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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앤절라 Y. 데이비스 『여성, 인종, 계급』, 아르테 2022

흑인 여성주의의 고전, 성·인종·계급에 대한 통합적 분석의 선구작

 

 

최재인 崔在仁

서울대 서양사학과 강사, 미국사 연구자 jaeinchoi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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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Women, Race & Class, 1981, 황성원 옮김)은 미국사회에서 성·인종·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권력은 성·인종·계급 등에 따라 구성원을 구분하고 여성과 유색인, 저임금 노동자에게 열등하다는 낙인을 찍으며 특권과 억압을 양산해왔다. 이 책은 노예제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낙인찍기의 사례인데다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문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권력의 효과는 강력하여, 개혁이나 혁명을 추구한 이들도 어느새 낙인찍기의 관행에 편승하기 십상이었다. 가령 19세기 말 여성참정권운동을 이끈 수전 앤서니는 인종주의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던 “남부 출신의 백인 여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색인을 여성운동에서 조직적으로 배제했다(179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유진 데브스는 “우리는 니그로에게 특별히 해줄 만한 것이 없다”고 공언함으로써(236면) 인종 문제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자본가를 비롯한 기득권세력은 노동자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해 인종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데브스의 한계는 명확했다. 20세기 출산조절(birth control)운동의 지도자 마거릿 생어는 사회주의자였지만, 활동 후반에 가서는 “자식이 지나치게 많으면 노동자가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빈곤에 대한 분석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의 중심성을 저평가하기 시작했다”(319면). 빈곤의 책임을 출산하는 여성에게 돌렸던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운동지도자들의 ‘흑역사’를 짚으면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덕목으로 짓밟히는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감수성과 당면 과제를 넘어 총체적으로 볼 줄 아는 시야를 시사한다. 그런 도량을 갖출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저자 앤절라 Y. 데이비스(Angela Y. Davis)가 쓴 최근 글에 따르면, 이 책을 저술한 것은 수배되고 수감되었던 경험 덕분이다. 1970년 연방수사국(FBI)은 법정무장점거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수배, 구속했다. 이후 재판을 거쳐 무죄판결에 이르는 동안 ‘앤절라 석방운동’이 미국을 넘어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고, 그는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데이비스는 도망 다니고 투옥되는 과정에서 노예여성의 삶을 자주 상상했고, 담장 밖에서 자기 이름이 연호되는 소리를 들으면서는 다른 수감자와 거리감이 생길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자신은 억압받는 다수 수감자 중 한명이라는 점을 스스로와 주변에게 거듭 상기시켰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이야기는 경험적으로 뿐 아니라 의식적으로도 억압받는 이의 자리에 서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집필 동기가 저자의 경험에 있다 해서 이 책이 저자의 처지와 입장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정년퇴임까지 안정된 직장생활을 한 대학교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80년과 1984년 대선에서 공산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1991년에는 공산당을 탈당하지만 그러면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경찰과 감옥을 폐지하자는 운동을 오랫동안 열심히 하고 있다. 미국의 경찰기구와 수감제도가 불평등을 강화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싸르트르(J. P. Sartre)는 지식인을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여하는 사람”이자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명성을 남용하는 자”라고, 놀리듯 애정을 담아 표현한 바 있는데, 데이비스만큼 이에 부합하는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또 이 책을 보면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그런 지식인이 적지 않았음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전한다. 노예제폐지운동에 헌신한 백인, 여성참정권운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한 남성 등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울타리를 훌쩍 넘은 선구자들이 있었고, 저자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 책은 흑인 여성주의의 고전으로 꼽히지만, 데이비스가 흑인 여성에 주목한 것은 단지 자신이 흑인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들 중 다수가 노예로, 저임금 노동자로 살면서 가장 큰 고통과 억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가장 억압받는 이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때, 연동되어 있는 성·인종·계급의 문제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의미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시도된 성·인종·계급에 대한 통합적 고찰과 분석은 지금까지 인문학의 여러 연구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가사노동을 다룬다. 산업화 과정에서 가사노동의 변화, 흑인 여성이 전담하다시피 해온 가사 임노동자의 역사를 살피고,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기능을 설명한다. 저자는 유럽에서 있었던 ‘가사노동에 임금을’(Wages for Housework)이라는 운동을 두고 주부를 가정에 고착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보다는 “모두에게 보장된 연소득”이 나은 대안이고, 좀더 근본적으로는 “일자리와 공공보육”을 제공해 주부가 가정에 고립되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한다(349면). 그런데 이런 처방은 사실 저자가 40여년 전 미국이라는 조건에서 내놓은 제안일 뿐이다. 여기서 배울 점은 주제 선정이다. 가사노동은 잘 공론화되지 않지만—혹은 공론화되지 않기 때문에—착취와 부조리의 뿌리가 깊다. 성·인종·계급에 따른 억압과 낙인에 무겁게 짓눌려 있는 영역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사회와 구성원 모두가 안위를 기대고 있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를 포착해내는 저자의 시선이 곧고 예리하고 따뜻하다.

이 책은 미국 여성주의 역사에서 이른바 세번째 물결(third-wave feminism)을 일으킨 여러 책들 중 하나다. 그전에 백인 중산층 여성이 주도한 여성운동에서 ‘여성’은 보편성을 표방했지만 추상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유색인 여성이나 가난한 여성의 현실에서 보면 기만적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가는 여성에게 출산조절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유색인이나 가난한 이들이 당했던 대규모의 강제불임시술을 못 본 체했고, 때로는 부추기기까지 했다(307면). 이에 비해 여성주의 세번째 물결은 ‘여성’이 인종, 섹슈얼리티, 계급, 국적, 세대, 직업 등에 따라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다른 경험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고 대오를 약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여성주의는 규모에서도 내용에서도 더 큰 자원을 갖게 된다. 이 책에서 선보인 흑인 여성주의는, 해제를 쓴 정희진에 따르면, “여성 간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서 여성주의가 멈추지 않는 사유임”을 보여주었다(22면).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읽지 않고도 아는 체할 수 있는 책, 막상 읽어보면 그리 새롭지 않은 책이 된 측면도 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지나치게 래디컬하고 이상주의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내용과 주장이 어느정도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 ‘여성, 인종, 계급’을 둘러싼 사회의 통념과 규범이 변화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이 책이 기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훌륭한 번역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하다. 한국에서 이 책은 또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독자는 미국 역사를 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미국사회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사건의 뿌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흑인 여성의 역사와 관점을 자세히 알려 여성주의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데 한몫을 했던 이 책의 궤적은, 서구 여성주의 이론들에 힘입으면서도 한국 여성의 경험에 기반해 문제를 풀어가야 할 한국의 여성주의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