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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성숙 鄭成淑

1964년 전남 진도 출생. 2013년 『한국소설』로 등단. 소설집 『호미』가 있음.

suny1392@hanmail.net

 

 

 

하찮은 찔레꽃은 피고

 

 

애옹애옹! 애오-옹! 애옹애옹! 애오-옹! 새끼 고양이가 또 어미를 부른다. 이틀째다. 어미 고양이는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건넌방의 만식씨가 잠이 깼는지 카악! 칵! 가래침 뱉는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가 잠잠해진다. 춘희씨가 머리맡에 놔뒀던 핸드폰을 열어 보니 2:35. 연락이 잘 되지 않아 걱정된다며 며느리가 사다 준 핸드폰은 잠 깬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다. 들에 갖고 나간들 전화를 걸거나 받을 일이 거의 없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그냥 밤에 잘 때 자리끼 놔두듯 머리맡에 둔다.

4월 말경에 대파를 심으려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춘희씨는 업은 아기 찾듯 허둥댔었다. 그것도 비라고 서너바가지 퍼붓고는 6월 중순이 되도록 비 소식이 없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더니 정말로 콩이며 참깨가 오다가다 간혹 싹이 나 있었다. 더러는 싹이 나왔다가 말라 죽고.

춘희씨는 잠들기 전에도 잠이 깬 후에도 비 소식이 궁금했다. 열흘 동안의 날씨를 알 수 있다며 핸드폰으로 일기예보 보는 방법을 며느리가 가르쳐줬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영감탱이한테 묻는 수밖에. 영감탱이도 잠이 깬 것 같으니 건넌방 문을 열고 비 소식을 물어볼까 하다가 앓느니 죽지 싶다. 눈을 치뜨고 쯔쯔쯧! 혀를 차는 영감탱이 얼굴이 미리 보여 저절로 몸서리가 났다. 밝은 달밤보다 흐린 낮이 낫다는, 효도하는 자식보다 툴툴대는 서방이 좋다는 속담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자주 의구심이 드는 춘희씨다,

TV를 켠다 한들 일기예보를 해주는 시간도 아니다. 춘희씨는 불을 켠 후 전 지질 때 쓰려고 챙겨뒀던 달력을 공책 삼아 연필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입으로 외면서 제초제 살충제를 쓰고 또 쓴다. 쓴다기보다 글자를 그리는 셈이다. 박만식이라는 글자를 그린다. 영감탱이 이름이다. 박재우 박재석 박재철은 세 아들, 김춘희는 예전부터 아는 글자라 수월하게 써진다. 안영미는 며느리 이름이다. 잠이 일찍 깬 날마다 손가락에 힘을 줘서 쓰고 써도 눈에 익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땡볕을 등에 지고 콩밭 매는 일보다 고되다.

 

춘희씨가 대파밭 고랑에 엎드려 풀을 매는데 송충이처럼 생긴 파밤나방 벌레가 급하게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춘희씨가 호미를 든 채 구부정하게 엎드린 상태로 가만히 대파 잎들을 살펴보니 크고 작은 파밤나방 벌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대파 잎을 갉아 먹고 있다. 파밤나방 벌레는 날이 더운 한낮에는 흙이나 진 잎 속에 숨어 있다가 서늘해지는 밤과 새벽에 기어 나와서 대파 잎을 먹었다. 춘희씨는 풀을 뽑으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엄지와 검지로 벌레를 눌러 죽여보지만 개체수가 많아 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싶었다. 굴파리 벌레도 종이처럼 얇은 대파 잎 거죽에 무명실 늘어놓듯 굴을 뚫어가며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춘희씨는 밭을 매던 곳을 표시 삼아 밭고랑에 호미를 그대로 놔두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풀보다 벌레를 먼저 없애야겠기에 남편한테 농약을 챙겨주라고 했다. 만식씨는 창고에 사다 놓은 것이 있으니 갖고 가서 쓰라고 했다. 누런 박스 안에 허연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고. 볼가지가 많으면 농약을 조금 더 독하게 타서 하란다. 영감탱이는 방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소리쳐 일렀다. 영감탱이는 간이 부어서인지 썩어가는 솔방울 낯빛인데다 위에 염증까지 생겨 쓸개 씹은 인상으로 시난고난 병치레하면서도 목소리만은 짱짱하다.

“볼가지 약이 맞으요? 저번에 했던 약하고 다른데 말이요!”

카악! 칵! 영감탱이가 가래침을 뱉어냈다. 군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재작년까지 농약 칠 때만큼은 만식씨가 경운기를 끌고 와서 농약 줄을 연결해줬다. 물에 섞은 농약이 나올 수 있게 경운기 시동을 걸어주면 춘희씨가 농약대를 들고 뿌렸다. 새벽에 나와 별문제 없이 시작하면 해뜨기 전에 농약 30말을 다 뿌릴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립선까지 고장 나서 오줌을 잘 누지 못하게 된 작년부터 만식씨는 방 안에서 농사를 지었다.

등허리에는 농약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을 담은 비닐봉지는 오른손에 들고 춘희씨는 뛰다시피 걸었다. 춘희씨 손에 들린 허연 비닐봉지가 춘희씨 보폭만큼 앞뒤로 심하게 흔들거렸다. 분무기를 짊어지고 한통씩 30번을 뿌려야 하는 춘희씨는 마음이 급했다. 파밤나방 벌레들이 대파 잎에 들러붙어 있는 오전에 농약을 뿌리는 게 효과적이다. 게다가 햇볕이 사나워지기 전에 농약을 쳐야 사람이 덜 지쳤다.

집을 나서 10여분을 걸어 산 밑에 있는 밭에 도착하자 집 안에서 맡아졌던 백합 향기가 춘희씨를 따라온 것 같았다. 수년 전에 마당 한쪽 수돗가 옆에 백합 뿌리 한덩어리를 묻어놨는데 이제는 식구가 늘어서, 이맘때는 대문 밖에서도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요망한 것이 먼 데까지 따라왔네.”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꽃향기 속으로 들어온 춘희씨가 싫지 않은 한마디를 뱉었다.

춘희씨는 고무통에 미리 받아둔 물을 떠서 농약 두가지를 섞은 후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어깻죽지를 찍어 누르는 것 같다. 춘희씨가 농약을 뿌리는 동안, 밭 주변 곳곳에 하얀 무더기로 핀 찔레꽃들이 사방의 벌을 부르며 춘희씨 하는 양을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찔레꽃의 향내가 떼 지어 합창하듯 들판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춘희씨가 밭을 맬 때는 풀만 보였는데 농약을 치면서 보니 새삼스럽게 벌레 천지였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짐승 쫓는 사냥꾼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더니 영락없다. 춘희씨는 아주 찬찬하고 꼼꼼하게 농약을 뿌렸다. 농약을 5통까지 뿌리고 나니 햇볕이 따가워 벌레가 은신처로 숨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기력이 다 떨어졌다. 앞으로 20번은 넘게 농약통을 더 짊어져야겠지만 때려죽인다 해도 더이상 무거운 분무기를 짊어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춘희씨는 해거름 때 나와서 대여섯통, 다음 날 새벽에 또 몇통이든 힘이 닿는 대로 뿌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춘희씨의 조바심을 날씨는 헤아려주지 않았다. 오후에도 다음 날 새벽에도 바람이 거칠게 불어서 농약 치는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춘희씨는 백합꽃 향기의 배웅을 받으며 빈 분무기를 짊어지고 바쁘게 집을 나섰다. 춘희씨는 대파밭에 도착하기 전, 먼발치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농약을 뿌렸던 곳의 대파와 뿌리지 못한 곳의 색깔이 확연히 달랐다. 농약을 뿌렸던 곳의 대파 잎이 익어가는 살구색, 그러니까 풀에 제초제를 뿌리면 서서히 죽어갈 때 보이는 색깔이었다. 춘희씨는 살충제 아닌 제초제를 설렁설렁도 아니고 아주 꼼꼼하게 뿌렸던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실수였다.

 

초여름의 열기가 마른 흙마저 데우는 한낮에는 마을회관에 나이 많은 여자들이 모였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한숨 자거나 쉴 때면 동네 소식들이 천장에서 그네도 타고 널뛰기도 했다. 그런 무리에 끼는 것이 춘희씨 구미에는 맞지 않았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늙은 여자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자식 자랑 아니면 돈을 물 쓰듯 하는 며느리 걱정이 대부분이다. 춘희씨 생각에, 남의 흉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마을회관이었다. 남의 흉은 앞에 두고 내 흉은 뒤에 둔다고 하더라도 입에 도끼를 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자라목이 되느니 속 편하게 일감 하나라도 축내는 게 상책이었다. 나이 칠십이 넘도록 춘희씨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어느 한해 대파 농사가 장원이었던 적이 있긴 하다.

진즉 뿌려놓은 참깨와 콩이 제대로 싹을 내지 못해서 따로 모종을 키워 다시 심어야 할 성싶었다. 춘희씨는 그늘진 창고 앞에 앉아서 구멍이 128개인 플라스틱 포트에 상토를 담았다. 상토를 담은 포트를 차곡차곡 잰 뒤에 맨 위쪽 포트를 꽉꽉 눌렀다. 그러자 상토를 담은 플라스틱 포트에는 씨앗을 넣을 수 있는 넓은 구멍이 생겼다. 참깨 씨앗을 서너개씩 집어넣고 다시 상토를 덮었다.

애옹애옹! 애-옹! 애옹! 애-옹. 춘희씨가 참깨 씨앗을 구멍에 집어넣느라 소리를 내지 않으면 새끼 고양이가 여지없이 어미를 불렀다. 플라스틱 포트를 집어 들면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고양이 울음소리는 뚝 그쳤다. 사람의 기척이 계속 느껴지는지 새끼 고양이는 한동안 어미 부르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니가 어미를 놓쳤냐, 아니믄 니 어미가 너를 놓친 것이댜.”

춘희씨는 파종하는 내내 새끼 고양이와 같이 애를 태우다 해가 저물었다.

저녁밥을 차리러 부엌으로 들어간 춘희씨는 냉장고에서 멸치 한주먹을 꺼내서 국그릇 정도 크기의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밥솥에서 쌀밥 한숟가락을 떠서 멸치와 같이 끓였다. 콩이나 보리를 섞은 밥이 춘희씨 입맛에 맞지만, 이제는 쌀밥만 먹다가 죽고 싶다는 만식씨 때문에 밋밋한 쌀밥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키울 때까지 이골이 났던 배고픔은 아직도 춘희씨 가까이 있다. 끼니를 먹을 때보다 굶을 때가 잦은 동생들 배를 채워주고 싶어도 먹을 만한 것 찾기가 어쩌면 그렇게도 멀기만 했던지. 산이며 들판을 또는 갯가를 뒤지고 헤집었다. 냇가의 두레박만 한 돌 하나, 상엿집 뒤쪽의 배롱나무 옆에서 나란히 크던 산딸기나무까지 눈에 선하다. 배를 곯고 있는 새끼 고양이한테 멸치 한주먹 내주는 인심이 어렵지 않은 시절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춘희씨는 찬장에서 일회용 접시를 꺼내 죽처럼 뭉근하게 끓인 밥을 국자로 뜬 후 빨리 식을 수 있게 펼쳐서 식탁 밑에 내려놓았다. 점심에도 먹었던 시래기된장국을 다시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 몇가지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영감탱이를 불렀다. 그러고는 식탁 밑에 놔뒀던 일회용 접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새끼 고양이가 울어대던 창고 안의 장작더미 앞에 일회용 접시를 놓아두었다. 이것 먹고 지발 그만 울어라. 배가 차지 않은 동생들이 징징거리던 소리를 다시금 듣는 것만 같은 춘희씨가 새끼 고양이를 얼렀다.

“너 땜시 내가 제명에 못 죽겄다. 이것 먹고 얼른얼른 니 어미 찾아 가그라.”

춘희씨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오니 만식씨는 그새 밥을 먹고 건넌방으로 사라지고 없다. 춘희씨가 식탁 의자에 앉아 된장국에 밥을 말아 한입 넣으려는 참인데 전화기가 울리더니 만식씨가 춘희씨를 부른다.

“어야! 전화 받게.”

“못 간다고 하쇼!”

누군가 품삯 일 하러 오라는 부름이리라 춘희씨는 어림했다. 세 아들 키우며 학교 보낼 때는 한푼이 아쉬워 닥치는 대로 돈 되는 일을 자처했다. 받아 온 품삯은 한 귀퉁이 뜯지 않고 남편한테 갖다줬다. 그래야 살림이 되는 줄 알았다. 작년부터는 남의 일을 마다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농사 외의 일까지 하고 나면 허리가 굽혀진 채 집에 와서 밥상을 차릴 때까지 펴지지 않았다.

“방죽굴 선호 동생 선자라는데?”

만식씨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서 재촉했다.

‘선자?’

춘희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나는데 허리가 곧바로 펴지지 않아 굽은 자세로 방에 들어가 전화기를 귀에 댔다.

“여보세요?

“춘희냐? 방죽굴 선자여 선자!”

“방죽굴 선자아! 오매오매, 시상에!”

“니 전화번호 찾느라고 한참 걸렸다아 가시나야! 카톡도 안 하나봐.”

“뭔 독?”

“핸드폰 카톡 몰라? 여기서는 우리 나이에도 다 카톡을 하는데 시골에서는 안 하는갑네잉. 하기야 농사일하느라 바쁜데 그럴 새도 없긴 하겄다아.”

“너는 서울 사람 된 지가 언젠데 여적 여그 사람 같다잉.”

“어머어머 웃긴다아. 다른 사람들하고 말할 때는 안 그런데 너랑 얘기항께 사투리가 지절로 막 나와분다야, 어머어머 진짜 웃긴다야.”

춘희씨는 선자 덕분에 정말로 가시나가 된 것처럼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만들어졌다.

김선호 그 인간이 한달 전쯤에 젤 편한 세상으로 갔거든. 눈에 거슬리는 거 더이상 안 봐도 되니 좋은 데 간 거지 뭐. 죽기 전까지 마누라나 자식들한테 구박 많이 받았지. 코 아래 구멍이 제일 무서운 법인데 민족과 민중만 외치느라 식구들 목구멍은 뒷전이었으니 안팎으로 신세 조진 거지 뭐냐. 유품이랄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지도 않고 막 다 버리드라. 김선호라는 인간이 쓰던 것은 다 쓰레기인 거야. 그래서 내가 몇가지 갖고 왔어. 너도 알겄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른 형제들보다 내가 김선호랑 쌈도 많이 하고 젤 친했잖냐. 그 인간 숨 끊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양말 한짝 안 남기고 다 버렸드라. 사진첩이나 책 몇권만 아직 안 버린 상태였더라고. 장례 끝나고 올케가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는 것을 내가 몇가지 챙겼지. 뭐 별거 있겄냐. 그 인간이 유독 책을 애꼈으니 책이나 수첩 같은 진짜로 돈 안 되는 것뿐이지. 그 인간, 평생을 돈이 나오는 구석을 못 찾고 살았잖아. 안 찾은 건지 못 찾은 건지 어휴! 그러니 마누라나 자식들한테 대접받을 수 있겠냐고. 올케가 가장 노릇을 했지. 김선호 그 인간은 취직도 못하니까 출판사 일을 거들다가 나중엔 하나 차려 운영했거든.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그나마 유지라도 할 텐데 읽기 성가신 책만 내고 자빠졌으니 망하지 않고 배기냐고. 취직? 취직을 할래도 할 수가 없지. 예전에는 연좌제라는 게 있었거든. 이런 사람이니 특별히 눈여겨봐라 하고 표시해서 자식들이나 형제까지 굴비처럼 같이 엮어 어디에도 취직을 할 수 없게 해놨잖아. 그러니 형제들이나 자식들도 김선호라면 왼고개 틀지 않겄냐. 호적에 빨간 줄 한번 그어지면 인생 종 친 거지. 그런데 요즘 같잖은 말들을 하더라.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지금 복받고 산다고. 좆도 모르는 것들이 개소리 지껄이는 거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주말부부로 사는 천복을 누리고 사니 어쩌니 씨부렁거려. 나는 그 말만 들으면 몽둥이를 막 휘두르고 싶다니까! 나라를 구한다고 인생을 건 사람 옆에 있다가 공포에 눌려본 적이 있다면 그런 헛소리 못하지. 부모 재산 다 말아먹고 형제들까지 숨어 살아야 하고 자식들은 굶고 있고. 아이고오! 생지옥이지. 전생이든 조상이든 나라를 팔아먹어야 내가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게 현실적인 말 아니냐? 진짜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는 후손들까지 현재도 부자에다 교수 노릇까지 하고 산다잖아. 일제 때 독립운동했던 사람들 자식은 숨거나 도망 다니느라 교육을 받았겠냐 호강을 했겠냐. 삼대가 망해서 대가 끊기는 게 태반이었지. 그러니까 내 말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그 후광을 지금까지 누리고 산다 그렇게 말해야 맞다는 거지. 내 말이 틀렸냐? 근데 너는 여전히 말이 없구나.

우리 서방님? 아우! 징그럽다 징그러! 서방님이 아니라 웬수지. 김선호 친구거든. 아마 너도 봤을걸. 방죽굴에서 김선호랑 야학할 때 역사를 가르쳤다던데. 내가 그때는 미쳤지. 김선호랑 야학도 하고 한일회담 반대 데모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거야.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지. 자기는 한 집안을 책임질 자신이 없으니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내가 쫓아다니면서 애걸복걸해서 결혼을 했잖냐. 집안은 내가 건사할 테니 당신은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세요 했다는 거 아니냐. 얼척없지? 그즈음에 감옥에 있는 김선호 뒷바라지하느라고 일꾼 두명도 내보내고 방앗간까지 팔면서 친정집이 거덜 나고 있는 중이었거든. 오빠들처럼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아부지한테 조를 수가 없더라고. 어쨌든 그 웬수와 결혼을 해서 내가 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아주 죽겄드라. 서방이 저절로 웬수가 되더라니까. 주체적인 나라를 세워야 한다며 애쓰는 힘을 집구석 구하는 데 좀 나눠 썼으면 좋겠더라고. 내가 힘드니까. 강도짓만 안 해보고 다 해본 것 같다. 간병 일을 좀 오래 했지. 아들 둘은 결혼해서 분가했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낮 근무만 해. 우리 웬수? 밤낮으로 책만 들여다보고 있답니다. 책도 몇권 내고 그랬는데 그러면 뭐 하냐. 자기 용돈이나 벌어 쓰는 정도지. 니 남편은 어때? 건강이 별로 안 좋다고 하던데. 으응, 우리 친정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방죽굴 오빠 친구들이 왔길래 니 소식을 물었더니 누가 그러더라고. 그때 니가 사는 동네를 알았지. 며칠 전에 그 오빠한테 니 남편 이름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어. 보통 남편 이름을 알아야 전화번호를 알 수 있잖아. 너를 찾으려고 니 남편을 수소문했지 뭐냐. 폐병? 달나라 여행 가는 시대에 웬 폐병? 아이고오! 니 남편은 종합병원을 짊어지고 사는구나. 너도 사는 게 만만치 않았겠다. 그치?

아 참! 내 정신 좀 봐.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까먹고 귀신 이 앓는 소리만 여태 했네. 올케가 버리던 것 중에 김선호 그 인간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던 몇가지 대충 챙겨 왔다가 며칠 전에 그걸 꺼내 봤거든. 김선호 그 인간이 뭘 그리 소중하게 갖고 있었나 하고 말야. 식민지 조선이니 민족해방론이니 뭐 이딴 거야. 다른 사람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에 눈깔 뒤집고 있는데 염병! 여태 이런 것이나 끼고 있으니 사는 게 그 모양이었지 싶더라고. 그중에 무슨 공책이 있더라. 한글공부 교본 같은 건데 김춘희라고 니 이름이 적혀 있는 거야. 너한테 주려고 만든 거더라고. 웃기지도 않아. 이사를 몇십번 다녔는데 그걸 끌고 다녔다는 거잖아. 그냥 버리려다가 잠깐 뒤적여봤거든. 뭐가 우수수 떨어지는 거야. 글자 앞에 그에 맞는 동물이나 식물을 그려놓기도 하고 또 뭘 붙여놓기도 했더라고. 코라고 써놓고 코스모스꽃을 붙여놓기도 하고 토끼를 그려놓고 토끼풀 있잖아 잎이 네개면 행운을 갖다준다고 했던 그 뭐드라? 아! 클로버 잎 맞아. 그거 그거. 그딴 걸 붙여놨는데 내가 들추니까 그런 것들이 쏟아진 거지. 공책이 오래돼서 색이 바래니까 붙여놨던 자국이 모양으로 남아서 뭘 붙여놨는지 알겠더라니까. 엄청 정성 들여 만든 한글 교본이더라는 말이지. 방죽굴에서 야학할 때 만들었던 것 같애. 근데 그때 야학에 오는 사람이 많았다던데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시간 들여 만든 교본을 다 나눠줄 수는 없었을 거 아냐. 니 것만 특별히 만들었구나 싶더라고. 김선호 그 인간이 널 좋아했나? 쓰레기통에 버리려니까 그 정성이 너무 아까운 거야.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너한테 보내주면 어떨까 싶더라고. 너한테도 쓰레기가 되겠지만 김선호 그 인간을 누군가는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알코올의존증이 되기 전의 김선호라는 인간을.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누군가를 위해 살았는데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이 너무 짠한 거야. 김선호 그 인간은 감옥에서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나와서도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았잖아. 무릎이고 어깨가 아무 때고 막 빠져. 감옥에서 작살난 거지. 김선호 그 인간이나 우리 웬수가 무엇을 찾아 헤맨 건지 대충은 알지. 높게 평가되어야 맞긴 한데 그 사람을 받쳐주던 가정사는 고난 아니겠냐. 그래서 올케가 이해되고 김선호 그 인간도 안타까우니까 내가 중간에서 막 서러운 거야. 쓰레기나 다를 바 없는 공책이지만 니가 갖고 있다가 된장국 끓일 때 다시마 대신 조금씩 뜯어 넣고 끓여 먹든지 장작불 붙일 때 불쏘시개로 쓰든지 하라고. 주소 좀 알려줘. 아니, 니 남편 말고 니 이름으로 보낼 거야. 요즘은 문패에 남편과 니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으니까 우체부가 너를 못 찾거나 그런 일은 없지?

선자는 선호 얘기를 못해서 그동안 숨이 많이 찼을까? 장화 신고 발바닥 긁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만한 춘희를 선택했는지 아주 길게 늘어놓았다.

 

춘희씨는 봄에 태어났다 해서 이름이 춘희다. 어머니가 3월에 보리밭을 매다가 산통이 와서 집에 들어와 춘희를 낳고 다음 날 보리밭을 매러 갔단다. 춘희는 젖배를 곯아서 많이 크지 못했다. 어머니는 젖이 많지 않음에도 춘희 외에 여섯명의 자식을 2~3년에 한번씩 더 낳았다. 덕분에 춘희는 일곱살 때부터 아기를 업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저녁을 먹은 후까지 동생들의 실질적인 엄마 노릇을 했다. 춘희가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길 때 진짜 어머니는 밭에서 풀을 매고 바닷가에서 김을 뜯거나 굴을 깠다. 밤에는 삼베를 짜고. 아침 끼니는 춘희 어머니가 해결했다. 좁쌀 한주먹에 물 세바가지를 넣고 끓인 멀건 죽은 그나마 잘 넘어가는 한끼였다. 점심과 저녁은 맏딸인 춘희가 마련했다. 나무뿌리며 열매 잎사귀까지 그리고 개구리나 메뚜기를 삶거나 구우면 밥이고 반찬이었다. 아랫집이고 윗집이고 다 그런 형편이라 칡순이며 찔레나무 줄기마저 남아나지 않아서 아주 먼 데까지 가야 그나마 통통하고 굵은 가지나 껍질을 벗겨올 수 있었다. 젖먹이 동생은 젖이 부족해서 늘 칭얼거렸다. 젖먹이 동생이 걷기 전까지 춘희는 아기를 업고 빨래를 하고 들에 나가 쑥을 캐거나 소나무 껍질을 벗겼다.

춘희가 열일곱살인가 열여덟살인가 그즈음이었다. 동네 친구들 몇명은 벌써 시집을 갔던 시기였다. 김씨 문중의 제각 뒤쪽에 통통하게 올라와 있을 찔레 줄기를 끊으러 가는 중이었다. 제각에서 남자 둘이 나오더니 춘희를 봤는지 한명은 제각 뒤로 재빨리 사라졌다. 잠시 후에 춘희 앞에 선호가 바짝 다가왔다.

“산딸 따러 가는 중이구나.”

선호가 대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춘희 앞을 가로막다시피 서서 알은체했다.

“찔레순……”

춘희는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최소한의 대답을 했다. 산딸은 아직 여물도 덜 들었는데 그 시고 떫은 것을 어찌케 먹겄소. 찔레순 끊어서 줄기는 동생들 먹이고 순은 디쳐서 된장에 무쳐 먹을라고 하지라,라는 똑 부러진 대답은 목젖 아래에서 맴돌았다.

“아하! 찔레수우운. 그거 상엿집 뒤쪽에 많던데.”

“예에.”

춘희는 순순히 선호가 알려주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그는 어지께 끊었어라. 산딸기는 열흘은 더 있어야 익을 것이고. 고사리와 칡순은 아침 해를 먼저 받는 앞산부터 올라오고 양순네 무명밭 아래쪽의 찔레순이 가장 실하다는 것들은 내가 훤하지라 하는 말 또한 춘희의 입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선호는 제각 쪽으로 오는 사람의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무슨 사정이 있는 듯싶었다. 제각 반대편에 있는 상엿집 쪽으로 춘희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중이 그래 보였다.

선호의 시야에서 벗어났겠다 싶어진 춘희는 상엿집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걷고 있는데 선호가 허겁지겁 뛰어와 춘희 앞에 섰다. 춘희는 무참해졌다. 자신의 속내를 들켜서 선호가 그걸 따지러 온 게 아닌가 하고 지레 겁을 먹었다. 상엿집 주변에 찔레순이 많다고 기껏 알려줬더니 어디로 가고 있냐고 따지고 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어째 너는 야학에 안 나오냐?”

선호가 대뜸 추궁하듯 물었다.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처지의 청춘들에게 애써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데 너는 왜냐고 묻는 것이다.

“애기 땜시……”

춘희는 고개를 숙여 흙바닥에 시선을 둔 채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제 입장을 알렸다.

“아하! 참, 동생들이 많지이.”

선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뭔가 궁리하는 눈치더니, “걍 애기 업고 온나. 애기가 울믄 내가 봐주께” 했다.

“예에.”

춘희는 이 상황에서 어서 빨리 도망치는 게 급해서 얼른 얼버무렸다. 애기를 업고 어찌케 글을 배우러 가겄소, 우사시럽게, 나도 제발 어머니가 애기를 그만저만 낳았으면 좋겄소. 징하요 징해! 하는 말 또한 입안에 가뒀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아기 엉덩이 쪽 포대기를 바짝 당겨 잡고 오른손에는 대바구니를 꽉 거머쥐고 뛰었다. 선호가 다시 자신을 붙잡아 세워놓고 야학에 올래 안 올래 하고 닦달할 것 같았다.

“춘희야아! 기다리께 꼭 온나아!”

담박질하는 춘희 뒤에서 선호가 소리쳤다.

그날 저녁에 춘희는 야학에 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끼니로 덜 여문 감자를 삶아 먹고 솥을 닦고 있는데 아랫집 양순이 불렀다. 선호 선생님이 언니를 꼭 데리고 오라고 했단다. 춘희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세살 아래인 양순에게 손목을 꽉 붙잡혀 동네 회관으로 갔다.

춘희가 엉거주춤 의자에 앉자 선호 외에 다른 남자가 보고 있었는지 공책과 연필을 춘희 앞에 내밀었다. 춘희는 얼결에 공책을 받아 들고 머리를 숙여 고맙다는 시늉을 했다.

산수 시간인 모양이었다. 선호는 칠판에다 수박이랑 참외로 보이는 것들을 그려놓고 더하기 빼기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친구랑 참외 서리를 가서 나는 참외를 5개 따고 친구는 7개 땄는데 주인이 쫓아오는 바람에 친구가 참외 1개를 놓쳤다네. 그래서 친구와 나는 몇개의 참외를 가져왔을까 하는 문제였다.

춘희는 책상 밑에다 양손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더하기를 하다가 7이라는 숫자에서 손가락이 부족해지자 당황했다. 칠판에다 숫자를 쓰고 있는 선호가 책상 밑에서 방황하고 있는 춘희의 손가락을 뒤통수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열 손가락이 부족했던 산수 시간이 끝나자 야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가고 춘희만 선호한테 붙잡혔다. 춘희는 어쩔 수 없이 기역니은에서부터 아야어여를 몇차례 썼다.

“다른 아그덜보다 늦게 출발했응께 너는 따로 벌충을 해야겄지?”

선호는 그렇게 말하고 야학이 끝난 다음에도 한시간가량 춘희 옆에 앉아서 자분자분 설명을 덧붙였다. 춘희는 그 시간 내내 몸뚱이 몇군데가 근질거리는 것 같고 불편했다. 춘희에게 글자는 선망이기도 했지만 두려움이기도 했다. 등에 업었던 아기가 토해놓은 자국이 아직 남아 있을 테고 허리를 뜨뜻하게 했던 오줌이 지린내로 변해서 춘희의 체취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춘희는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신경 쓰느라 선호가 하는 말이 귀로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춘희는 그후로 사나흘 정도 야학을 더 다니다가 나가지 못했다.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동생이 열이 나면서 설사를 했다. 삶은 고둥을 너무 많이 먹였기 때문일까? 춘희가 삶아서 깐 고둥을 씹어서 아기 입에 넣어주니 헤헤거리며 잘 받아먹었다. 아기가 혓바닥으로 밀어낼 때까지 먹여서 탈이 났는지 아니면 열병이라도 생긴 것인지. 열을 내리려고 미지근한 물로 밤새 아기를 닦으면서도 어머니는 한마디 핀잔을 하지 않았지만 춘희는 이미 죄인이 되어 같이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에는 거짓말처럼 아기의 열이 내렸다. 어머니는 바닷가로 굴을 따러 가고 춘희는 아기를 업고 시냇가로 미나리를 캐러 가는 중이었다. 등허리가 뜨뜻하니 축축해졌다. 아기가 다시 설사를 한 것이라 짐작해서 씻기려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기를 내려놓고 보니 고개가 옆으로 축 처져 있었다. 밤새 설사를 했던 아기답지 않게 기저귀에는 시커먼 똥을 싸질러놨다. 춘희는 그때 알았다. 사람이 저세상으로 갈 때는 몸속에 있는 것까지 다 내놓고 간다는 사실을.

동생이 맥없이 죽은 이후로 춘희는 야학에 갈 수 없었다. 배가 고파서 멀건 죽을 입에 넣는 것조차 어머니와 아기한테 죄스러운데 자신의 욕심을 한가지 더 갖는다면 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춘희에게는 언감생심이었더라도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 점심 도시락을 싸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기껏해야 새벽에 대문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 먼저 깨끗한 감꽃을 줍거나 산딸기 따위를 싸주는 것이었지만 춘희의 최선이었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었으니까.

 

애옹애옹! 애오옹!

춘희씨는 잠들기 전에 들었던 소리를 깨면서 다시 들었다. 어젯밤에 들었던 소리보다 기운이 약하다. 춘희씨가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열어 보니 3:12. 새끼 고양이는 어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늦가을에 메주 쑬 때 쓰려고 모아둔 장작더미들을 헤집어볼 수도 없다. 비료포대 대파포트 배추포트 내년에 쓸 퇴비포대들, 혹시 나중에 필요할까 싶어 버리지 못하고 넣어둔 구멍 난 농약 호스며 농약 박스가 몇개인지 모르겠고…… 불 땔 만한 것으로 보일 때마다 주워 오다보니 해마다 써도 줄지 않고 점점 많아져서 몇년을 쓸 수 있는 땔감이 쌓여 있다. 게다가 좁은 창고의 가장 안쪽이다. 새끼 고양이 스스로 나와야 한다. 춘희씨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춘희씨는 앉은뱅이밥상을 끌고 와서 제초제 살충제를 쓴다. 쓰고 또 쓴다. 집 주소도 쓴다. 집 주소는 남편을 데리고 도시 병원에 갔다가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서다.

애옹! 애오옹! 잠잠하다 싶으면 다시 새끼 고양이 소리다. 춘희씨에게는 글자를 익히는 것이 여전히 벅찬 일감이다. 굴삭기로 해야 하는 일을 혼자 삽질하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아서 해찰부리고 싶기만 하다.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면 머리까지 지끈거리며 아프다.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가 춘희씨의 엉덩이를 부추겼다. 도와달라고 울어대는 소리가 춘희씨에게는 고문이었다. 등에 업은 동생이 애처롭게 울며 자지러지는 것 같다.

춘희씨는 세 아들 키울 때보다 동생들 키울 때의 기억이 더 많다. 아이 키우는 법을 배우고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지만 춘희씨는 달랐다. 춘희씨가 낳은 아이들은 시어머니가 거뒀다. 춘희씨는 아이 젖 먹일 때마저 아이 궁둥이 한번 매만져보지 못했는데 배가 덜 찬 아이를 시어머니가 떼어갔다. 계집이 게으른 집에는 제비가 깃들이지 않는다며 며느리 궁둥이가 잠시라도 바닥에 붙어 있지 않도록 다그쳤다. 시어머니는 몸이 부실한 아들을 대신해서 농사일을 꾸려나가라고 며느리 등을 떠밀었다. 춘희씨는 채찍 맞은 소처럼 일을 쫓아 내달렸다. 춘희씨는 요즘도 동생을 업고 산속에서 헤매는 꿈을 꾸곤 한다.

춘희씨가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은 지 3일째부터는 발걸음 딛는 곳곳에서 애옹애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밥을 하려고 쌀을 씻다가 애옹! 소리가 들려 손이 저절로 멈칫했다. 밭에 가려고 대문을 밀고 있는데 애옹! 소리가 뒤를 돌아보게 했다. 또 들에서 들어올 때도 대문을 열기 전에 귀가 스스로 애옹! 소리를 찾아 나섰다. 대파밭 고랑에 엎드려 풀을 뽑을 때마저 애옹! 애옹! 마치 이명처럼 들렸다.

춘희씨는 그리던 글자를 그대로 제쳐두고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역시, 애옹애옹! 하던 고양이 소리가 뚝 그쳤다. 춘희씨가 창고로 가서 불을 켜고 어제 놔둔 일회용 접시를 살폈다. 그대로다. 뭉근하게 끓인 밥알과 멸치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있다. 어느 한 귀퉁이 깨작거린 흔적이 없다. 새끼 고양이가 어미 젖 이외의 음식은 아직 먹지 못한다는 것인지 장작더미에 끼어서 나올 수 없는 것인지, 애 터질 노릇이다.

춘희씨는 무와 감자를 나박나박 썰어서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와 함께 끓였다. 다시마는 건져내고 무와 감자가 뭉근해지도록 가스레인지 불을 줄였다. 냉동실에서 갈치 세토막을 꺼내 냄비에 넣고 고춧가루와 조림간장 그리고 마늘까지 양념해서 다시 끓이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줄였다. 국물 없이는 밥을 못 먹는다는 영감탱이는 생선조림에 국물이 자박하게 남아 있으면 쯔쯔쯧! 혀부터 찼다. 바짝 졸인 생선조림은 영감탱이 입에 꿀을 바르는 요술이다. 춘희씨가 묻는 말에 쯔쯔쯧!부터 나오지 않게 하는.

“재우 아부지이! 진지 잡수쇼오.”

새벽 5시에 영감탱이를 부르는 춘희씨 목소리가 사뭇 나긋하다.

“새북부텀 뭔 갈친가?”

춘희씨 예상대로 만식씨는 갈치조림에 시선을 박은 채 식탁 의자에 앉는 몸놀림이 재다.

“아그덜 오믄 궈줄라고 애꼈던 것을 지졌소.”

만식씨는 어른 손가락 세마디쯤 되게 두툼한 갈치 한토막을 빈 접시에 옮겨 담았다. 물컹한 무는 춘희씨 입으로 들어갔다. 만식씨가 갈치를 세토막째 옮기고 있을 때 춘희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제 비 온다는 소식 없습디요?”

“없어.”

세토막째의 갈치는 대충 발라 먹고 일어서며 만식씨가 무심하게, 입안에 고인 침 뱉어내듯 너무도 가볍게 대답했다.

만식씨가 먹다가 가시 쪽만 남겨놓은 갈치를 발라 먹으며 춘희씨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산전 일구어 고라니 좋은 일 시켰다는. 수양산 같은 서방 그늘이 삼백리라고? 염병할!

춘희씨는 마당에 파종해놓은 콩이며 참깨 그리고 들깨를 빨리 키워야 할지 더디게 크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없다. 싹이 나와서 떡잎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모종들은 벼락같이 클 텐데 비 소식이 없으면 어째야 쓰까? 물을 쬐깐씩만 줘야 할랑가 어째야 할랑가?

애면글면하는 춘희씨를 모르쇠 하는 영감탱이가 야속하다 못해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리고 삿대질하며 목청 한번 높여봤으면. 나 혼자 먹자고 콩 심고 깨 심냐고.

춘희씨는 서너개 되는 그릇을 씻어놓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5시 35분이다. 밖은 아직 어둑하지만 대파밭에 도착하면 풀이 보일 시간이라 대문을 나섰다. 역시 애옹애옹! 소리가 춘희씨 발목을 붙잡는 것 같다.

춘희씨가 대파밭 고랑에 퍼질러 앉아 뭉쳐다니면서 풀을 뽑는데 넓적다리가 찌르르하더니 통나무처럼 뻣뻣해지는 게 느껴졌다. 점심때가 된 모양이라고 어림짐작하며 일어섰다. 굽은 허리가 쉽사리 펴지지 않아 구부정한 채 집으로 왔다. 춘희씨가 대문 문고리를 잡기 전에 백합 향기가 마중을 나왔지만 춘희씨 귀는 애옹! 하는 소리를 찾느라 머뭇거렸다.

“아짐이 김춘희씨요?”

“오매! 놀래라. 안 밴 애기 떨어지겄소!”

춘희씨가 뒤돌아보니 우체부 모자를 쓴 남자가 갈색 봉투를 들고 서서 씽긋 웃고 있었다. 우체부는 일부러 춘희씨를 놀라게 한 게 분명했다.

우체부가 검은 펜이 연결된 핸드폰 같은 것을 춘희씨 앞에 내밀었다.

“어찌케 하라고라?”

“여그다 아짐 이름을 쓰쇼.”

춘희씨는 우체부가 가리킨 곳에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썼다. 김춘희.

‘그라제.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이녁 이름은 쓸 줄 알아야제.’

춘희씨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난생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의기양양해졌다. 자신 앞으로 온 등기우편물을 받은 경험이나 자신의 이름을 날인한 것도 처음이었다.

춘희씨는 우체부한테 갈색 봉투를 받아 든 순간,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콩닥콩닥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갈색 봉투 가장자리를 가만가만 뜯는데 손이 사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감정이 비 올 바람처럼 몰려왔다.

춘희씨가 봉투 안에서 공책을 꺼내 첫장을 열어보니 맨 앞에 ㄱ이 있고 가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가방이라고 짐작되는 그림도 보였다. 또 그 아래에 돼지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한 그림이 있다. 맴생인가? 뿔이 없으니 맴생이는 아닌 것 같고 꼬리가 긴 것 봉께 강아지구만. ㄴ 옆에는 나비가 보였다. 헷갈리지 않았다. 나무인 듯 풀인 듯한 그림도 있다. 잎사구가 감나무 같은데? ㄷ 옆에는 사람 종아리가 있다. 발가락이 웃는 것 같다. 아하! 다리구나 사람 다리. 그렇게 한참 동안 왼쪽을 다 보고 오른쪽을 보니, ㅏㅑㅓㅕㅗㅛㅜㅠ 따위가 있다. 그랑께 왼쪽에 ㄱ하고 오른쪽에 ㅏ가 합쳐져서 가위 할 때 가 자가 만들어진다고!

“오매오매! 시상에. 오매오매! 시이-상에!”

춘희씨가 툇마루에 앉아 왼쪽의 자음과 오른쪽의 모음을 조합해보면서 놀라움의 경지에 빠져 있는 동안, 흰색 고양이가 춘희씨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를 입에 물고 담을 넘고 있었다.

“어야! 밥 안 차리는가아!”

만식씨가 건넌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두번째 밥 타령을 했지만 춘희씨는 공책을 껴안은 채 중얼중얼하며 대놓고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이르케 되는 것을 몰랐네, 이르케 되는 것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