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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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李東宇

1970년 서울 출생. 2015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sujokgwan@daum.net

 

 

 

종북 놀이

 

 

태극기: 위쪽부터 그리는 건 오랜 습관. 위층은 늘 쿵쾅쿵쾅. 아래로 흐르는 층간소음을 소년은 그러려니 하며, 위층을 붉은색으로 아래층을 파란색으로 칠한다.

 

고무줄: 까르르, 소녀들이 폴짝폴짝 뛰면서 부르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조회 시간: 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 나는 빨강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파랑 같지만 이건 빨강. 노랑 같아도 어쨌든 빨강.*

 

국민학교 뒤편 초등학교: 국민으로 입학해서 초딩으로 나왔다.

 

가면: 상황이 악화되자, 삼각형들은 당분간 뭉쳐 다니기로 했다. 마름모로, 평행사변형으로. 그것도 잠깐, 곧 두께와 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게임의 룰: 서로의 얼굴을 주고받는다. 의심스러운 얼굴일수록 얼른 옆 사람에게 던져야 해. 방심하면 다 뒤집어쓰기 마련이지.

 

사막여우: 당장 나 좀 길들여줘. 어쩌지, 저 개들은 1만년이나 걸렸는데.

 

해충: 치이익, 에프킬라에서 그럴듯한 레몬 향이 난다. 뿌리는 이가 살충제를 다 들이마신다.

 

주홍글씨: 어떤 사건인지는 관심들이 없다. 누구의 이야기인지가 중요하다.

 

기시감: 수족관에서 나고 자란 치어들. 이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북으로, 남으로 헤엄친 적 없는 지느러미들.

 

전시 상황: 택배기사가 매일 150개 넘는 박스를 전장으로 실어 나르고, 독거노인은 전사자처럼 널린 폐박스를 수거한다.

 

낙인이냐 라벨이냐: 구름에게 정체성을 찾아주자. 담배 연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컨베이어벨트 위 웃음들. 유리병에 담겨 팔려나가는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까보면 다들: 마사지방, 안마방, 키스방 전단의 나신들이 길바닥에서 나름의 포즈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근 중국집, 족발집, 치킨집 광고지도 야식 한상을 거나하게 차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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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민재 시인의 「계통」을 변용.

 

 

 

K마트 서커스

 

 

빨간 코에서 터진 웃음

천막을 불룩하게 만들더니

엉덩이로 쏟아져요

관객들이 깔깔 손뼉을 치고

음악도 조명도 들썩이고

입이 귀에 걸린 불꽃들

이런 분위기는 전염성이 강하죠

 

우린 삐에로를 보고 웃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웃음은 우스울 때 난다는데

눈물은 아무 때나 흐르네요

 

내가 넘어지자 웃음소리가 커져요

사실 살짝 아픈데, 웃어요

 

늙은 원숭이가 목줄을 들고 무대를 돌아요

더 늙은 조련사를 피하려다 나와 부딪쳐요

사람들이 웃어요

사실 조금 아픈데, 웃어요

 

원숭이가 내 고무 코를 훔쳤어요

이제 원숭이가 더 웃겨요

사람들이 원숭이만 봐요

사람들이 떨어진 코만 봐요

 

이젠 내가 굴러도 웃지 않아요

아픈데, 아무도 웃지 않아요

 

눈물 그려 넣으며 혼자 웃어요

 

나 없이도 쇼는 계속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