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경위

 

이번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총 296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여섯명의 심사위원이 나누어 읽고 그중 『카브리올레 안락의자』 『인형놀이』 『너의 집』 『깃발처럼 걸었다』 『열개의 하강하는 음』 『우리는 서로가 혼자서』 이상 여섯편을 본심에 올렸다.

『카브리올레 안락의자』는 사건을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설정한 구성과 형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사와 일기, 인터뷰 등으로 시작하는 초반부는 단순한 소설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고, 독자가 상황과 이야기를 조립하듯 참여하게 하는 까다로운 독법이 요구되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보면 이러한 형식적 측면이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온다. 표면에 드러난 기본적인 인과관계에 의문이 들게 하고 연결부는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소설 형식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이야기 자체의 연결과 인과에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인형놀이』는 남성의 욕망과 폭력에 희생되고 피해받는 여성의 이야기다. 속까지 까발린 종교의 민낯 등 꼼꼼한 취재와 디테일이 느껴지고 우리 현실의 비루한 일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작품이다. 하지만 여성의 수난상이 과도하게 자극적이며, 악과 폭력 그리고 추악한 인간사를 보여주는 전개방식은 상투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공감의 폭이 줄어든다.

『너의 집』은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술적이고 섬세한 문장은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여러 모티프를 제시하는 데서 정보 전달력이 떨어진다. 또한 소설에 담긴 역사인식이 단선적이고 문명비판의 고민이 단순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소설적인 분위기와 문체를 채우는 명확한 이야기가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최종적으로 깊이있게 논의한 작품은 세편이었다. 먼저 이십일 동안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세월호 도보순례단의 긴 여정을 담은 『깃발처럼 걸었다』는 르뽀 형식을 활용하여 사실감을 높인 작품이다. 도보순례단의 한걸음 한걸음을 현장감 있게 다루는 한편, 후원금 부족이랄지 가짜 유가족으로 인한 갈등 같은 팽목항의 현실적인 고충까지 담아내고자 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가슴 저미는 죄책감이 밀려오는데, 세월호와 미수습자를 알리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그저 걷고자 했던 이 소규모의 순례단조차 우리 사회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일 것이다. 소설 밖의 우리, 그러니까 도보순례단의 존재를 몰랐거나 금세 잊고 만 우리 모두가 그에 책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새삼 그 책임을 되묻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제몫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소설의 예술적 긴장감 형성에는 충분히 공을 들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의 부족은 선과 악이 뚜렷한 인물들, 단정적인 어조, 예측 가능한 갈등, 작가의 개성을 담기엔 부족한 사실 전달 위주의 문장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또한 아직 분명한 비극으로 존재하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소설화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우려 섞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열개의 하강하는 음』은 문학의 보편적 주제라 할 수 있는 예술과 사랑을 다양한 인물과 풍성한 에피소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올해 응모작 가운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솜씨가 가장 뛰어나고 문장 역시 세련되어 신뢰가 갔다. 이 한편의 소설을 위해 작가가 꼼꼼히 자료를 찾고 정교하게 플롯을 짰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의 예술관이랄까 지금의 예술과 대결하려는 태도가 다소 희미하다는 것은 이 소설의 결함으로 지적됐다. 또한 여러 인물의 관계가 억지스럽고 어쩌면 플롯을 위해 동원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심사위원의 중론이었다. 이 때문인지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밀려오는 허무감을 독자로서 피할 수 없었다. 모자이크처럼 얽힌 관계와 사건은 ‘루비 튜즈데이’의 최귀희와 김춘기의 세계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자아내지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또한 소설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혼자서』는 마지막까지 심사진을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젊은 감각과 시적인 여운이다. 명확한 전망이나 확고한 이유 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떠나는 네 인물의 이야기는 이 시대 청춘을 대변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또한 과장된 표현 없이도 인물들의 허무와 좌절감이 느껴지는 담담한 문장과 네명의 인물이 교차하는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네 인물을 한명씩 장례식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상과 실제를 흐트러뜨리는 장치는 상당히 신선한 시도다. 그런데 이 회심의 시도를 뒷받침할 만한 사건이 부족하다는 건 무척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인물 한명 한명의 장례를 치러주어야 할 만큼 그들은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그 고통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사건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사건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니 네명의 인물도 변별 없이 흐릿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남는다. 심사위원 중 일부는 그 비어 있음으로 환기되는 무책임이 지금의 이십대가 처한 실상일지도 모른다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그 단점은 곧 문학적 고민의 불철저함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심사위원들은 장시간 논의를 이어갔으나 본심에 오른 소설들 각각의 개성과 장점과 매력에 대해 상찬하면서도 단 한편의 당선작으로는 이야기가 모이지 않았다. 다른 시각과 다른 독법으로 논의를 진행해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작년에 이어 당선작을 내지 못해 심사진으로서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 응모작들이 보여준 고른 수준과 열정을 믿고 한해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와 성원의 말씀을 드린다.

 

백지연 정용준 정이현 정홍수 조해진 한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