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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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호 

1984년 광주 출생.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vanihs@naver.com

 

 

 

숲의 물결

 

 

무수한 창문들로 이루어진 숲에 당신은 내리지 못한다

 

휘거나 뒤섞이던 잔해들은 실내에서 비바람을 부른다

 

모든 손이 검은 수면으로 물드는 외곽에 태어나서

 

당신은 그칠 줄 모르는 검은 비를 흘리고

 

괸 물이 마를 때까지 아무에게도 흘러들지 않는다

 

잠에서 멀어지기 위해 계속되는 걸음은

 

창문들에 반사되는 숲을 상기시킨다

 

마르고 축축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내면서

 

당신이 마주하게 된 현실은 창문으로 얼룩져 있고

 

잔해들은 지난 계절의 구석에 오래 몸을 숨긴다

 

형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손가락들은

 

물드는 일과 시드는 일을 동시에 배우며

 

숲의 실내가 검은 비로 장식되기를 바란다

 

각각의 창문에 제시된 숲의 다양성 안에서

 

당신은 흐름을 만들고 흐름을 잊으려 하지만

 

무수한 숲이 창문 속에 내걸려 스스로를 밀어낼 뿐

 

그렇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겹으로 분열하고

 

태어나 맞잡은 모든 손이 서로를 검게 물들이는 것과

 

줄지어 외곽을 향해 상대를 지워내는 걸 보며

 

비로소 자신이라는 높이를 실감하기에 이른다

 

개개의 잔해들에서 원래의 자기를 발굴하려고 한다

 

유리로 돌아가려는 창문들의 투명함과

 

물의 상태를 복원하려는 검은 비의 행렬과

 

형태의 모습으로 온전해지려는 손들을 되뇌며

 

태어나던 때처럼 잠들기 위해 실내에 눕는다

 

물결에 휩싸이던 어제의 숲을 완전히 잊었다는 듯이

 

검고 높은 숲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