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심사평

 

6회 창비인문평론상 공모는 지난해와 달리 자유주제 1편만을 제출하는 예전의 방식으로 진행했고, 명칭도 ‘사회인문학평론상’에서 ‘창비인문평론상’으로 변경했다. 지정주제까지 2편을 제출하도록 한 작년에 비해 꽤 늘어난 30편이 응모되었다. 공모방식을 바꾼 영향도 컸겠지만, 그 어느때보다 큰 변화의 와중에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루어진 주제도 최근 등장한 예민한 쟁점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더욱 심층적인 영역에서 사유를 진전시킨 것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었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깊은 고민 끝에 이번에는 당선작을 내지 않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여러 미덕을 갖춘 글이 없지 않았지만 당선작으로 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들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나 사유방식을 얻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논의에 밀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심사위원들이 집중적으로 검토한 글은 다음 네편이다.

양우석의 「‘선택장애’와 무중력 사회」는 이른바 선택장애가 개인의 무한한 자율성에서 비롯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주체들이 봉착한 당혹스러운 몸짓 혹은 증상이라는 점을 예리하게 포착한 글이다. 그러나 사회적 구조와 그 유래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다소 평이한 방식의 마무리가 아쉬웠다. 박홍근의 「파국의 공포와 그 희생제의: 파르마코스가 된 하청노동자들」은 안정적인 글쓰기가 돋보였다. 하청노동자들을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 재앙과 아무 관계도 없지만 재앙의 원흉으로서 추방되거나 처형되어 희생제의에 바쳐졌던 파르마코스에 비유하는 논지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등의 개념을 활용하는 유사한 논의들과 비교할 때 새로운 통찰을 준다고 보기 어려웠다. 황정웅의 「우리 안의 광장: 서울광장으로 돌아보는 감시와 통제의 도시공간」은 서울시의 광장이 어떻게 감시와 통제의 공간으로 이용되어왔는가를 분석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고진권의 「광장의 구현,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분투가 눈에 띄었다. 「다다익선」이 “‘나’를 실천하고 대중을 구현하는 장()”으로서의 광장의 본질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가는 앞에 언급한 황정웅의 광장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황정웅은 논의구조가 단순하다는 점이, 고진권은 서양철학자들의 인용이 다소 성글고 논의에 비약이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한계로 다가왔다.

당선작을 내지 못했지만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인문평론이 기존의 정형화된 글쓰기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집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전형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본 상의 제정 취지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닌지라 이번에는 아쉽게도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이러한 결정이 더 성숙하고 풍부해지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이 이 노력에 동참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