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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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 사라지지 말자

 

 

유해정 庾海貞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활동가,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경희대 강사. 공저서 『5·18 다시 쓰기』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나는 숨지 않는다』 『재난을 묻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이 있음.

hjsaram@gmail.com

 

 

부모님은 내가 특별하고, 성공한 삶을 살길 바라셨다. 고되지 않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셨고, 내 명의의 집이 있어 전전긍긍하지 않길 바라셨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픔 없이 자녀를 키우길 기도하셨다. 자긍심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 역시 그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너무 고루하고 평범한 것투성인데, 평생이 어렵고 순탄치 못했던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 평범함이 비범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철들어가는 과정은 이 평범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평범은 성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목표, 그 기준이 평범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평범, 평범한 일상은 간절히 성취하고 싶은 목표이자 ‘능력’이다. 사회적 약자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평범에서 소외되거나 추방된 삶을 살며, 적잖은 이들이 평범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사회적 위기가 도래할 때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의 삶이 한 사회의 수준이자 실력이며, 인권의 척도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다. 환영과 기대, 걱정과 우려가 교차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나고 있다. 한 정권을 조망하기에 9개월은 너무 성급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인권 상황이 급속하게 후퇴한 이명박정부 때를 복기해보자면, 9개월은 결코 이르지만은 않다. 일례로 이명박정부 출범 일년째 되는 날(2009.2.24) 인권단체들이 개최한 기자회견 제목은 ‘인권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였다. 인권단체들은 그 증거로 용산참사, ‘떼법’으로 간주된 집회결사의 자유, ‘광우병 괴담’이 된 알 권리, 최루액 섞은 물대포, 경찰 기동대의 부활, 대체복무제 도입 원점화,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직속화 시도 등을 제시했다. 이후로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폭력진압, 집회·결사의 자유 위축, 언론 독립성 침해, 민간인 사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증대, 파견노동자 급증, 의료보험 민영화 시도, 재벌 기업들의 골목상권 진출, 한미 FTA 날치기 통과, 4대강사업 등 굵직한 현안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도 계속됐다. 언론의 심각한 독립성 침해에 항의하며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장기간의 언론사 총파업이 벌어졌지만, 결국 기자들의 대량해고 및 징계로 끝이 났다. 인권활동가들의 농성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화 시도는 저지했지만, 부자격자의 낙하산 인사는 계속되고 조직은 축소돼 임기 내내 정부의 알리바이용 기관으로 전락했다. 많은 싸움의 현장에서 이명박정부가, 이겼다. 그리고 당대의 인권 정책을 바로잡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대체복무제가 대표적이다. 노무현정부 집권 말기 국방부가 추진방안까지 발표했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폐기되면서 대체복무제는 2019년 12월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12년간 유예되었다. 30여억원에 달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손해배상 문제도 최근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은 2022년 11월 경찰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파업 당시 경찰의 헬기 진압은 위법하며, 노동자들은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13년. 소송에 따른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하지만 4대강사업의 폐해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당시 가파르게 증가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및 파견노동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조급하지 않느냐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전해지는 목소리들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석열정부 출범 9개월, 현장에서 전해지는 목소리는 매우 암울하다. 인권이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들로, 이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서 더 빨리 더 크게 터져나오고 있다.

 

 

깊은 통곡의 거리

 

“이태원참사 이후로 뭔가 죄인이 된 느낌이라 이 거리를 지나면 왠지 숙연해진다니까.” 2022년 세밑, 대전 으능정이거리를 지나던 20대 청년이 함께 길을 걷던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침묵이 답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들을 붙잡아 어떤 마음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힌 것은 나였다. 한 여성이 내 패딩을 잡아끌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유가족입니다. 도와주세요. 저희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50대 초반쯤 되었을, 자그마한 체구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여성의 손엔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용지가 들려 있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그는 맨손으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식을 잃은 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던 한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8년 전에도 나는 이 거리에 있었다. 때로는 서명판을 들고 사람들을 붙잡아 세웠고, 때로는 조용히 서명대 한 구석을 채웠다. 나는 떠났으나 유가족들과 일군의 시민들은 며칠인지 몇년인지 세어지지 않을 만큼 오랜 기간 동안 그 거리를 지켰다. “수학여행 간 아이가 영영 못 돌아온답니다. 왜 그런지 꼭 밝혀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노란 리본과 학생증을 달고 서명을 받던 그들의 목소리에도 깊은 통곡이 묻어 있었다. 진상규명 천만인 서명 용지는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지로, 특별수사단 설치 서명지로 바뀌어갔다. 한명의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두명의 대통령이 취임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만 흘러 그들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고, 사람들은 그사이 많이도 냉담해진 듯 보였다.

 

이제 주변 사람들과 아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제 과거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빵빵한 추모관 만들어 국민들이 우리 아이들 영원히 기억해달라는 거 아닙니다. 대통령이 기억하고 정부가 기억하고 여야가 기억해서 재발방지대책 세우고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다시는 목숨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저희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고故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

 

유가족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호소했지만, 시민들의 발길은 쉽사리 서명대로 향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손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한 배달노동자는 밤이 화려한 거리의 길목에 선 유가족에게 눈을 부라리며 경적을 울렸다.

 

 

그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빚어내며 내일을 꿈꿨을 159명1의 이야기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멈췄다. 그를 사랑했던 세계들이 빛을 잃고, 온종일 신을 죽이길 반복하고도 환장조차 하지 못하는2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친다. 세월호참사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꿨나 하는 자괴감이 공기를 채운다. 하지만 참사 발생 100일에 접어든 지금까지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진 공직자는 한명도 없다. ‘성역 없는 수사’를 공언하며 출범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윗선’을 겨누지 못하고, ‘군중 유체화’라는 원인 일부만을 밝힌 채 수사를 종료했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밝혀냈지만, 정쟁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면서 야당 단독 결과보고서 채택이라는 한계 속에 마무리됐다.

그사이 정부는 상주 노릇만 자처했다.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분향소를 마련하고, 문상을 가고, 조문을 받았다. 장례비를 지원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상주 노릇이었다. 위패도 영정도, 조문을 받을 유가족도 없는 분향소와 함께 ‘사고’ ‘사망자’라는 규정, ‘굳건한 치료의지’ 같은 발언, 거짓해명, 위증, 책임회피, 도둑조문 등의 태도들이 출몰했다. 정부는 일관되게 책임을 부인하고 축소, 은폐하면서 정부의 무능력, 사회적 고통의 문제를 피해자의 잘못과 운명에 따른 개인적 불행과 사적 고통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피해자를 이념적으로 낙인찍으며 피해자와 시민을 분리하고, 순응하고 질서 잡힌 시민은 올바르고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힘겹게 진전시켜온 성과들을 무력화한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 사람·인권·피해자 중심의 지원, 의사결정 과정에의 피해자 참여, 재난 원인 조사의 독립성 보장 등 세월호참사 이후 정부가 공언해온 내용들이 모두 쓰레기통에 내던져졌다. 피해자들의 애도할 권리, 모이고 말할 권리, 알 권리, 참여하고 협의할 권리, 그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을 물을 권리 등이 지속적으로 침해되고 있다. 책임의 회피, 진리의 부재, 정의의 공백 속에서 유가족들은 애도조차 할 수 없어 추운 광장에 서 있다.

그러나 냉담한 시민들이 적잖다. 가장 크게 들리는 목소리는 “왜 이태원에 갔냐” “놀러 가서 죽었다”이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놀러 간 본인 책임이라는 반응이다. 세금까지 투입해서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회복까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반응의 기저엔 왜곡된 세월호참사의 경험과 불공정하다는 심리가 전제된 듯 보인다. 자신은 열심히 노력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고 일상을 사는데,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과도한 특혜를 누린다는 생각이다. 내가 강의실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이태원참사 이후 무력감, 공허함,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던 삶과 알바 중이던 자신의 삶이 겹쳐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군인이나 다른 사건사고 등과 비교하며 애도와 관심의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아쉬움과 불만, 비판을 넘어 SNS와 미디어 댓글 속에, 유가족들이 마련한 분향소 앞에 입에 담지도 못할 무차별적인 혐오, 조롱, 비하가 넘쳐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재난을 경험하고, 재난 피해자가 된다. 재난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일상을 덮친다. 위협받는 건 타자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며 공동체다. 그럼에도 비난이 피해자와 겉으로 드러난 일부 실무 책임자에게 향할 때, 피해자들은 공동체마저 잃는다. 공공재로서의 안전은 누락되고 안전사회를 위한 국가의 책무는 축소된다. 피해자들의 싸움은 희생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진실과 책임, 피해회복은 안타까운 희생을 의미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자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에, 다시는 평범해질 수 없는 유가족의 일생에 빚지고 있다. 애도와 위로가 시민의 의무이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회복과 혐오의 중단을 요구하는 일이 피해자의 권리를 넘어 모든 시민의 권리인 이유다.

그럼에도 “왜 돌아오지 못했는가”가 아닌 “왜 그곳에 놀러 갔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그렇다면 일하다 맞는 죽음은 온전히 애도되는가?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엄격히 물어지는가? 그 피해회복은 합당한가? 그 죽음은 그저 불운한 것인가, 부정의한 것인가?

 

 

너무 노골적이고 더 저돌적인 탄압

 

2022년에는 그해 9월까지 1,67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3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부딪혀 죽고, 맞아 죽고, 깔려 죽고, 치어 죽고, 빠져 죽고, 터져 죽고, 유독가스로 인해 죽고, 각종 직업병을 앓다 죽었다. 하루 평균 6명의 부고가 275일간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지금도 쌓이는 중이다.

나는 이들의 죽음에 정부와 사업주가 깊이 애도하고 책임을 졌으며, 의미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의 최고경영자까지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시행에 들어갔지만, 경영진이 처벌받았다는 소식 역시 듣지 못했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21년보다 8명 더 증가한 256명이다.4 여기에는 공기업 코레일에서 사망한 4명의 목숨도 포함됐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처벌과 규제를 크게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사는 철저히, 처벌은 강도 높게를 주장하는 노동자들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노동시간 유연화가 임박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린다. 역사는 결코 기계일 수 없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산업재해의 원인이자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단호히 자본과 시장의 편을 자처한다. 근본적으로 어느 정권이 달랐겠느냐마는 너무 노골적이고, 더 저돌적이며, 최소한의 경계조차 없다.

 

ⓒ정기훈/매일노동뉴스

ⓒ정기훈/매일노동뉴스

 

기괴함. 내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각인시킨 위의 사진은 너무 기괴해서 보도된 사진만으로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노동자 유최안씨가 어떤 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퍼즐이 맞춰진 순간, 기괴함은 참담함이 됐다. 고공농성, 무기한 단식, 오체투지, 한평 감옥 등 가혹한 육체적 고행을 통해 싸움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호소하는 투쟁을 적잖게 봐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스스로를 0.3평 철골 안에 가두고 용접하다니. 곧게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누울 수도 없는, 그래서 용변조차 해결할 수 없어 기저귀를 차고 투쟁하다니. 절박한 이들의 투쟁은 얼마나 더 파괴적이고 잔혹하게 진화되어야 하는가? 그는 그 상태로 31일을 버텼다.

사진의 사연은 이렇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채 한달도 안 된 2022년 6월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조선소에서 온갖 위험한 일을 도맡으면서도 임금 250만원 남짓을 겨우 손에 쥐던 이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불황을 이유로 삭감했던 임금 30% 회복과 노동조합의 인정. 하지만 하청업체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업체에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그리고 이들의 호소에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엄정대응”으로 답했다. 공권력 투입이 고려됐다. 용산참사처럼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노동자들은 51일 만에 파업을 중단했다. 4.5%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백기투항이었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안전운임제 유지 및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한 정부 대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비유했다. 행정안전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태원참사 때 압사는 사회재난이 아니라고 부인한 정부,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를 구성조차 하지 못했던 장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기민한 대처였다. 파업이 최초로 ‘재난’으로 규정됐다. 업무개시명령도 관련법 제정 이래 최초였는데, 이를 거부하면 화물운송면허를 취소하겠다는 강경책으로 노동자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과속, 과적, 과로의 노동을 끊겠다며 브레이크를 밟은 노동자들이, 졌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저임금·중노동·고위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불법으로 매도돼 쉽고 빠르게 침해됐다. 파업 이후 남겨진 것은 사법처리, 손해배상, 그리고 다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이다. “질지도 모를 싸움을 왜 하나요?” 나는 잔인하게 물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답했다. 20년 용접 인생의 자긍심을 지키고 싶었다 말한 이도 있었다. 내 노동이 도로 위의 흉기일 순 없지 않냐고 답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노동자들의 싸움은 무엇인가를 더 얻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도 지켜내는 것이 최선이 되어버렸다.

정부와 정치권에 의해 ‘이기주의’ ‘귀족노조’ ‘종북’ ‘범법자’로 매도되고 낙인찍힌 이들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30년 경력에, 하루 18시간 노동으로 겨우 250만원 남짓을 손에 쥐는 귀족 노동자를 단 한명이라도 아냐고. 죽음이 일상인 일터가 불안해 불행한 노동을 하는 친구가 있냐고. 배변조차 자유롭지 못한 노동에 하루 한끼만 먹는 가족이 있냐고. 노동자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고충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면서도 그토록 당당할 수 있냐고. 당신의 자유는 틀렸고, 당신의 공정은 부정의하며, 인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인권은 공존을 위해 고안됐다.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내재된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구조적 취약성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수호하겠노라, 인류가 한 약속이었다. 그렇기에 인간 존엄을 훼손하는 권리란, ‘느린 참사’를 허용하는 자유란 성립될 수 없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재산권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재산권은, 못 자고 허기지고 지친 노동자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재산권은 정의롭지 못하며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은 통제되지 않는 시장권력, 재산권의 행사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물론 파업으로 인한 당장의 불편과 손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지 않을 때, 우리 모두의 존엄과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권리이고 권리가 아닌지를 판단하는 힘을 권력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강자의 특권을 보장하는 데 치우친 법과 정의는 비판받고 저항받아야 한다.5

하지만 한번 형성된 사회적인 인식과 고정관념을 뒤집기란 쉽지 않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롯이 그들 자신만을 위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동이라는 선동과 오해가 너무 뿌리깊다. 주식 투자가 보편화되면서 시장과 자신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사람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와 안전망 없는 복지에 내 한몸 지키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최하층 노동자들이, 권력도 ‘빽’도 없는 이들이, 파업이라도 해야 겨우 목소리가 들려지는 이들이 오명으로 얼룩진 평판을 뒤집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을 바꾼 ‘불구’의 몸

 

중증장애인들에게 달라붙은 오명과 평판은 쓸모없고 무능하며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비장애인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비장애인들은 이들을 골방이나 시설로 유폐시키고 순종하고 침묵할 것을 요구해왔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이 장애인거주시설과 장애등급제 두 축으로 발달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에 항의하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던 중증장애인들의 시위는 그들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오늘날 모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는 ‘불구’라 천대받던 이들이 지난 22년간 선로를 점거하고, 아스팔트를 기고, 삭발을 하고, 곡기를 끊고, 감옥에 가기를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얻어낸 성취였다. 이들은 1,842일에 걸친 광화문역 농성투쟁을 통해 문재인정부로부터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와 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약속도 받아냈다.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낸 것이다. 하지만 예산 없이 권리는 보장될 수 없다.

2021년 12월 3일부터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권리예산(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자립생활권리 예산)’의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행동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시위, 누군가는 점거라고 하지만 사실 출근하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중증장애인들이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유인물을 나누려는 이들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서울교통공단 직원 및 경찰이 격돌하면서 지하철은 연착, 지연되고 객차와 역사는 아수라장이 된다. 쏟아지는 건 시민들의 고성과 욕설, 악다구니. 14개월 동안 반복되는 상황이다.

 

“나가, 나가, 나가!”

“왜 피해를 주면서 하냐고요!”

“야, 장애인이면 피해를 왜 줘, 남한테!”

“아니, 저런 식으로 하면 더, 더 싫어! 더! 위해주려는 마음도 없어진다고!”

“장애인 아니어도 불쌍한 사람 많아요. 자기네만 불쌍한 거야. 아이고.”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자 시위를 한다고 활동가들이 설명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민이 시민 피해 주는 거야? 시민은 피해 안 줘.”6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탄생 덕분에 완전한 시민권을 향유하게 된 반면, 누군가는 시민권을 박탈당한 삶을 산다. 우연이 특권이 되는 부정의에 저항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특권을 당연한 듯 향유한다. 그리고 배제된 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관용과 배려, 시혜의 문제로 위치시킨다. ‘볼모’로 잡힌 ‘선량한’ ‘일반’ ‘시민’들이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특권의식과 오만이 숨어 있다.

차별은 공기와 같다. 어떤 차별은 의식적이고 노골적이어서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어떤 차별은 관행적이고 무의식적이라 차별이라고 느끼기조차 어렵다. 장애인 없는 지하철과 버스, 장애인 없는 교실, 장애인 없는 병원, 장애인 없는 사업장, 경사로·점자 블록·문자통역 없는 거리와 공간 그리고 일상. 비장애인들에겐 너무도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 장애인들에겐 온통 난관이며 극기체험이며 좌절이지만, 비장애인들은 이것이 부정의하고 불공정하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모른 척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열등한’ 장애인들에게 당연한 속박이라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무지와 태만이 공동체 전체를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그들이 외치지 않았다면 여전히 차별의 가해자나 공범으로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장애인을 향한 악다구니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권력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옳다. 비장애인의 1분, 5분, 1시간의 불편함이 중증장애인의 평생과 견줘질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더욱 큰 문제는 갈등을 조정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시민과 장애인들의 대립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권력은 분리통치를 옹호한다. 시민과 장애인/노동자/피해자를 대립시키고, 장애인과 장애인 사이를 갈라치기 하며,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편을 가르고, 피해자들끼리 쌈박질을 하게 한다. 가장 쉽게 표를 얻고 세를 규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무정차 및 무관용을 언급한 뒤 지하철에서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졌다. 정부와 서울시는 장애인들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손해배상과 사법처리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법원이 낸 강제조정안도 거부했다. 그사이 2023년 정부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인권리예산 증액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요구안의 0.8%인 106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전장연이 증액을 요구한 1조 3044억원 중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절반을 삭감해 여야 합의로 의결한 6653억원조차도 기획재정부가 전면 거부한 결과였다.7 잠시 멈춰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가 다시 시작된 이유였다.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말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이동하고 배우며, 꿈꾸고 일하고 사귀고 사랑하며, 울고 웃는 일상을 시설이나 골방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 향유하고 싶다는 말이다. 장애인이어서 취약한 것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배척됨으로써,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됨으로써 취약해진 시민의 자리를 정상화시켜달라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힘은 온전히 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의 능력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난제로 받아들이지만 타인의 삶은 단순하고 명쾌하다고 여긴다. 보이는 너머,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의 자리를 상상할 때 모두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동시대적인 삶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지하철 좀 태워주세요. 지하철 좀 태워주세요. 장애인도 시민입니다. 장애인시민권을 보장해주세요. 장애인이동권 보장해주세요.”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씨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손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그는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발생 22주년을 맞아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다 저지하는 세력에 밀려 승강장과 지하철 객차 사이에 넘어진 상태였다.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 사이로 절규하는 그가 보인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애인의 삶은 이렇게 외쳐도 여전히 진창이구나 싶지 않았을까? 사력을 다해 외쳐도 내려다보아지는 존재의 비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동시에 그가 넘어진 바닥은, 지난해 9월 서울의 수해현장 침수된 집 지하에서 고인들이 바라본 가장 가까운 하늘이었겠구나 싶었다. 손에 닿지만 결코 탈출할 수 없는 견고한 장벽. “집답지 못한 집이 삶을 삼”8켰지만,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은 완화된 데 반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5조원이나 삭감된(2022년 대비) 주거빈민의 현실은 계속되겠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곁이 될 테니까

 

“투쟁은 정말 멋지게 했어요. 행복했어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전혜은씨가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집회에서의 발언이었다면 공허하지만 함께 연대한 이들을 다독이는 발언이리라 생각했을 거다. 51일간의 파업으로 얻어낸 게 없다고, 470억 손해배상을 감당할 수 없다고, 노동자들은 흩어지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너무 암울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사적 대화에서 오간 말이었으므로 나는 멈칫했다. 어떻게 그는 처참하고 처절하게 진 싸움을 멋졌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의문은 이야기의 끝에서야 풀렸다. 고립된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몇차례나 거제를 오갔다. 생계비에 보태라며 파업연대기금을 보냈다. 고마운 건 그인데, 하청노동자의 참담한 현실을 몰랐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파업을 마친 직후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마련해 연대해준 이들부터 찾아간 건 그 때문이다. 올해 그의 소원은 노동조합법 2·3조의 개정이다. 법이 바뀌어야 원청에 노사관계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쟁의행위로 처벌받는 노동자도 사라질 수 있다. 지지하고 응원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요즘 전장연의 우스갯소리는 “지지는 비난·혐오와 함께 온다”는 말이다.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고 혐오도 극성스러워지자, 그만큼 함께하는 시민과 후원도 더 모여들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나 역시 정초 선전전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기차를 탔다. 혹여 발언을 시킬까봐 한참을 끄적였는데, 오전 8시 혜화역은 연대하러 온 이들로 이미 가득 찼다. 수치심을 모르는 정권에 부끄러움을 아는 시민들이 추운 겨울을 데운다. 10·29 이태원참사로 가족을 잃고 맞은 첫 명절, 외로운 귀향길 선전전에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준 건 서명을 함께 받아준 민주노총 노동자들이었다. 정부는 공권력과 돈으로 겁박하지만, 시민은 마음과 몸을 내어 연대한다. 혐오는 불특정다수의 공격으로 오지만, 지지는 구체적인 얼굴로 닿는다.

윤석열정부의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자유와 공정,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민 상호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범법화하고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를 해체하고 각자도생하는 사회를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기 낸 이들이 먼저 광장으로 나왔기에 저항은 보다 많은 이들의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공동체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싸움의 끝은 알 수 없고, 우리는 적잖은 시간 깊은 무력감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전해져오는 소식에 아무 힘도 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거나, 외면하고 부인하는 세상에 냉소하게 될지도 모른다. 빼앗기고 쫓겨나고 밀려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볼 때마다 인권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권의 도래가 세상의 변화를, 평범한 삶을 보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저항하는 이들이 사라졌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 힘으로 세상은 천천히 달라지고, 때로는 더 나빠지지 않게 조금씩 막아왔는지도 모른다. 희망을 벼리는 건 그 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희망이 발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저항하며 노동자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올랐을 때, 경찰의 공권력과 소환, 벌금, 구속 등을 마다하지 않고 2011년 시민들이 탔던 희망버스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309일 만에 김진숙씨가 살아서 땅을 밟았고, 노사갈등 문제로만 치부되던 노동자의 생존권이 사회적 의제가 됐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친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성찰이 바꾼 풍경이었다. ‘몫 없는 자’로 치부되던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실천으로 터져나온 학생인권 존중의 구호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체벌이 금지되고 학생인권이라는 단어가 뿌리를 내렸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실천이 되었을 때, 4·16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은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 규명되고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비틀거리고 좌절했으나 끝내 포기하지 않던 힘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을 열 것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묵묵히 일상을 쌓아가길 바란다. 누군가 싸워주기를 기다리기보단, 가능하다면 먼저 그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앞이 될 수 없다면 곁이, 곁이 어렵다면 맨 뒤라도 함께하길 바란다. 그곳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 사라지지 말자.

 

 

  1. 159번째 희생자는 이채현군으로 참사 현장에서 구조된 후 4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세계사 2004.
  3. 고용노동부 「2022. 9월말 산업재해 현황」,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정책자료실 2022.11.29.
  4. 「중처법 1년, 산재 사망 늘었다… 노동계·경영계의 분석은 엇갈려」, 참여와혁신 2023.1.19.
  5.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인권단체 기자회견(2022.12.7) 중 류은숙 활동가의 발언 인용 및 재구성.
  6. 「(영상) 출근길 장애인 지하철 점거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비마이너 2022.2.8. 일부 내용 인용 및 재구성. 해당 영상은 유튜브 비마이너 채널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youtu.be/HylEYvy9icM).
  7. 「근로지원인 예산 빼면 장애인권리예산 증액 ‘0원’」, 비마이너 2022.12.30.
  8.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주거권 내팽개친 정부와 국회의 공공임대 예산 삭감 규탄한다」, 2022.12.23.

유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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