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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은영 朴恩瑛
1977년 전남 강진 출생.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등이 있음.
peykor@naver.com
갈매기는 알까
새우깡을 쥐고 팔을 뻗으면 갈매기가 채갔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건 검게 그은 모녀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뿐이었다 조금과 사리가 반복되는 겨울
너에게 아버지가 다섯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아버지가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의식을 잃은 엄마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새우깡을 녹여 먹으며 작은 움직임들을 찾아다녔다 조개껍데기를 줍던 바닷가 패각의 무늬처럼 추억은 아픈 부위에 남아 있는 것, 한때 진주를 품었을 가슴 안쪽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 파동으로 출렁거리는 물의 살들, 외투막을 벗은 몸의 가장 먼 곳에서 뱃고동은 울리고 밀물은 지는 것인가 깎지 못하게 뭉그러진 발톱까지 바다였다는 것을 갈매기는 죽어도 모를 일
소주병을 쥐고 난파한 여섯번째 사내를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다 쓰러진, 엄마의 입술이 파란빛으로 물들어가는 사리 물때
중환자실 창밖엔
조갯살 같은 눈이 내리고
나는 새우깡을 녹여 먹다 까진 입천장만큼만 아팠다
─
* 요한복음 4장 18절 인용.
여름방학
어린 새가 전깃줄에 앉아 허공을 주시한다 줄 한가닥을 의지한 채 골똘하더니 중심을 잃고 잠시 기우뚱거리다 불안한 오늘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나의 비행은 어두운 뒤에서 이루어졌다 학교 뒷산, 농협창고 뒤, 극장 뒷골목 불을 켜지 않는 뒤편은 넘어지거나 자빠지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뒤보다 앞이 캄캄하던 시절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백열등을 깨고 담배 연기 자욱한 친구의 자취방을 박차고 나온 날, 전깃줄에 걸린 별 하나가 등 뒤를 쪼아댔다 숙제 같은 슬픔이 감전된 듯 저릿하게 퍼지는 개학 전날 밤, 밀린 일기보다 갈겨 쓸 날들이 무겁다는 걸 알았다
새가 날 수 있는 건 날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 속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날갯짓이라면
모든 결심은 비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