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15년 6월 12일 회의를 갖고 공선옥(소설가), 백낙청, 염무웅(문학평론가), 이시영(시인)을 제30회 만해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심사위원회는 등단 10년이 넘거나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저자가 최근 3년간에 한국어로 간행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한다는 만해문학상의 규정에 따라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추천한 9편과 심사위원들이 추가한 2편(김사인 시집, 이문재 시집) 등 아래 11편의 작품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고형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 김행숙 『에코의 초상』, 문인수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이상 시),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전성태 『두번의 자화상』, 정미경 『프랑스식 세탁소』,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이상 소설), 김이구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 진은영 『문학의 아토포스』(이상 평론).
7월 23일 열린 본심에 앞서 심사위원들은 각기 3~4권의 선호하는 작품을 일차적으로 제시했고, 모임에서는 그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평론이나 연구서보다는 창작품을 우선시한다는 합의에 따라 김사인 시집, 이문재 시집, 이장욱 소설집, 전성태 소설집, 황정은 장편소설을 주요 심사대상으로 압축하였다. 이어 심사위원들은 좀더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하여 김사인, 이장욱, 황정은의 작품으로 후보를 좁혀나가다가 결국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로 어렵지 않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최근 한국시가 잃어버린 듯한 시적 절제와 인간 삶의 엄숙성을 높이 체현하고 있는 시집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시는 시적 대상 앞에 한없이 겸손하면서도 결코 겸손하지만은 않은 담대한 기백과 용기로 속절없이 망가져가는 모든 여린 것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내장하며 참다운 예술에 이른 작품이 뿜어내기 마련인 어떤 숭고미를 생산한다.
그러나 선정소식을 접한 김사인 시인은 이 상의 의미를 무겁고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수상을 간곡하게 사양한 까닭에 심사위원회는 그 뜻을 존중하여 제30회 만해문학상은 ‘수상자 없음’으로 결정하고, 본지에 시인이 쓴 ‘사양의 말’을 실어 독자들께 전하기로 하였다.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귀중
몸도 마음도 두루 무더운 중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과분한 일입니다. 신경림 천승세 고은 황석영 이문구 김지하…… 무엇으로 문학을 삼아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던 시절, 별빛처럼 길을 짚어주던 저 이름들이 만해문학상의 초기 수상자들이었습니다. 어찌 벅찬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송구하게도 이번 수상자 심사과정에 제가 작으나마 관여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최종 심의결과를 좌우할 만한 비중은 아니라 할지라도,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과정에 관여한 사실만으로도 수상후보에서 배제됨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저는 비록 비상임이라 하나 계간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고, 특히 시집 간행 업무에 참여하고 있어 상 주관사와의 업무관련성이 낮다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이 점 또한 제척사유의 하나로 제게는 여겨집니다.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깊은 경의와 함께 존중합니다만, 그러나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기대어 조심스러운 용기를 냈습니다. 만해문학상에 대한 제 충정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동시에 제 시쓰기에 호의를 표해주신 심사위원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서,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상을 사양하는 쪽을 선택하려 합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알아줌을 입는다는 것, 그것도 오래 존경해온 분들의 지우(知遇)를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이미 저는 상을 벅차게 누린 것에 진배없습니다. 베풀어주신 격려를 노자 삼아 스스로를 다시 흔들어 깨우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애써 나아가보겠습니다.
저의 어설픈 작정이 행여 엉뚱한 일탈이나 비례가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 번거로움을 끼쳐 거듭 송구합니다.
김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