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신대철 申大澈
1945년 충남 홍성 출생. 19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바이칼 키스』 『극지의 새』 등이 있음.
sdc94@hanmail.net
길 위의 길
그는 오후가 되면 교각 사이 자전거길 밑에서 잠이 든다. 방한복을 입은 채 억새 덤불에 꼬부려 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뻗으면서 과속으로 꿈속을 돈다.
그는 13살에 집을 나와 60년을 떠 있었다. 이제 막 생의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나 혼자 기다려도 줄 서라고, 화사한 날 왔으니 옛 생각 하며 기다리라고, 싱긋 웃기도 한다.
잎 위에 잎
길 위에 길 쌓이고
교각 사이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그의 몸과 꿈을 뒤집는다.
이동식 스티로폼 간판에는 ‘이발’ 위에 대청봉, 오색, 오세암 같은 글자들이 박혀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말들을 잡아놓은 것일까?
그가 부스스 일어나 길 위로 올라온다. 무릎 위에 거울을 올려놓는다, 누구의 얼굴인지 옆모습이 얼비친다. 얼굴을 내려놓으며 한눈팔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는 옛길로 가려면 고비 넘을 때마다 기계총도 걸리고 몇번 뜯겨야 되는 게 아니냐며 연신 웃는다. 벚꽃은 날리고 그는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우린 그 거릴 좁혀본 적도 없습니다. 좁혀지지도 않아요. 사람 사이 2미터, 아직도 숨 차는 거리지요.
이야기에 휩쓸려
내 동네인지 그가 살던 동네인지
뒷골목 끝을 서성이다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기억 속의 첫아이를 함께 따라가고 있는 사이
바람이 심장 속에
건듯 불다 간다.
폐가
폐가 울타리를 지날 때
눈발 속에 매 스쳐가고
새 한마리
내 품속으로 떨어진다.
피가 맺혀 있다.
머리를 홱 돌려 보고
눈꺼풀로 제 몸을 덮어버린다.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엉키는 발자국들
눈발 속에 무수히 새들이 떨어진다.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몸속으로 스며들어와
떠도는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