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희곡

 

 

199_486

김나경 金娜炅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3학년. 2000년생.

forevermilf365@naver.com

 

 

 

축제

 

 

등장인물

외숙모

둘째 삼촌

남동생

친척 동생

 

 

1. 부엌

 

그만 꼬매요.

외숙모 뭘?

언니 양말이요.

외숙모 교정을 안 시켜줘서였을 거야.

네?

외숙모 며칠 전에, 아니 생전에, 교정을 하고 싶어했거든 걘. 근데 우리 살림에 뭔 교정이냐고……

둘째 삼촌 면박을 줬지, 신나게.

삼촌.

남동생 상까지 다 치렀는데 아직도 그게 중요한가요……

 

외숙모,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간다.

 

넌 좀 그만 좀 울자.

친척 동생 슬픈 걸 어떡하라고……

너 그러다 탈수증세 와.

친척 동생 (울다가 콜록대며) 그럼 나 물 좀.

……그래.

 

친척 동생,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삼촌, 뭐 드실래요?

째 삼촌 뭐?

아니, 배고프신가 해서요.

둘째 삼촌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네?

둘째 삼촌 지금 밥을 먹자고?

아…… 아니에요.

둘째 삼촌 왜.

그냥, 아, 삼촌은 상 치르고 오면 밥을 못 먹었죠.

둘째 삼촌 아니? 먹어.

아, 그래요?

둘째 삼촌 근데 지금은 안 먹을래.

예.

남동생 난 먹을래.

네가 차려 먹어.

남동생 다른 사람들은?

(한번 훑어보고) 다…… 안 먹을 것 같아.

남동생 나 심심한데 밥친구 해주라.

밥친구? 별게 다 필요하네.

남동생 (밥을 차리며) 누나 그거 알아? 게슈탈트 붕괴 현상.

어, 나 알았는데, 뭐더라.

남동생 단어가 낯설어지는 거야. (밥을 가리키며) 지금 이게 뭐게.

이거? 밥.

남동생 공깃밥.

공깃밥?

남동생 그거 열번 반복해봐.

귀찮아…… 공깃밥 공깃밥 공깃밥 공깃밥 공깃밥 공깃밥……?

남동생 어때?

좀 느낌 이상하다.

남동생 그게 바로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야.

그럼 외숙모도 게슈탈트 붕괴가 오겠네.

남동생 왜?

계속 양말을 꼬매고 있잖아.

남동생 그건 모르겠고 양말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는 건 알겠어.

교정 때문이래. 언니 이를 철사로 못 조여서 양말 실을 바늘로 조이고 있는 거야.

남동생 에이.

넌 어떤데?

남동생 뭐가?

언니의 죽음에 대해.

남동생 슬퍼.

크게 생각 없어 보여.

남동생 사실 크게 생각하는 건 없어.

작게 생각하는 건?

남동생 왜 죽었을까.

왜? 그러고 보니 아무도 왜란 말을 안 했어.

남동생 그냥 죽었을 것 같진 않아, 사촌누나 성격상.

그럼?

남동생 뭔가 남겨놓고 갔을지도. 근데 나, 밥 다 먹었어.

아, 이제 가라고?

남동생 응.

네가 치워.

남동생 누나가 좀 해줘.

이기적인 새끼.

남동생 뭐?

넌 항상 그랬어.

남동생 내가 이기적인 새끼라고?

어.

남동생 왜?

언니 장례식 치르고 와서 밥 먹는 거, 너밖에 없어.

남동생 배고플 수도 있지, 배고픈 게 죄야?

됐다.

남동생 누나는 항상 그래.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혼자 심각하게 생각하고 오바하지. 뉴스에서 어떤 사건이 나오면 자기가 당사자인 것처럼 벌벌 떨고 무서워하고. 왜, 이번 사촌누나 장례식도 그래?

너 말을 왜 그따위로 해?

남동생 누나도 잘하는 거 하나 없다고.

그래놓고 지금 나한테 밥 차려달라 한 거야?

남동생 난 누나가 너무 쓸데없이 슬픔에 빠져 있는 것 같아서,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정신 좀 차리게 해주려던 것뿐이야.

개소리하지 마.

남동생 또 혼자서 불타오르네. 이래서 한국인들이 냄비근성 소리 듣는 거야.

넌 한국 냄비 아냐?

남동생 난 한국인이지만 냄비는 아냐, 인간이지. 난 냉정해. 어떤 사건이든 차가운 마음으로 잘 바라볼 수 있지. 학교에서도 그래.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나. 내가 냉혈한이래. 근데 그런 말을 들으면 꽤 희열을 느끼기도 해.

꺼져라 냉혈한아.

 

남동생, 나에게 손가락 욕을 날리며 부엌에서 사라진다.

 

설거지도 안 하고 가냐, 개새끼.

 

나,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부엌과 붙어 있는 안방에서 외숙모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2. 안방

 

외숙모, 사촌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고 있다.

 

외숙모 얇은 눈꺼풀의 눈에 오돌토돌한 뱀 피부, 낮은 코, 두툼한 입술…… 다 내가 사랑하던 너의 얼굴들이지. 누가 널 죽게 했니. 난 아직도 자살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널 네가 죽였을 리가 없잖아. 그건 이 엄마의 사랑을 배반하는 일이잖니. 엄마가 널 사랑해. 엄마는 늘 널 사랑한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말했지. 어렸을 땐 참 듣기 좋아했지만 커서는 부끄러운지 조금씩 피했어. 그랬던 네가 죽었다니 이 엄마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분명 널 죽게 만든 무언가가 있을 거야.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니. 꼭 말해주렴. 왜 방 안에서 목을 매달고 있었니.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끈을 동여맨 거라고 말해주렴. 누구니.

 

둘째 삼촌, 안방 문을 두드린다.

 

둘째 삼촌 들어가도 돼요, 형수?

외숙모 ……

 

둘째 삼촌, 들어온다.

 

둘째 삼촌 사실, 방금 의도치 않게 형수의 주문? 기도문? 하여튼 그런 걸 들었어요. 근데 형수, 꽤나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던데. 그애를 죽게 만든 사람이 있다고?

외숙모 ……별로 삼촌이랑 할 말 없어.

둘째 삼촌 아니, 왜 아까부터 나를 이렇게 경계하실까.

외숙모 ……

둘째 삼촌 왜 그렇게 입을 꾹 닫고 계셔, 나 속 터져.

외숙모 삼촌이랑 우리 애랑…… 생전에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우리 애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들은 이제 다 경계할 거야.

둘째 삼촌 아이고, 정신 차려 형수…… 나도 지금 너무 슬퍼. 아까 울다가 잠시 탈수증세 온 거 안 봤어? 나 우리 엄마 돌아가실 때보다 더 울었어. 왜 그렇게 슬프던지…… 젊은 애들이 죽는 건 어른들 가슴에 대못 박고 죽는 거랑 같다잖아. 나도 지금 대못이 박혔어. 피가 철철 난다고, 형수.

외숙모 ……

둘째 삼촌 내가 진짜 싫어서 걔를 그렇게 괴롭혔을까?

 

둘째 삼촌,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둘째 삼촌 여보세요? …… (외숙모의 눈치를 한번 보고 구석에 가서) 아, 형님, 번호 바꾸셨구나…… 하하. 곧이죠. 곧 갚죠. 곧. 아이, 곧이란 뜻 모르세요? 제가 이번에 가족 상을 치러가지구…… 아, 조의금이요……? 보험이요……? 아하하. 네, 들어가세요. 맛있는 밥 드셔요……

외숙모 또 빚쟁이지.

둘째 삼촌 아냐, 이번에 장례식 왔다 간 친구, 괜찮냐고.

외숙모 그래서 뭐라 했어?

둘째 삼촌 괜찮다 했지.

외숙모 괜찮아?

둘째 삼촌 응?

외숙모 삼촌은 괜찮아? 뭐가 괜찮아? 우리 애가 죽었는데 괜찮아?

둘째 삼촌 아아, 그냥 인사치레야. 사회생활 몰라? 형수…… 우리 형이 맨날 그랬잖아. 형수는 유도리를 좀 키워야 된다고. 그때는 내가 이해를 못했어. 근데 이제 좀 알 것 같아. 형수는 확실히 유도리가 없는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장례식 온 사람들을 그렇게 쥐 잡듯 잡을 수는 없는 거야.

외숙모 웃으니까 웃지 말라고, 우니까 울지 말라고. 그게 뭐가 어때서? 우리 애가 죽었는데 웃고 싶을까, 우리 애가 죽었는데 나보다 울고 싶을까.

둘째 삼촌 세상 사람들이 왜 웃고 우는지 알아? 그 사람들도 집에 가선 무표정한 얼굴로 모든 일들을 처리해. 웃고 우는 건 사회적 가면 같은 거야. 감정의 극대화. 인위적이잖아. 형수라도 힘내라며 미소 짓는 거고, 감정의 동요를 보여주기 위해 우는 거지.

외숙모 난 그딴 인위적인 것들, 필요 없었다고.

둘째 삼촌 형수는 그럼, 다른 사람 장례식 가서 어떻게 했어? 적어도 미간을 찌푸리면서 아니면 입꼬리를 내리면서 유가족들과 인사하지 않았어?

외숙모 난 무표정한 얼굴로 국화를 내려놓았어. 정말 로봇처럼 행동했어. 남의 죽음 앞에서 나 따위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어. 정말 이성적으로 절을 하고 이성적으로 묵례를 했어. 장례식 갔을 때 의례 절차를 머릿속으로 몇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그대로 행했어.

둘째 삼촌 ……그래.

외숙모 아…… 나, 한번 웃었어.

둘째 삼촌 언제?

외숙모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둘째 삼촌 ……아니, 하하. 형수 우리 엄마 미워했어?

외숙모 글쎄. 그냥 웃음이 나던데. 솔직히 오래 사시긴 했잖아.

둘째 삼촌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나 섭섭한데.

외숙모 근데,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내가 제일 잘해드리지 않았나?

둘째 삼촌 응?

외숙모 그이는 매일 해외 출장, 삼촌은 노름. 내가 어머니를 제일 챙겼던 것 같은데.

둘째 삼촌 에이,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잖아. 내가 가끔 용돈도 주고.

외숙모 노름에서 딴 돈? 잃으면 도로 가져갔잖아.

둘째 삼촌 백도 사 드리고.

외숙모 그거 짭이잖아.

둘째 삼촌 김장도 도와드리고.

외숙모 삼촌이 담근 것만 짰지.

둘째 삼촌 아 하여튼! 나는 효자야.

외숙모 그려. 피곤하니까 나가.

둘째 삼촌 그래서, 그그, 가해자가 누군데.

외숙모 가해자?

둘째 삼촌 분명 누군가가 그애를 죽게 했을 거라며.

외숙모 모르지?

둘째 삼촌 우리 같이 찾아볼까, 형수?

외숙모 나는 삼촌 같은데.

둘째 삼촌 난…… 뭐 좋은 삼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해자는 아니다.

외숙모 매일 술만 마시면 고성방가를 지르며 애 방 앞을 지나쳤지. 애가 화장실을 쓸 땐 나오라며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애가 밥을 먹고 있으면 자기 건 왜 안 차렸냐고 면박을 줬지.

둘째 삼촌 내가…… 그랬어?

외숙모 우리 애 초3 때 일기장 내용이야.

둘째 삼촌 아니 형수, 그건 왜 읽어본 거야.

외숙모 애 유품 정리하면서 읽어봤지.

둘째 삼촌 아…… 그래도 똑바로 합시다. 그건 걔 어릴 때고, 커서는 가끔 서로 으르렁거리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걜 죽인 건 아니야.

 

누군가 닫혀 있는 안방 문을 똑똑똑 두드린다.

친척 동생이다. 문을 연다.

 

친척 동생 외숙모, 삼촌. 누가 오셨는데요.

 

 

3. 거실

 

거실에 귤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둘째 삼촌 웬 귤이야.

친척 동생 언니가 시켰던 거 아닐까요.

외숙모 왜 그렇게 생각하니?

친척 동생 언니가 귤 좋아하잖아요.

둘째 삼촌 하여튼 난 아니야.

외숙모 근데 그 귤 배달원,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았어?

친척 동생 왜요?

외숙모 심하게 꼬르륵거리던데.

친척 동생 그럴…… 수도 있죠?

외숙모 자기 생업을 하는데 밥도 안 먹고 일을 한다고?

둘째 삼촌 형수, 나도 가끔 그래. 얼마나 꼬르륵거리는지 몰라.

외숙모 밥을 안 먹을 만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알리바이 만들기 같은 거 말이야.

둘째 삼촌 (귤을 까먹는다) 음, 맛있네.

외숙모 먹지 마. 독이 들었을 수도 있어.

친척 동생 (귤을 집어 들다가) 네?

외숙모 아까 그 배달원, 우리 애를 죽인 새끼일 수도 있다구.

둘째 삼촌 근데 이렇게 맛있는 귤을 준다고?

친척 동생 (귤을 먹으며) 맛이 진짜…… 놀라운데요.

외숙모 삼촌, 우리 집에 소총 있지.

둘째 삼촌 뭐야, 그건 왜.

외숙모 왜긴 왜야. 쏘려고지.

둘째 삼촌 미쳤어요, 형수?

 

외숙모, 창고에서 총을 꺼내온다.

 

친척 동생 귤 좀 드셔보세……?

둘째 삼촌 형수!

외숙모 다 말리지 마. 일단 비둘기부터 쏴볼게. 사람을 쏘기 전에 작은 짐승 한마리라도 죽여봐야 되지 않겠어?

 

외숙모, 거실의 큰 창을 열고 총을 하늘에 겨눈다.

 

둘째 삼촌 날고 있는 애를 잡을 수 있다고?

친척 동생 외숙모……! 하지 마요 진짜……

 

외숙모,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리.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나, 남동생 모두 방문에서 나온다.

 

남동생 뭐 해요?

둘째 삼촌 느이 외숙모가 미쳤다.

친척 동생 (덜덜 떨며) 총을 쏘려고 해…… 총을……

 

남동생, 멍하니 서 있는 외숙모의 손에 들려 있는 총을 본다.

 

남동생 저건 내 비비탄총인데? 그걸로 뭘 하게요?

외숙모 (총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그 새끼를 죽여야지.

남동생 그걸로 사람 못 죽여요.

외숙모 ……그럼 진짜 소총 좀 찾아주겠니.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그거 말이야.

남동생 그거 아세요? (몸을 모두가 있는 쪽으로 돌리며) 다들 그거 아세요?

뭘.

남동생 나, 그 소총 때문에 이 집 온 거예요.

둘째 삼촌 그게 뭔 소리냐.

남동생 살기 너무 싫어서, 근데 이 집에 총이 있는 걸 기억해서, 그래서 왔다구요. 시발! 조용히 학교 다니다가 조용히 죽으려고 했어요. 근데 총은 집 어디에도 없고, 자살은 누나가 먼저 했어요.

외숙모 ……그래서, 누나가 잘못했다는 거니?

남동생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구요!

왜 갑자기 떼를 쓰는 건데 네가.

남동생 다들 이 집에 왜 온 거예요? 그냥 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요, 다 목적이 있어요. 다 원하는 게 있어요. 이 허름하고 큰 집에 다들 이유 없이 모였을 리가 없어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삼촌?

둘째 삼촌 뭘, 말이냐. 난 할머니 죽고 나서 유산 정리하러 온 거지.

남동생 유산은 삼촌한테 아무것도 없는 걸로 이미 정리되고도 남았잖아요. 너는?

친척 동생 ……모르겠는데?

남동생 넌 가족이 필요했겠지. 니네 가족은 콩가루잖아.

야.

친척 동생 ……맞는 것 같기도 해.

난 뭔데.

남동생 이 모든 걸 지켜보려고?

외숙모 다 닥쳐! ……가해자를 찾을 거야 지금부터. 우리 애를 목매게 한 사람을 찾을 거야.

야, 너 뭐라고 했어.

남동생 맞는 얘기잖아.

너 왜 날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어?

외숙모 지금부터! 가해자를! 찾을 거야!

(한숨을 쉰다) 아까부터 자꾸 가해자 가해자 하시는데, 그 후보엔 외숙모도 있는 거예요?

 

괘종시계가 뎅 하고 울린다.

 

친척 동생 저게 갑자기 왜 울려……?

둘째 삼촌 유령이야. 어머니의 유령!

남동생 그래요. 자, 다들 할머니 앞에서는 솔직하기로 해요. 외숙모, 누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어요?

외숙모 그걸 수치로 매길 수 있는 거였니?

남동생 엄청 사랑하셨다는 말이네요?

외숙모 당연하지. 사랑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아, 그애의 삐뚤빼뚤한 이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남동생 오케이, 그럼, 삼촌.

둘째 삼촌 (귤을 먹으며) 으응?

남동생 귤 좀 그만 먹구요.

둘째 삼촌 어, 미안, 미안. 내려놓을게.

남동생 누나를 왜 그렇게 괴롭혔어요?

둘째 삼촌 ……그냥. 별 큰 뜻은 없었어.

남동생 삼촌, 솔직하게 말해봐요.

둘째 삼촌 뭘.

 

괘종시계가 뎅 하고 울린다.

 

남동생 할머니가 보고 있어요. 우린 이 집에 왜 왔는지 각자 말해야 해요. 할머니 앞에, 감춰뒀던 비밀들을 말해야 해요.

쇼를 하네.

둘째 삼촌 알지 너네. 둘째 외숙모가 유산한 거. 난 저 괘종시계가 뎅뎅거리는 게 참 싫었어. 뎅 하는 소리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어. 그 장면을 본 순간 기절했거든. 믿고 싶지 않았어. 그애는 우리에게 온 선물이었어. 하지만 가끔은 미안했어. 이 거지 같은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 그건 죄악이라고 생각했어.

외숙모 삼촌, 어떻게 그런 생각을…… 세상에 나오는 건 축복이죠!

둘째 삼촌 내가 살아봐서 알지. 이 축축하고 더럽고 깊은 우물 같은 세상에, 네가 굳이 태어나야 할까,라고 말이야. 애를 키우기 위해 도박장을 더 열심히 전전할 내 미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미안했지. 그애는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이 짙어질 때쯤, 내 기도가 닿기라도 한 듯 아이는 떠나가버렸어. 그때 태어났지, 그애가. 너의 사촌누나가.

남동생 넌?

 

괘종시계가 뎅 하고 울린다.

 

친척 동생 꺼져.

남동생 말해보시지. 이건 가해자를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한 거야.

친척 동생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인데?

남동생 네가 가해자가 아니란 법 없잖아? 우린 지금 할머니라는 법관 앞에서 심판을 받는 거야. 너도 어디 한번 말해봐.

친척 동생 ……아까 말했잖아…… 가족이 필요하다구. 아빠 엄마는 항상 같이 외도를 저질렀어. 서로가 서로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 규칙도 있었어. 적어도 서로가 아는 사람과 외도를 하는 거야. 항상 외로운 건 나였지. 난 친구들과 친구가 될 수 없었어. 내 부모와 친구의 부모들은 항상 나중에 사이가 나빠졌으니까. 난 가족을 떠나고 싶었어. 정말 가족이란 게 있다고 한다면, 할머니 집에 모였을 때의 사람들 모습을 떠올렸지. 할머니 집에만 오면 사람들은 예의를 차렸고 웃었고 함께했어. 난 그걸 떠올리며 엄마 아빠가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함께 타지 않았어. 그렇게 이 집에 오게 되었지.

남동생 누난.

……

남동생 누난 저 괘종시계 안 울려도 알아서 말할 수 있지?

네가 조작한 거야?

남동생 뭐? 시계?

응.

남동생 저 시계로 치자면 저것도 할머니가 아끼던 건데 어떤 영험한 힘이 있는……

됐어. 난…… 말 안 할래.

남동생 여러분, 보셨죠. 이분이 제일 사악해. 자, 그럼 누나는 스킵하고, 아, 이번엔 누나가 엠씨를 해보는 거 어때? 마피아게임 알지. 한번 시작해보자 우리. 마피아가 누군지.

넌 언니가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외숙모 자살은! 절대! 아니란다!

남동생 우리 중에 가해자가 있다잖아. 한번 찾아보자고.

……멍청한 짓인 것 같아, 안 할래.

남동생 쫄리는구나.

외숙모 ……있잖아. 네가 우리 애랑 가족 중에선 그래도 제일 친했잖아. 넌 정말로 그 아이가 불쌍하게 죽길 바라는 거야?

외숙모도 이제 정신 좀 차리세요!

친척 동생 (손을 들고) 나 귤 좀 먹어도 돼?

잠깐만…… (뭐에 홀린 듯이) 사람이 귤덩어리 백개를 한번에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남동생 목에 걸려 죽지 않을까.

둘째 삼촌 잘 으스러지는 거라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언니가 그날 귤을 백개 먹었다고 쳐봐요.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다들 자기들이 무엇을 했을지 생각해보자구요.

둘째 삼촌 난 여느 때와 같아. 집을 돌아다니다가 걔가 보이면 한 소리 했겠지.

외숙모 난 바빠서…… 집안일에 정신이 팔려서…… 그애가 뭘 하는지도 몰랐을 것 같은데.

남동생 난 사촌누나가 방으로 가져간 귤 뺏어 먹을 것 같아.

친척 동생 난, 언니가 귤을 좋아하니까 귤을 먹으라고 했을 것 같아.

여기서 둘은 언니한테 관심이 있지만 둘째 삼촌, 외숙모는 관심이 없죠. 그렇다면 다들 평소와 같아요. 범인은…… 아무도 없어요.

남동생 뭐야, 어쩌라는 건데.

외숙모 넌 뭘 하고 있을 건데?

전…… 저는요…… 나 기억났어요. 그날의 보일러 계기판을…… 우리 집엔 보일러 계기판이 세개 있죠. 부엌 쪽, 거실 쪽, 그리고…… 쪽방. 쪽방은 고요해요. 햇살 한조각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죠. 먼지가 쌓여 있어요 늘. 우리는 일년에 두번 정도 청소를 하고…… 이제는 청소할 때가 다가왔어요. 난 무심코 집 보일러 계기판을 지나쳤었고, 그건 분명 작동하고 있었어요. 아무도 없으면 작동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난 정말 무심코, 고장이 났나보다, 생각했……

둘째 삼촌 그래서, 쪽방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냐?

 

나,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빠르게 휘젓는다.

 

남동생 손 안 탄 지는 꽤 됐지.

친척 동생 혹시 쪽방으로 귤을 시켰어?

아니야, 아니야. 쪽방에 뭔가…… 있다고……

외숙모 쪽방에…… 누가…… 있다는 거니……?

……그건 모르죠…… 근데 뭔가가 있다는 거예요.

둘째 삼촌 그 방에 쥐새끼 많이 드는 거 아니? 분명 또 새끼를 낳았을 거다. 보일러는…… 오작동인 게지 뭐.

남동생 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친척 동생 귤 배달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외숙모 그 새끼? ……쪽방에 우리 애를 죽인 어떤 새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때, 친척 동생의 뒷걸음질에 리모컨 전원 버튼이 눌려 티브이가 켜진다.

 

친척 동생 뭐야!

둘째 삼촌 귀신이야?!

남동생 사촌누나가 지나갔던 거 아냐?

외숙모 ……

뉴스네. 수능 얘기.

둘째 삼촌 곧 수능이란다. ……잠깐만, 니들 공부 안 해?

남동생 ……

친척 동생 전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남동생 전 대학 안 가려고요.

뭐?

친척 동생 근데 저도…… 언니 장례식 치르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둘째 삼촌 아니 니들, 미친 거냐? 학교는 가야지!

외숙모 지금…… 그게 중요해? 쪽방에 우리 애를 죽인 새끼가 있을 수도 있다는데.

하…… 진짜 니들 어쩌려고 그러냐.

둘째 삼촌 아무리 어른들이 학원을 안 보내줬기로서니 대학을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거냐?

 

외숙모, 혼자 어딘가로 가버린다.

 

너부터 말해봐, 왜 그러는 건데?

남동생 대학 같은 게 뭐가 중요해.

엄마 아빠 봐. 그 옛날에 대학 나오신 분들이니까 지금 그 정도 직장 자리 잡고 우리 먹여 살리는 거잖아.

남동생 우릴 먹여 살려? 그 양반들이?

아니야? 너 누구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남동생 시발, 누가 돈 필요하대? 난 학교에서 거의 부모 없는 애로 불려. 돈만 보내주면 다야? 날 위해서 부모가 해준 게 뭔데?

야…… 너 사춘기냐?

남동생 누나도 무슨 앵무새 같아. 이 집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뭐든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해. 그래도 옛날에 부모님이랑 살 땐 살가웠잖아. 누나 애정결핍이지? 그거 감추려고 맨날 나 갈구는 거고.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남동생 지겹다고. 대학? 살기가 싫은데 무슨 대학. 그거 아세요, 여러분? 가족도 멀리서 보면 다 역할놀이라고, 누가 그랬어요.

누가.

남동생 사촌누나가.

둘째 삼촌 (친척 동생을 보며) ……너는 왜 그러는 거냐.

친척 동생 전, 전교 10등 안에 들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잘하면 외국대학도 가보려 했구요. 엄마 아빠 있는 프랑스, 갈까 했어요. 전 진짜 열심히 했다니까요. 근데, 언니의 죽음을 보고 나니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어요. 사실 우리도, 완벽한 가족이 아니었던 거죠. 엄마 아빠를 떠나서 이곳에 왔는데, 이곳도 완전한 행복은 아니었던 거야. 애초에 가족이란 게 행복으로 성립되지 않는 문제였을지도 모르죠.

 

창고에서 나온 외숙모, 옆구리에 소총을 끼고 나온다.

 

외숙모 찾았어. 쪽방으로 가자.

둘째 삼촌 ……아니 형수, 난 좀 황당하네? 이 집에 있으면 누가 있다고. 딱 우리 다섯이야, 우리 다섯!

외숙모 그럼 삼촌이 쪽방 문 열어.

(총을 가리키며) 저게 진짜 할머니가 보관하고 계시던 거예요?

둘째 삼촌 정확히는 할아버지 거야. 그 양반, 생전에 저 총으로 새를 잡고 다니는 게 취미였지. 나도 산책 따라나섰다가 피 본 게 여러번이었으니까. 하루는 그걸 구워줬어. 새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 그런데, 다음 날 뉴스에서 조류독감 얘기가 떠도는 거다.

친척 동생 으……

둘째 삼촌 그걸 보자마자 놀랍게도 다 게워냈어.

외숙모 다들 아까부터, 놀랍게도 내 말을 잘 듣질 않아.

아, 죄송해요.

둘째 삼촌 그니까 우리는…… 거기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지.

외숙모 됐고 삼촌, 문 여는 담당.

둘째 삼촌 (한숨을 쉰다)

외숙모 (남동생을 보며) 넌 마당에 있는 밧줄로 그 새끼를 잡는 거다.

남동생 네? 제가요?

외숙모 (나를 보며) 넌 경찰에 신고해.

누가 있을지 어떻게 알구요.

외숙모 일단 신고부터 해. 어떻게 될지 모르잖니.

친척 동생 저는요?

외숙모 너……? 넌…… 그냥 수틀리게 되면 뭐라도 대신 부탁해.

남동생 잠시만요, 난 이거 못해요.

외숙모 왜?

남동생 그 총 저 주세요. 저 그거 땜에 이 집 왔던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외숙모 근데 왜 필요하댔지?

지금 그 새끼 잡는 거에 혈안이 되셔서 기억 못하시나본데, 저걸 주시게 되면 쟤는 자길 쏠 거예요.

외숙모 너 미쳤니? 어른들 앞에서 지금 자살을 하겠다는 얘기냐?

남동생 누나도 했잖아요.

둘째 삼촌 그만, 그만 좀 해라.

외숙모 죽고 싶은 이유가 뭔데? ……난 이해가 안 간다. 지금 내 딸이 죽은 것도 이해가 안 간다구. 너네가 자살을 할 이유는 없다. 이 집과 우리 가족, 아무 문제 없었어. 누군가가 죽었다면 죽은 이유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걸 밝혀내야만 하는 거야.

남동생 누나 보험금 때문은 아니죠?

외숙모 ……뭐?

남동생 자살이면 보험금 안 나오잖아요. 난 우리 부모 보험금 타는 거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자살할 거예요. 누나 앞에 보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외숙모 지금 되게 어떤 보상을 바라는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친척 동생 ……그러고 보니 놀랍도록 침착하긴 하시네요.

둘째 삼촌 (애써 웃으며) 얘들아 얘들아, 숙모 아까 방에서 얼마나 울고불고 혼잣말하고 난리였는지 모른다. 너네가 그걸 안 봐서 그래.

 

둘째 삼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지만 화면을 보고 받지 않는다.

 

외숙모 일 끝나면, 너 줄게.

네? 외숙모!

남동생 진짜죠? 그때 가서 딴말하지 마세요.

외숙모 그 대신, 최선을 다해서 그 새끼를 잡아줘야 한다.

외숙모, 얠 이용하지 마세요.

외숙모 너네, 어제 점심 초밥 먹었지?

네?

외숙모 나는 사람들이 왜 생걸 먹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너네가 몰래몰래 배달음식을 시켜서 너네끼리만 먹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 어제 너희가 먹다 남긴 초밥의 잔흔을 보았을 때, 동시에 두번 이해가 안 갔어.

친척 동생 네……?

외숙모 근데 이젠 이해가 가는 것 같아. 생걸 먹는 이유도, 그리고 너희끼리 밥을 먹는 이유도. 그걸 이제야 이해하다니, 우린 정말 식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둘째 삼촌 (눈치를 보더니 외숙모 몰래 속삭인다) 내가 말했지, 미쳤다고.

남동생 무슨 소리예요.

외숙모 그 새끼를 꼭, 살아 있을 때 잡아야겠어.

 

외숙모, 마당으로 나간다.

가족들, 주춤거리다가 마당으로 하나둘 나간다.

 

 

4. 쪽방 앞

 

가족들, 쪽방 앞 마당에 모여 있다.

전부 조용한 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외숙모 삼촌, 문 열 수 있지?

 

둘째 삼촌, 쪽방 문에 귀를 대보았다가 다시 뒤로 물러난다.

 

둘째 삼촌 잠시만…… 쪽방에 원래 티브이가 있었나? 왜 티브이 소리가 나는 것 같지?

외숙모 내가 누군가 있다 했지.

남동생 아…… 저번 달에 제가…… 뭐 켜놓고 나온 것 같긴 한데.

너 저 방 썼었어?

남동생 그냥 전에, 집이 너무 싫을 때 잠깐 아지트로 썼었어. 라디오는 이미 있었고.

둘째 삼촌 너네 그거 아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싸우기만 하면 저 방에 똬리를 틀었어.

외숙모 라디오는…… 나일지도 몰라.

네?

외숙모 가끔, 저길 가서 라디오를 들었어. 집안일이 지겹고 이 시골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럼 보일러 계기판은……

친척 동생 ……외숙모, 저랑 겹쳤을 수도 있겠는데요?

둘째 삼촌 아니, 모두가…… 저 방을 쓴 적이 있고 한번도 안 겹쳤었다는 거야?

전 아니에요. 잠시만요. 그럼 모두, 이 앞에 있을 필요가 없네요. 저 안엔 사람이 없어요. 보일러가 가끔 작동된 건 당신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해서 그런 거구요!

남동생 난 보일러를 켠 적은 없어.

친척 동생 나도.

외숙모 나도.

둘째 삼촌 아무도 없을 거 같으니까 열어볼게.

 

그때, 대문 똑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 난다.

가족들, 모두 동작을 멈춘다.

외숙모, 친척 동생에게 손짓한다.

친척 동생, 우물쭈물하다 대문으로 다가간다.

 

친척 동생 누구세요……?

 

대문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친척 동생 그냥 열까요?

 

가족들, 서로를 한번씩 쳐다본다.

외숙모, 고개를 끄덕이고 친척 동생, 문을 연다.

방문자, 들어온다.

방문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 형체가 인간 같지 않고 얼굴은 완전히 가려져 있다.

 

저게 뭐야……?

 

방문자가 친척 동생 앞을 지나간다.

 

친척 동생 신이다.

 

방문자가 둘째 삼촌 앞을 지나간다.

 

둘째 삼촌 어머니……?

 

방문자가 남동생 앞을 지나간다.

 

남동생 누나?

 

방문자가 외숙모 앞을 지나간다.

 

외숙모 그 새끼네. 방 주인이 온 거야.

 

가족들, 방문자를 가운데에 두고 원을 만들고 서 있다.

 

친척 동생 손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

둘째 삼촌 어머니…… 무슨 일이야.

 

친척 동생과 둘째 삼촌, 방문자의 양다리 각각 하나씩을 붙잡고 앉아 있다.

 

친척 동생 삼촌…… 이분 손이…… 정말 부드러워요.

둘째 삼촌 그럴 리가…… 거칠거칠한데, 살아생전 참 거친 손이셨지.

친척 동생 아니에요, 부드럽다구요. 만져봐요. 사촌언니는 어디로 보내주셨어요? 분명 좋은 곳이죠? 분명 아름답고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죠?

둘째 삼촌 우리 어머니는 사람은 안 묻는다. 항상 집 앞마당의 개들, 그 개들 직접 손으로 묻어주셨어.

친척 동생 삼촌, 진짜 순진했구나. 인간은 개도 고기로 봐요.

둘째 삼촌 뭐 이 새끼야? 울 어머니가 그 개를 먹었단 얘기야?

친척 동생 하지만 신은 다르죠. 신은 크고 보드라운 손으로 보듬어주죠. 사람 또한 좋은 곳으로 보내주죠. 개도, 사람도, 평등하게.

둘째 삼촌 우리 어머니, 정말 넓은 마음을 가지셨어. 난 어렸을 때 종교를 안 믿었어. 우리 어머니를 믿으면 됐으니까.

남동생 누나. 거긴 어때? 왜 나만 두고 갔어.

외숙모 당신,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와?

아냐, 잘 왔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어.

당신을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 참 많았어.

밥 먹고,

설거지 안 했어.

빨래 돌리고,

안 널었어.

귤 까먹고,

안 치웠어.

물어보고,

대답 안 했어.

대답하고,

반문하지 않았어.

상 차리고,

치우지 않았어.

씻고,

물기를 닦지 않았어.

창문을 열고,

닫지 않았어.

문을 잠그고,

열지 않았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

할 수 없음까지 했으니까.

친척 동생 외숙모도 정말 많이…… 기다리셨군요.

다들 저게…… 뭔가로 보여요?

 

방문자, 원 안에서 빠져나와 쪽방 문 앞을 서성이더니 대문 밖으로 나간다.

 

왜 안 붙잡아요!

외숙모 팔이…… 팔이 안 움직여졌다. 당장 가서 붙잡아!

남동생 소용없어요. 누난 죽었으니까.

친척 동생 감히 어떻게 붙잡아요.

둘째 삼촌 엄마를 붙잡지 말았어야 했어. 집에서 나간다 할 때 내버려뒀어야 했다구……

 

그때, 쪽방 안에서 부스럭하는 소리 들린다.

 

외숙모 문을 열어. 방금 그 새끼는 환영일 뿐이야. 진짜 실체는 이 방 안에 있을 거야.

 

외숙모, 쪽방을 향해 총을 겨눈다.

 

둘째 삼촌 어머니가 문을 열라고 하셨어. 하지만 난 못 열겠어! 세상에. 제가 끝까지 이렇게 모자란 아들입니다 어머니!

 

남동생, 밧줄을 들고 서 있다.

친척 동생, 몸을 덜덜 떨며 쪽방 앞으로 걸어간다.

 

잠시만요, 외숙모, 그 초밥…… 맛없었어요. 귤은 물러 터졌구요.

남동생 외숙모, 누나가 전해달래요. 교정 같은 거 안 원했다고.

친척 동생 신이 말했어요, 언니는 독립된 공간의 천국을 선택했대요.

둘째 삼촌 완전히 혼자,

남동생 완전히.

둘째 삼촌 어머니는 혼자였던 거야.

친척 동생 천국에서 제일 필요치 않은 게 뭐게요.

……외숙모라면 어떤 천국을 선택할 거예요?

외숙모 ……나는.

둘째 삼촌 다들, 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마.

친척 동생 할아버진 할머니와 있고 싶어하지 않았던 거예요.

둘째 삼촌 그건 울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외숙모 당신들은 서로를 원하지 않았어.

남동생 누나는 이 집에 왜 왔을까. 누나는. 나는 확실한데, 누나는.

둘째 삼촌 이 방엔 대체…… 뭐가 있는 거야? 누가 있는 거야?

친척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외숙모, 삼촌, 나, 쟤, 언니, 언니.

우리 모두가 여기에……?

남동생 귤과 초밥은 교정 직후에 먹어도 괜찮다.

친척 동생 초밥과 귤의 속살은 부드러우니까.

둘째 삼촌 괘종시계와 총을 좋아했던 여자.

외숙모 쪽방으로 숨은 남자, 혹은 그 새끼.

삐뚤빼뚤했던 것을 고르게 잇는 실.

남동생 양말?

외숙모 아니 초밥.

친척 동생 아니 괘종시계.

둘째 삼촌 아니 귤.

언니는 안전한 지옥을 택했다.

 

친척 동생, 주저앉은 둘째 삼촌 대신 문을 연다.

방 안에서 빛이 새어나온다.

가족들, 쪽방을 마주한다.

막.

 

 

 

심사평

 

올해 희곡 부문 응모작은 60편으로 각기 개성적인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간혹 극과 무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는데 희곡이 가져야 하는 극성과 무대 언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대사는 말을 주고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을 진전시키는 기능을 한다. 내면 풍경을 묘사하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데 머문다면 극을 끌어가는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이 작품들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발상이 흥미로웠다. 「사진 찍을 때 발효 음식을 얘기하는 이유」는 ‘시간’의 의미를 상황을 순간 포착해 고착시키는 사진과 시간의 미학인 발효식품에 빗대 표현한 부분이 돋보였다. ‘시간’이란 관념적인 소재를 붙들고 밀고 간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극적 사건보다는 담론을 설파하는 설명에 치우친 점이 아쉬웠다.

「사각과 원」은 코인세탁소를 중심으로 ‘사각’과 ‘원’이라는 상징성이 다분한 이름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나간다. 장소가 지닌 의외성과 인물이 드러내는 개성이 흥미로웠다. 다만 인물들의 대사가 자기 내면의 토로에 치중되어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깝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스트라이크」는 풍자를 노린 블랙코미디로 동시대 한국사회를 건물에 숨어 사는 부부와 볼링장, 지친 경찰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사회에 대한 발언을 알레고리로 선보인 점이 돋보였다. 그리고 풍자의 대상을 외부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에만 매달리게 된 현대인의 상황까지 확장시킨 점이 공감을 샀다. 하지만 이런 안팎 모두를 노리는 풍자는 양날의 검이 되어 ‘풍자 대상’의 그늘을 여실히 드러내지 못하고 양비론에 머물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복숭아 심지」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비유와 상징이 풍성하고 대사의 말맛도 살아 있다. 괴바이러스가 만연한 상황도 상징성이 풍부하며 복숭아에 빗대진 이미지도 생생하다. 다만 분량이 규정을 초과하여 넘친다는 점과 넘치는 이야기들이 반복과 설명에 치우친다는 점이 아쉬웠다. 장막극으로 잘 가다듬어주길 부탁드린다.

「화성에 야구장」은 화성에 세워진 야구장에서 두 인물과 라디오가 펼치는 이야기이다. 발상이 참신하고 장소도 독특하다. 2인극의 단조로움을 라디오라는 소재로 다채롭게 만든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굳이 ‘화성’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고 대사가 극을 진전시키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설명, 내면 토로에 머문 점이 아쉬웠다. 이 흥미로운 공간과 소재를 밀고 나가 두 인물이 더 멀리까지 나갔으면 좋겠다.

「제자리 뛰기」는 자살을 결심한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자살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상큼하고 발랄하게 다룬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면서도 인물의 고민을 노골적인 푸념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민이 지나치게 밝아서 인물들의 갈등이 깊이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 부분과 함께 소녀들의 대척점에 놓인 엄마 캐릭터가 지나치게 전형적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빗금」은 자신이 처한 황량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청소년을 주인공 삼아 전개된다. 안정적인 극 구성과 갈등 구축, 능숙한 대사의 활용은 이 작품이 가진 장점이다. 그러나 인물들이 놓인 상황과 그들이 끌어가는 사건이 더 본질적인 지점, 성적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동시대의 부조리한 학교의 모순을 드러내지 못하고 청소년의 일탈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것은 아쉬웠다.

「축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 진짜 자살을 한 것인지 그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려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부조리하고 한편으로는 블랙코미디적이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개성 있는 캐릭터, 극을 진전시키는 정제된 대사, 인물들에게 던져진 상황이 인물의 목적과 동기를 통해 사건으로 발전해나가는 안정적인 구성이 그 어떤 작품보다 눈에 띄었다.

두 심사위원은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축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축제」가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희곡의 극성을 출중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은 이견이 없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한국 희곡을 이끌 출중한 작가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선정되지 못한 모든 분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김나정 차근호

 

 

 

당선소감

 

어떤 기대도 없이 공모전에 제출했습니다. 제출 버튼을 누른 후 브레이크 타임이 종료된 것을 기뻐하며 초밥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 손을 후련하게 떠난 희곡이 훨훨 날아 저를 어떤 곳으로 이끌어준 것만 같습니다.

처음 이 희곡을 구상할 때 썼던 시놉시스와 기획의도는 이렇습니다. ‘언젠가 꿈으로 꿨던 이야기이다. 꿈에서 깨었을 때 그 섬뜩한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놨고, 그것을 그대로 희곡으로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어렸을 때 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외할머니의 큰 주택이 공포로 다가왔다. 그 소재에 가족들의 욕망과 이기심이 더해져 파국으로 치닫는 블랙코미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이 희곡은 2022년 3월에 꾼 악몽을 모티브로 쓰였습니다. 저는 무서운 꿈을 꿈과 동시에 재밌는 글감을 얻게 된 것에 신이 났습니다. 처음 쓴 초고는 쪽방에 있는 ‘그 새끼’라는 존재에 치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써나갈수록 언니를 죽인 그 새끼라는 존재 유무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고, 언니를 죽인 건 다름 아닌 가족들의 무관심과 과도한 관심, 이 두가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였지만 남이 쓴 것처럼 골몰히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축제’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교정 후에도 귤과 초밥은 먹기 괜찮습니다’와 같은 재치있는 제목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는 하나의 제사 의식과도 같아서 그와 비슷한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이 제목에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언니의 죽음은 축하해줘야 할 일이며 가족들의 부조리한 행위는 전부 언니의 죽음을 축하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축제」는 탄생했습니다. 이번 당선을 통해서 축제와 같은 연말, 연초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항상 날 위해주는 엄마, 아빠 그리고 마음 써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큰언니, 작은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글에 대한 큰 배움을 배울 수 있게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도 애정어린 감사 인사드립니다.

종종 얼굴 보는 친구들아, 매번 만날 때마다 반가워. 서로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이 계속 이어지기를. 항상 옆에서 많은 도움 주는 별아, 분명 크게 빛나게 될 날이 올 거야. 항상 내가 작가라며 응원해주는 수민아, 늘 고마워.

저 자신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시기들을 만들어준 이들에게도 큰 동력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제 희곡을 읽어주신, 그리고 읽어주실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2022년을 ‘축제’로 닫게 된 것이 정말 기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나봅니다. 저는 요즘 말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말과 대사들이 제 안에 빼곡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자신이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김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