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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J. B. 매키넌 『디컨슈머』, 문학동네 2022

우리 상품을 구입하지 마세요, 광고하는 기업

 

 

전승민 田承珉

문학평론가 nrz5hae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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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컨슈머: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온다』(The Day the World Stops Shopping, 2021, 김하현 옮김)는 실제로 한잔의 커피를 사고, 청바지 한벌을 구입하는 사람이 매순간 마주하게 되는 이 사회와 세계의 지구적 변화들을 고민한다. 모두가 망했다고 아우성치는 지금의 세상이 어찌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 분석에만 천착하지 않고 현재의 재구성을 위한 미래적 상상력을 강력하게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세상이 소비를 멈춘 처음 몇 시간과 며칠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24면)라는 저자의 사고실험에 기반해 문제의 원인과 현상 분석, 그리고 가설이 현실화될 때 우리에게 닥칠 미래적인 상황, 이렇게 세단계의 시나리오로 책은 구성된다. 책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이 세상의 망해가는 꼬락서니를 ‘소비’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인간의 종차별주의, 분배의 불평등,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 인구문제 등 골치 아픈 여러 현안들은 소비 주체로서의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이 모든 문제들을 연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역시 소비에 있다는 것이 책의 골자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늘 가로막혔던 부분은 과연 이 ‘판’을 탈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문제였다. 문제의 원인 분석은 이미 많은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내어놓고 있으나 쟁점은 해법과 방향이다. 저자 매키넌(J. B. Mackinnon)이 제시하는 답은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가령 에코백이나 친환경 마크가 부착된 의류를 사는 일보다 어떤 제품이든 구입을 ‘덜’ 하는 것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훨씬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인류세 시대가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들, 친환경주의적 소비자들을 만들어냈을지언정 소비 그 자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저자는 ‘어떤 소비’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그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경제의 동력은 소비지만, 소비는 탄소배출의 동력”이며, “유행 주기가 가속화되면 기후변화도 가속화”(84면)되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문제적으로 지적하는 소비는 최신 트렌드를 뒤따라가는 지출—예를 들면 깨끗하고 선명한 화면의 텔레비전이 이미 있음에도 더 얇고 평평하고 큰 화면의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일—그리고 필요에 의하지 않은 과시적 소비다.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세의 법칙(Say’s law)에 따라 충실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건대 빈곤은 저자가 말하듯 재산의 다소나 소득의 고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더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이미 가진 것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60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 소비는 경제의 성장으로, 성장은 더 많은 노동으로 이어지며, 바쁘게 가속 순환되는 일상과 사회는 더 빠른 유행을 만들어낸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삶의 컨베이어 벨트 속에서 인간은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며 대리보충되는 허위의 만족감만을 느끼며 살아간다. 악순환이다. 그러므로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탈성장, 저성장이 필요하고 그리하여 소비 중단은 실상 성장지표를 낮추자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덜 벌고, 덜 쓰고, 오래 쓰고, 물건이 아닌 것들에서 삶의 내적 만족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는 언뜻 텅 빈 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400여면에 달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섬세하고 치밀한,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실제로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녹색 기술에 집중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121면)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책 속에 제시되는 많은 흥미로운 사례 중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웃도어 의류기업 파타고니아의 이야기다. 파타고니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컨슈머, 즉 소비의 감소를 지향하는 최초의 브랜드다. 2011년 성탄절 무렵 파타고니아는 자사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플리스 재킷을 광고하면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지 마세요. 무엇이든 신중히 고민하고 구매하세요”(145면)라는 문구를 적었다. 디마케팅(demarketing)의 일종으로, 기업이 생태문제에 관한 책임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단념시키는 광고를 한 것이다. 산과 들, 강, 바다 등 자연에서의 인간 활동을 만끽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위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활동에 동참한다. 파타고니아는 튼튼하고 질 좋은 의류를 만들고(스마트폰이 소비자의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2년 동안만 정상 작동되도록 설계된다는 속설과는 대조적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고집한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디컨슈머 문화의 미래적 사례인 동시에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재의 사례다.

저자가 제안하는 삶은 “더 질 좋은 것으로 더 적게 갖는 것”(366면)이다. 이때 인간 활동은 단순해진다. 물건과 소비, 광고가 자리하던 일상의 시간 속에 이웃과의 대화, 집에서 직접 만든 요리와 커피가 새로이 들어온다. 이는 ‘녹색 소비주의’와는 다르며 소비 주체 개인의 노력은 부차적이다(“그렇게 지낼 수 있는 건 다른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렇게 하기 때문이에요. 반드시 집단으로 움직여야 해요.” 78면). 기후위기를 다루는 많은 책들이 개인의 실천과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그는 소비 중단과 저성장이 철저히 계획에 의한 실행, 정부와 기업의 정책 주도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정부는 제조사들이 자사의 상품에 수명을 표기하도록 권고하여 내구성 향상을 이끌거나 노동자의 근무일수를 줄임으로써 더 작은 규모의 경제에서도 고용률을 유지하게끔 할 수 있다(372면). 말하자면 GDP 중심의 성장이 아니라 삶의 질을 반영한 지표인 ‘안녕 중심 경제’의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소비생활을 반추해볼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내가 이 책이 말하는 디컨슈머였구나 하고 퍼뜩 깨달았다. 옷장에는 7년 이상 된 옷들이 대부분이고 최근의 지출들은 노트북이나 핸드폰 같은 필수품뿐이다. 지인들은 모두가 나처럼 살면 기업들이 죄다 망할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그 어떤 친환경 소비 실천보다도 더 실효성 있는 해법이라 하니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한편으로 나는 대중문화의 유행, 변화에 둔감하다. 그 때문에 어떤 모임에 나가서도 ‘요즘’의 이야깃거리에 대해서는 딱히 보탤 말이 없어 묵묵히 식사를 하곤 하는데, 책에서는 그 또한 타인과의 비교나 트렌드 따라잡기에 의해 만들어진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방증이라 해 기쁘기도 했다.

디컨슈머가 되는 것은 결국 ‘나’의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주입되는 욕망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것, 목 마를 때 소금물 마시기처럼 단기적·충동적인 구입으로 얻은 자잘한 물건들(나는 알라딘에서 책을 살 때 굿즈를 ‘사지 않음’으로 체크해온 지 오래되었다)을 삶에 더는 들여놓지 말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 타인과의 비교나 유행의 흐름에 의탁하지 않은 진정한 ‘내’ 삶의 가치를 가꾸어가는 것, 그거면 평생이어도 충분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