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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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裵秀娟

1984년 제주 출생.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 『조이와의 키스』 등이 있음. lapunjel36@naver.com

 

 

 

나와 너와 누

 

 

공항을 지날 때 나와 너는 누의 손을 놓쳤다

그후로 누는 비행기를 탄 적 없다

 

누, 잘 지내니

여기서는 손님이 가장 아름답고

언제나 새로운 손님을 원한단다

 

항구를 지날 때 나와 너는 누의 손을 놓쳤고

그후로 누는 바다를 떠올린 적이 없다

 

누,

배탈이 나면 시민합창단의 노래를 들어봐

밤중의 과일은 줄이고

여기선 부유할수록 이빨이 희고 빽빽하다

 

나와 너와 누가 함께였을 때

여권이 없고

티켓 값을 모르고

이와 이 사이가 벌어져 있었을 때

 

우리는 진흙이었고

함께 구워졌고

천둥 번개가 치면 부둥켜안고

발바닥에 매를 맞는 것처럼

유약 같은 눈물을

가슴과 엉덩이 위로 흘렸었지

 

우리는 강했을까?

 

우리—라고 말해도 누는 놀라지 않았고

그후로 나와 너는 누를 놓쳤고

“안녕, 단 한번뿐인 날들이 지나간다.”

답장 속에서 누는 화를 낸 적이 없다

 

 

 

누와 누와 누

 

 

목을 축이는 누와 누와 누

누와 누와 누가 있을 때

‘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간 적정하고 또 적정하지 않아서

모래먼지 속에서 누들은 사방으로 긴 행렬을 이루고

줄을 선 적이 없다

 

커플은 자기 삶의 관객이 필요하고

아이를 두었다

바둑알을 놓듯이 그것은

괜찮은 수인가?

 

아이는 더운 바다 위에 민트 잎을 띄운다

순박함이 누군가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 바다 동물들은 잠을 푹 잤다

 

누가 되고 싶진 않아요, 캠핑 램프라면 모를까

 

진로희망을 적을 때

 

슬픔도 기쁨도 없는 긴 얼굴의 누들

 

스케치북을 열면

 

누 옆에는 누, 누 옆에는 누

민트는 잭의 콩나무처럼

별들은 깨진 램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