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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승민 朴勝民
1965년 경북 영주 출생.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 등이 있음.
84bluee@hanmail.net
별빛 한줄기 흉터처럼 그어지고
청화백자 구름문양이 새겨진 가을하늘의 도록 위로
헌 바바리 한벌, 시집 한권 태워지고
마침내 그대는 이 우주의 공동묘지에 티끌의 위패로 봉안된다.
그대가 사랑했던 케냐산(産)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도 어둠 깊어지고
그러나 녹으면서도 얼음처럼 반짝이는
문장은 행장이라는 그 말
애매해지지 않기 위해 애매의 숲을 헤맨 그대는 평생 회의주의자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이지 않는 악습이 그대는 없었다.
단 한줄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그대는 생활을 단종시킬 줄 알았고
명문의 완성 대신 상황의 완성으로 가는 길을 먼저 안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꺼낼 수 없는 쇼윈도우 체제 속에 있다는 걸
불판같이 달아오른 빛의 중심을 생활의 누더기로 긁으며
그대 몸은 식어가면서 입증했다.
문장의 성좌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간장독을 깨뜨려놓은 듯 가을밤의 도편 위로 별빛 한줄기 흉터처럼 그어지고 있다.
난설헌의 남매 묘(墓)
난리가 아니어도, 몇차례 쓸고 간 후
마음의 옥독(獄毒)은 모든 게 끝난 뒤에나 오지
와서는 서서히 평생을 결렬하게 살다 가지
꿈에 본 봄날, 꽃그늘 밑을 지난 적 있었다만
여문 흉터처럼 그때는 봄날인 줄 몰랐더라
안 만날 수 있었던 지옥이라면 좋았겠지만
끝내 피할 수 없었던 것이 또한 내 운명
균(筠)의 참혹까지 덮치고 난 후라
옛 책에서 무심히 넘겼던 희미한 두 글자의 뜻을
오늘에야 분명히 새기게 되었구나
내가 걸고 있는 이 목걸이는
처음과 끝이 눈물로 묶여 있는 수정(手錠)
어떤 슬픔은 사람의 손으로는 도무지 빼낼 수 없어
통째로 마음의 분첩 속에 넣고 평생을 견디니
나, 무덤 속으로나 데불고 갈 수밖에 없었으니
내 뼈와 함께 한날한시에 숨을 놓으리라
나의 한(恨)
나의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