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늑대』 『국경을 넘는 일』 『매향(埋香)』,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조용한 생활

 

 

퇴근 전 책상을 정리하다가 준모는 그 메모지를 발견했다. 그는 금세 메모를 알아봤고 낭패감이 들었다. 나흘 전 집주인 노인이 안긴 것이었다. 은행 봉투를 재활용한 메모지는 교양과목 수강생들의 과제물 밑에서 나왔다. 사인펜 글씨로 ‘李喆鎬(煥)?’과 함께 ‘1937?’ 하고 연도가 쓰여 있었다. 물음표들은 준모 자신이 직접 적어 넣은 것이기도 했다.

 

허노인이 이층으로 몸소 올라와 준모의 방문을 두드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노인은 너른 이마 위에다가 돋보기를 올려놓고 서 있었다. 조간신문을 구독하는 노인을 아침이면 같은 모습으로 마당에서 맞닥뜨릴 때가 있었다.

“김교수, 출근하나베?”

문 앞에 서서 노인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준모는 노인을 양옥의 바깥 베란다에 잠시 세워두었다. 그는 세탁소에 맡길 겨울 외투까지 챙겨 들고 나섰다. 홍매화가 끝물이라 밤새 꽃잎이 베란다로 날아와 흩어져 있었다. 준모는 무의식적으로 꽃잎을 피해 발을 디뎠다. 자연스럽게 계단 쪽으로 두어걸음 노인을 이끌게 되었고, 바쁜 티를 냈던 모양이다.

“바쁜 사람 붙들고 있을 수 없응께 거두절미하고……”

노인은 사람 하나를 찾아달라고 했다. ‘이철호’ 혹은 ‘이철환’이라는 이가 준모가 몸담은 대학의 전신인 농업학교에 다녔는지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승주 주암 쪽 사람이라고 했다. 일제 때 학적부에서 학생 하나를 찾아달라는 소리였는데 준모는 아득한 일처럼 여겨졌다. 임용되고 첫 학기라 학교는 낯선 것투성이였다. 이런 걸 알아내려면 어느 부서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남의 일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농업학교를 다녔다고요? 1937년에?”

“딱 그해라고 장담은 못해. 그 어름쯤 되겠다는 거제.”

얼추 백수에 다다랐을 그 사람이 살아 있을 확률은 낮아 보였다. 그러니까 사람을 찾는다기보다 1937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존재했을 한 사람의 흔적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노인이 준모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졸업도 그렇구먼. 인저 거길 댕겠다, 그런 증언만 들었다는 거제 졸업장을 땄는지 그건 몰겄다대.”

여전히 허노인이 하는 말은 앞뒤가 없었다. 남 이야기를 전하는 말투며 누가 누구에게 들었다는 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찾는 당자가 누구라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이 바쁜 티를 내서 그런 게 아니라 노인이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애초부터 그렇게 마음먹고 올라왔는지 몰랐다. 그래도 부탁하는 입장에서 왜 그 사람을 찾는지 최소한 연유는 밝혀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저 심부름만 해달라는 식이라면 곤란했다. 그로 인해 준모가 불편해하는 걸 노인도 빤히 아는 듯싶었다. 말끝마다 자기 사정도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지었다. 준모는 외투를 빨래건조대에 걸쳐 두며 되뇌었다.

“졸업 여부도 정확지 않고…… 성함이 호(鎬)일 수도 있고 환(煥)일 수 있고……”

그럼에도 노인은 고개만 끄덕일 뿐 별 대꾸가 없었다.

“등본 같은 걸 떼보면 성함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텐데요.”

“오죽 답답했으면 인저 학교 서류를 뒤져볼 맘을 묵었겄어.”

지금껏 해볼 만한 건 다 해보았다는 눈치였다. 말을 보탤수록 의문만 커져가는 대화를 더 이을 필요가 있을까. 출근시간이 빠듯해지고 있었다. 세탁소도 들러야 하고, 교내 복삿집에 제본 맡겨놓은 것도 찾아야 했다.

“요새는 개인정보보호법이다 뭐다 해서 학적부 같은 걸 함부로 열람시켜 줄지 모르겠어요.”

하고 준모는 한발 빼면서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제야 노인이 우물우물 답답한 속내를 내놓았다.

“여순 그거 있잖은가베?”

“여순사건이요?”

“그려. 그거 신고하려는 거여.”

준모는 노인을 가만히 건너다보았다. 주위를 살피며 어찌나 비밀스럽게 얘기를 하는지 준모는 하마터면 제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어쨌든 노인은 이 일이 아주 사적인 일만은 아니니만큼 당신이 도와줬으면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준모는 압박감을 느꼈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고 한해 기한으로 피해신고 접수가 진행 중이었다. 시내 곳곳에 신고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신고가 지지부진하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해 태어난 이가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었을 세월이니 학살을 목격한 사람이나 유족이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 싶었다. 당장 허노인도 그 시절에는 아주 어려서 부재한 사람이나 다름없을 거였다. 1948년 일이라면 노인이나 준모나 어떤 실감도 없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였다.

“무담시 김교수한테 부담을 지우네. 안 되믄 어짤 수 없지만서두 이참에 이름 석자라도 속 시원히 알아냈음 좋겄구먼.”

그러니까 노인이 찾고자 하는 건 한 사람의 정확한 이름이었다. 준모가 추측건대 여순사건 피해자 신고를 하려는데 희생자의 이름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주민등록부로 확인이 되지 않는 가족이 있을 수 있을까? 희생자가 노인의 먼 친척인 걸까? 성씨가 다른 걸 보면 외가 쪽인지도 몰랐다. 집안에서만 은밀하게 전수된 비밀들이 칠십삼년이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그러나 이렇듯 불투명하게 밖으로 흘러나오는 걸까.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얘기든 조심하려는 노인의 태도가 낯선 건 아니었다. 준모도 어린 시절에 이 지방에서 자랐다. 공포가 내면화되고 침묵이 일상화된 공기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 세상이 언제 또 뒤집힐 줄 몰라 본능적으로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가 많았다. 그래도 세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움츠리는 모습이 준모로서는 지나쳐 보였다. 피해자들의 두려움이 그대로 유전되고 있다고 보일 정도여서 거짓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두려움이 지금도 엄연히 실체를 갖고 살아 있는 건 사실이었다.

준모는 문득 노인이 사건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준모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러니까 나는 너를 아직 모른다는 경계심에 이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준모는 노인에게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출근길에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지 못하고 저녁에 맡겼다. 준모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울산과 창원에서 보낸 연구소 생활까지 포함해서 칠년째였다. 아내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두 아이가 커가면서 가족을 이끌고 다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세탁물을 싸 들고 대전의 본가로 가져갔다. 그러다 이내 번거로워져서 손수 빨거나 세탁소에 맡겼다. 그랬더니 이곳 집에는 옷가지들이 쌓여가고 본가의 장롱은 점점 비어갔다. 본가에 변변하게 갈아입을 계절 옷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본가의 살림에서 그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원로교수들은 웬만하면 가족을 불러내서 함께 살라고 했다. 교수생활을 은퇴한 후에도 가족 곁으로 가는 일이 편치 않아 여전히 이곳에 방을 잡아 주말부부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세탁소는 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낡은 단층건물에는 세탁소와 함께 이발소와 문구점이 있었다. 얼핏 보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노부부가 세탁과 수선을 함께 했다. 세탁물을 받으면 할머니가 옆 문구점에서 구했을 성싶은 초등학생용 공책에 세탁 물목과 함께 맡긴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언제까지 해달라고 요구하면 그 옆에다가 요일을 적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할머니가 없을 때는 할아버지가 세탁물을 받았는데 그는 세탁 물목을 기록하지 않았다. 모든 게 여기에 입력된다고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곤 했다. 아마 할아버지는 문맹인 듯싶었다. 세탁소는 후불제인데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첫 거래 때 하도 황당해서 준모는 요새 세상에 카드를 거부하는 세탁소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할아버지는 태연하게 소상공인인 걸 내세웠다. 수수료 떼여가며 골목세탁소를 운영하기 어렵다며 항변했다. 분명 어딘가에 카드단말기를 처박아놓고 배짱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 이런 엉터리가 있나 싶어 신고를 해버릴까 고민도 하고, 다른 세탁소를 찾아 나서기도 했으나 근처에 코인빨래방은 있어도 다림질까지 맡길 만한 세탁소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집이 세탁까지 엉터리인 건 아니었다. 제때 세탁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고, 귀가시간이 늦어져 며칠째 찾지 못한 세탁물이 생기면 주인집에 배달해놓고 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은 자연스레 외상으로 처리되었는데 안내도 독촉도 없었다. 세탁소가 이상할 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늙은이들은 그저 예전 방식대로 장사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세탁소의 고객들도 준모 같은 경우는 드물고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늙어가는 주민들이 대부분일 거였다. 거처를 이 골목에 잡은 이상 이곳의 이상한 생활감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강의를 끝내고 학교 인트라넷을 검색해 학사지원과의 학적 담당자를 찾아냈다. 담당 직원은 휴가 중이었다. 전화를 받은 여자 직원이 단순한 업무라면 자신이 처리해주겠노라고 했다. 준모는 볼펜으로 메모지에 적힌 이름에다가, 그리고 1937년에다가 물음표를 붙여가며 용건을 설명했다. 여자는 그런 사안이라면 자신이 처리할 수 없겠다고, 담당 직원이 내일 출근할 테니 직접 문의해달라고 안내했다. 전화를 끊기 전 준모는 직원에게 물었다.

“농업학교 시절 자료가 전산화되어 있나요?”

“그때 것들은 아마 문서고에서 찾아야 할걸요.”

역시 난망한 일 같았다.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지 준모는 내리 사흘을 바쁜 일과에 섭슬려 허노인의 부탁을 깜박 잊고 지냈다.

업무가 종료되는 여섯시가 되려면 아직 이십여분이 남아 있었다. 준모는 사무용 전화기를 무연히 바라보았다. 퇴근시간이 임박해 걸려오는 이런 민원전화는 어떨까? 그는 자꾸만 소심해지는, 그래서 병적으로 그 상태를 추궁하는 자신을 느꼈고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는 전염병이 가져다준 거리두기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숱한 행사와 술자리 모임,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놓여났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줌으로 강의하고 회의하는 시간이 편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처럼 그는 조용한 생활이 좋았다. 오히려 이런 상태가 원래 정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메모지의 한자를 검색해 정확한 훈(訓)을 확인했다. 이윽고 그는 메모지 한 귀에 적어둔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학적 담당자는 출근해 있었다. 남자였고 목소리가 앳되었다. 준모는 여순사건 피해자의 학적부를 찾는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게 이야기를 간단히 끌어가는 데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가 용건을 얘기하는 동안 상대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준모는 당연하게도 상대 직원이 귀찮아할 일이라고 단정해서 말을 앞지르고는 했다.

“퇴근시간이 다 됐는데 내일 다시 전화할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직원은 차분했다. 잠긴 듯한 목소리에서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럿이 쓰는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쓴 채 전화를 받고 있을 것이다. 업무용 컴퓨터는 이미 꺼져 있는지 모른다. 준모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이 일을 부탁한 사람이 경계심이 심해 자세한 사정을 다 털어놓지 않는다고. 그리고 학교의 업무 규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일이 처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오해 없이 전달되었기를 바랐다. 직원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분인가요?”

“아무래도 그러지 않겠어요. 이런 경우에는 유족이 직접 열람신청을 해야겠죠?”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망자니까 개인정보보호법 보호대상은 아니에요. 다만 전산화가 아직 안 되어 있기도 하고, 그때 자료들은 유실된 게 많거든요.”

“그렇군요. 정보라도 정확하다면 모를까 괜한 헛수고 같네요.”

“……”

준모는 이만해서 전화를 끊을까 싶었다. 이 정도만 해도 허노인에게 면목이 설 것 같았다. 그런데 직원이 큼큼, 목을 틔우더니 물어왔다.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준모는 직원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그는 메모를 들여다보며 찾는 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성함을 정확히 모르시더라고요.”

준모는 메모의 한자 표기를 직원과 맞춰나갔다.

“문자나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아닙니다. 받아 적겠습니다.”

“가만있자, 이게 호경 호(鎬) 자죠, 아마? 밝을 철에 호경 호.”

“철은 쌍길 철(喆)을 말씀하시는 거죠?”

하고 직원이 확인했다.

“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를 수화기로 들으며 준모는 기다렸다.

“또다른 성함이?”

“이철환이요.”

“빛날 환(煥) 자를 쓰겠죠?”

“맞습니다.”

업무에 숙달되어서일까. 젊은 사람이 인명 한자에 제법 밝아서 준모는 놀랐다. 그는 기록을 마치고는 다시 물어왔다.

“혹시 주소도 갖고 계십니까?”

“주암 출신이라고만 했어요.”

“그때는 행정구역상…… 승주군 주암면이었겠네요.”

정보 공유가 끝나자 직원이 처리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금방 나오면 모를까 앞뒤로 이년씩만 넓혀 잡아도 오년 치를 찾아봐야 할 거예요. 1935년 학적부부터 1939년 학적부까지. 창씨개명 전이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제가 이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고, 틈틈이 찾아보겠습니다. 그 점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렴요.”

오히려 준모가 미안해져서 거들었다.

“가능하면 저도 도울게요. 문서고에 가서 선생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요.”

준모는 누런 서류들이 책장마다 가득 쌓인 문서고에 앉아 바스러질 것 같은 서류들을 들추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어느 한나절을 그곳에서 보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직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예의 그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교수님. 이 일은 제 일인걸요. 문서고 출입도 절차가 까다롭고요.”

준모는 직원에 대한 신뢰감이 차올랐다. 문서고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을 그를 떠올렸고, 그는 아무리 일이 무의미해도 금세 몰입해서 고독 속에 놓일 것이다. 준모는 그가 자신과 동류의 사람인 걸 느꼈다. 앞에 있다면 손이라도 힘껏 잡아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직원의 이름을 문득 물었는지 모른다.

“양태민입니다.”

준모는 메모지 하단에 그의 이름을 받아 적었다. 그는 잠시 기시감으로 긴장했다. 그건 오래전 같은 이름을 써본 손끝에서 반응해오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동명이인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삼십년이 지나도록 재회한 적 없지만 지금껏 잊어본 적도 없는 친구였다.

“기록을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수님.”

직원이 말했다. 통화를 끝낼 시간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양선생님.”

준모는 통화를 끝냈다.

그가 자신이 아는 양태민일 리는 없을 것이다. 혹시나 그라면 통화하는 동안 어떤 반응이든 보였을 테니까. 긴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비로소 성가신 일에서 놓여나 일상으로 돌아온 듯 홀가분했다.

 

학교에서 준모의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분 남짓 되었다. 준모는 이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삼십년 만에 돌아왔다. 십대 시절 삼년을 보낸 도시라지만 그는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저 삼년이 하루 같은 입시학원에 들었다가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이 도시에 음식문화가 발달했고, 유서 깊은 곳이 많다는 걸 이번에 와서 알았다.

준모는 개학 전에 학교 게스트하우스를 임시거처로 빌려놓고 정착 준비를 했다. 연구실을 꾸미고 강의계획서를 짜고 수업 준비와 각종 교육과 인사로 바쁘게 보냈다. 방을 구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이 도시 역시 다른 곳들처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서 아파트 입주는 불가능했고, 오피스텔은 멀리 공단 인근의 상업지구에나 가야 매물이 있었다. 불가피하게 학교 인근의 원룸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임시로 원룸에 머물면서 오래 묵을 숙소를 천천히 찾아볼 계획이었다.

학생 수가 줄고 전염병 사태까지 겹쳐서 대학가에는 빈방이 많았다. 오히려 그래서 방을 구하는 기준이 더 깐깐해졌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좁고 습하고 낡고 시끄러웠다. 창문이 작거나 북향이었고, 풍경이 삭막했다. 복도에 중국집 배달음식 그릇이 놓여 있기도 했고 계단의 전등이 깜박거리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득실득실한 게 싫었다. 며칠 발품을 팔고 나자 그는 마음 깊은 데서 자신이 원룸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일이 난감해져서 그는 당황했다. 무리가 되겠지만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나 근교의 전원주택을 세내볼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인근 원도심에 있는 모교 쪽으로 산책을 다녔다. 삼십년 동안 구석구석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서 매일 아침이면 목도리를 두르고 낯익은 골목길을 걷고는 했다. 시립의료원을 끼고 오르는 길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남긴 고건축물이 많았다. 학생 시절 그는 이국풍의 건축물이 고즈넉해서 좋으면서도 어떤 이물감에 시달렸다. 저 아래 중심가의 백화점이나 영화관들보다 그를 주눅 들게 한 건 선교사들이 남긴 유적들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는 미션스쿨이었는데 학교에서 매주 진행되는 예배와 성경 공부가 주는 긴장 탓인가 싶었다. 미션스쿨의 신앙생활을 경험과 정서의 세계로 덤덤하게 받아들였으면 좋으련만 당시 그는 지나치게 신념의 문제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기독교 세계에 대한 반발심은 아니었다. 외려 그는 그 나이에 싹트는 삶과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목말랐다. 자연스럽게 교목 선생과 목사들과 성경의 문장들에 고개가 기울어졌는데도 그 교실에서는 서투른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너무 진지한 게 흠이었다. 목사 신분의 교목 선생이 성경 과목 시간에 예수 재림과 휴거에 대해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학생 하나가 “휴거가 이루어지는 동안 부처나 알라는 무얼 하고 계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이 웃었다. 교목 선생한테는 그게 모독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질문한 학생을 세운 후 뺨을 서너차례나 때리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경건한 태도의 상실과 신성모독은 학교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준모는 어떤 질문이 생기면 그게 경건한지 아닌지 따지게 되었고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 말씀들과 찬송과 건물들과 그 건물들의 공기가 알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처럼 남고는 했다.

대학에서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주택지 뒤로 산복도로처럼 새로 길이 나 있었다. 예전에 그곳은 달동네 같은 곳이었다. 누옥들이 미로 같은 골목에 얽혀 있었다. 그는 1학년 때 기숙사에서 나온 뒤 그 골목들을 서너군데 옮겨 다니며 자취했다. 시장 상인들이 모여 살던, 마당에 쌓아놓은 생선 궤짝에서 비린내가 진동하던 집은 도로로 편입되고 없었다. 술주정뱅이 주인사내가 쌀자루를 훔쳐다가 술을 마셔버린 비탈길 끝 집은 헐려서 누군가의 텃밭이 되어 있었다. 3학년 한해를 보낸 집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인남자가 시청 공무원이던 집이었다. 자신이 쓰던 행랑채의 작은 창문이 눈속임을 해놓은 것처럼 남아서 그는 창틀 아래 오래 서 있었다. 노크를 하면 창문이 열리고 열아홉살의 자신이 내다볼 것 같았다. 그는 기쁘기보다 쓸쓸했다. 대문 틈으로 황량한 정원이 보였다. 겨울 정원은 방치된 듯도 하고 사람 손길이 닿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초인종에다가 손을 댔다가 뗐다.

“그 집에 사람 없는데……”

등 뒤에 할머니 한분이 서 있었다.

“집 보러 다니우?”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아뇨. 여기서 자취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거든요.”

“이 집서 자취했다면 아주 옛날이구먼. 그래도 참 용하네. 옛날 살던 집을 다 찾아보고.”

“여기 대학교로 왔거든요.”

“잉, 할멈 있었으면 아주 반겼겠네. 할멈 혼자 살다가 겨울난다고 서울 딸네로 갔어. 인저 올 때도 됐겄네. 담에 다시 와봅세.”

준모는 할머니와 헤어진 후 저 집에 다시 들어가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교로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팽나무들이 늘어서서 그늘이 깊고 고즈넉했다. 준모는 이곳을 떠올릴 때면 늘 이 팽나무길부터 그려졌다. 그 길에 예전에 없던 낯선 표지판이 서 있었다. 여순사건 학살지. 스물다섯명의 주민이 토벌대에 희생된 현장이라고 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인부를 사서 희생자들을 인근에 매장했지만 근래 진행된 유해 발굴작업에서는 찾지 못했다. 한층 그늘이 깊어지고 조용한 길을 준모는 낯설게 두리번거렸다. 표지판은 왠지 준모 자신의 시간이 이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밀어내는 척력처럼 여겨졌다.

방역조치로 교문은 닫혀 있었다. 준모는 펜스 앞에 서서 학교를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리고 예배를 보던 대강당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축한 강당이 들어서 있었다. 그가 입학해 석달을 머물렀던 기숙사는 교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혀가 “같이 갈 거지?” 하고 속삭이는 환청을 들었다. “난 마음먹었어. 같이 갈 거지?” 밤이면 기숙사 침상에서 옆에 누운 양태민이 속삭였다. 기숙사에서는 전남 동부지역에서 선발해온 서른여덟명의 장학생들이 함께 생활했다. 이 도시는 고교 평준화가 되지 않아 사립학교들은 장학반을 편성해 입시 실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은 엄격하고 힘들었다. 자정까지 사감 교사의 감독을 받으며 학습실에서 자율학습을 했고, 자정이 넘으면 일제히 소등하고 예전 군부대 침상 같은 침실에서 학생들이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준모는 낯선 환경에다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생활했으므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양태민은 괴목이라는 곳에서 온 아이였다. 하얀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었다. 어떤 계기도 없이 준모는 금세 양태민과 친해져 단짝이 되었다. 뒷날 생각해보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겁먹은 아이들인 걸 서로 눈치챈 게 아닐까 싶었다. 양태민은 제 홀어머니 얘기를 자주 했다. 어머니가 괴목 시장에서 식당을 하며 자신을 뒷바라지하고 있는데 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기숙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자책했다. 준모는 양태민을 가슴 깊이 동정하고 위로했다. 한동안 양태민에게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다. 어느날부터 양태민이 아버지 얘기를 내놓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남해의 모처 항구에서 횟집을 하고 사는데 그 부둣가 세번째 집을 몰래 찾아가본 적도 있다고 했다. 마치 잊지 않으려고 되뇌는 사람처럼 세번째 집이라고 여러번 표현해서 준모는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그것이 잊히지 않았다. 양태민은 아버지가 두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며 주먹을 쥐었다. 양태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준모는 제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늘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고 있을까? 어머니는 오늘 밤에도 이웃집 나무청에서 잠든 게 아닐까? 준모는 차라리 아버지가 죽어버리거나 양태민의 아버지처럼 집을 나가버렸으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양태민은 제 어머니 이야기로 돌아올 때마다 눈이 벌겋게 젖고는 했다. 자기 집에서는 안방에 관을 하나 모셔두고 산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큰아들을 잃었는데 그 시신을 못 찾아 평생 관 하나를 마련해놓고 살았다.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아버지는 관을 버리지 못했다. 온통 관 자체였던 할아버지의 인생을 저버리지 못한 것이다.

“유산으로 받은 거지. 근데 엄마도 그걸 못 버려. 그것만 지키고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올 줄 알지. 내가 크면 그 관부터 없앨 거야.”

준모는 그 이야기가 무서웠다. 관이 놓여 있는 방이라니! 관 옆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모습이 떠올라 기괴했다.

“태어나서부터 보고 자라서 아무렇지 않아. 그냥 가구 같아.”

그러더니 양태민이 눈을 부릅떴다.

“죽여버릴 거야.”

준모는 움찔했다.

“항구에 가면 세번째 집이거든.”

그 얘기를 뱉은 후로 양태민은 그 이야기를 무시로 했다. 준모는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양태민의 계획을 들었다. 준모는 양태민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를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몸이 떨리곤 했다. 그러고 나면 뭔가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한 심리상태에 놓이고는 했다.

“난 마음먹었어. 같이 갈 거지?”

그러면서 양태민은 어느날 밤 이불 속에서 준모의 손을 더듬어 끌었다. 그의 운동복 바지 주머니가 불룩했다. 준모는 그게 둘둘 말아서 싼 칼이라는 걸 알고 흠칫했다. 반듯하게 누운 준모는 몸이 굳은 채 “그래” 하고 속삭였다.

그 주말에 준모는 양태민을 따라 기차를 타고 그의 어머니가 사는 괴목으로 갔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의 산간마을이었다. 양태민의 어머니는 작은 국밥집을 하고 있었다. 몹시 뚱뚱하고 목소리가 걸걸한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준모가 인사했을 때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눈이 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준모는 가만히 있었다.

“니가 그 친군갑네? 우리 태민이랑 잘 지낸당게 항시 고맙다.”

아주머니가 돼지국밥을 말아주었다. 주방이며 홀로 다니는 아주머니의 거동에서는 눈이 먼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양태민이 제 어머니에게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를 하겠다고 말했다.

“왜, 밥도 나오고 기숙사가 편할 텐디.”

“잠을 통 못 자서 힘들어. 공부하는 분위기도 안 좋고.”

아주머니는 아들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 마. 우리 둘이 지낼 테니까.”

양태민이 준모의 눈을 피한 채 말했다. 미리 의향을 비쳤던 말이지만 준모는 아직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당혹스러웠다.

“친구랑 같이한다고?”

아주머니가 준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모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사 든든하제만 학기 중에 방 구하기가 어디 쉬울랑가 몰겄다.”

“봐놓은 데가 있어. 낼 당장 하는 건 아니고, 준모도 집에 가서 승낙을 받아야 해.”

양태민은 그럴 거지? 하는 표정으로 준모를 건너다보았다. 준모는 설핏 웃고 말았다.

식사가 끝나고 준모는 양태민을 따라 주방 뒷문을 통과해 안채로 갔다. 관이 놓여 있다는 기괴한 방이 몹시 궁금했다. 이불과 서랍장과 텔레비전이 놓인 작고 평범한 방이었다. 관은 눈에 띄지 않았다. 준모가 관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양태민이 윗목 구석지기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접은 병풍을 푸른 천으로 싸서 세워놓은 것 같은 사각의 물건이 곧게 서 있었다. 양태민이 천 한 귀를 들춰서 보여주었다. 민무늬의 송판이 보였고 준모는 시시했다.

준모와 양태민은 한달쯤 시달린 끝에 기숙사에서 나왔다. 사감 선생과 지루한 상담이 이어졌다. 그들은 함께 움직이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따로 행동했다. 사감 선생은 괴롭힘을 당하는지 궁금해했고, 종교 문제인지 추궁을 했으며, 마지막에는 기숙사를 나가면 성적 유지가 힘들어 장학생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겁박했다. 새벽에 제공되는 영수 과목 특강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승낙을 해줄 때는 기숙사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다른 친구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퇴실조치를 내린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걸 각서로 쓰고 부모 동의서도 받아 제출했다. 준모는 부모에게 양태민이 제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양태민이 한주 먼저 나가고 준모도 곧 기숙사를 나왔다.

양태민은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집에 방을 구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준모는 뭔가에 끌려오다시피 여기까지 온 상황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양태민과의 우정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무서운 일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준모는 양태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취방으로 옮긴 뒤 양태민은 손수건에 싼 과도를 제 책상에 버젓이 올려두고 지냈다. 그가 오늘이 디데이야, 하고 말할까봐 준모는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양태민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제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말도 쏙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자취생활이 주는 피로감이 두 사람 사이를 서먹서먹하게 했다.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져가며 양태민은 뭔가를 끼적거리기 시작했고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지 몰랐다. 밤늦게 돌아오면 설거짓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는 했다. 자정이 넘어 잠을 잤으면 싶은데 양태민이 불을 켜놓아 준모는 잠을 설쳤다. 바퀴벌레가 출몰했고, 어느날 지은 밥이 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바퀴벌레가 쌀자루에다가 똥을 눈 것이었다. 양태민은 자신은 더이상 밥을 먹을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준모는 물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사 먹을 거야.”

기숙사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기숙사생이 아니어도 쿠폰을 사면 이용할 수 있었다. 준모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냥 해보는 소린 줄 알았는데 양태민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방에 신문지를 깔아 쌀알을 쏟아놓고 준모는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이 왜 이 고생을 하는데 그는 그따위로 행동하는지 화가 났다.

양태민이 교목 선생에게 뺨을 맞은 날 밤, 둘은 크게 다투었다. 양태민이 휴거가 일어나는 날 부처와 알라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준모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드디어 그날이 임박했다고 그는 느꼈다. 양태민이 죄의식에 떨며 구원의 가능성까지 타진해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준모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끝나고도 교실에 더 남아 있었다. 양태민이 칼을 챙겨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초조했다. 너무 심한 고문 같았다. 제발 자신을 두고 양태민이 혼자 떠났기를 바라기도 했다.

기진맥진해서 돌아왔을 때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온 준모는 전등을 켰다. 양태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누웠다.

“불 꺼.”

책상에는 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준모가 불을 끄지 않자 양태민이 씨, 하며 일어나 불을 껐다. 준모는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불을 켰다.

“불 끄라고!”

양태민이 드러누운 채 노려보았다.

“존나게 용기도 없는 새끼가 입만 살아가지고.”

준모는 쏘아붙였다.

“뭐?”

양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나한테 뭐라고 했어?”

“니는 내가 쉽지?”

“뭐 하자는 거야, 이 새끼가.”

“나는 너한테 한번도 불 끄라고 요구한 적 없어. 니 하자는 대로 다 했어. 근데 너는 뭐야? 내가 그렇게 쉽냐고, 새끼야.”

“내가 너한테 뭘 어쨌는데?”

“뭘 어쨌냐고?”

준모는 으드득 이를 갈며 양태민의 책상에서 손수건에 싸인 칼을 잡았다. 손수건이 또르르 풀리며 칼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양태민이 흠칫 놀라며 벽에다가 등을 대고 물러났다. 그는 준모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왜 그러는데?”

준모는 윗옷을 걷어붙이고 배를 내밀었다.

“해봐, 새끼야. 용기 있으면 찔러봐.”

양태민이 손을 저었다.

“이러지 마, 준모야.”

“왜? 못하겠어? 넌 애초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그냥 입만 나불거리는 놈이었어. 날 가지고 놀고 싶었던 거야? 그치?”

준모는 칼을 집어 들었다.

“죽이는 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자신의 배에 칼끝을 댔다.

“미친 새끼야!”

양태민이 준모의 칼 든 손을 잡았다.

“이리 내.”

그는 준모에게서 칼을 빼앗았다. 준모는 몸을 떨며 주저앉았다. 양태민이 울부짖었다.

“미친 새끼. 왜 나한테 그래?”

그는 울면서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튿날 양태민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양태민이 짐을 다 빼가고 방에는 준모의 짐만 남아 있었다. 양태민은 장기결석 끝에 자퇴하고 학교를 떠났다.

준모는 이 도시에 아직 끝내지 못한 자신의 시간이 남아 있는 걸 깨달았다. 그는 기억으로 구부러진 골목을 매일같이 걸었다. 말 잃은 우울한 아이를 앞세우고 걸었다. 아직 그는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처럼 차가운 봄비가 내렸다가 그친 오후였다. 볕을 쐬며 걷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어느날에는 이렇게 산책을 나섰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게 소원이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람결처럼 인 감상은 양태민으로 이어졌다. 살아오면서 그는 불현듯 괴목이나 부둣가를 가볼까 싶을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양태민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차차 그 나이의 양태민이나 자신이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러니까 괴목에서든 부둣가에서든 양태민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싶었다. 준모는 그날 밤 양태민에게 벌인 행동이 부끄러웠다. 어떤 감상적인 마음은 단단한 마음으로 자라 삶이 되기도 하므로 준모는 언젠가 양태민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자신을 찾고 있을지 몰랐다.

홍매화가 흐드러진 탐매(探梅)마을을 지나면서 그는 어느 집 대문에 내놓은 돌절구에 매화 꽃잎들이 뜬 걸 보았다. 그는 돌절구 속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꽃잎 뒤로 제 얼굴이 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집 대문에 이층을 세놓는다는 방이 붙어 있었다.

 

준모는 세탁소에서 마침 주인집 허노인을 만났다. 허노인은 세탁소 노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준모를 맞았다.

“아따, 퇴근하나베? 여봐, 이분이 우리 집 이층에서 지내는 김교수여.”

그는 호들갑스럽게 세탁소 노인 부부에게 준모를 소개했다. 미싱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돌아보며 “하이고, 누가 모른다고 새삼스럽게” 하고 허노인을 힐끔 훔쳐냈다. 허노인은 준모에게 고개를 살래살래 저어서 다른 말 말고 어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준모는 영문을 몰라 아무 말 않고 외투부터 찾았다.

“인저 나 가네이.”

하고 허노인은 허겁지겁 준모를 몰듯이 따라나섰다.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허노인이 세탁소를 돌아보고는 준모에게 말했다.

“저 집 일이여.”

“네?”

“세탁소 영감 아부지라니께, 이철호라는 양반이.”

그제야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고 준모는 학교 일을 전했다.

“찾아보겠답니다. 서류들을 일일이 대조해야 한다니까 며칠 걸릴 것 같아요. 기다려보죠.”

“그려. 기다려야지. 수고했소.”

“근데 아버지 성함을 어떻게 모르실 수 있죠?”

준모는 궁금한 걸 물었다.

“아따, 이야기가 복잡해이. 정확히 말하면 저 영감 생부를 찾는 거여. 세탁소 영감 어무이가 영감 뱄을 때 그 일을 당했어. 인저 어무이는 일찌거니 개가를 해서 살었고. 저 영감탱이도 새아부지 성을 받어서 암것도 모르고 살았제. 어무이가 다 죽어감시롬 이야기해줬다는 거여. 속 시원히 못 들어놔서 인저 찾을라니께 뭐가 되남. 할멈은 인저사 뭘 찾냐고, 자식들 앞길 개리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난리고.”

“자식들한테 무슨 해가 된다고 그래요. 나라에서 법까지 만들었는데.”

“긍게. 옛날 사람들이라 그랴. 답답하제. 암튼 저 영감은 명예회복이고 뭐고 바라지도 않어. 아부지 함자나 알아둘라는 거제. 그거이 그렇게 에러운 세상도 있다는 게 참 거시기해이.”

대문 앞에 다다랐다. 노인이 준모를 돌아보며 말했다.

“김교수, 여기서 고등핵교를 나왔드만?”

“네? 그걸 어떻게 아셨대요?”

“아까 세탁소 할멈이 글든마. 미싱 앞에 꿍하고 앉었어도 거기가 백통이여. 여기서는 아무도 조용히 못 살어.”

준모는 갸웃했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이 동네에 자신을 아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운 듯 기분이 묘했다.

“꽃이 지네이.”

하고 노인이 담벼락에 붙은 홍매화를 올려다보며 대문을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