독식의 지역구 소선거구 선거제도로 인해 국회 의석은 전무하거나 극히 드물게 당선자를 배출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2020년 총선 이전의 국면에서는 영남 민주당 쪽에서의 목소리가 약했다. 시·도당 차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가 여의도 민주당 지도부에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8월 민주당 경북도당 허대만 위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남권 민주당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허 위원장은 ‘험지’라고 할 수 있는 경북 포항에서 여섯번 출마해 여섯번 낙선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제도가 문제다.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 구도를 강화할 뿐이다. 개인의 결단과 희생으로 극복할 문제가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썼다. 아마도 그가 마지막까지 가졌던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의 뜻을 이어받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지난 10월 5일에는 민주당 영남권 5개 시·도당(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과 김두관 의원실이 공동주최하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민주당 영남권 시·도당은 결의문을 채택해 중앙당 지도부에 제출했다. 그 내용에는 ‘중대선거구제 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상정할 것’ ‘민주당 주도의 정치제도 개편안을 제출하고, 여야 합의에 적극 노력할 것’ ‘시한을 두고 협의하되, 합의 불발 시 2023년 상반기 중 민주당 단독으로라도 관철할 것’이 포함되었다. 토론회에서는 호남의 국민의당과도 협력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물론 영남권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미약하다. 비영남권에서 개혁에 뜻이 있는 의원들도 힘을 보태야 민주당이 굳은 의지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호남권 국민의힘도 개혁에 동참하게 만드는 일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가령 2023년의 정치 국면 중 국민의힘에서 이탈하는 보수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함께하도록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다. 거대양당 내부의 선거제도 개혁세력과 소수정당을 아우르는 움직임이 제도정치권 내에 폭넓게 일어나야 한다.

정치권 바깥에서는 선거제도를 비롯한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2020년 총선 전에는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개혁공동행동’이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어서 기자회견, 논평과 성명서 발표, 지역별 기구의 발족과 활동, 소수정당들과 함께하는 집회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 농민운동 쪽의 참여는 미흡했다.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의 참석인원도 수천명 수준을 넘지 못했다. 2023년 상반기까지 개혁을 현실로 이루려면 촛불이 국회 앞으로 와야 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관철해야 한다. 그런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여성과 청년,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기 위해서도 선거제도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는 결국 국회의 입법권 및 예산안 심의·확정 권한을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데, 현재의 양당제로는 진전이 요원하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들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개혁운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3. 세가지를 충족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우선 조금이라도 고치자’라는 주장도 흔히 접하게 된다. 하지만 선거제도는 그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그런 방식의 접근은 ‘협소한 지지’와 ‘광범위한 비판’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준연동형이 대표적인 예다. 전세계에 전례가 없는 제도를 만들어놓으니 지지를 받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선거제도의 큰 틀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물론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승자독식이냐 비례성(표의 등가성)의 보장이냐 하는 큰 틀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 선거제도 개혁을 원하는(혹은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주체들을 염두에 두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원내 현역 의원들을 설득 내지 압박할 수 있느냐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주체들의 힘을 모으려면 다음과 같이 세가지를 충족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고 다당제를 지향하는 선거제도 개혁이어야 한다. 이것은 진보적인 소수정당, 여성과 청년과 소수자,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양당제에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물론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는 300석 국회의석 전체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온전하고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이다. 이런 비례대표제는 자연스럽게 다당제 정당구조를 낳기 마련이다.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삶’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정치가 구현되려면 기득권 양당구조는 혁파되어야 한다.

둘째,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체제를 깨는 선거제도 개혁이어야 한다. 일당독재 국가를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할 수 없는 것처럼, 특정 정당이 수십년 동안 한 지역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를 독식하다시피 해왔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영남과 호남에서의 일당지배를 깨는 것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숙제이다. 이는 현재의 지역구 소선거구제로는 풀기 어려우며 전국 단위의 비례대표제로도 한계가 있다. 시·도를 기본으로 하는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을 검토해야 한다. 독일도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고, 뒤에서 논할 덴마크·스웨덴식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동안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에는 한계도 있다. 전국을 6개 권역(서울, 경기·인천·강원, 충청,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전북·광주·전남·제주)으로 나누는 방안은 한 권역에 묶이는 지역이 너무 넓거니와 동질성도 없어, 지역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다. 시·도를 기본 단위로 하되 인구가 많거나 지역이 넓은 경우 좀더 분할하는 방식으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셋째, 유권자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선거제도 개혁이어야 한다. 정당의 공천권 행사가 중앙당(거대정당의 경우 정당 지도부)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를 바꾸고, 유권자들이 견제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정당 공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의식을 비례대표제와 결합한 방식은 ‘개방형 명부’(open list) 또는 ‘가변형 명부’(flexible list)의 도입이다.

개방형 명부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가 정당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에서 어느 후보를 당선자로 결정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가령 핀란드의 경우 각 정당의 후보자 명부를 투표소에 붙여두고, 유권자는 선호하는 후보 이름 옆에 있는 번호를 투표용지에 적는다. 명단 중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한편 정당이 일단 비례대표 후보들의 순위를 정하지만, 유권자 역시 투표용지에서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비례대표 순위에 영향을 행사하는 절충형도 있다. 이를 가변형 명부식이라고 한다.

한국처럼 정당 공천에 대한 불신이 강한 나라에서 개방형 또는 가변형 명부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참여권을 확대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유권자 지지를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개방형 명부 방식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도 잘 어울린다. 전국 단위에서 개방형 명부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각 정당이 투표용지에 최대 300명의 명단을 올려야 해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방형 명부 방식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위의 세가지 원칙이 실현되면 여성과 청년,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좀더 폭넓게 반영될 수 있다. 실제로 위의 세 원칙이 잘 실현되는 선거제도하에서는 여성의원과 청년의원의 비율이 높다. 여성의원 비율이 40%를 넘는 스웨덴, 40세 미만 청년 국회의원 비율이 41.34%로 세계 최고 수준인 덴마크가 부럽다면 그 국가의 선거제도를 봐야 한다.

 

 

4. 실현 가능한 대안은?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을 반영한 선거제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물론 그 대안은 실현 가능한 것이기도 해야 한다.

그동안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안으로 논의되어왔다. 독일의 경우에는 비례성도 보장되고, 권역별(16개 주별)로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작성하므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일당지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비례대표 순번을 정당이 정하는 폐쇄형(고정식) 명부를 택하고 있기는 하나, 후보 선출 시 의무적으로 당원투표를 거치게 되어 있으므로 상당히 광범위한 유권자 참여가 보장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고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도입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수가 충분해야 한다. 독일의 국회 의석수는 지역구 299명, 비례대표 299명이다. 2015년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을 제안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석이 전체 의석의 3분의 1 정도는 되어야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의 도입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인 한국의 상황에서는 지역구 숫자를 대폭 줄여 비례대표 의석으로 전환하거나 전체 의석수를 늘려야만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는 사실은 2020년 이전의 선거제도 개혁 국면에서 입증된 셈이다. 지역구 숫자를 줄이는 것은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막대할뿐더러, 지역구 통합 대상이 되는 지역 유권자들의 반발도 심하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려고 하면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 물론 당장 실현되기 어렵더라도 국회 의석수를 늘리는 논의는 필요하다. 인구 10만명당 1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OECD 국가의 평균적인 모습인데,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가 17만명 수준에 달한다. 국회의원 특권을 전면 폐지하는 수준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선행함으로써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한편 현재의 300석 국회 의석수를 유지한 채 도입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자면 덴마크·스웨덴식 대선거구 비례대표제가 있다. 덴마크는 17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섬 지역에서 선출하는 4명은 별도로 한다). 그중 135명은 전국을 10개 대선거구로 나눠 비례대표제로 뽑고, 40명을 ‘조정의석’으로 남겨놓는다. 이 조정의석은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맞추는 데 사용한다. 스웨덴도 유사한 방식을 택한다. 국회의원 349명 중 310명을 29개 대선거구로 선출, 39석을 조정의석으로 두고 있다.

조정의석을 두는 이유는 비례성 때문이다. 어느 대선거구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고 가정하면, 어느 정당이든 10% 이상 득표를 해야만 1명이라도 비례대표를 받을 수 있다. 가령 5% 지지를 받은 정당은 해당 권역에서 비례대표를 전혀 받지 못하니 표의 등가성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조정의석을 두어 전국 득표율만큼 의석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러한 덴마크·스웨덴식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는 앞에서 제시한 세 원칙을 모두 충족시킨다. 우선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된다. 또 권역별로 선출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대한 특정 정당의 일당지배는 불가능하다. 해당 권역에서 60% 지지를 받는 정당은 60% 의석을 차지하고, 20% 지지를 받는 정당은 20% 의석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권자가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또는 가변형 명부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선택권 역시 최대한 보장한다.

이 방식을 대한민국에 적용하기는 매우 쉽다. 지역구 253석은 대선거구 비례대표로 전환하고, 비례대표 47석은 조정의석으로 활용하면 된다. 이때 대선거구는 기본적으로는 17개 시·도를 권역으로 설정하되, 인구가 많은 지역은 선거구를 좀더 세분화하면 될 것이다. 가령 인구도 많고 국회의원 숫자도 많은 서울이나 경기도는 5~6개 정도의 대선거구로 나누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럴 경우 대선거구 하나당 선출하는 국회의원 숫자는 10명 내외가 된다. 다른 시·도에서도 대선거구를 2개 정도로 나누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개방형 또는 가변형 명부를 도입해 유권자들이 정당만 아니라 후보도 선택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논의되어왔던 소위 ‘중·대선거구제’와는 차이가 있다. 기존에 논의된 중·대선거구제는 지역구에서 유권자 한 사람이 후보자에 대한 투표로서 1표를 행사하고, 득표순대로 복수의 당선자를 선출한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으로 채택된 사례가 거의 없는 방식이다. 선거제도 이론상으로는 단기 비(非)이양제(single non-transferable vote)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1948~94년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정도다(당시에는 1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2인을 선출했었다). 이는 후보 개인 중심의 선거 방식이어서 정당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며, 선거비용이 과다해지고 동원력·조직력이 있는 후보가 유리하다는 문제 등도 지적되어왔다. 따라서 후보 중심의 중·대선거구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대선거구제 역시 후보 중심이 아닌 비례대표제이다.

대선거구 비례대표제가 현역 의원들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지역구 소선거구제에서는 소속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에서는 후보 명부(가령 해당 대선거구에서 뽑을 국회의원 정수의 1.5배 정도까지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에 이름을 올리면 재선의 가능성이 있다.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만 받는다면 말이다. 불확실한 지도부의 공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는 20대 총선에서 나타났던 위성정당 문제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1장의 투표용지, 즉 한번의 투표 안에서 정당을 고르고 그 정당의 후보까지 고르게 되면, 위성정당 설립은 불가능하다. 위성정당은 정당 투표와 후보 투표를 별개로 할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위성정당을 방지하기 위한 더욱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5. 글을 맺으며

 

앞서 선거제도 개혁의 추진전략으로 개혁의 (잠재적) 주체들을 언급하고 이들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던 까닭은 실제 개혁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있는 주체들이라면 국면 국면마다 적절한 선택과 대응, 협력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체가 중요하다. 개혁 과정에서 유연함과 타협도 필요하겠지만, 주체들 간의 연대가 깨지면 그 순간 개혁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말처럼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