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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재학 宋在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내간체를 얻다』 『검은색』 등이 있음. re6666@hanmail.net
돼지의 머리맡에 누운 축생들
내부 4
뭉클한 창자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기운이 사납다면 물론 돼지의 도축입니다 우물에 두레박 떨어지는 소리가 오래되었으니 더운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방혈과 탕박 뒤에 살찌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비만의 계급에 칼집을 넣자 소위 돼지라는 이름이 안간힘으로 살 붙들었던 시절들이 꾸역꾸역 나왔지요 꽃살이거나 낙엽살이거나 고들살 또는 항정살이거나 등겹살이거나 갈매기살의 발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다시 한마리의 돼지를 짓기에는 육질은 이미 식고 말았죠 무엇보다 돼지는 제 몸의 열배쯤 되는 저가(豬加)*를 배 속에 숨기고 있었더랬어요 저 벼슬아치의 배를 다시 가르면 엄청난 지육들, 저 혼자 식탐을 부린 건 결코 아닙니다만, 저 안에 저보다 더 큰 놈에게 멱살 잡혔던 날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외부보다 내부에서 이미 돼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고약한 돼지 냄새란 죄의식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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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부여의 관직. 저가(豬加)의 저(豬)는 해당 부족의 토템에서 연유되었고, 가(加)는 족장의 의미이다.
성긴 것을 소(疏)라 하고 빽빽한 것을 밀(密)이라 하니 바람에도 해당되는 성질이다
내 안에 손을 넣어 바람이 만져지면 해발 오천 미터
현기증은 높이에의 연민이다
그 높이라면 살이 문드러져도
시선은 또렷해진다
높이는 또한 허공이라는 지루한 넓이를 생각한다
호수의 미열만큼 햇빛도 고인다
예감도 미래도 퇴적하는
그 높이에서도 산이라 불리는 험지가 있어
바람의 힘줄이 슬며시 탱탱해진다
거기, 사원이 있는 지점이다
더이상 나무이고 싶지 않은 심심한 감정이 머물고 있다
바람의 육신은 오직 눈 위에서만 발자국을 남기지만
애써 형상이 없기에
바람은 사원의 귓바퀴 노릇을 한다
몸을 원하는 메아리가 그곳에 있다
노대바람의 되풀이로
엷은 소금기마저 희미해지는 중이다
바람의 끈을 따라하는 가건물이
세워졌다 다시 허물어진다
국경 고개 근처
바람의 심해어에 손을 넣으면
인(燐)이 전부인 답장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