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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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金聖珪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등이 있음. lamp2630@hanmail.net

 

 

 

진심

 

 

나에게 진심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지 말아다오

그 진심이 나를 죽였고

진심 때문에 여기까지 온 수많은 사람들

 

아이의 눈동자 속에는 빛나는 바다가 있고

바다의 심연 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네

진심을 묻는 당신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두려움 속에서, 말하라고 다그친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그러나 괴물이 떠오르길 기다리며

진심을 물어보는 자는 들여다보라

온화한 얼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친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온갖 괴물에 둘러싸여 공포에 떨었으리라

 

진심은 마음으로 아이를 죽이고

그 얼굴을 대면하고 싶어

지금 두려워 떠는 아이에게 진심을 말하라 다그친다

눈을 반쯤 감고 개에게 소리치는 주인처럼

 

오늘, 나는 갑자기 뛰어내린 사람의 장례식에 간다

다행이다 그는 일찍 죽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키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었다면 군중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괴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리라

 

나에게 진심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지 말아다오

알고 있겠지만

진심은 물어보는 당신 자신에게 있으므로

그 누구도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오직 당신만이 자신의 진심을 두려워하므로

 

 

 

평화

 

 

칼을 사들여 모든 쇠를 녹여 총알을 만든다면

그 총알을 사들여 모든 국가를 통일한다면

모든 국가를 통제해 하나의 지구를 만든다면

이제 폭력의 시대는 지났다

 

종잇장에 총을 그리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가끔 전쟁을 떠올릴 때

결국 평화는 폭력으로 끝이 났고

인문학은 자신을 반성함으로 소임을 다했다

 

배고픈 돼지들에게는 돼지고기를 주어라

배부르면 자고 또 일어날 테니

배부른 돼지들에게는 돼지고기를 주어라

배부르면 자고 불만이 없으니

 

오늘 도시에 수많은 화환이 도착했다

두 사람이 죽었다

지식인의 장례를 위해 도착한

꽃송이의 향기가 죽음의 냄새를 지운다

가난뱅이의 집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고

그것으로 도시의 질서가 유지되었으므로

저 시체는 한달 후 이웃 주민의 신고로 발견될 예정이다

 

걷잡을 수 없는 죽음의 냄새

사람들이 그의 방문을 두드릴 때

죽은 자는 비로소 죽음에서 깨어날 것이다

죽어서까지 돈을 축적하는 장례식장

죽으면, 웃는 내 얼굴을 보고

김, 천, 유, 박, 안, 이 등이 와서

나를 욕하고 결국 취해 돌아가리라

인생은 그런 것이다

 

신부는 식장이 끝나자마자 돈을 세고

하객의 수대로 식당에 돈을 지불한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보아라

 

어떤 재앙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저들을 누가 심판할 것인가

심판자를 심판하는 눈이 있다

거짓은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띤다

그것은 순간 아름답고

순간을 넘어 인간은 존재하지 못한다

 

저 상인에게 속아 넘어간

어리석었던 한 인간이 나는 그립다