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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순남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봄 2022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가족

 

 

김대현 金旲炫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운영위원 cryingk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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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알 수 있듯 가족은 애초부터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새삼 구성되는 것이다. 그 구성됨에 ‘권리’가 따로 있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 부제인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과 같이 애초부터 당연한 듯 주어지는 가족 구성의 기준이란 대개 ‘혈연’과 ‘결혼’인데,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의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에겐 이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혈연과 결혼에서 배제된 채 구성된 가족은 물론이고, 혈연과 결혼을 기반으로 한 가족 내에서 실제 수행되는 돌봄과 친밀성의 가치를 이전과는 다른 위상으로 새롭게 인식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유대는 가족과 권리의 원의(原意)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과 연결된다. 이러한 내용은 저자인 김순남이 오랫동안 몸담아온 가족구성권 의제의 요체이기도 하다.

저자는 가족 문제를 “공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결된” 의제로 본다(7면).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논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비판 이론에 근거한 최소한의 정의에 따르면 사회에는 우선 (‘구조적 성차별’을 포함한) 구조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기에 내장한 위계는 대개 사회의 가장 취약한 존재들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까운 예로 일제식민지 치하 조선의 제국·식민 구조와 그에 맞서 투쟁한 독립운동가, 군부독재하 한국의 냉전구조와 그에 대항한 민주화운동가를 들 수 있다. 그 시절 누군가는 자신이 처한 사회를 짐짓 정상적이고 문제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취약하고 외로웠을 그들의 활동과 그들이 겪은 피해 가운데 사회구조의 존재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구조라는 개념 속에는 그 사회의 소수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그들을 사회의 범주에 포함시켜 사고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경우에 따라 어느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을’ 수 있는 존재들이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줄곧 가족에 대해 견지해오던 시각이기도 하다. 즉 가족이 주는 아름다운 친밀성의 세계뿐 아니라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추악한 일들—예를 들어 정서적·금전적 착취, 가정폭력, 부부 간 성범죄, 친족성폭력 등 ‘생각하기도 싫을’ 현상들—을 마주 보아야 하며, 이것이 비단 일탈적이기만 한 일이 아니라 가족주의에 내장된 원리를 통해 이른바 ‘정상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일임을 자각하고 새로 정의해야 한다는 노력이 있어왔다. 이러한 현상들을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구성‘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가족주의의 핵심”이다(23면).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가족 내 사회구조의 존재성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혈연·결혼 중심의 기존 가족체제에서 “가족 안에서만 존재하도록 강제된 삶”, 혹은 아예 가족으로부터 배제된 “퀴어하고” “불구화된” 존재들이다(11~12면). 특히 후자는 가족 내 사회구조의 모범인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151면)을 위반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그러나 “뒤처진 삶과 관계”(16면)로 치부되는 이들의 일상 속에도 돌봄과 관계맺음의 실천이 있고, 사회는 그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내용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 대접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한 개념으로 “개인중심 시민모델”(51면), 나아가 “퀴어가족정치”(123면) 등을 제시한다.

이 책이 소위 ‘퀴어’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성애-군필자-남성을 일등시민으로 상상하는 사회”(40면)와 거기에 내장된 구조는 다른 시민들의 상호의존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그 ‘일등시민’에게도 모종의 취약함을 떠안긴다. 정상가족과 이성애 규범이 그 자체로 관계의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거나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이성애가족 구성원들도 일상에서 구체적인 유대와 돌봄과 친밀성을 새로 만들고 협상해나간다. 가족을 기능하게 하는 것도 이미 주어진 제도나 모델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들 하나하나다. 이렇듯 주어진 가족의 이름을 넘어 실제로 수행되는 돌봄과 친밀성에 주목하고, 바로 거기에서 가족과 공동체를 다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이다. 또 기존에 “난잡”하거나 “문란”하다고 여겨지던 관계에서도 그런 돌봄과 친밀성의 실천들이 발견된다면(125면), 그 관계들 또한 나란히 “공적으로 동등하게 출현”(12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또다른 핵심이다.

저자는 그동안 남성·여성의 이혼 서사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이원 젠더 위계를 비롯하여 동성애 친밀성 재현 및 그것을 실천하는 커플·가족, 장애여성 및 퀴어 활동가, 이혼 이주여성의 경험과 자녀와의 관계, 이성애 비혼여성과 20~30대 남성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대무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는 가족 내 사회구조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기존 연구에서 사용한 질적 연구방법론은 이 책에도 십분 활용되어, 인터뷰에 응한 개인의 경험 및 그에 얽힌 서사적 진실을 발굴해 사회구조에 긴박되지만 한편으로 거기 머물지 않는 개인의 실천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이 시대에 필요한 지금 이곳의 자원들을 두루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가족구성권은 호주제 폐지 이후 한국사회 가족정치의 변혁에 있어 중대하고 현재적인 시대의 의제다. 가족구성권 보장운동은 사회구조로서 젠더 위계가 여전히 엄존한다는 것을 전제로, 거기에 결부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그 젠더의 내용은 변해야 마땅하고 또 변화 가능한 것으로 개념화해야 한다는 퀴어페미니즘의 전제를 공유한다. 퀴어 논의 또한 성소수자 정체성의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가족규범을 변형하고 해체”하는 내용을 겨누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중요하다(14면). 정체성은 중요한 시작이되 궁극적인 목표일 수 없으며, 그 정체성의 위치와 입장에 걸맞은 정치화된 의식을 가질 때 현실에 가까운 정치의 밑불로 더욱 정밀하고 넓게 기능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누차 강조한 대로, 그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데 있어 기존 이성애가족에 속한 이들 또한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